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박가네)

세상을 후회없이 살다 간 성실했던 한 인간으로, 사는데 있어서는 냉정했었지만 그래도 정을 알고 나눴던 한 인간이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고 남고 싶습니다. 늘 사랑입니다.

* 치마와 팬티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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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사랑

2021. 1. 28.

멋진 시 "치마"
이런 시를 읽은적이 있는가요?

- 문정희 -
1947년생 보성출신 여류시인, 동국대 석좌교수

"제목 : 치마"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는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드려고 애를 쓴다.

치마 속에 무언가 확실히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 임 보 -
본명은 강홍기 1940년생 순천출신으로 전 충북대 교수

이 시는 "치마"에 대한 답시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도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그러나, 여자들이여,
상상해 보라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의
문은 얼마나 적막한가!

그 깊고도 오묘한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를
남자들이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보라
그 소중한 열쇠를 혹 잃어버릴까봐
단단히 감싸고 있는 저 탱탱한
남자들의 팬티를!
*******

정말 멋진 시 !
환상의 짝꿍시 !

 

문정희(文貞姬) 시인은 1947년생으로 전남 보성 출신이다.

시인은 동국대를 졸업한 문학박사로 동국대와 고려대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1969<월간 문학>에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고, 첫시집 <꽃숨>이후 많은 시집과 수필집을 발간했으며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동국문학상, 천상병문학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문 시인의 시 중 <치마>는 많은 남성들의 관심을 끌며 최소한 남성들에게 있어 이 시는 시인을 대표하는 시로 인식되고 있다.

여인의 치맛속 세계를 보일 듯 말 듯, 사실적인 듯 은유적인 듯 그려내어 끝내는 확인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슬며시 일어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절제 있고 품위 있는 언어로 구사된 시인의 이 <치마>를 읽으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중독되어 자꾸 치마를 읽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며 그러다 치맛속 세계에 갇혀 버린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임 보(본명 姜洪基) 시인은 1940년생으로 전남 순천 출신이다.

서울대 문리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문학박사로 충북대 국문과 교수를 역임했다.

시인은 1962<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했으며, 1974년 첫시집 <임보의 시들>이후 2011<눈부신 귀향> 14권의 시집과 많은 동인지와 시론집을 펴냈다.

필명 임보(林步)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랭보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문정희 시인의 <치마>에 대한 답시로 쓴 시가 바로 시인의 <팬티>이다. 이 시를 읽으면 남자의 입장에서 문 시인의 치마를 읽다가 다소 상한 자존심을 단번에 일으켜 세워준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했듯이 금고 속에 귀한 보물이 아무리 많이 있다한들 열쇠가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점잖게 나무라는 시인의 한마디에 같은 남자로서 강한 동지 의식을 느끼며 긍지와 자부심까지 든다. 그러면서 시인은 마지막 결정타를 날린다. 참배의 기회를 엿보려고 평생 신전 주변을 맴도는 관광객보다는 참배객이 끊긴 닫힌 신전이 얼마나 더 적막하겠느냐고.

 

임 시인의 <팬티>에 대한 이상국 시인의 관전평을 들어보자.

문정희의 시를 읽고, 답시로 쓴 것이다. 여성성에 대한 예찬이야 나무랄 데 없지만, 굳이 남자를 들러리로 세워 평생 신전을 맴도는 관광객으로 묘사한 것에 발끈했나 보다. 치마군단에 맞서는 부대를 바지군단으로 하지 않고 팬티군단을 선택한 것이 임보의 탁월한 전략이다. 신전이며 갯벌궁전이라고 황홀해 하지만, 거기가 참배객도, 관광객도 끊어진 곳이라면 얼마나 적막하겠느냐고 여존남비를 뒤집어 놓는다. 그리고 열쇠를 꺼낸다. 천하의 명품 대문이라도 열쇠 없으면 말짱 황이다. 그 열쇠 보관소, 팬티! ‘치마 신전관광객의 맹렬한 일갈도 만만치는 않다.

 

굳이 이 두 편의 시를 초빙한 이유가 있다. 이 두 시는 서로 자신의 강점을 내세우면서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고 있다. 그렇다고 욕설이 나오거나 인상이 찌푸려지지도 않는다. 시를 읽으면 절로 마음이 열리고 상대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고 할 말을 안 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 말 다 하면서도 상대방을 수용하게 만드는 힘이 이 두 편의 주고받는 시 속에 들어 있다. 그러면서 서로 상대방에게 엷은 미소까지 보낼 수 있게 만든다.

우리들의 삶도, 대화도, 인간관계도 이러했으면 좋겠다. 상대방을 공격해서 상처를 주고 이겼다고 해서 나에게 주어지는 전리품은 무엇일까. 아무 것도 없다. 오직 둘 사이에 상처만 남을 뿐이다. 우리가 그동안 세상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을 이겨서 남는 것이 무엇이었던가. 의미 없이 사라졌고 결과는 다 부질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서로 간에 주고받는 수용과 포용만큼은 오래도록 남아 우리들의 삶을 훈훈하고 풍요롭게 해 주었다.

대한민국 정치도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