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박가네)

세상을 후회없이 살다 간 성실했던 한 인간으로, 사는데 있어서는 냉정했었지만 그래도 정을 알고 나눴던 한 인간이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고 남고 싶습니다. 늘 사랑입니다.

* 박목월과 맑은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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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사랑

2021. 1. 20.

이정원 제3칼럼.수필집 "요양병원에서 삶의 길을 묻다"(2019.7.20발행. 현대시조사)에서

 

 

우리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50년대 후반 국어교과서에는 박목월 시인의 시 <청노루>가 나온다.

너무 아름다운 서정과 해맑은 싯적 감흥 때문에 60년 전에 배운 시이지만 지금도 그 시를 외우는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청노루/박목월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릎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구비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얼마나 맑고 아름다운 시인가. 금방이라도 청노루 한마리가 산에서 튀어 나올듯한 정겨운 산사의 정경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박목월 시인은 62세를 일기로 짧은 생애를 마감하지만 그와 얽힌 애화는 뭇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또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청록파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박두진, 조지훈과 함께 우익의 기수로 해방 후의 혼란한 문학계를 이끌어 간 시단의 큰 별이십니다. 특히 우리들이 즐겨 부르는 ‘이별의 노래‘와 그의 슬픈 이별을 노래한 ’떠나가는 배‘의 주인공인 목월 시인은 젊은 문학소녀와의 열애로 더욱 유명합니다.

 

38살의 젊은 시인으로 서울대 교수로 재직한 목월은 처자식을 거느린 유부남으로서 당시 E여대 국문과 학생인 H양과 뜨거운 사랑에 빠져 교수라는 사회적 명망을 내던지고 그녀와 함께 제주도로 사랑의 도피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녀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죄가 되느냐"는 담대한 말을 앞세워 목월에게 다가왔고 친구의 간곡한 관계청산 요구도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목사인 아버지의 간곡한 설득도 그녀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둘이는 제주도로 잠적하여 동거생활에 들어갔지만 그들의 행방을 수소문한 아내 유익순 여사가 겨울 한복 한 벌 씩과 생활비를 두 사람 앞에 내놓고 서울로 돌아갑니다

 

사랑과 분노𐄁미움𐄁연민 등등 모든 감정이 담긴 한복 한 벌과 생활비를 내 놓은 그 심정은 정말 모든 이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합니다. 누구는 아내의 사랑이 더 돋보이는 "맑은 사랑"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여자의 아버지인 목사가 나타나서 딸을 끌고 가면서 목월을 나무에 묶어놓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분위기로 봐서 믿기 어려운 낭설인 듯싶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두 사람의 도피와 동거는 그러나 오래가지 못합니다.

 

제주도에 가을이 오던 어느 날 목월은 그녀와 4개월에 걸친 동거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갑니다. 이때 목월이 그녀와 헤어지면서 쓴 시가 이별의 대명사로 알려진 그 유명한 ‘이별의 노래’입니다. 그는 "자기 평생에 소중한 이름 감출 줄 모르고 헤프고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만난 시기도 수천 년 같기도 하다. 이와 같은 추억은 시공을 초월해서 살아있는 것인데....."라고 말했다고 그의 수필집 <구름에 달 가듯이>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이 수필에서 그녀의 신분, 이름, 만난계기, 시기는 말하지 않은 이유를 위와 같이 말하였다.

 

이별의 노래/박목월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은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1953년 봄 목월이 대구의 한 교회에서 서울의 명문 E여대생인 H양을 만나서부터 그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시인과 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은 운명이었는지 서울 환도 후에 다시 재회를 하게 되었고 H양은 목월을 존경하는 시인의 관계를 넘어 이성으로서 사랑의 싹을 틔우게 됩니다. 목월은 젊은 여대생과의 관계에 부담을 느끼고 후배를 통해 헤어지도록 설득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러나 H양은 "나는 사랑 이상의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이런 무상의 사랑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며 완강하게 목월과의 헤어짐을 거부합니다. 이래서 둘이서 제주도로의 갑작스러운 도피생활이 시작되었으나 앞서 말한 대로 두 사람의 밀월은 아내 유익순의 제주도 방문 이후 4개월 만에 서로 이별하는 아픔을 맛보게 됩니다.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목월은 고혈압으로 쓰러지기 얼마 전 노인이 된 H양의 집을 마지막으로 방문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 목월은 "이제 내가 가는 길에 눈발이 뿌렸다........나의 눈에는 눈발이 내린다. 사람의 인연이란 꿈이 오가는 통로에 가볍게 울리는 응답". 이라고 썼습니다. 목월은 자기의 죽음을 예언하였는지 "이제 그를 방문했다. 겨우 쓸쓸한 미소가 마련되었다."라고 하면서 "이승을 하직할 무렵 한 번 더 만나보려니......덧없이 흐르는 세월이여, 끝없이 눈발이 내리는 구나." 라고 쓰고 난지 얼마 안 되어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하직합니다

 

목월은 그녀와 헤어진 후 다시 만나게 된 동기와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헤어진 후 처음 만난 그녀는 하늘빛 갑사 치마저고리를 입었을 때였고 두 번째 만남은 하얀 눈발이 하염없이 내리던 날이었고 세 번째 만날 때는 하얀 눈발이 하염없이 내리던 날 소복을 입은 그녀를 만났다고 기억했다. 그 때 그녀는 중병으로 투병 중이었다. 그녀는 목월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의 곁을 지켜달라고 애원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집을 방문한 목월이 마지막으로 그녀와 추억을 나누고 있을 때 커텐 사이로 신비로운 봄내음이 스며들고 있었고 응접실의 화병에는 하얗게 마른 꽃이 꽃병에 가득 꽂혀 있었다. 하얗게 눈이 나리는 날 하얗게 마른 꽃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추억도 하얀 그림으로 번개처럼 두 사람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해 가을 어느 날 오후에 갑자기 세상과 하직 한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나누던 그녀는 그렇게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

 

그 때 그는 비통한 심정으로 제주도로 사랑의 도피를 떠났다가 그녀와 헤어질 때 써서 넘겨준 “기러기 울어 예는....”하는 이별의 노래를 조용히 읊어내려 갔다.

