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박가네)

세상을 후회없이 살다 간 성실했던 한 인간으로, 사는데 있어서는 냉정했었지만 그래도 정을 알고 나눴던 한 인간이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고 남고 싶습니다. 늘 사랑입니다.

* 속리산 비로산장, 그저 산속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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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고 싶은 펜션및 숙박업소|전국

2020. 12. 16.

↑ 비로산장은 반세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속리산은 충북 보은군과 경북 상주시에 걸쳐 있지만 속리산의 관문은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에 위치한 법주사 탐방지원센터다. 2007년 이후로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었지만,속리산 법주사 쪽의 등산로를 이용하려면 문화재 관람료 4천원을 내야 한다. 750만평(2천475만㎡),보은군 사내리 모두와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 일대가 법주사 땅이기 때문이다.일부 등산객들은 이 요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 경북 상주시 화북면 쪽에서 등산을 하지만, 여전히 많은 등산객들이 법주사 탐방지원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속리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정이품송과 법주사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비로산장에는1980년대에 들어서 전기 공사를 했는데,그 전까지는3년 동안 물레방아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사용했다.

속리산 법주사 시외버스터미널에서부터 레이크힐스호텔까지 약 1km거리에는 산채비빔밥, 도토리묵 등 향토음식을 하는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식당 앞에 나와 호객 행위를 하는 식당 아주머니들을 피해서 빨리 걸을 수도 있지만,그런 것에도 아랑곳 않고 느긋이 거리를 구경하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한 기분에 빠진다.셀로판 글씨로 '양장점'이라 쓰인 가게 진열창 너머로는 20년은 좋이 넘었을 것 같은, 빛바랜 옷이 늙은 마네킹에 걸려 있다.또,많은 식당들 사이에 낀 기념품점 좌판에는, 이제는 어디론가 팔리길 기다리기보다 차라리 그 자리를 몇 천 년 지키고 있다가 마침내는 부처가 될 것 같은,먼지 쌓인 물건들이 진열돼 있다.

수학여행,신혼여행으로 북적이던 절 안마을

↑ 세심정까지 차를 갖고 들어갈 수 없느냐는 손님들에게 김은숙씨는"산도 보고 물 소리도 들으며 천천히 올라오라"고 이야기한다.

사내리는 '절 사(寺)'에 '안 내(內)'로,이름 그대로 절 안에 있는 마을이다. 지금의 위치로 보면 절과 마을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 땅이 결국 절 땅이니 '절 안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묘봉~문장대~천왕봉~유스타운 입구~수정초등학교 뒷산이 법주사 소유라고 한다.절과 함께 있는 마을이라 조용할 것도 같지만, 1970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에1964년에 문교부가 명승지 및 사적지 제4호로 지정하고, 1969년에 교통부가 관광지로 지정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관광객 방문이 줄어들었지만, 그 이전에는 경주와 경쟁할 만큼 관광 특수를 누린 곳이 사내리다.

↑ 비로산장을 찾아가는 길에는 법주사를 지나가게 된다.속리산이 국립공원이 되기 전에는 법주사 일주문 일대에'하꼬방'들이 즐비했었다.법주사는 속리산의 주요 관광자원이었다.

터미널에서 내려 끼니를 때우기 위해서 이 많은 식당들 중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고민하고 던 중, 마침 오늘 만나기로 한 비로산장 관리인 김은숙씨가 팔도식당에서 보자고 연락이 왔다. 팔도식당은 외관만 수리하고, 골조는 옛날 그대로다. 식당 주인이 '고야집'이라고 설명해주었는데,아마도 일본어로 '산막'이라는 뜻인 '코야(小屋)'에서 온 말인 듯하다.

"아우너미에 있던 판잣집들을 다 내몰고 지금 자리로 옮겨왔어요. 심지 뽑기 해서 자리 배정받고 온 거죠.지금 조각공원 자리에도 여관이 많았어요."

팔도식당뿐만 아니라 사내리에 있는 식당들의 거의가 같은 건물이다. 민속조사보고서 〈사내리,사살과 이어진 관광마을〉에 따르면, '오동연립(五同聯立)'이라고 부르는 이 건물들은 다섯 상가가 하나의 지붕으로 연결된 형태다. 팔도식당을 예를 들면, 문장대식당・진주버섯・가야식당・당신의 노래방・팔도식당이 한 지붕 식구인 것이다. 이렇게 같은 건물로 이주된 것은 보은군에서 주관하여 총체적인 관광지 개발을 하였기 때문이다.

신혼부부들이 선호했던 비로산장

↑ "아버지는 새벽 두 시에 일어나셔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는 세 시부터는 글을 썼어요.아버지하면 떠오르는 건 먹과 향냄새 그리고 글을 쓰고 계신 뒷모습이에요."

