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즐거운 여행 2017. 12. 22. 20:23

이유미의 우리꽃 산책Ⅲ[50회~70회]


51. 순비기나무- 누가 바닷가에 보랏빛 카펫 깔았나


 

매년 맞는 계절의 변화지만 겪을 때마다 참 신기하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이 지나고 나면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에 찬 기운이 섞여 있다. 누가 여인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했던가. 푹푹 찌던 8월 초까지만 해도 피하고 싶던 바다가 여름의 끝자락에 와서 문득 그리워지니 말이다.  

순비기나무는 그런 바닷가 모래땅에 지금도 피어 있을 키 작은 나무다. 사람으로 북적이는 현란한 해수욕장이 아닌 한적한 바닷가, 물이 들었다 나갔다 하는 바닷가 모래땅이나 모래땅 위에 나지막하게 자리 잡은 바위틈에서 자란다.

주로 서해안이나 남해안 혹은 그 주변 섬에서 볼 수 있다. 자라는 모습 역시 독특한데 나무치곤 작은 편으로, 두 뼘쯤 되는 높이까지 자란다. 하지만 옆으로 뿌리줄기를 뻗으며 퍼져나가 대개는 커다란 무리를 이루며 자란다. 소복한 덤불처럼 혹은 보랏빛 카펫처럼.

분백색이 도는 잎엔 은은함이 있다. 잎 전체에 회백색 털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바람을 다스리기 위함일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도 비교적 오래 피어 있는 작은 보랏빛 꽃 속에서 튀어나온 수술이며 이러저러한 색의 변화가 여간 재미난 게 아니다. 꽃이 지고 나면 이내 구슬처럼 둥글고 딱딱한 열매가 달리는데, 익을 때쯤이면 검은 자줏빛이 된다.  



순비기나무란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정확하게 확인되진 않았지만 언뜻 듣기에는 해녀가 물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의 제주 방언 ‘숨비기’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순비기나무가 주로 바닷가에서 살고 뿌리가 모래 속으로 들어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럴듯하다. 살아가는 모습과 그 의미를 연상하면 이내 즐거운 마음이 든다. 어쨌든 재미난 이름이다. 한자로는 만형(蔓荊)이라 하고 만형자나무, 풍나무, 숨베기나무라고도 한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까닭에 해풍 피해를 막는 지피(地被) 소재로도 관심을 두는 이가 많다. 상록성이니 월동에만 문제없다면 이 또한 아주 좋은 장점이다. 식물체에 향기도 있어 허브식물로 권하기도 한다. 솔향기 같은 것이 나는데 냄새를 맡다 보면 머리가 시원해진다고 한다.

욕실에 놓아두고 향료로 쓰기도 한다. 한방에서도 많이 쓰는데 두통약으로 쓰는 것을 보면 헛말은 아닌 듯하다. 한방에서는 여러 통증, 눈의 침침함과 충혈, 신경성 두통, 타박상 등 비교적 많은 증상에 처방한다. 밀원식물로도 알려졌다.

아직 여름휴가를 떠나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순비기나무 군락이 있는 바닷가를 찾아가면 색다른 정취를 맛볼 수 있을 듯하다. 트인 바다도 바라보고, 그 바다를 바라보고 사는 순비기나무의 푸른 향기에 취하다 보면 진정한 휴식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순비기나무의 효능


풍열을 없앤다.  따라서 풍열에 의한 감기나 두통 치통 제질통이나 팔다리의 저림증과 마비증 등을 치료한다.

머리를 맑게 한다두통. 편두통. 치통 또는 뇌속이 윙윙 울리는 소위 뇌명증 이라고 불리는 경우에도 좋고 귀가 윙윙 울리는 이명증에도 좋다.

눈을 밝게 한다. 눈물이 나는 경우 눈이 충혈 되고 아프며 눈이 침침한 것을 다스린다.

풍기를 없앤다. 거풍. 산풍 작용이라고 하는 데 풍기를 없애고 몰아낸다는 뜻이다. 관절을 순조롭게 하며  근골사이를 부드럽게 하여 저린 증상을 다스리고 류머티스성 근골통 등을 다스린다.

피부 .모발을 윤택하게 한다. (명의별록)에는 익기( 기운을 돋우는것)하고 피부를 윤나게 해준다고 했으며 (약성론)에는 콧수염과 모발을 자라게 한다.고 했고 (신농본초경집주)에는 모발이 빠지는 것을 다스린다.고 했다. 



52. 금불초- 노란 꽃 속에서 미소 짓는 부처님



조형물처럼 깔끔하게 단장해놓아 좀체 눈길이 가지 않던 아파트 단지 내 화단이 갑자기 환해졌다. 살짝 다가가 보니 금불초(金佛草)가 피었다. 더위와 일상에 찌푸렸던 얼굴이 금세 펴지며 밝아진다. 오래 못 본 옛 동무라도 만난 듯 친근한 생각이 든다. 관리인이 잡초라며 뽑아버렸다면 어쩔 뻔했는지….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꽃치고 아름답지 않은 게 드물고, 아름다운 꽃을 보면 마음이 밝아지지 않는 이가 없을 터. 보통의 꽃이 그러할진대 금부처만큼 밝은 금불초는 오죽하랴. 무척 환하고 아름다워 마음까지 밝아진다. 금물결을 이루듯 무리지어 핀 금불초를 바라보며 마음을 밝히고 있노라니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스쳐간다. 이렇게 가을이 오려나 보다.  


금불초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는데, 습기가 있으면서도 햇볕이 잘 드는 산 가장자리에서 주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다 자라면 두 자 정도 될 만큼 크다. 손가락 길이쯤 되는 길쭉한 피침형의 잎은 마주나며, 밑부분이 갑자기 좁아져 아예 잎자루가 없거나 원줄기를 감싸고 있는 게 특징이다.

꽃은 여름에서 초가을까지 핀다. 꽃차례 지름도 3~4cm나 된다. 금색으로 보일 정도로 밝은 노란색이 아주 선명하고 참 곱다. 가장자리에 달리는 뾰쪽한 혀 모양의 설상화(舌狀花)는 아주 가는 편으로 이 또한 금불초의 특징이다.

이 꽃에 금불초란 이름이 붙은 것은 실제 꽃 모양이 금으로 만든 부처상을 닮아서인데 노란색으로 피는 꽃이 금부처처럼 환하다. 좀 더 오래 꽃과 사귀며 들여다보면 부처 얼굴처럼 잔잔하면서 평화로운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질척한 땅이나 마른땅이나 가리지 않고 피어나는 습성은 흙탕물에서도 꽃을 피우는 연꽃의 특징을 닮은 듯도 하다.

금비초(金沸草), 여름 국화라는 뜻의 하국(夏菊), 누렇게 익은 꽃이라고 황숙화(黃熟花), 동그란 꽃 모양이 금화(金貨)를 닮았다 해서 금전화(金錢花) 또는 금전국(金錢菊), 선복화(旋覆花) 등으로도 부른다. 영어로는 ‘Chinese elecampane’이다.  

예전에는 산 가장자리 혹은 논과 밭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어 관심을 받지 못했다. 우리가 공기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듯 말이다. 하지만 개체수가 줄어든 요즘은 관상 야생화로 많은 관심을 받는다. 여러 포기를 모아 심으면 무척 아름답다.

특히 개화시기와 꽃 모양, 키가 비슷하면서 보라색 꽃이 피는 벌개미취와 나란히 모아 심으면 멋진 화단을 가꿀 수 있다. 이 꽃은 드물게 습기에 잘 견디는 식물이면서 동시에 건조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는 장점이 있다.  

한방에서는 꽃 말린 것을 선복화라고 부르며 금불초와 그 유사종을 구분하지 않고 함께 약으로 쓴다. 기침, 천식, 소화불량, 딸꾹질, 배에 가스가 찰 때 등 다양한 증상에 긴히 쓰인다. 4~5월 싹이 돋아나면 어린순을 먹기도 하는데, 맵고 쓴맛이 있어 데쳐 찬물에 하루 정도 우려낸 다음 나물로 무쳐 먹거나 된장국에 넣어 먹는다.

금불초로 시작한 환한 마음이 금물결처럼 이어져 오늘 하루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길 기원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53. 익모초- 어머니와 아내 위한 고운 꽃



이맘때 들판에 가면 익모초 꽃을 볼 수 있다. 익모초는 이름은 익히 들어 잘 알 듯한 식물이지만, 어찌 보면 쑥과 비슷하고 들판이나 시골길 가장자리 수북한 풀밭 틈새에서 자라 쉽게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눈여겨보지 않게 되고, 실제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다. 하지만 여름 내내 그 속에서 줄기를 쭉 돌려내고 층층이 홍자색 꽃들을 매달고 피워내니 이즈음이 이름만 들어 알았던 익모초를 익힐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 하겠다.

 


익모초는 꿀풀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이다. 이즈음 꽃대가 달리는 줄기가 쭉 올라오면 1m까지도 자란다. 꿀풀과에 속하는 풀들이 그렇듯, 익모초도 줄기는 둔하게 네모지고 흰 털이 나서 전체적으로 희뿌옇게 느껴진다. 잎은 마주난다. 3개로 가늘게 갈라진 조각은 다시 2∼3개로 갈라지고, 톱니가 있어 다소 특별한 모습이다. 그래서 한 번 알고 나면 다음엔 꽃이 없어도 알아보기 쉬워진다.  

꽃은 한여름에 핀다. 하나하나 보면 작은 꽃들이지만, 몇 개씩 모여 층층이 달리는 진한 분홍빛 꽃들은 초록 일색의 풀숲에서 제법 눈길을 끈다. 뜻밖에 아름다운 꽃을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좀 더 관심 있게 다가가 그 작은 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통꽃의 꽃잎 끝을 벌리고 있는 모양새가 헤프게 입술을 벌린 여인처럼 보인다. 오목조목 재미나다. 

