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박가네)

세상을 후회없이 살다 간 성실했던 한 인간으로, 사는데 있어서는 냉정했었지만 그래도 정을 알고 나눴던 한 인간이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고 남고 싶습니다. 늘 사랑입니다.

[스크랩] 똑딱이 카메라로 찍은 눈 속의 옛 정자들 - 정여창고택과 화림동정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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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여행

2007. 12. 10.

Daum 메인 라이프스토리에 소개된 포스트입니다.

 

여행 중 눈을 만나는 건 여간해선 힘든 일이다. 일부러 눈이 있는 여행지를 찾지 않고서는 우연한 기회에 눈 내리는 행운을 얻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사진을 찍은 2002년 겨울 화림동계곡과 작년 충청도와 전라북도 일대를 여행하면서 눈을 본게 최근 5년간 눈길 여행의 전부이다. 이러한 눈에 대한 갈망이 심해 눈이 한 번 오는 날에는 미친듯이 카메라를 들고 뛰어 다닌다. 이날도 그러했고, 작년에도 그러했다. 사진을 찍은 2002년에는 눈도 많이  내렸지만, 바람도 심하였고 날씨도 정말 추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손가락이 동상에 걸리는 줄도 모르고 카메라 셔텨를 눌러 대었으니...... 처음으로 똑딱이 카메라를 구입한 기쁨도 있어서 추위를 느끼지  못했던 거  같다. 지금은 그럴싸한 카메라를 갖추었지만, 이때만 해도 사진 보다는 여행에 더 관심이  많았을 때였다. 어떻게 찍을 줄도 몰라서 대개는  자동으로 맞추고 흑백, 세피아톤 등으로 이리저리  구도를 바꾸어 가며 찍어 보던 왕초보  시절이었다. 노출이 뭔지, 심도가 뭔지도 몰랐고, 조리개와 셔텨속도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다만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어느 위치에서 가장 피사체가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지는 감각으로만 남아  있는 정도였다.

 

다행히도 올해의 첫 눈은 무주에서 보았다. 그것도 쌓여 있는 눈이었다. 눈이 오는  날 여행을 기대하면서 옛 사진들을 꺼내 본다. 서투르고 어설픈 사진이지만, 특히 불타버린 농월정으로 인해 이 사진들은 내가 가장 아끼는 사진들 중의 하나이다.

 

영남의 정자로는 화림동 계곡이 단연 으뜸이다. 호남의 정자가 들판을 내려다보는 야산 기슭, 삶의 터전 가까이 있다면 영남의 정자는 풍광이 수려한 계곡, 암반 위에 위치해 있다.

 

함양에는 모두 약 100여 개의 정자와 누각이 있다고 한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금천이 흘러내리면서 기이한 바위와 담, 소를 이루고 있는 화림동 계곡 일대에는 '팔담팔정(八潭八亭, 8개 못과 8개 정자)'이라 하여 8개나 되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정자는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3곳뿐이고 그나마 화림동을 대표하던 농월정은 3년 전 화재로 소실되었다.

 

 

거연정(居然亭)  거연정은 1613년에 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숙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화림동 계곡의 최상류에 위치해 있다. 거연정 아래의 바위는 자연 그대로이다. 정자를 짓기 위해 바위를 깍아 평평하게 만들기보다는 나무 기둥을 바위의 생김새와 높이에 맞추어 정자를 세웠다

 

흑백톤으로......

 

세피아톤으로......  그 당시  갈대와 눈, 정자와 소나무 , 바위와 먼 산의 풍경을 살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군자정(君子亭)  거연정에서  50여 미터만 걸어내려오면 군자정이다. 하나의 너른 통바위 위에 앉은 소담한 정자이다. 조선 성종때의 성리학자이며 조선 5현의 한분이신 정여창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세 사람들이 세웠다.

 

 

 

 

 

동호정(東湖亭) 조선 선조때의 성리학자인 동호 장만리(章萬里)의 공을 추모하여 1890년경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건립하였다.정자 앞 계곡 사이에 너럭 바위인 '차일암(遮日岩)'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해를 가릴 만큼 넓은 바위'란 뜻의 차일암은 계곡 가까이 바싹 다가가 있어 풍류를 즐기기에는 이보다 합당한 곳이 있겠는가! 이삼백명이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기에 충분히 넓은 바위이다. 동호정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은 도끼로 통나무에 홈을 내어  만들었다. 무채색의 소박한 군자정에 비해 동호정은 화려한 단청으로 치장을 하고 있다

 

화림동 계곡의 대표작이자 계곡 하류에 있는 농월정, 농월정이 불타기 전 2002년 겨울 1월에 찍은 사진이다. 그 후 농월정이 불탔다는 뉴스를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한편으론 그 전에 농월정을 다녀왔다는 안도감과, 사진으로 담았으니 '그래도 나는 괜찮지 않은가' 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퀭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서글픔이다.

 

농월정(弄月亭) 조선 선조 때 관찰사와 예조 참판을 지낸 지족당() 박명부가 정계에서 은퇴한 뒤 지었다고 한다. 농월정이라는 이름은 '달을 희롱한다'는 뜻이다. 그 이름처럼 밤이면 달빛이 물아래로 흐른다고 한다. 정자는 뒤쪽 가운데에 한 칸짜리 바람막이 작은 방을 둔 정면 3칸, 측면 2칸 누각으로 팔작지붕이며 추녀 네 귀에 활주를 세웠다. 걸터앉거나 기대어 주위 경관을 조망하기 위하여 세 면에다 계자난간을 둘렀다. 정자 앞 바위에는 화림동 월연암이라는 글발이 지금도 또렷이 보인다. 농월정 앞에 넓게 자리하고 있는 반석을 달바위(월연암)라고 부르는데, 바위 면적이 정자를 중심으로 1,000여 평 된다. 농월정 앞 오른쪽 바위에는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銶之所)', 라는 글발이 있다. 즉, '지족당이 지팡이 짚고 신을 끌던 곳'이라는 뜻의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지족당이 거닐며 산책하던 곳' 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정여창고택 고택의 사랑채와 석가산이다. 사당 가는  길 처마 밑에서 찰칵....

 

 

안채 마당은 퍽이나 햇살이 따사로웠다. 마당 깊숙이 들어온 햇볕과 우물, 마당  한 켠의 소담한 정원을 담고 싶었다.

 

 

출처 : 김천령의 바람흔적
글쓴이 : 김천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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