쉼터(박가네)

세상을 후회없이 살다 간 성실했던 한 인간으로, 사는데 있어서는 냉정했었지만 그래도 정을 알고 나눴던 한 인간이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고 남고 싶습니다. 늘 사랑입니다.

* 지란지교를 꿈꾸며

댓글 0

글, 그리고 좋은 글들

2020. 11. 13.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芝蘭 之交를 꿈꾸며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외길 바란다.

나는 여러 나라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될수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희로 남은 것은 그의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되새겨질 자산이 되었을 걸,



우정이라 함은 사람들은 관표지교(管鰾之交)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지 않듯이

나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은 없다.

나는 도道를 닦으며 살기를 원하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 같아지기를 바라진 않는다.



나는 될 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재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 자리에서 탄로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바랄 뿐이다.

나는 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 태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고 알 것이다.



때로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힌눈 속 참대 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 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지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비록 진실일 지라도

타인을 밟진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지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

우리는 돈푼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 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두 사람을 사랑한다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나의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여로를 버티어 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이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어두워질수록

서로를 살펴 주는 불빛이 되어 주리라.



그러다가 어느 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壽衣를 입게 되리라.

같은 날 또는 다른 날이라도.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지리라. -076



출처>[지란지교를 꿈꾸며] 유안진 /이향아 /신달자 지음

『芝蘭 之交를 꿈꾸며』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