많은 이가 알고 있지만 익모초(益母草)는 어머니들을 이롭게 한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육모초라고도 하고, 한방에서는 씨앗을 충위자, 잎과 줄기를 합쳐 충위경엽이라는 약재로 사용한다.

눈비애기라는 우리말 이름도 있다. 이름에서 알려주듯 당연히 임신을 돕기도 하고 아이를 낳은 어머니의 여러 병을 잘 낫게 하는 등 부인병에 두루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모든 약재가 그러하듯 사람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니 잘 알아보고 올바르게 써야 한다.  

민간에서는 술에 익모초를 넣어 약술로도 먹는데, 월경을 조절하고 혈독을 푸는 데 좋다고 한다. 차로 끓여 마시기도 한다. 익모초차는 혈액순환이 잘되게 도와주고 어혈을 풀어주며 자궁 수축력을 높여주고 신장염으로 몸이 붓거나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올 때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좋다는 기록도 있다. 또 새벽에 내리는 이슬을 맞히고 그 이슬과 함께 짓찧어 즙을 내 마시면 한여름 더위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고 한다.

도처에 널린 수많은 식물은 제각기 그 모습과 아름다움을 달리하고 그 식물이 품고 있는 성분도 각각이다. 우리는 그중에 아주 일부를 알아내 병을 다스린다. 뜨거운 여름 볕이 한풀 꺾인 어스름한 초저녁쯤 혹은 이른 아침 들길을 산책하다 만난 익모초 꽃송이들은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할 만큼 곱고 신선하다.

낮에 꽃이 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익모초는 그늘지지 않은 곳에서 자란다. 약으로 쓰는 익모초는 단오 즈음에 거둔다. 부인병 때문에 힘들어하는 어머니나 아내가 있을 경우 차라도 끓여 나눠 마시면 그 마음으로라도 낫지 않을까 싶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54. 투구꽃- 한가위만큼 풍성한 보랏빛 자태



가을이다. 국화과 식물 일색인 가을 숲 속에서 그 특별한 자태를 뽐내며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꽃이 있다. 이제 막 꽃피우기를 시작한 투구꽃. 신비한 보랏빛과 함께 덩굴도 아닌 것이 비스듬히 자라는 독특한 모양은 한 번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누구나 눈여겨보게 되고 이름도 궁금해진다. 그러다 투구꽃이란 이름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인다. 실제 꽃 모양이 마치 머리에 쓰는 투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투구꽃은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다른 물체에 기대어 비스듬히 자라는 것을 바로 세워보면 높이가 1m를 조금 넘는다. 잎은 전체적으로는 둥근 모양이지만 손바닥처럼 깊게 다섯 혹은 세 갈래로 갈라졌다. 9월쯤 피기 시작해 10월이면 전국 어디서나 절정을 맞는다. 꽃 한 송이 길이가 3cm도 더 되는 꽃송이가 이삭 모양으로 모여 주렁주렁 달린다.  


 


사실 투구꽃은 약용식물로 더 유명하다. 초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깊은 산에 가면 이 식물의 덩이뿌리를 약으로 쓰려고 찾아다니는 약초꾼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식물이야말로 잘 쓰면 약이요, 잘못 쓰면 독이라는 이야기가 꼭 들어맞는다. 초오는 통증을 가라앉히고 경련을 진정시키며 습기로 허리 아래가 냉해지는 증세나 종기로 인한 부기를 다스리는 등 다양한 곳에 사용한다.  

하지만 많은 미니라아재빗과 식물이 그러하듯, 약재로 사용하는 덩이뿌리에 맹독 성분이 들어 있어 전문가 처방 없이 그저 약초라는 이름만 듣고 복용하다가는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사약을 만드는 그 유명한 부자(附子)가 이 투구꽃과 형제 식물이라는 점만 봐도 투구꽃의 독이 얼마나 무서운지 짐작할 수 있다. 한때는 이 식물에서 독을 뽑아내 화살촉이나 창끝에 발라 독화살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독성을 없애려고 입이 마비되는 느낌이 없어질 때까지 소금물에 반복해서 우려내거나 증기로 찐다고 한다.

투구꽃은 약용으로뿐 아니라 관상용으로도 훌륭한 꽃이다. 정원에 심어보는 것도 시도해볼만하다. 꽃 모양과 늘어지는 줄기에 매달리는 분위기가 독특해 꽃꽂이 소재로도 개발 가능성이 있다. 화단에 심을 때는 인공적으로 만든 정원보다 낙엽이 지는 큰키나무 밑에 퍼져 자라도록 심으면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추석이 되면 모두 떠나온 고향집으로 발길을 향한다. 그런데 투구꽃도 이동한다. 식물은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것. 동물처럼 뛰어다니는 건 아니지만 덩이뿌리가 썩고(괴근) 인근 다른 뿌리에서 새싹이 올라오는 과정에서 아주 조금씩 자리를 움직인다. 뿌리 크기만큼 옆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한자리에서 몇 년씩 양분을 빨아들이는 것보다 더 기름진 옆쪽 토양으로 이동하는 것이 이득일 테니 투구꽃으로선 아주 현명한 생존전략인 셈이다. 성묘를 위해 찾은 고향 마을 뒷산자락에서 행여나 이 신비한 꽃을 만날 수 있다면 한가위가 주는 또 하나의 행복이리라.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55. 진노랑상사화- 가을의 그리움 노랗게 물들었나





대지의 기운이 이미 서늘하다. 가을은 어느새 마음속 깊은 곳까지 들어와 아릿아릿 서글픔마저 들게 한다. 세상 끝까지 갈 것 같던 뜨겁던 여름이 너무 급속히 밀려나간 허전함도 한몫하는 듯하다. 여전히 푸르지만 이미 빛이 바래기 시작한 숲 속에서 때 아닌 노란 꽃들이 눈에 보인다. 진노랑상사화다. 가을의 애잔함 때문일까. 지난여름부터 피기 시작한 그 꽃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상사화도 아닌, 진노랑상사화. 이름이 좀 생소하다. 연분홍빛으로 피어나는 상사화는 꽃이 필 때 잎이 없고, 잎이 있을 때 꽃이 없어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사연을 담은 아름다운 꽃이다. 식물이 결실을 보는 데 필요한 인연의 두 주체는 꽃과 잎이 아닌 수술의 꽃가루와 암술머리지만, 형태적으로 볼 땐 잎과 꽃은 바늘과 실 같은 존재다.

어찌 됐든 상사화는 한여름에 꽃을 피우고 이미 져버렸다. 알고 보면 우리 땅에서 난 자생 토종 꽃도 아니다. 반면, 상사화가 질 무렵부터 꽃을 피워 지금까지 만날 수 있는 진짜 귀한 우리 꽃이 바로 진노랑상사화다. 이름에서 이미 짐작했겠지만 꽃 색깔도 다르다. 진노랑색이라기보다 우윳빛이 아주 많이 섞인 은은한 노란색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꽃이 몇 포기씩 무리지어 피어난다.  

혹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어온 토종 우리 꽃 이름에 왜 외지에서 들어온 꽃의 이름인 상사화가 붙었는지 의아해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진노랑상사화는 우리 땅에서 자란 지 오래됐고,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 식물이다. 다만, 식물학자들이 이 꽃에서 기존 상사화와 다른 무엇이 있음을 발견하고 최근 새 이름을 붙여주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진노랑상사화뿐 아니라 주황색 꽃이 피는 백양꽃, 진한 주홍색 꽃을 피우는 꽃무릇(석산)이 모두 꽃과 잎을 동시에 볼 수 없는 상사화와 한 집안 식물이다.


 


이 집안 꽃들은 백합과 식물답지 않게 한쪽이 깊게 패이고 벌어져, 마치 부챗살이 펼쳐지듯 꽃이 피는 공통점을 지닌다. 주로 사찰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땅속에 있는 비늘줄기를 약으로 쓴다는 점도 닮았다. 이 비늘줄기에는 알칼로이드가 함유돼 있어 그냥 먹으면 독이 될 수 있지만 잘 쓰면 약이 된다. 해독, 가래 제거, 종기 치료는 물론, 소아마비 등 마비로 인한 통증에 예부터 처방해온 약재라는 점도 같다.

여러해살이풀인 진노랑상사화는 꽃자루가 올라왔을 때 키가 가장 큰데, 다 자라면 60cm 정도 된다. 잎은 봄에 나왔다 지고, 느지막이 꽃대를 올려 그 끝에 큼지막한 꽃송이를 몇 개씩 사방으로 매단다. 성큼 다가선 가을바람에 마음을 주체할 길이 없다면, 영광 불갑사 같은 전라도 지방의 사찰을 찾아갈 것을 권한다. 지금쯤 그 주변에 가면 마지막 남은 진노랑상사화를 구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꽃이 질 무렵이면 다시 새로운 붉은색 꽃무리가 장관을 이룬다. 바로 석산이다. 이번 가을, 진노랑상사화를 보면서 그리운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56. 구절초- 수줍은 자태에 향기도 좋아라



가을이다. 남쪽에서 전해오던 꽃 소식과는 반대로 북쪽에서 단풍 소식이 날아든다. 국립수목원에도 계수나무 잎사귀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제 숲은 이 나무가 내어놓는 솜사탕처럼 달콤한 내음으로 가득하다.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밀려온다. 옮겨 딛는 걸음걸음 사이로 핀 수줍은 꽃. 바로 구절초다. 더도 덜도 말고, 정말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구절초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산국, 감국과 같은 속(Chrysanthemum)이지만 이들 들국화가 노란색 꽃을 피우는 데 반해 구절초는 흰색 또는 연분홍색 꽃을, 그것도 훨씬 큼지막하게 피워낸다. 우리 국토 어느 곳에서든, 멀리는 만주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뿌리를 내려 아름드리 꽃을 매어단 채 고운 자태를 자랑한다. 못 이룬 남북통일의 꿈은 물론, 옛 고구려의 영광까지 생각게 하는 꽃이다.   