 

이별의 노래를 작곡한 김성태씨에 의하면 ‘그녀‘는 박시인이 대구 금융조합에 다닐 때 첫 대면을 했고 6.25 동란 시 대구 피난지에서 재회하여 3년간 연애를 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둘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시 ’이별의 노래’에 곡이 붙여진 것은 해군 정훈군악대 지휘를 맡고 있던 작곡가 김성태가 박시인도 만날 겸 대구를 찾은 어느 날 쌀쌀한 늦가을 밤인 1942년 11월초 두 사람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박시인이 새로 지은 시라면서 에의 <이별의 노래>가 적힌 쪽지를 내밀면서 곡을 붙여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뭉클한 감동과 깨끗한 시상에 감동한 김익태는 여관으로 돌아오자마자 즉시 시에 곡을 붙인 것이 그 유명한 <이별의 노래>가 탄생한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잊지 못하고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목월을 잊지 못했고 목월도 죽는 순간까지 그녀를 잊지 못했습니다. 목월이 쓴 방문이라는 시를 보면 죽음을 목전에 둔 두 사람이 재회하는 모습이 눈물겹게 느껴집니다.

 

사전적 의미로 사랑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사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란 "어떤 상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관계나 사람을 뜻한다". 또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마음을 베푸는 일"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H양의 사랑이 전자에 속하고 목월의 사랑은 후자에 속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월은 마지막 만남을 ---백발이 되고, 이승을 하직할 무렵에 한 번 더 만나보려니 소원했던 사람을 이제 방문하게 되었다. 덧없이 흐르는 세월이여, 끝없이 눈발이 내리는 구나---.이렇게 표현하며 ‘방문’이라는 시를 남깁니다. 흰 눈이 내리는 날 얼굴이 창백한 중년의 여인과 노년의 시인이 만나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쓸쓸한 모습이 가슴을 때리지 않는가.

 

방 문/박목월

 

그를 방문했다. 쓸쓸한 미소가 마련됐다.

그를 방문했다. 내가 가는 길에 눈을 뿌렸다.

그는 집에 있었다. 하얗게 마른 꽃대궁이

그는 나를 영접했다. 손을 맞아들이는 응접실에서

그의 눈에는 영원히 멎지 않을 눈발이 어렸다.

나의 눈에도 눈발이 내린다.

 

사람의 인연이란 꿈이 오가는 통로에 가볍게 울리는 응답

차가 나왔다. 손님으로 조용히 드는 잔

담담하고 향기로운 것이 팔분(八分)쯤 잔에 차 있다

그를 방문했다. 쓸쓸한 미소가 마련되었다.

겨우 그를 하직했다.

하직맙시다. 이것은 동양적인 하직의 인사.

 

어느 신문을 보니 종교는 ‘맑은 가난‘에서 시작됐다는 칼럼이 실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랑도 ’맑은 사랑’이어야 진정한 사랑입니다. 법정스님은 "길상사가 ‘맑은 가난’을 실천하는 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 하시곤 했다고 합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은 무조건적인 것입니다. 사랑은 실개천으로 흘러내리는 계곡물까지 깨끗하고 정갈한 것입니다. 사랑은 ‘맑은 사랑’을 주고받아야 진전한 사랑이 됩니다. 목월과 H양과의 사랑은 불장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등지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둘만의 사랑의 성을 쌓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맑은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싶었던 것일 겁니다. 특히 그 사랑이 시인과 그리고 시를 좋아하는 문학소녀인 시인 지망생과의 사랑일진대 어이 그 사랑에 불순한 동기가 낄 수가 있겠는가? 목월과 그녀는 프라토닉 러브를 꿈꾸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마음에 담았기에 그 ’맑은 사랑‘이 아름다운 사랑으로 승화된 것이며 그러한 숭고한 사랑이었기에 뭇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것입니다. 성모마리상 앞에서 무릎을 꿇는 간절한 염원의 기도가 곧 사랑입니다.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은 첫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사랑 같이 중요한 생물학적 현상을 어찌 화학이나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랑은 특히 첫사랑은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일 겁니다. 지나고 보면 첫사랑은 한 줄의 시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갖고 싶어 하는 귀한 추억입니다.

 

나는 목월의 사랑을 유부남과 시인 지망생 학생과의 ‘분륜‘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심금을 적시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고 싶습니다. 사랑은 나이, 남녀를 초월합니다. 프라토닉!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입니까? 백합꽃처럼 맑고 깨끗하고 청아하지 않은가요?

 

나도 한 때 그런 "맑은 사랑"을 지금의 집사람과 2년 반을 나누었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연애시절을 생각하며 크게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 ‘맑은 사랑만이 남녀 사이의 행복과 축복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방문’이라는 연시를 읽으며 그 비장한 마지막 만남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눈 오는 날 생각이 날 법한 그림 같은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를 읽으면서 아가페의 숭고한 사랑을 봅니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아 봅니다. 이별의 노래가 들리는 환청에 자꾸 눈가를 매만집니다. (2015. 5. 16 )

 

 

 

 

[출처] 박목월과 맑은 사랑 이야기|작성자 천방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