김은숙씨는 비로산장을 짓고 50년 가까이 산장을 지킨 김태환 할아버지, 이상금 할머니의 막내딸이다. 할머니가 2010년에 먼저 세상을 떠나고, 할아버지도 2013년에 돌아가시고 지금은 자식들이 번갈아가듯 산장을 관리하며 그 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녀에게는 고향집인 비로산장을 함께 찾아가는 동안 옛이야기들이 흐르는 계곡물처럼 끊이질 않는다.

"속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없어졌지만, 지금 걷고 있는 이 길가에도 다 집이 있었어요. '하꼬방'이라고 불렀어요. 신혼여행객이 많아서 평일에도 방이 없을 정도였어요."

경향신문 1971년 9월 23일자 〈등산관광〉 기사에는 "신혼부부의 허니문 코스로는1박2일 또는 2박 3일의 온양온천, 속리산 등 적격. 커플이 교통비, 호텔비, 숙박비 등 2만원 정도면 족하다."는 속리산 관광을 안내하는 내용이 실렸다. 또한, 동아일보 1974년 10월 29일자 〈결혼식 서민은 간소화, 상류는 변칙〉을 보면 당대 신혼여행지로 꼽히는 곳으로 제주도, 설악산, 경주, 속리산, 해인사 등임을 알 수 있다.

↑ 산이 비치는 비로산장의 개울.

지금은 법주사 매표소 안쪽으로 식당과 민박을 겸하는 집이 두 집밖에 없지만, 속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법주사 일주문 근처로 하꼬방이 많았다고 한다. 김은숙씨는 어렸을 때지만 지금도 눈에 선한 기억이라며, 이 길을 따라 집에 가던 길에 하꼬방에서 아이를 낳게 된 신혼부부를 봤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신혼여행지로 손꼽히는 관광지인 속리산 중에서도 신혼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숙소는 바로 비로산장이었다. 속리산 아래 여관보다도 산중에 있는 산장에서 '특별한 첫날밤(?)'을 보내고자 했던 신혼부부가 많았고, 신혼여행객이 몰리는 성수기에는 사내리 여관에 머물다가 비로산장에 빈 방이 나면 서로들 올라오려고 했다. 김은숙씨는 "그때에 신혼여행으로 비로산장을 방문했다가 다 큰 자녀를 데리고 다시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고, 다시 그 자녀들이 자녀를 낳아 3대에 걸쳐 산장을 찾는 손님도 꽤 있다"며 "이제는 산장 주인도 대를 이어가고, 손님들도 대를 이어 오고 있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어떻게 사셨나요"

↑ 산장 방 한 칸에는'대도무문(大道無門)'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이것은1988년에 비로산장을 방문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태환 할아버지에게 올린 글이다.

비로산장은 세심정에서 경업대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속리산을 찾는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문장대 탐방코스로 간다. 문장대와 경업대는 세심정에서 길이 갈라지기 때문에 문장대만 다녀와서 그 길로 되돌아왔다면 비로산장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세심정에서 비로산장으로 가는 산길 도중에 김은숙씨가 길가에 있는 바위를 가리키며 "아버지가 지게 지고 가다가 쉬었다 가던 곳"이라며 말문을 연다.

"아버지는 산장을 하시기 전에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속리산에 반해서 왔어요. 처음부터 산장을 하신 건 아니고, 마을에서 사진 앨범을 파는 기념품 가게를 했어요. 여관들에 물건을 외상으로 대주다가 3년 만에 가게를 정리하고, 산속 깊이 들어왔어요. 법주사 스님들에게 허락을 받아 산장을 지을 수 있었죠."

김태환 할아버지가 숯 만들던 움막을 개보수하여 행락객을 맞은 비로산장은 1965년에 문을 열었다. 비로산장은 속리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1970년 이전에 있었던 덕에 내몰리지 않고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국립공원 지역 내에 있기 위해서는 건물을 증축해야 했다. 조릿대로 지은 초가에서 제대로 된 벽돌집을 짓기 위해서 세심정에 모래를 여덟 트럭이나 갖다 댔다. 당시에도 비포장이지만 세심정까지는 차가 들어올 수 있었다. 문제는 차가 들어올 수 없는 세심정에서부터 비로산장까지 모래를 날라야 했던 것. 별 다른 묘수 없이 인부들과 함께 등짐 져서 모래를 날랐다고 한다. 비로산장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건 1974년이다. 본채 하나와 별채 둘인데,그 중 방 세 칸짜리 별채는 고시생들이 공부방으로도 사용됐다.

↑ 비로산장을 반세기 가깝게 지킨 이상금 할머니와 김태환 할아버지의 생전 모습.