구절초는 본래 한방 또는 민간에서 약용식물로 이용해왔다. 생약명도 구절초로, 글자 그대로 9개 마디를 가졌다는 뜻이다. 9월 9일에 꺾어 모아 쓴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며 어떤 이들은 선모초라고도 부른다. 구절초는 주로 부인병을 다스리는 식물로 유명하다. 더러는 꽃을 술에 담가 그 향기를 즐기기도 하는데, 피를 만들고 원기를 돋우는 보혈강장제로 쓴다. 이 밖에도 여러 증상에 효과가 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요즘엔 이 구절초 꽃을 말려 베개를 만들어 베고 자면 두통이 사라진다고 해 유명해지기도 했다. 나무 아래 큰 무리를 지어 심어놓으면 그곳이 명소가 된다. 아름답고 풍성하며 향기롭고 이로운 꽃이다.




 

우리나라엔 아주 비슷하게 생긴 형제 구절초가 몇 종류 더 있다. 그중에서도 높은 산 바위틈 같은 곳에서 바람을 맞으며 살랑대는 모습이 마치 가녀린 여인을 연상케 하는 흰색 산구절초가 백미다. 사실 산에 가면 구절초보다 훨씬 자주 만나는 것이 바로 산구절초다. 잎이 국화 잎을 닮은 구절초에 비해 가늘게 갈라져 있으며 꽃대가 스러지지 않고 바로 서서 자란다. 그 밖에 바람 많은 높은 산 정상에 사는 바위구절초도 있다. 백두산 꼭대기에서 바람에 일렁이며 천지의 깊은 물빛을 바라보는 꽃, 키는 작지만 분홍색 꽃이 유난히 곱다. 한탄강 주변에서 자라는 포천구절초는 잎이 산구절초보다 더 가늘어 코스모스 잎처럼 보인다. 흔히 서양 꽃 마거릿과 혼동하는데, 여름에 피는 이 꽃은 이미 지고 없으니 지금 보일 리 없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각양각색의 빼어난 모습으로 자라는 구절초를 보노라면 새삼 이 땅의 자연과 그 속에서 자라는 식물에 대한 경이로움에 절로 경건한 마음까지 든다. 내 삶도 가을 들녘, 혹은 가을 숲 속의 구절초처럼 맑고 향기로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57. 물레나물- 누가 바람개비를 만들어놓았을까




지천에 가을꽃이다. 흐드러지게 핀 꽃의 그윽한 향이 보는 이의 마음까지 자유롭고 넉넉하게 한다. 이른 봄 언 땅을 녹이고 올라오는 오종종하고 탱글탱글한 봄꽃들하고는 모습도, 때깔도, 향기도 사뭇 다르다. 가을꽃의 빛깔은 지난 계절의 색깔들을 덧입힌 듯 그 깊이가 이를 데 없다.  

이 아름다운 가을 꽃밭에서 문득 지난여름의 흔적을 만난다. 물레나물이다. 한여름 햇살 아래 물레나물은 그저 개성 있는 야생화 가운데 하나려니 싶었는데, 이 가을 숲길에서 만나니 느낌이 훨씬 색다르다.  

물레나물이란 이름은 길쭉한 꽃잎 5장이 마치 바람을 타고 도는 바람개비처럼 한 방향으로 휘어진 데서 비롯했다. 그 모양이 빙글빙글 돌리는 물레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지난 계절 이것저것 벌여놓은 일들이 물레를 돌려 천을 짜듯 엮어낼 때가 됐다는 뜻일까. 가을 숲길에 핀 물레나무는 말이 없다.  

물레나물은 물레나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숲 가장자리 산기슭의 물가 혹은 논이나 밭이 산과 이어지는 양지바른 곳에서 자란다. 어디서나 잘 자라지만 건조하고 메마른 곳보다 기름지고 촉촉한 곳을 더 좋아한다. 다 자라면 키가 어른 무릎 높이쯤 되며 네모진 줄기엔 어른 손가락 길이쯤 되는, 가장자리가 매끈한 잎이 자루도 없이 마주난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그 끝에 아이 주먹만한 꽃이 달리는데 그 모양이 일품이다. 진한 노란색 꽃빛은 여름에 피어 가을까지 이어진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물레나 바람개비 같은 꽃이 핀다.

독특한 모양 때문일까. 물레나물은 한 번 보고 이름을 들으면 절대 잊지 못하는 식물이 된다. 꽃잎 가운데 튼실하고 강한 암술과 붉은색 수술이 많이 있는 게 특징이다. 꽃이 지고 나면 로켓 끝부분처럼 끝이 뾰족한 짧은 원통형의 열매가 맺히는데, 처음엔 초록색을 띠다가 익을수록 갈색으로 마르고, 급기야 그 끝이 벌어져 아주 작은 씨앗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온다. 씨앗을 들여다보면 그 표면에 그물 같은 맥이 있다. ‘물레로 짠 결실’이라 생각하니 더 재미있고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름에 ‘물레’와 함께 ‘나물’이란 단어가 들어가 대략 짐작했겠지만 어린순은 나물로 먹는다. 물레나물의 어린순을 살짝 데쳐 헹군 후 양념해서 무친 나물은 맛도 좋다. 누군가는 이를 ‘나물의 왕자’라고 했다. 왕도, 아버지나 어머니도 아닌 왜 하필 왕자란 말인가. 그만큼 나물로 훌륭하다는 뜻일 터이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이용하는데, 생약명으로는 홍한련(紅旱蓮)이라고 부른다. 간 기능에 이상이 생긴 증상을 비롯해 피를 멈출 때 처방하며, 종기 등이 나면 상처에 식물체를 찧어 붙이기도 한다.  

꽃이 좋아 정원에 심는 이도 생겨나고 있다. 씨앗을 뿌리면 비교적 빠른 기간 안에 큰 꽃이 피는 데다, 자라는 곳도 크게 가리지 않아 빈 공간을 채우는 녹화용 식물로 좋다.

어느 한 방향으로 휘어 돌아 피지 않는 물레나물 꽃처럼 우리네 삶도 둥글둥글해졌으면 좋겠다. 보이지 않게 물레나물 주위를 감싸고 도는 가을바람이 서늘하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58. 층꽃나무- 가을에 만나는 꽃이라 더욱 예뻐라





가을이 깊어가면서 풍성하던 가을꽃들이 어느새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나무의 단풍 빛은 밤의 찬 기운을 받아 더욱 붉게 물들지만 꽃들은 하나 둘씩 스러져간다. 수목원의 가을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아직도 보랏빛 꽃송이를 아름답게 피워내는 꽃나무가 있다. 바로 층꽃나무다. 여름 끝머리부터 피기 시작했을 텐데 여전히 그 자태를 유지하고 버티는 모습이 새삼 반갑고 대견하다.  

식물 가운데는 나무 같은 풀이 있고, 풀 같은 나무가 있다. 층꽃나무는 정말 풀 같은 나무다. 자그마한 포기를 만들면서 줄기 가득 꽃송이를 매단 모습은 나무와 다름없지만, 한겨울같이 기후나 환경이 자신의 섭생과 맞지 않으면 땅 밖으로 나온 부분이 모두 죽어버리므로 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나무가 주로 자라는 시골에선 정식 이름보다 층꽃풀, 난향초(蘭香草)라고 부른다. 

층꽃나무는 꽃 모양만 자세히 보면 왜 ‘층꽃’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답이 나온다. 작은 꽃들이 잎 나오는 겨드랑이 부근에 한 무더기씩 층층이 달리기 때문이다. 보통 20~30송이 정도가 한 층에 모여 나오며, 전체적으로는 조건만 좋으면 20층씩 달리기도 한다. 남보라색 꽃송이를 자세히 보면 꽃은 통꽃으로 중간에서 5갈래로 갈라져 거의 수평이 되게 벌어진다. 재미있는 점은 꽃잎 5장 가운데 아래 한 장만 특별히 크고 가장자리가 아주 가늘게 갈라졌다는 사실이다. 이즈음엔 열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오랫동안 붙어 있는 꽃받침 안에 열매가 5개씩 들었다.  

식물체 전체에서 은은한 향기가 나는 층꽃나무의 영어 이름은 블루 스피레아(Blue Spirea)로, 푸른 조팝나무라는 뜻이다. 식물학적으로 조팝나무와 전혀 무관하지만 줄기 끝에 꽃송이들이 층층이 달리는 모습이 마치 꽃으로 만든 방망이 혹은 휘어지는 채찍 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층꽃나무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관상용이다. 정원이나 길가 화단에 넓게 심어놓으면 얼마나 시원하고 아름다운지 모른다. 군락을 이뤄 심어놓으면 나비와 벌들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그래서 밀원식물로 이용하기도 한다.  

더욱이 층꽃나무는 꽃이 여름에 피기 시작해 가을까지 이어지는 아주 긴 개화기를 갖고 있어 관상수로서의 개발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같은 무렵 꽃이 피는 구절초류와 색을 배합해 심으면 더욱 화려한 화단을 만들 수 있다. 꽃이 달린 부분이 길기 때문에 꽃꽂이용으로 잘라 쓰기에도 적합하다. 한방에서는 난향초라고 해 약으로 쓴다.

층꽃나무가 자라는 곳은 따뜻한 지방의 산지이다. 주로 경상도와 전라도 남쪽 해안이나 섬지방의 볕이 잘 드는 산에서 볼 수 있다. 남쪽지방 산자락을 오르다 햇살 좋은 사면에 멀리 바다를 보고 피어 있는 층꽃나무를 만난다면 그 또한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59. 단풍취-맑고 깨끗한 곳에서만 피는 설상화





하루하루가 너무 다르다. 봄 햇살 받고 태어난 신록과 여름의 짙푸름이 사라지는 걸 안타까워했는데 이제 단풍 빛이 완연하다. 이번 가을 단풍 빛은 유독 빠르게 무르익는다. 늦더위가 오래도록 머물러 가을이 늦춰지다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형국이다. 매일 아침 만나는 광릉 숲의 풍광은 하루 자고 일어나 돌아보면 확 바뀌어 있다. 성큼성큼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그래서 또 아쉽다. 

