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박가네)

세상을 후회없이 살다 간 성실했던 한 인간으로, 사는데 있어서는 냉정했었지만 그래도 정을 알고 나눴던 한 인간이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고 남고 싶습니다. 늘 사랑입니다.

* 추억의 대포집 그때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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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대사의 추억들

2020. 11. 15.

★ 니나놋 집(일명 대폿집)

어려웠던 시절 해가 서산에 떨어지고 땅거미가 짙어질 무렵이면

생활과 일에찌든 술 꾼들이 피곤 과 삶의 시름을 달래기 위해

삼삼오오 어울려 찾아 들던 이른바
"니나놋 집" 이 번성 했던때가 있었다.

 




★ 금 줄

남아 선호 사상이 팽배 하던 시절 금 줄에 걸린 붉은 고추는 행인 들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할 만큼 스스로 당당함 을 뽐냈다.
빈부 격차나 신분의 고하 지역을 가릴것 없이 새끼줄에 빨간 고추와 숯 솔가지가
매달렸으면 아들이고 솔가지 와 숯만 걸리면 딸이었다.

 


★ 이

300기 이하이신 선.후배님들은 현역 복무시절 털로짠 동내이 틈 사이에서
[이 님]들이 살이 통통 찌도록 우리 모두를 괴롭혔던 추억을 갖고있으며
어렵던 어린 시절에 이 징거로운 미물이 목숨 걸고 날라다 준 인정과 우애의
교감 조차도 지금은 온 몸을 활보하던 스물거림의 추억과 함께 잊혀져가고 있다.

 


★ 헌 책 방

40대중반 이상이면 학창시절 헌책방에 얽힌 추억을 하나쯤은 간직하고있다.
미팅으로 만난 여 학생과 대화를 위해 고전 문학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냈던 곳,
멀쩡한 교과서나 사전등을 팔아 군것질을 하기위해 찾았던곳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새책값으로 헌책을 구입하고 나머지는 군건질이나 미팅 비용에 슬쩍했던 일등….

 


★ 뻥 튀기 장수

먹을 것이 흔치 않았던 60∼70년대의 풍경이다.당시는 주전부리 라고 해봐야
고작 찐 고구마,감자,옥수수 등이 전부였다.
봄 부터 여름 까지 과일등 으로 입을 달래던 꼬마들은 날씨가 선선해 지면서
주전 부리를 할 먹 거리가 별로 없어 심심하였다. 이런 가운데 뻥 튀기
장수라도 올라치면 최고의 군것질 거리가 생기는 것이었다. 물론"눈깔사탕"과
같은 것도 있었지만 큰돈 들이지 않고 먹을수 있는것이 뻥 튀기였다.

 


★ 측 간

결코 아름답거나 향기롭지 못했던 것들도 현실이 탈색되면 향수의 대상이 된다.
"측 간"(厠間)이란 말에는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가려주는 시간의 먼지가 소담하게 쌓여 있다.

 


★ 지 게

북청 물장수 물지게, 영 호남의 바지게 등 온갖 지게는사실상 용도 폐기되고
몇개는 박물관으로 옮겨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하지만 난데없이 ‘지게차’란
서양차가 태어나 지긋지긋한 혈통을 이어가고 있다.

 


★ 전 당 포

전당포가 절박한 삶의 마지막 구원처가 되었던 그때 그 시절이 있었다.
고작 몇 천원짜리 꼬리 표를 매단채 시커먼 금고 속으로 사라지는 고물
태엽 시계 같은 삶의 사연들로 전당포 문지방이 닳아지던 시절이 있었다.

 



★ 서 커 스 단

빨간 코에 얼룩무늬 옷을 입은 피에로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재롱을 피울 때는
부초(浮草)같이 떠도는 그네들의 삶의 서글픔 마저 배어났다.



★ 엿 장 수

보리 밥 한 그릇도 제대로 먹기 어려웠던 배고픈 시절 엿 장수는 시골
어린이 들에게 가장 반가운 손님 이었다. 동네 입구에서 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집집마다 꼬마들은 부리나케 움직인다.
엿 장수가 오길 기다리며 모아 놓았던 갖가지 고물을 챙기느라 부산하다.

 


★ 흑 백 탤 레 비 죤

시골에 처음 흑백 T V 가 들어온 것은 60 년대 말에서 70 년대 초.
값이 비싸 대개 한 동네 통 틀어 제일 잘사는 부자 집 한 집에만
T V 가 있기 마련 이었다. 라디오 보다 몇 백배나 신기하고 재미있어
저녁마다 그 부자집 마당은 T V 를 보러온 마을 사람들로 꽉 차곤 했다.
T V 를 가진 부자 집의 "TV 유세" 는 대단했으며 이들은 흑 백 T V 를
보물 단지 모시듯 했다. 낮 에는 자물쇠 를 채워 놓은 집이 흔했다.


 

★ 꽃 상 여

기억 나시지요. 아득한 들길 멀리 너울 너울 꽃 상여가 떠나고 마침내는
"어 화 널 어 화 너 얼 어화리 넘 자 어 화 너얼" 애잔한 상두꾼들 소리조차
가 물 가 물 아지랭이에 먹힐 즈음이면 뜸부기 우는 들 가운데 서서 까닭없이
눈 물을 훔 쳤던 콧 잔등 싸 한 추억이.....


★ 방 앗 간

정미소가 사라지는 것은 쌀 생산량이 줄어 들어서가 아니다.
농협에서 운영하는 대형 도정 공장 때문이다.
도시에서 대형 유통 업체가 구멍 가게를 몰아내는 적자 생존의
법칙이 농촌에서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 요 강

돌이켜 보면 요강 만큼 우리 삶의 흔적을 많이 함축한 것도 흔치않았습니다.
염 치(廉恥)가 중했던지라 낮에는 딴전 부리듯 마루 한쪽에 엎어두지만 부엌일
마친 어머니 요강 단지를 방 한쪽 구석에 들여놔야 비로소 일과가 끝났습니다.
바로 뼈 빠지는 노동의 대미(大尾)에 요강이 있었던 것이지요.


★ 학 교 종

조용하고 아늑한 시골 교정에 맑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든
학교 종소리. 땡 땡 땡,그 소리가 그립다.

★ 고 무 신

20 여년 전만 해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애용되던 고무신이 요즘은
특별한때 특별한 곳에서 쓰는것으로 인식될 만큼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 성 냥

선진국에서도 성냥산업이 사양 산업으로 분류돼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 물 장 수

집 집으로 물을 팔러 다니는 물장수의 모습에는 급수시설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옛 시절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우리들 눈에 띄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