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박가네)

세상을 후회없이 살다 간 성실했던 한 인간으로, 사는데 있어서는 냉정했었지만 그래도 정을 알고 나눴던 한 인간이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고 남고 싶습니다. 늘 사랑입니다.

[스크랩] 바다와 섬, 구름 속 암자 - 망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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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여행

2007. 12. 10.

암자와 섬을 오가다  보니 '이 둘을 함께 할 수 있는 여행이 없을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 이리저리 궁리하다 남해섬을 먼저 떠올린다. 보리암으로 갈까? 아니 보리암은 몇 번 가보았잖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그러면서도 섬의 풍광과 고즈넉한 암자를 느끼고 싶었다. 보리암은 그 풍광이야 남해 최고이지만 너무 번잡하잖아. 그래서 떠오른 게 망운암이다. 남해가 고향인 지인한테 물어 보니 이전에는 한적한 산길이 좋았는데, 지금은 이전만 못하다고 하였다. 그래도 일단은 한 번 가보자. 남해바다 위의 암자, 그것도 남해에서 제일 높은 산 정상 부근에 있으니 암자로 가는 호젓한 맛은 덜하더라도 다도해의 수려한 풍광은 볼 수 있지 않을까? 자, 출발이다. 여행지를 결정하기 전에는 몇 날 몇 일을 고민하지만 일단 한 번 결정하면 주저 없이 떠나는 성격이다.

 

남해대교에 들어섰다. 그냥 건널까?. 아래를 보니 샛길이 있다. 여행자의 버릇이다. 남해대교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것 같은 직감이 온다. 길모퉁이에는 싱싱한 파래를 말리고 있다. 남해 바다의 신선한 바람과 넘치는 햇살은 각종 해산물을  말리기에 적격이다.

 

 

샛길로 들어서니 제법  큰 포구가  나온다. '신노량'이라는 마을이다. 이 앞바다에서 이순신장군은 최후의 결전을 치르고 생을 달리했다. 포구 마을을 들어서니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사이좋게 서 있다.  등대 주위에는 낚시꾼들이 겨울을 낚아올리고 있다. 등대를 따라 방파제 끝까지 걸어가 본다. 남해대교가 등대 사이로 한 눈에 들어 온다. 이전에는 남해대교가  남해의 대명사였는데, 이제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아름다운  다리들이 곳곳에 들어서니 시샘을 하기보다는 의젓하게 그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리라.

 

 

대교를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다 제법 매서운 겨울바람에 쫓기어 차에 올랐다. 고현면에서 다시 바닷가 샛길로 빠진다. 썰물로 인해 물이 쑥 빠진 갯벌과 양식장의 뼈대들이 겨울바람에 떨고 있다.

 

 

망운암 표지판이 나왔다. 처음에는 5km이다. 한참을 달리니 화방사 안내와 함께 다시 5km, 중간에 다시  2km, 다시 3km, 또 4km.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처음에는 화방사쪽으로해서 갈려고 했는데, 중간에 표지판이 잘못된 이후 무언가에 홀린듯 하다. 결국 망운암만 둘러보기로 하고 방향을 잡았다. 이름없는 마을길도 찾는 여행자인데도 오늘은 표지판에 단단히 화가 났다. 차라리 표지판이 없었다면 수월하게 찾았을걸...... 망운암에서 세운 표지판과 군에서 세운 표지판이 제각기이니 이런 일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빨리 시정해야 할 부분이다. 보물섬 관광 남해에 '옥의 티'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씩씩거리며 암자로 차를 몰아 세운다. 이제부터는 암자까지 차로 갈 수 밖에 없다. 화방사에서 산길로 걸어갈 계획이었는데, 시간이 없다. 모든 것이 헝클어지기 시작한다. 산비탈길을 한참 달리니 넓은 주차장이 나타난다. 암자까지는 400여미터. 차에서 내리니 겨울바람이 매섭게 몰아 친다. 거센 바람때문인지 나무가지엔 나뭇잎 하나 없다.