사람들은 나무만 단풍이 드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다. 풀잎에도 단풍이 들 수 있고 실제 들기도 하지만, 풀 대부분이 날씨가 조금 쌀쌀해졌다 싶으면 지상부가 사라져버려 낙엽이니 단풍이니 느낄 겨를이 없을 따름이다. 식물 이름에 단풍이 붙은 것이 여럿 있다. 먼저 당단풍, 중국단풍, 섬단풍, 설탕단풍 등 단풍나무 집안이다.  

그런데 단풍이 들지도 않으면서 이름만 빌려온 식물들도 있다. 돌단풍, 단풍마, 단풍제비꽃 등이 있으며 단풍취도 그중 하나다. 이들 식물들은 정말 식물학적으로 ‘단풍’ 현상이 일어나지도 않고, 단풍나무 집안의 계통식물학적 특징과도 무관하다. 다만, 잎이 단풍나무 잎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져 붙은 이름이다. 

단풍취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공기 좋은 활엽수 숲에서는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주 오래전 대도시나 공단처럼 대기오염과 관련 있는 지역 주변의 숲과 오염과는 무관한 그야말로 청정지역 숲에 사는 식물들을 비교해본 적이 있다. 당시 깨끗한 지역에는 없고,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에서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대기오염 지표종 같은 식물을 찾으려고 했는데 끝내 찾지 못했다. 반대로 공기가 깨끗한 지역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출현하는 식물을 발견했는데, 그 풀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단풍취다.

그러니 단풍취가 발아래 펼쳐지는 숲길을 걷고 있다면 크게 기지개를 켜고 마음껏 숨을 쉬어도 좋다. 가을이라 단풍취가 떠올랐지만 어찌 보면 이 풀을 가을보단 여름 풀로 구분하는 이가 많을 듯하다. 꽃이 한여름에 피기 때문이다. 단풍잎을 닮은 잎사귀 틈에서 꽃대가 쭉 올라와 달리는데, 자세히 보면 아주 가느다란 설상화들이 개성 넘치게 피어 있다. 그러고 보니 천연림 속에 그토록 현대적인 감각의 잎과 꽃을 가진 단풍취가 자란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고 멋지다.  

봄에는 어린싹을 나물로 먹는다고 하는데, 국화과 식물 대부분이 연하고 독성이 없어 먹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다. 한방에서 약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저런 문헌들을 살펴보니 단풍취는 산나물을 개발하는 연구에도, 식용기름 관련 연구에도 등장하고 있었다. 더욱이 항염증 작용을 비롯한 이 식물의 여러 약용 효과에 대한 연구 성과들이 나오고 있어 의약계의 주목을 받는다.

단풍취는 괴발땅취, 괴발딱지, 장이나물, 좀단풍취 같은 독특한 별칭이 있다. 그만큼 예전부터 우리 곁에 있던 정겨운 식물이란 증거일 터다. 단풍 색깔에만 취해 있을 것이 아니라 단풍취처럼 단풍을 닮은 잎이 어떻게 가을을 나는지 관찰하는 일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60. 백서향 - 미인의 향수 냄새 천 리를 가네



이 세상에는 향기로 한몫하는 식물이 많다. 은은히 퍼지는 수선화의 향기, 발끝에 묻어 그 향이 백 리를 가는 백리향…. 그런데 백리향보다 더 진한 향기로 천리향이란 별명을 가진 꽃나무가 있다. 바로 백서향이다.  

백서향은 팥꽃나뭇과에 속하는 상록수로 잎은 넓지만 키는 작다. 그윽한 꽃향기와 함께 순백의 꽃송이, 반질반질하고 늘 푸른 잎사귀, 오래도록 달리는 붉은 열매 등 정원 한쪽에 심어놓고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꽃나무다.  

원래 백서향이 사는 곳은 전남 맥도와 흑산도, 경남 거제도, 그리고 제주에서 바다가 가까운 숲이다. 상록수이지만 추운 곳에서는 겨울을 나지 못한다. 그래서 백서향의 꽃향기와 자태에 매료된 사람은 화분에 심어놓고 즐긴다. 더 탐스러운 꽃과 열매를 얻으려고 품종개량도 계속하고 있다.  

남쪽에선 겨울이 다 가기 전 꽃망울을 맺기 시작해 봄인가 싶으면 벌써 활짝 핀다. 어른 손가락 길이쯤 되는 길쭉한 잎은 늘 푸르게 반질거리고 가지 끝에서 돌려가며 아주 촘촘히 자란다. 그 사이로 백색의 작은 꽃들이 둥글게 모여 달려 마치 신부의 부케를 보는 듯하다.

백서향의 꽃은 언뜻 통꽃 같지만 사실 이 나무의 꽃잎은 퇴화하고 꽃받침 잎이 꽃잎처럼 보이는 것이다. 백서향은 꽃을 일찍 피운 만큼 열매도 일찌감치 만든다. 다른 식물들이 꽃피우기에 열중할 5~6월이 되면 꽃이 있던 자리에 붉고 둥근 열매가 달린다. 열매조차 아름답다. 하지만 앵두처럼 열리는 이 열매를 먹음직스럽다고 해서 덥석 먹었다간 큰일이 날 수도 있다. 독성분을 지녔기 때문이다.  

백서향 뿌리는 사촌인 서향과 함께 지혈제, 백일해 치료제, 가래 제거제로 사용되고 강심제와 타박상 치료제로도 쓰인다. 워낙 희귀한 데다 보고 즐기기에도 아까워 손을 대기가 쉽지 않다. 각 섬에 자생하는 백서향은 개량해서 키우는 나무들로, 실제 멸절한 곳이 있을 만큼 귀하다. 제주 천제연폭포 주변에는 증식해둔 나무들을 심어 복원했을 정도다.

서향은 원래 중국이 고향으로, 강희안의 ‘양화소록’을 보면 고려시대쯤 우리나라에 들어온 듯하다. 강희안은 “한 송이가 겨우 피어 한 뜰에 가득하더니 꽃이 만발해 그 향기가 수십 리에 미친다. 꽃이 지고 앵두 같은 열매가 푸른 잎사귀 사이로 반짝이는 것은 한가한 중에 좋은 벗이로다”라고 칭찬한다. 

게다가 서향은 꽃 가운데 가장 상서로운 행운의 꽃인 화적(花賊), 즉 꽃들의 적이라고도 불린다. 서향의 향기는 밤길에서도 서향인 줄 알고, 잠을 자다가도 알 수 있을 만하다고 해서 수향(睡香)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또 미인의 향수 냄새라고도 했다고 한다. 꽃향기에 대한 칭찬이 이보다 더한 것이 있으랴. 하지만 보라색 서향보다 꽃빛마저 순백으로 순결한 우리의 백서향이 더 아름답고 길하다.  

두 달도 남지 않은 올해의 마지막을 백서향의 향기, 꽃빛과 함께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누가 아는가. 기대치 않은 상서로운 일이 벌어질지.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61. 차나무- 찬 서리 맞고 더 빛나는 하얀 꽃



늦은 가을비가 한차례 내리더니 단풍 들었던 잎사귀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기온이 낮아져 이내 손이 곱을 정도다. 어느새 따뜻한 차 한 잔이 소중한 계절이 됐다. 오미자차, 구기자차, 커피…. 여러 차가 있지만 그냥 ‘차’ 하면 차나무 잎으로 만든 차가 먼저 떠오른다. 녹차, 홍차 같은 것들 말이다.  

나라별, 산지별, 찻잎을 따는 시기별로, 또는 말려서 가공하는 방법에 따라 차 맛을 섬세하게 구분하는 이는 많지만, 아마도 차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지 아는 이는 많지 않을 듯하다. 더욱이 차나무가 겨울을 눈앞에 둔 11월, 바로 이 스산한 계절에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더 드물 것이다.  

하지만 이 키 작은 차나무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지만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희고 소담스러운 꽃잎에 동백처럼 노란 수술이 유난히 곱다. 10월부터 12월까지 찬 서리를 맞으면서 더욱더 영롱해진다. 차나무 꽃의 아름다움을 눈여겨본 시인들은 이를 운화(雲華)라고 불렀다. 나무들이 대부분 꽃이 지면 그 자리에 열매가 달리지만, 지난해 맺어놓은 열매가 여무는 이즈음 한쪽에서는 꽃이 피어나니, 아름다운 흰 꽃과 조랑조랑 매달리는 귀여운 열매가 함께하는 이즈음이야말로 차나무의 계절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차나무는 꽃과 열매가 마주 본다고 해서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고도 한다. 


차나무는 원산지를 두고 논란이 많다. 신라 왕자 김교각(金喬覺)이 신라에서 가져간 차 씨로 당나라가 차밭을 일궜으니 우리 식물이라 말하기도 하고, 반대로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에서 들여와 즐겨 마셨다는 기록을 비롯한 여러 기록으로 미뤄 중국에서 들어왔다고도 한다.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면 후자가 맞는 듯하다. 어쨌든 예전엔 재배했던 것이 야생으로 자라면서 스스로 씨를 맺고 싹을 틔우니 적어도 귀화는 한 셈이다.