비로산장의 '비로'는 속리산에 비로봉도 있지만, 불교의 "비로자나불'에서 따온 이름이다. '두루 빛을 비추는 존재'로 불교에서 창조주인 비로자나불처럼 '사람들에게 길을 밝혀주는 산장'의 뜻 정도로 산장 이름을 풀이할 수 있다. 산장이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도 우연은 아니다. 위 아래로 복천암, 상고암 등 크고 작은 암자가 있고, 스님들과 밥도 같이 해먹었다고 한다. 비로산장을 지켜온 김태환 할아버지가 스님들과 인연이 더욱 깊은 것은 서예와 서각에 조예가 깊어 속리산 내 사찰에 주련을 써주기도 하여서다. 이제는 산장에서 김태환 할아버지는 만날 수 없지만, 생전에 그가 남긴 작품들을 비로산장에서 만날 수 있다.

"아버지는 새벽 두 시에 일어나셔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는 세 시부터는 글을 썼어요. 아버지하면 떠오르는 건 먹과 향냄새 그리고 글을 쓰고 계신 뒷모습이에요. 해 뜨면 마당 쓸고 청소하시고, 아침 잡숫고 나면 자전거 타고 시장 보러 나가셨어요. 저는 그 자전거 뒤에 타고 학교를 갔고요."

"속인이면서도 속인 같지 않게 사셨다"는 게 그녀가 기억하는 부모님의 모습이다. 이상금 할머니는 생전에 "물만 마셔도 배부르다"고 말씀하셨다고는 한다. 산장을 찾는 손님이 많아 장사도 잘 됐지만, 먹고는 돈을 지불하지 않고 "잘 먹었어요"라는 한 마디로 그냥 가는 손님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실 때에는 칼을 든 도둑이 찾아오기도 했었다. "산 속에서 어떻게 한 평생을 살 수 있었냐"는 딸의 말에 "다 놓고 살았다"고 한다.

그저 머물다 가세요

↑ 비로산장을 방문한 손님들이 남기고 간 기록이 남아 있다.어떤 이들은 구구절절한 사연을 남기기도 했다.

올해로 50년을 맞는 비로산장은 꽤 유명한 산장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계실 적에는 유명 인사들도 많이 방문했었다. 산장 방 한 칸에는 '대도무문(大道無門)'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이것은 1988년에 비로산장을 방문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태환 할아버지에게 올린 글이다. 산악인으로서는 고 고상돈씨, 고 지현옥씨도 비로산장을 찾아 속리산 일대에서 산악 훈련을 했었다고 한다. 또,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서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 Korea)〉에 소개되어 지금은 외국 관광객도 심심치 않게 방문하고 있다. 도미니크 출신의 방문객은 "비로산장에서는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음은 통한다"며 두 번째 방문에는 한국인 친구들을 데려왔었다고 한다.

음식을 하지 않은 지 이제 2년이 된 지금은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잠시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던 산장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음식은 전혀 팔지 않으며, 음식을 챙겨오더라도 조리가 간단한 것들로만 제한하고 있다. 김은숙씨는 "마음을 가볍게 하려고 기왕 산장을 찾는 거라면 몸도 가볍게 하고 가라"며 "국립공원 내에서 하룻밤 자고 갈 수 있는 것만으로 큰 특혜이지 않느냐, 이 혜택을 누리려면 모두가 지켜줘야 한다"고 손님들에게 이야기한다. 일부 손님들 중에서는 세심정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해오고 있지만, "천천히 걸어오면서 산도 보고, 물소리도 들으며 올라오라"는 게 그녀가 산장을 꾸려나가는 철학이다.

↑ 산장 마당에 높게 자란 가문비나무 두 그루는 비로산장의 기념식수다.

산장 마당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중년 남성이 산장으로 들어왔다. 20여년 전에 산장에서 한달 정도 머물며 공부를 했던 사람이라고 인사를 하며, 할아버지가 잘 계시는지 궁금해서 다시 찾았다고 한다. 두서없이 오고가는 말들을 정리해보면,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홀로 병상에 계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게 힘에 부쳐 잠시 비로산장을 찾았다는 것. 산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며 김은숙씨가 산을 내려오는 중에 귀띔해준다. "지금까지 모아둔 방명록들을 보면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있어요.그 사연들은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기도 해요. IMF때, 무슨 회사의 부장은 아침에 회사에 나가서 직원들을 해고해야 하는데 마음이 아파 차마 그러지 못하고 결국 출근하지 않고 산으로 온 사연을 남기기도 했어요."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위로받기 위해서 찾아오는 산장이기도 하지만, 김태환 할아버지께서 비로산장을 떠나고부터는 산장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소유가 문제가 아니고,있는 자체로 즐기면 돼요. '있음으로써 좋다. 내가 편하게 오갈 수 있는 산장'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소유하게 되면 책임 따르잖아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수고가 따라요. 그냥 있는 그대로 누리세요. 산장에 머무르는 동안은 산장의 주인이잖아요."

[출처] 속리산 비로산장, 그저 산속의 집

 

비로산장 홈페이지 : http://www.birosanjang.com/

 

비로산장 주소 : 충청북도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1-1번지(금강골) 비로산장

 

비로산장 예약전화번호 : 011-456-4782, 043-543-4782, 043-544-47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