 

잎 하나 없이 모든 걸 떨쳐 낸다. 껍데기 육신이야 바람에 날려 보내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긴 겨울을 이겨내어야 한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이 나무 또한 알고 있으리라. 마치 수도승 같다.

 

겨울인데도 잎이 푸르다. 잎을 바람에 날려 보내고 그새 새잎을 만드니 범인(凡人) 눈에는 늘 푸른 것 같이 보인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끊임없이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군자의 풍모이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돌탑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이가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돌 올리고 가자." "소원을 빌어보렴" 잠시 후 엄마가 아이에게 물어 본다. " 무슨 소원을 빌었니?" "빨간 리본요" 아이다운 선문답이다.

 

 

돌탑을 돌아서니 다소 투박한  돌문이 눈에 들어 온다. 조금은 특이하다. 일주문의 형식이야 대개가 나무기둥인데, 이렇게 통돌을 짜 맞추어 세우다니. 기발한 생각이다.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어 마치 바다속으로 들어가는 수문으로 보이기도 한다. 암자의 전각 중에는 용왕각도 있으니 전혀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일주문의 조각미는 떨어져도 위치 선정은 뛰어나다. 무명의 축구선수가 뛰어난 위치 선정으로 골을 넣어 주목을 받는 격이다.

 

 

 암자에 이르니 최근 불사로 조금은 화려해 여행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암자의 고즈넉함은 간데 없고 좁은 공간에 전각이 많아 눈을 둘 곳이 없다. 자연스레 암자 앞에 펼쳐진 남해바다로 눈길이 간다.  바람이 드세어지니 풍경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바람과 풍경소리, 바다와 암자, 나목과 나. 사위가 조용하다. 모든 것을 비우고 풍경소리와 바람에 나를 맡겨  본다. 저 멀리 한가로이 배들이 오고 간다. 구름도 무심히 바람에 흘러 간다.

 

망운암 화방사의 부속암자로 고려시대 진각국사가 창건한 암자이다. 아침에  붉게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다.

 

 

 암자에서 다시 주차장으로 길을 잡는다. 돌탑을 지나니 화방사 가는 돌길이 보인다. 자꾸 내려가고 싶은 유혹에 발걸음을 멈췄다. 해는 이미 넘어가기 시작하고 바람이 드세다. 일행들이 다음을 기약하자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리고 대신 망운산에 올랐다. 약수터 옆 산길을 오르니 온통 철쭉밭이다. 오월이면 이 철쭉군락지는 사면의 남해 바다와 어우러져 환상의 화원을 만들리라. 바람은 매서워도 붉은 철쭉군락을 상상하니 절로 신이 난다. 철쭉은 정상까지 1km 이상 계속되었다. 약수터에서 멀지 않은 거리인 줄 알았는데, 빠른 걸음으로로 20여분 걸렸다. 역시 표지판에 거리 표기가 없었다. 정상에 다다르니 난데없이 까마귀 떼가 "까악 까악" 거리며 떼지어 날아 다닌다. 순간 "퉤퉤"하며 침을 뱉는다. 어릴 적 마을 사람들이 까마귀가 나쁜 징조라 하여 침을 퉤퉤 �으며 쫓곤 했던 것이, 무의식 중에 여행자의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습관이란 이렇게 무서운가 보다.

 

망운산  남해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해발768m) 남해에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낸다고 한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상주 앞바다 세존도에서 기우제를 지낸다고 한다.

 

망운산 정상에서 바라 본 망운암과 남해읍  망운암에 가게 되면 망운산에도 꼭 가 보는 것이 좋다. 금산의 유명세에 가려 일반인들에게는 덜 알려졌지만 남해군민들은 이 산을 더 자주 찾는다고 한다.

 

정상에 이르니 사면에 바다가 펼쳐진다. 어디를 봐도 사방으로 시야가 트여 경치가 일품이다. 멀리 지리산에서 여천공단, 여수, 삼천포, 강진만까지 한 눈에 들어 온다.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 사이로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붉은 석양이 지자 전라도와 경상도의 땅이 어둠속으로 바다 멀리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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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김천령의 바람흔적
글쓴이 : 김천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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