차나무는 늘 푸른 작은 키 나무로, 꽃빛만 다를 뿐 동백나무와 같은 집안이다. 차나무의 꽃은 깨끗한 흰색 꽃잎을 5장 갖고 있다. 차 꽃의 흰색은 우리 민족에게는 백의민족을, 군자에게는 지조를, 여인에게는 정절을 상징해왔다. 꽃잎 5장은 녹차가 가지는 5가지 맛에 비유된다. 쓰고(苦), 달고(甘), 시고(酸), 짜고(鹽), 떫은(澁) 맛이 그것이다. 인생을 너무 인색(鹽)하게도, 너무 티(酸) 내지도, 복잡(澁)하게도, 너무 쉽고 편(甘)하게도, 그렇다고 너무 어렵게(苦)도 살지 말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또 딸을 시집보낼 때 예물에 차를 넣어 보내기도 하고, 시어머니가 시집온 며느리에게 차 씨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는 차나무가 곧게 자라는 데다, 옮겨 심으면 쉽게 죽어버리는 성질이 있는 까닭에 차나무를 본받아 한평생 해로(偕老)하라는 뜻을 담은 것이다.

남도에 가면 몇 곳에 다원(茶園)이 있다. 자연스럽게 울타리가 쳐져 곱고 가지런한 느낌이 드는 정경은 잘 가꿔놓은 정원처럼 아름답다. 골골이 다원을 거닐며 아름다운 차나무 꽃도 만나고 인생도 더듬어보는 초겨울 여행을 권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62. 광릉요강꽃- 숲의 초록요정 다시 살아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희귀한 꽃은 무엇일까. 제주 한라산 서북 벽에서만 붙어사는 돌매화? 멸절 직전에 놓인 자생 풍란 혹은 나도풍란? 이에 못지않은 것이 바로 광릉요강꽃이 아닐까 싶다. 이름도 독특한 광릉요강꽃. 이 꽃은 난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난초과에서도 희귀하고 까다로우며 독특한 모양으로 유명한 시프리페듐(Cypripedium)속에 포함된다.

큼직한 잎(10~20cm)이 마치 치맛자락을 펼쳐놓은 듯하다. 잎자루도 없이 줄기에 마주보고 두 장씩 달려 시원하고 보기에도 좋다. 이름을 보고 짐작했겠지만 국립수목원이 자리한 광릉 숲에서 처음 발견됐다. 거기에 봄에 피는 꽃은 더욱 특별하다. 줄기 끝에 길이가 5~8cm 될 정도로 큼직한 꽃송이가 고개를 숙인 듯 또는 옆을 보는 듯 한 송이씩 달린다.

‘요강’은 순판(난초과 꽃잎의 아랫부분이 혀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르는 말)이 마치 부풀어 오른 주머니 또는 항아리 모양 같다고 해서 옛 어른들이 붙인 이름이다. 이 귀하고 우아한 꽃에 요강이라니, 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도 혹 있겠지만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여기면 즐거워진다.  

꽃 빛깔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독특하다. 꽃에서는 보기 어려운 연녹색, 갈색, 흰색, 연분홍색이 함께 있다. 모양이 신기한 데다 꽃이 희귀하기까지 하니 그 가치가 한층 높다 하겠다.

이 꽃을 이리도 보기 힘들게 된 것은 숲의 여건 변화도 한 이유이지만, 그보다는 희귀 난초를 수집하는 사람들의 남획이 가장 큰 원인이다. 푼돈에 양심을 판 사람들, 희귀한 난초면 반드시 자신이 소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집증적 수집가들이 광릉요강꽃을 자생지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로 내몰았다.  

몇 해 전만 해도 광릉요강꽃을 한두 포기조차 구경하기 어려웠는데, 국립수목원 연구자들이 열심히 자생지를 찾아내고 보전해 지금은 아름다운 포기가 곳곳에서 살아나고 있다. 최근에는 싹이 터 꽃이 피고 지고 열매를 맺기까지 1년간의 기록을 미속촬영으로 카메라에 담았다. 이 경이로운 모습은 방송을 타기도 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보람이고 감동이다.

이런저런 일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하지만, 이 땅 한구석엔 알아주는 이 없어도 묵묵히 의미 있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아름답고 희망적인가. 숲을 숲답게 만드는 ‘초록요정’ 광릉요강꽃이 오래도록 우리 땅에서 우리 모두와 함께 살아가길 소망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63. 수선화- 따뜻한 남도 섬마을에 ‘함박웃음’





꽃치고 아름답지 않은 게 있을까. 하지만 아름다운 데다 고귀하기까지 한 꽃을 꼽으라면? 선뜻 대답하기 힘들지만, 내 나름의 기준으로 보면 일단 향기가 지나치지 않고 그윽하되 맑아야 할 것 같다. 외관상으론 풍성하기보다 단아한 기품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거기에다 지천으로 꽃이 피는 계절보다 남보다 일찍 혹은 늦게 어려운 조건을 극복하고 피어나면 더욱 돋보일 듯하다.  

과연 이런 조건에 맞는 꽃이 있을까 하고 찾아보니 수선화가 떠오른다. 우리가 요즘 만나는 수선화 품종은 대부분 서양에서 들어온 종류로 여러 색깔과 모습으로 개량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토종 수선화는 겨울 언저리 따뜻한 남쪽 섬에서 만날 수 있다. 남도지방 바닷가의 양지 바른 무덤가에서 무리지어 피곤 한다.

그 여린 줄기와 맵시 있게 뻗어 나온 부드러운 잎 사이로 활짝 웃으며 피어나는 연노랑 꽃송이의 청초함이라니…. 연한 꽃잎 가운데 동그랗게 자리 잡은 진한 노란색을 띠는 또 하나의 꽃잎. 그리고 그 고운 꽃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 정말 꽃이 가져야 하는 모든 아름다움을 조화 있게 한 송이에 빚어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고도 함부로 자랑하지 않고 기품을 간직하니 그 누가 수선화의 아름다움을 칭송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선화는 수선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이다. 양파처럼 겹겹이 쌓인 비늘줄기가 땅속에 묻히고 그 아래로 가는 수염뿌리가 달린다. 늘씬하고 파란 잎 사이로 겨울이 한창일 때 이미 꽃대가 올라오고, 그 위에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꽃송이가 피어난다. 수선화는 기본적으로 꽃잎을 여섯 장 달고 있으며, 그 가운데로 마치 금으로 만든 술잔 모양의 샛노란 꽃잎이 또 하나 올라와 얹혀 있는데 이를 두고 부화관(副花冠)이라고 한다.

수선화를 두고 흔히 금잔옥대(金盞玉臺)라고 한다. 자세히 보면 그 모양이 꼭 옥대에 받쳐놓은 금 술잔 같기 때문이다. 재미나는 사실은 거문도에서 절로 자라는 수선화는 모두 이 금 술잔을 닮은 금잔옥대인 데 반해, 제주 해안가에 자생하는 수선화들은 술잔 모양 대신 꽃잎이 오글오글 모여 색다른 멋을 낸다는 점이다.  


 

수선화의 고향은 중국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 옛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지 자못 오래됐다. 실제 거문도나 제주에 가면 누가 심지 않았어도 오래전부터 곳곳에서 저절로 자라나는 수선화가 있었다. 아주 오래지 않은 옛날, 제주에서는 밭에 수선화가 너무 많이 피어 뽑아내 버릴 정도였다는 기록도 있어, 그곳 사람들은 수선화를 귀화한 식물이 아닌 우리 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수선화는 그 아름다움으로 명성이 자자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이야기가 전해온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애착을 가리키는 ‘나르시시즘’이란 용어의 유래가 된 그리스신화가 유명하다. 나르키소스라는 미소년이 요정 네메시스의 저주를 받아 호수에 비친 자기 얼굴을 사랑한 나머지 결국 물속에 뛰어들어 죽는데, 그 호수 옆에서 미소년의 혼을 담아 피어난 꽃이 수선화라는 이야기다. 수선화의 라틴어 속명(屬名)이 ‘나르키수스’가 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다가오는 연말, 수선화와 관련한 그리스신화를 반면교사 삼아 너무 자기 자신만 챙기지 말고 주변 사람과 사랑을 나누며 남은 한 해를 보내길 바란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64. 가는털백미- 북쪽에서 소리 없이 내려온 손님



우리 같은 산림생물 연구자는 이즈음이 아주 중요한 시기다. 한 해 동안 산과 들로 다니며 혹은 실험실에서 땀 흘리며 노력한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분석해 평가받고, 이를 기반으로 다시 내년의 연구 계획을 마련하는 일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국립수목원에서 멸종 직전 식물을 증식해 복원하는 일, 새로운 생물을 찾아내는 일, 식물종의 주권을 찾고자 오래된 문헌이나 표본과 씨름하는 일 등 수많은 성과를 만드는 과정에서 문득 가는털백미라는 다소 낯선 이름의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식물은 몇 해 전 강화도 바닷가에서 발견됐다. 가는털백미는 좀박주가리라고도 하는데, 박주가리보다 백미꽃 집안에 속하는 식물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분포지역은 몽골과 만주 일대, 평안남도 지역까지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 좀 더 남쪽인 강화도에서 발견됨으로써 분포 지역이 더 넓어졌다. 원래 북부지방 식물이니 본 사람도 없고, 기록으로 접하기도 어렵던 식물이 남한 바닷가에서 발견됐다며 언론을 타기도 했다. 처음 발견 당시에는 50m2(15평) 남짓한 곳에 100여 개체가 아주 작은 집단을 이룬 모습만 확인됐다. 이 발견으로 가는털백미의 남쪽 분포 근거가 더 튼실해졌으며, 특히 남한 내에서 어떻게 보전할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식물을 공부하다 보면 식물이 사람보다 낫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 더불어 살아가는 자세, 작은 욕심을 버리고 큰 세상을 엮어내는 틀…. 가는털백미가 우리 땅에 사는 모습도 그러하다. 기후 변화에 따라 식물의 분포 한계가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거꾸로 남쪽에 새로운 분포를 만드는 일도 그렇고, 사람은 경계를 만들어 이리도 엄정하게 대치하는데 낯선 땅에 와서 자유롭게 자리 잡아 잘 살아가는 모습도 그렇다. 누가 보든 말든 서쪽 바닷가에서 맑은 꽃을 피우는 의연함도 돋보인다. 이 가녀리고 고운 꽃송이의 의연함을 보면서 문득 동동거리고 쟁쟁거리는 우리 일상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꽃은 언제나 참으로 장하다.  

