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박가네)

세상을 후회없이 살다 간 성실했던 한 인간으로, 사는데 있어서는 냉정했었지만 그래도 정을 알고 나눴던 한 인간이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고 남고 싶습니다. 늘 사랑입니다.

* 新雪(신설) -李彦迪(이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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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한국)

2020. 12. 25.

新雪(신설) -李彦迪(이언적)

      회재 이언적선생의 첫눈
      新雪今朝忽滿地(신설금조홀만지) : 오늘 아침 새 눈이 갑자기 천지에 가득하니
      況然坐我水精宮(황연좌아수정궁) : 황홀히 넋을 잃고 수정궁에 앉은 듯 하다네.
      柴門誰作剡溪訪(시문수작섬계방) : 사립문엔 누가 섬계 방문처럼 행동했으려나
      獨對前山歲暮松(독대전산세모송) : 홀로 앞산 세밑의 소나무를 마주 보네.
      探道年來養性眞(탐도년래양성진) : 몇 해 전부터 도를 찾아 참된 성품 길렀나니
      爽然心境絶埃塵(상연심경절애진) : 마음 경계 상쾌해라 티끌 먼지 하나 없네.
      誰知顔巷一簞足(수지안항일단족) : 안회의 단사표음에 족함을 누가 알리
      雪滿溪山我不貧(설만계산아부빈) : 시내와 산에 눈 가득하니 나는 가난하지 않네.

※감상

흰눈이 밤새 내려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으면 황토빛 땅은 은세계가 된다.

그래서 시적화자는 황홀하게 자신을 수정궁에 앉혀 놓은 것 같다고 표현했다.

세 번째 구(句)는 서성 왕희지(王羲之)의 다섯째 아들인 왕휘지(王徽之)에 읽힌 고사이다.

왕휘지가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어느 날 밤 갑자기 자신이 거주하던 산음 에서

먼 섬계(剡溪)에 살고 있던 친구인 동진의 문인화가 대규(戴逵)가 그리워서 배를 타고 그를 찾아갔다.

그러나 밤새 배를 저어 정작 친구의 집 앞에 이르자 배를 돌려 돌아왔다.

다른 사람이 그 까닭을 묻었고, 그의 답변은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원래 흥을 타서 왔다가 흥이 다해서 돌아가는 것이니(乘興而來 盡興而反) 어찌 꼭 친구를 볼 필요가 있으랴".

따라서 세 번째 구에서 회재 또한 '내 친구 중 누가 왕휘지처럼 지난밤에 흥이 나서 나를 찾아 왔다가

그냥 돌아가지나 않았을까'하는 은근한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다.

눈 내리는 겨울밤 자기를 찾아와 줄 생각을 하는 고상한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겠는가.

마지막 구에서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세한도(歲寒圖)가 연상된다.

한해가 다 저물고 햇살이 적어지면서 수목들은 나목이 되어간다.

여름철 잎이 풍성할 때는 사람들이 많이 찾았지만 시린 겨울 에 잎이 모두 낙엽되어 떨어진 뒤

눈밭에 홀로 서 있는 처지가 되니 찾는 이가 없어진다.

그러나 많은 나무 가운데 소나무는 홀로 푸른 기상을 잃지 않고 있다.

작자는 여기서 자신의 정신적 지향을 소나무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차가운 겨울일수록 따뜻한 온돌방이 그리운 법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정겨운 벗이 있다면 얼마나 훈훈해 질까

이 시를 읽으신 뒤 오늘은 왕휘지처럼 그리운 벗을 찾아 정겨움을 나누시기 바란다.

이언적(李彦迪1491~1553) 문신. 학자. 자 복고(復古). 호 회재(晦齋). 본관 여주(驪州). 사간(司諫) 재직시

김안로(金安老)의 등용을 반대하다 그 일당에 의해 파직된 뒤,

경주 자옥산(紫玉山)에 들어가 성리학 연구에 전심했다.

김안로 일당이 거세된 후 재등용, 좌찬성. 원상 등을 역임 했으나,

윤원형(尹元衡) 등의 모함으로 강계(江界)로 유배, 그 곳에서 생을 마쳤다.

성리학자로서 퇴계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저서에 <회재집> 등이 있다. 시호는 문원(文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