가는털백미는 여름이 시작할 무렵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 여름내 볼 수 있다. 순백의 아름다운 꽃이 피는데, 자세히 보면 수술과 암술이 약간 뒤틀려 발달하는 꽃잎 모양이 개성 있다. 심장형의 마주 달리는 잎 모양도 귀엽고, 덩굴식물이라 마음대로 모양을 만들어 키울 수 있는 장점도 지닌다. 식물 전체가 예부터 감기와 오한 치료를 위한 약용으로 쓰였다.

한 해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다. 후회도 많은 열한 달이었겠지만, 이 흰 꽃의 맑음과 의연함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갈무리를 잘하는 연말이 됐으면 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65. 인동 꽃-  겨울 나무에 옛이야기 주렁주렁




한때 ‘인동(忍冬)’이란 꽃 이름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가졌던 시절이 있다. 인동은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그 아름다운 꽃들을 피워내 향기를 온 사방에 퍼뜨리는 식물인데 왜 참을 ‘인(忍)’, 겨울 ‘동(冬)’, 풀이하면 ‘겨울을 이겨낸다’는 이름을 가지게 된 걸까.  

오래전 겨울, 전남 어느 들판을 기웃거리던 나는 갑자기 날씨가 나빠진 상황에서 그 이름의 참된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됐다. 눈발마저 흩날리기 시작한 그 들판 가운데 인동 잎이 파랗게 살아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느 상록수처럼 항상 푸른 모습만 보여줬더라면 겨울을 견뎌내고 꽃을 피워내는, 진정으로 장한 ‘인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인동은 이 땅에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살며 우리 선조와 많은 이야기를 엮어낸 나무다. 인동초라고도 부르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인동은 나무이기 때문이다. 인동 꽃은 ‘금은화’라고도 하는데, 꽃 색깔에서 비롯된 재미난 이름이다. 옛 기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며 생약명이기도 한다.  

인동 꽃을 보면 흰 꽃과 노란 꽃이 한 나무에서, 그것도 바로 나란히 붙어서 핀 모습을 볼 수 있다. 노란색 꽃을 일러 금화, 흰 꽃을 두고 은화라고 해 금은화라고 부른다. 이름이 이러하니 인동이 길조를 상징하는 식물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사실 인동은 흰색 꽃과 노란색 꽃이 각기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흰 꽃이 피었다가 시간이 지나고 개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이다. 한 나무에서 흰 꽃이 많이 보이면 이제 막 개화가 시작됐다는 것을, 노란 꽃이 많이 달렸으면 꽃이 지는 시기가 다가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꽃 색깔만 봐도 어느 꽃에 꿀과 향기가 얼마나 풍부한지 짐작할 수 있다. 벌 처지에서 보면 어느 꽃에 가야 할지를 금세 알아챌 수 있는 셈이다. 참으로 신비로운 자연 이치다.  

옛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선조가 시집간 정숙옹주의 아이들이 감기에 걸린 것을 걱정해 “인동초를 달여 마셔라”고 조언하는 대목이 나온다. 전해 내려오는 민간요법에는 인동 잎을 비벼 종기에 붙이기도 하고, 줄기나 잎을 달여 해독제로 쓰거나 화상 부위에 붙여 새살을 돋게 하는 등 다양한 쓰임새가 등장한다. 인동 삶은 물에 목욕하면 피부병이 낫는다고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인동 덩굴과 잎에 생감초를 넣고 끓인 물을 ‘인동주’라 부르며 약으로 썼고, 신장병을 고치려고 인동 꽃으로 빚은 술을 복용했다고 한다. 인동물 목욕이나 인동술보다 더 운치 있는 게 인동차다. 노랗게 변한 꽃잎을 따다 밝은 그늘에 말려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면 향기나 풍류가 재스민차 부럽지 않다.

인동은 동아시아가 원산지며, 현재는 아메리카 대륙까지 널리 퍼져 있다. 더욱 놀랄 만한 것은 인동이나 그 집안식물들은 고대 문화예술에서 한때 찬란한 전성기를 구가했는데, 고대 이집트를 시작으로 그리스, 로마, 인도, 중국 등 찬란한 고대문명을 꽃피웠던 많은 곳에서 건축이나 공예의 장식문양으로 인동 꽃을 썼다는 점이다. 이 조각 기법이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는지 평안남도 강서지방 고구려 중묘 벽화에도, 중화지역 진파리 1호 고분 벽화에도 인동 꽃 무늬가 새겨져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도 인동당초평와당이라 해서 기와에 인동 꽃 문양이 있는 등 인동 꽃 무늬를 아로새긴 기와나 청자도 볼 수 있다. 생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알면 알수록 인동 꽃의 매력은 더해간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향긋한 인동차로 몸과 마음을 녹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연말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66. 호랑가시나무 - 행운 부르는 크리스마스 ‘사랑의 열매’



눈으로 봐도 아름답고, 마음으로 봐도 아름다운 꽃이 있다. 한파로 온 세상이 얼어붙고, 그래서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이즈음에 더욱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그런 식물이 있다. 바로 호랑가시나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온갖 장식으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가 거리 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우리는 트리 가운데에 있는 호랑가시나무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 나무에 얽힌 사연과 의미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호랑가시나무는 바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나 카드에 등장하는 나무로, 가장자리가 가시처럼 뾰족한 잎을 갖고 있으며, 열매는 붉다. 우리가 ‘사랑의 열매’로 아는 붉은 열매가 열리는 바로 그 나무다. 호랑가시나무가 크리스마스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예수와 관련한 자기희생의 사연 때문이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가시관의 날카로운 가시들에 찔려 피를 흘리자, 로빈(지빠귓과에 속하는 새로 티티새라고도 한다)이란 작은 새가 날아와 부리로 그 가시들을 뽑다가 가시에 찔려 가슴이 온통 붉은 피로 물든 채 죽었다고 한다. 로빈의 가슴이 지금까지 붉은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이 새가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 호랑가시나무 열매였다. 이후 사람들은 이 열매를 함부로 따면 나쁜 일이, 소중히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고 귀히 여기는 한편,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소재로 사용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은 흔히 호랑가시나무의 잎과 줄기, 열매를 둥글게 엮어 만든다. 둥근 장식 자체는 예수가 썼던 가시관을, 붉은 열매는 예수의 핏방울을, 우윳빛 향기로운 꽃은 예수의 탄생을, 나무껍질의 쓰디쓴 맛은 예수의 수난을 상징한다고 한다.

하지만 호랑가시나무가 나쁜 일과 병마를 막고 좋은 일을 불러온다는 믿음은 예수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인 로마시대부터 비롯됐다. 농경 신을 기리는 축제를 맞아 선물을 보내면서 존경과 소망의 상징으로 호랑가시나무를 장식했던 것이다. 영국에서도 호랑가시나무로 만든 지팡이가 위험한 일을 막아준다고 해 비싸게 팔리기도 한다. 우리나라 민속에도 음력 2월 영등날 호랑가시나무 가지를 꺾어다 처마 끝에 매달아 액운을 쫓는 데 이용했다고 한다.  



호랑가시나무의 영어 이름은 모든 종류를 통틀어 홀리(Holly)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호랑가시나무는 차이니스 홀리(Chinese Holly)다.

그렇다면 호랑가시나무란 이름은 어찌 붙었을까. 가시가 너무 드세고 무서워 호랑이도 무서워하는 가시를 가진 나무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한 잎 모양이 호랑이와 같은 고양잇과 동물의 뾰족한 발톱과 발을 닮아서라는 설도 있다. 실제로 중국에선 ‘노호자(老虎刺)’ ‘묘아자(猫兒刺)’ ‘구골(狗骨)’이라 부르기도 한다. 구골은 개뼈라는 뜻인데, ‘본초강목’에는 ‘나무가 단단하고 나무껍질에 흰빛이 돌아 마치 개뼈처럼 생겼다’고 적혀 있다. 모두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동물의 이름인데, 이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생울타리 재료로도 많이 쓰였다.

‘본초강목’에서는 잎과 열매를 술에 넣어 마시면 허리가 튼튼해진다고 했으며, 나무껍질은 염료나 끈끈이를 만드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인디언 풍속에 이 나무로 만든 차를 마시면 홍역에 좋고, 잎으로 주스를 만들어 마시면 황달이나 신경통에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67. 미선나무- 새 희망을 품은 진짜 ‘우리 꽃’





 


한 해를 마감하고 다시 한 해를 준비하는 때다. 휘몰아치듯 마음을 흔들었던, 혹은 소소하게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상들은 처음 그 상황을 대면했을 때와 달리 인생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매김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일은 기쁨이나 보람으로 각인되고, 또 어떤 일은 실수나 회한으로 남는다.  

왠지 모르게 바쁘면서도 가슴 한쪽에 자리한 외로움을 떨칠 수 없는 이때, 어떤 꽃과 함께 산책할까 생각하다 떠올린 나무가 있다. 바로 미선나무다. 맑고 그윽한 향기가 유별나고, 아름다우나 현란하지 않아 마음에 쏙 스며들며, 알고 보면 지구상에 오직 우리나라 땅에서만 사는 특산식물로, 진짜 ‘우리 꽃’이다. 식물 집안인 한 속(屬)에 오직 한 종(種)만 있는 외로운 가계의 꽃이어서 위로해주고 싶기도 하고, 이런 귀한 의미의 꽃을 아는 이가 드물어 더욱 소개하고 싶은 그런 나무다.

미선나무는 낙엽성 작은 키 나무다. 높이 자라지 않고 옆으로 가지를 많이 만들며 퍼져 나간다. 봄이 오면 겨우내 마치 죽은 듯 메말랐던 가지에 살며시 물이 오르고 잎보다 꽃이 먼저 피기 시작한다. 꽃 모양은 개나리를 닮았지만 좀 더 작고 하얀 꽃이 달리며, 개나리보다 훨씬 일찍 꽃을 피우는 봄의 화신이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미선나무를 두고 하얀 개나리라 부르기도 한다. 가지마다 작은 꽃송이를 가득 매달고 꽃을 피운다. 작은 초롱처럼 생긴 꽃이 함께 모여 달리는데, 하얀색을 기본으로 연한 분홍빛을 띠는 꽃은 분홍미선이라 부르고, 상아빛을 띠면 상아미선이 된다.  

미선나무라는 이름은 이 나무의 열매 때문에 붙은 것이다. ‘아름다운(美) 부채(扇)’라고 아는 사람이 많지만, 꼬리 미(尾) 자에 부채 선(扇) 자를 써서 미선이 됐다. 실제 미선(尾扇)은 대나무 줄기를 잘게 쪼개어 가는 살을 여러 개 만들고 이것을 둥글게 편 뒤 종이나 명주천을 붙여 만든 부채를 가리킨다.  

미선나무는 파랗게 달리기 시작하는 열매의 모양 자체도 보기 좋지만, 열매가 발그스름하게 익어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아름다운 미선 부채 모양 그대로다. 열매 안에는 종자가 두 개씩 들어 있다. 양묘에 관심이 조금만 있다면 조경수시장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미선나무가 자연적으로 자라는 곳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가치 있다.  



미선나무의 자연 서식지는 대부분 흙조차 제대로 붙어 있지 못하는 돌밭인 경우가 많다. 어려움 속에서 자랐으나 곱고 향기로운 귀한 존재로 커 나가는 이 꽃나무, 혹 지난 한 해 동안 어려움이 있었다면 미선나무처럼 새봄의 아름다움을 피우려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희망을 품으며 새해를 맞길 기원해본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68. 모데미풀- 깊은 계곡에 흰 별들 쏟아졌네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나날이다. 꽃 가운데서도 특별한 꽃이 생각나는 때다. 모데미풀은 우리에게 다소 낯설지만 뭔가 특별함이 있는 식물이다. 그 특별함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자면, 모데미풀은 이 너른 지구상에서 오직 우리나라 땅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다. 종(種)뿐 아니라 집안 전체가 특산속(特産屬)인 참 귀한 존재다. 그 아름다움도 특별하다. 봄 냄새가 한창 몰려오는 아름다운 숲 속에서, 또는 졸졸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깊은 계곡에서 만날 수 있는 모데미풀의 자태는 순결한 흰 별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자리 잡은 듯 더없이 곱고 아름답다.  

모데미풀은 낯설다. 산림보호법에 희귀식물로 정해두고 보호할 정도로 드문 풀이다. 우리나라 한라산, 지리산, 태백산, 설악산, 소백산, 점봉산 등에 분포하는데 워낙 이른 봄에 꽃이 피고, 깊은 숲 속 물가 혹은 습한 지역에서 피어나는 진짜 우리 꽃 가운데 하나다. 오염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깊은 산골에서 아주 드물게 모습을 보인다.

모데미란 이름 또한 그 유래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낯설다. 지리산 자락인 남원군 운봉면 모데미 마을 개울가에서 처음 발견해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동네 이름도, 이 동네에 살았던 모데미풀도 지금은 찾기 어려워졌다.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인 모데미풀은 긴 잎자루 끝에서 잎이 3개로 완전히 갈라진 후 다시 2~3개로 뻗어나간다. 잎 자체는 또다시 톱니모양을 이루거나 잎 가장자리가 깊이 패어 들어가는 결각이 생기는 매우 독특한 모양을 가진다. 봄에 피는 꽃은 꽃자루가 다 올라오면 그 높이가 한 뼘쯤 된다. 줄기 끝에 백색 꽃잎(꽃받침잎) 5장과 노란 수술을 가진 꽃송이가 달리고, 이 꽃이 지면 열매가 골돌(여러 개 씨방으로 이뤄져 익으면 벌어짐)처럼 달리는데, 별빛 같은 조각들이 방사상으로 매달린 모습이 마치 우주 신비를 담은 듯 특별하다. 이 부지런한 식물은 벌어진 열매 사이로 튀어나온 종자를 멀리 보내고 다른 식물이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할 무렵, 벌써 한해살이를 마무리하곤 한다.


 



꽃이 아름다워 많은 사람이 뽑아다 관상용으로 키우려 하지만 까다로운 재배방법을 습득한 이가 드물어 죽이는 경우가 흔하고, 이는 모데미풀의 전체 개체수가 적어지는 더 큰 이유가 된다. 그러나 높은 고산지대 녹화용 지피식물이나 고산식물원(alpine garden)에는 꼭 필요한 식물이라 고급 분화로 키워볼 만하다. 일반인이 쉽게 키우려면 적합한 재배방법이나 개체선발 같은 후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잘 만나기조차 어려운 작은 꽃이지만 모데미풀은 참 아름답고 의미 있는 꽃이다. 그냥 놓아두면 사라질 수 있는 만큼 잘 찾아내 보전해야 하는 그런 꽃이다.

새해엔 모데미풀을 되살리듯, 우리의 둔함으로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보자. 그것이 자연이든, 역사든, 스쳐간 인연이든, 물건이든 그 의미를 알아보고 소중히 하는 그런 따뜻한 한 해였으면 싶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69. 머위- 하나는 미약하나 모이면 특별한 자태



꽃, 풀, 나무, 열매, 나물…. 이들의 공통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먼저 이들은 모두 식물이다. 그리고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 식물은 크게 풀과 나무로 구분되며, 꽃과 열매는 나무나 풀에 달리는 기관 가운데 하나다. 나물은 식물의 잎 혹은 뿌리 등으로 만든 먹을거리를 가리킨다. 오늘은 ‘머위’를 소개할까 하는데, 혹자는 ‘우리꽃 산책’이라는 코너에서 왜 나물 이야기를 하나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머위도 식물인 만큼 꽃이 핀다. 알고 보면 그 꽃은 신기하고 지혜롭다.  

머위는 우리나라 산 가장자리, 인가나 농로, 물가 주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마을이 가까운 전국 어디에서든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국화과에 속하는 이 식물은 이른 봄에 꽃이 먼저 핀다. 그런데 겨울이 그리 매섭지 않은 아주 남쪽 섬에 가면 지난겨울부터 성급하게 핀 꽃송이들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연한 녹황색 꽃송이들은 아주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꽃이라고 인식하기 어려운 작은 꽃들이 모여 엄지손톱만한 크기의 작은 꽃차례를 이루고, 이들이 둥글게 다시 모여 인형머리만큼 큼직한 꽃차례를 또 만든다. 하나하나는 작고 보잘것없지만 서로 합쳐 작은 공동체를 만들고 이들이 다시 유기적으로 모여 가장 큰 효율을 발휘한다. 곤충의 움직임이 극히 제한된 이른 봄 한 번의 방문으로 수정을 하니 그 생태 자체가 지혜롭다 하겠다. 

꽃송이가 달릴 때는 키가 어른 손 한 뼘쯤 되고, 그때쯤 듬성듬성 나기 시작한 잎자루는 날씨가 따듯해지면서 마구 올라와 주변 땅을 덮고 어른 무릎 높이까지도 자란다. 잎은 자루가 길고 그 끝에 큰 콩팥 모양 잎이 달린다. 그 긴 잎자루가 바로 우리가 나물로 먹는 머윗대다. 제주에서는 꼼치, 영남지방에서는 머구, 강원 일부 지방에선 머우라고도 한다. 사람과 친하게 지냈으니 이름이 다양한 것은 당연하다. 학명 ‘페타시테스 자포니쿠스(Petasites japonicus)’에서 속명은 차양이 넓은 모자를 뜻하는 희랍어 페타소스(petasos)에서 유래했다. 물론 넓은 잎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머위를 이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식용이다. 잎자루는 삶아 물에 담근 후 아릿한 맛을 우려내고 껍질을 벗겨 양념을 해 먹는다. 잎은 우려서 나물, 볶음, 장아찌, 조림, 정과로 만들어 먹는다. 머위로 하는 요리는 무궁무진하다. 꽃송이는 찹쌀가루를 묻혀 튀겨 먹기도 하고, 된장에 박아뒀다가 먹기도 한다. 무기염류가 많아 봄에 먹으면 몸이 나른하고 늘어지는 것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알칼리성 식품인 데다 열량이 없어 다이어트 음식으로 제격이다. 머위에 곱게 간 들깨를 넣어 함께 끓이는 탕은 별미다. 차나 약술을 담가도 좋은데 주로 꽃봉오리를 이용한다.  

한방에선 ‘봉두채(蜂斗菜)’라 한다. 해독약으로 주로 쓰는데, 목에 염증이 생겼을 때 이 즙으로 양치질을 하기도 한다. 이것을 달인 물은 기침을 멎게 하거나 가래를 없애는 데 사용된다. 유럽에선 머위가 탁월한 항암치료제 성분으로 관심을 모은다고 한다. 하나는 소소하지만 모여서 특별해지는 머위 꽃, ‘더불어 살라’는 새해 가르침이다.

머위 나물 무침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70. 처녀치마- 봄 기다리며 수줍은 치마 펼쳤네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몸도 마음도 꽁꽁 얼고 보니, 새봄이 더욱 간절히 기다려진다. 숲엔 지난번 내린 눈이 하얗게 쌓였다. 그 속에선 이미 지난가을부터 생명의 씨앗이 움틀 준비를 하고 있을 터인데, 부디 새봄에 기쁘게 만나길 기대해본다. 

식물은 대부분 한겨울보다 겨울 끝, 봄 시작점에 ‘동해(凍害)’를 입는다. 추운 겨울은 미리 예견하고 준비하기 때문에 괜찮은데, 봄이 온 줄 알고 섣부르게 연한 순을 내밀었다가 뒤늦은 추위에 호되게 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눈이 많이 내린 곳에선 식물이 더욱 풍부하고 건강하게 자란다.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심하게 불어닥칠 무렵 숲에 쌓여 있다 서서히 녹는 눈이 수분을 공급해주는 중요한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처녀치마는 쌓인 눈 속에서 꽃이 피는, 새봄에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꽃 가운데 하나다. 보랏빛 꽃송이가 참 예쁜 꽃이다. 처녀치마의 가장 큰 장점은 땅 위에 방석처럼 펼쳐지는 잎들이 겨울이 올 때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봄이 오면 묵은 잎 위에 다시 새잎이 펼쳐지고 그 사이에서 꽃대가 쑥 올라와 꽃이 핀다. 성급한 꽃송이는 꽃대를 미처 올리기도 전 불쑥 올라와 꽃대가 자라는 동안 함께 꽃을 피운다. 새봄을 어수선하게 한다.

봄이 한창 아름다운 어느 날, 처녀치마 꽃송이가 적게는 3개에서 많게는 10개까지 꽃대 끝에 모여 달려 땅을 향해 핀다. 길쭉한 꽃잎들이 펼쳐지면 꽃들이 매어 달린 위쪽보다 아래쪽이 더 넓어져 전체적으로 마치 작고 아름다운 아가씨의 짧은 치마처럼 보인다. 이 꽃이 ‘처녀치마’라는 특별한 이름을 갖게 된 배경이다.  

연보랏빛 꽃잎은 개체에 따라 좀 더 진하기도, 여리기도 하다. 꽃잎의 다양한 색감과 함께 꽃잎 사이로 좀 더 길게 뻗어 나오는 수술은 장식처럼 포인트가 된다. 처녀치마 꽃송이들은 치마 중에서도 아주 현대적이면서 귀엽고 아름다운 치마가 된다. 지방에 따라서는 ‘치맛자락풀’ ‘성성이치마’라고도 부르며, 한자로는 ‘자화호마화(紫花胡麻花)’라고 한다.

여름쯤 익는 열매는 삭과로 마른 화피에 싸여 있으며, 익으면 3개 능선으로 벌어지는데 그 안에 길쭉한 씨앗이 들었다. 꽃이 필 때 한 뼘쯤 되는 키는 기온이 오르면서 점차 자라 열매가 익을 때쯤에는 성인 무릎 높이까지 크기도 한다. 키 차이가 제법 많이 난다. 조금이라도 높이 자라 씨앗을 좀 더 멀리 보내려는 처녀치마의 노력이 안쓰럽다.

처녀치마는 봄 산행을 떠나는 부지런한 사람에게 좋은 친구가 되지만, 야생화를 찾는 이에게는 관상자원으로 주목받는다. 봄철 꽃구경이 좋은 것은 물론, 오랫동안 화단에 남은 잎이 지면을 덮는 것도 처녀치마의 장점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화분이나 수반 같은 곳에 키우는 작은 꽃 소재로도 인기 있다.  

처녀치마는 백합과에 속하며, 흔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산 어디에서든 만날 수 있는 야생화다. 활엽수 낙엽이 수북이 쌓여 비옥하고 습윤한 숲 비탈면을 눈여겨보면 꽃은 없어도 방석처럼 땅에 펼쳐진 처녀치마 잎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봄철 처녀치마의 보라색 꽃을 구경할 수 있다면 더 큰 행운이다.  

이렇게 여리고 고운 처녀치마 꽃송이도 모진 한겨울 추위를 견디고 올라온 장한 존재들이다. 우리가 지금 한겨울 같은 어려움을 겪더라도, 눈 속에서 피어날 처녀치마처럼 아름다운 내일이 준비돼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71. 산마늘 - 기력 회복 최고 잠에서 깬 곰 가장 먼저 찾아





입춘(立春)이 지난 지 오래지만 겨울 숲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흰 눈이 내리고 난 뒤 숲의 정적은 더 깊이 마음에 와 닿는다. 겨울엔 깊은 숲에서 곰이 겨울잠을 자듯 식물들도 잠을 잔다. 살아 있지만 죽은 듯 때를 기다린다. 풀은 땅속에서, 나무는 겨울 눈 속에서 새 계절을 맞을 준비를 한다. 
 
곰은 겨울잠에서 깨면 먼저 먹을 풀을 찾는다. 독성이 강한 앉은부채를 먹기도 하는데, 이는 일부러 배탈을 내서 겨울잠을 자는 동안 장속에 쌓인 노폐물을 배출하기 위해서다. 겨울잠을 자는 은신처로 요긴하게 사용했던 조릿대에 순이 오르면 거기에 고인 깨끗한 물을 먹기도 한다. 곰은 삐죽삐죽 올라오는 산마늘 새순도 좋아할 것 같다. 산마늘이 기력을 회복해주는 아주 유명한 풀이라는 사실을 곰도 잘 알 터이기 때문이다.

산마늘을 잘 모르는 이라면 먹는 ‘명이나물’을 떠올리면 금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고급스러운 산채음식점 식탁 위에 자주 등장하기도 하고, 장아찌로 만들어 팔기도 하는 명이나물의 진짜 이름이 산마늘이기 때문이다. 산마늘을 ‘명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예전 울릉도 사람들이 춘궁기에 이 나물을 먹고 목숨을 구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명이에 목숨 명(命) 자가 쓰인 이유도 그 때문이며, 흔히 ‘맹이’라 부르기도 한다. 강원도에선 ‘신선초’ ‘족집게풀’이라고도 하는데, 신선초란 이름이 몸에 좋고 귀한 여러 풀에 붙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산마늘이 몸에 좋은 식물이란 것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산마늘은 백합과 부추속(Allium)인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가 잘 아는 부추, 파, 마늘, 양파가 같은 집안식물이다. 식물학적으로는 작은 꽃이 공처럼 둥글게 모여 피는 것이 공통점이고, 모두 매콤한 맛이 나는 향신채로 몸에도 좋다. 자양강장 효과가 높다고 알려졌다.

단군신화를 보면 우리 조상인 곰, 즉 웅녀는 쑥과 마늘을 먹고 백일을 견뎌 인간이 됐고 이후 단군을 낳았다고 한다. 근거 있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우리가 먹는 마늘의 원종은 알타이 산맥에 자생하는 종류로 반만년 전 한반도에는 분포하지 않았으니, 혹시 그때 웅녀가 먹은 것이 마늘이 아니라 산마늘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산마늘이 우리나라 깊은 산에서 자라고, 기운을 얻을 수 있는 식물이니 말이다.

한방에서도 산마늘을 오래전부터 이용했는데, 자양강장과 해독 효과 외에도 소화 및 신경계 질환, 부인병 등 여러 증상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재배 농가도 늘고 쌈채, 장아찌, 나물 등 다양하게 이용한다.  

산마늘은 이른 봄 새순도 귀엽고, 한여름 핀 흰 꽃도 아름다우며, 무엇보다 시시때때 먹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식물이다. 남는 땅이 조금 있다면 봄에는 산마늘 가꾸기를 권한다.



 


[출처]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이유미의 우리꽃 산책> / 주간동아



이유미의 우리꽃 산책Ⅱ[26회~50회]



26. 광대나물- 봄 들녘 ‘메롱’하며 눈인사




날씨가 좀 풀리니 발걸음이 한결 편안합니다. 추운 겨울 어찌나 움츠리고 다녔던지,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에 얼마나 힘을 주고 다녔던지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어깨며 팔다리가 뻐근하곤 했지요. 아직 추위가 몇 번 남았긴 해도 바람에서 느껴지는 훈훈한 기운이 마음까지 녹일 듯합니다. 입춘도 지났으니 봄은 봄이겠지요. 꽃소식이 몹시 기다려지는 때입니다.

이즈음 남쪽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꽃이 있습니다. 굳이 깊은 산을 찾지 않아도 숲 가장자리 풀밭이나 건조하지 않은 길 가장자리, 마을 한편 빈터에서 만날 수 있지요. 바로 광대나물입니다. 생각해보면 광대나물은 이제 피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지난겨울부터 볕이 드는 곳에서 그렇게 올망졸망 피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봄꽃 이야기를 하면서 이제야 광대나물을 떠올렸다니, 그간 추위를 핑계로 꽃구경에 너무 소홀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남도 들녘에서 키 작은 꽃 광대나물을 만날 수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마음 한구석 혹시 하찮게 여기는 속내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지천으로 나는 풀인 데다 독특하게 생긴 꽃이라 많은 이가 궁금해했을 터인데 말입니다.  

사실 광대나물은 눈여겨보면 여간 개성 있고 고운 게 아닙니다. 보통은 한 뼘 높이로 자라지만, 늦은 봄까지 훌쩍 크기도 하지요. 주름이 자글자글한 잎은 본래 마주보고 나는데, 위쪽에선 자루 없이 크게 달려 줄기를 완전히 감싼 듯 보입니다. 아기 턱받이처럼. 그 모양새가 광대 옷 같아서 광대나물이 되었을까요. 물론 저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이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북한에서는 작은잎광대수염, 코딱지나물이라고도 한다니, 자기 나름에는 곱다고 생각하고 있을 광대나물로서는 ‘광대’도 못마땅할 판에 ‘코딱지’라니 자존심이 상할 것 같습니다. 접골초, 진주연, 작은잎꽃수염풀이라고도 합니다. 이른 봄부터 꽃분홍색 길쭉한 꽃들이 달리지요. 작은 뱀이 고개를 들어 입을 벌린 듯한 모습이지만, 느낌은 사뭇 달라 아주 귀엽고 예쁘답니다.  

어려서 연한 순은 나물로 먹습니다. 그래서 이름 뒤에 ‘나물’이 붙었나 봅니다. 약으로도 사용하는데, 보개초(寶蓋草)란 이름으로 타박상을 치유하거나 코피를 멎게 할 때 처방한다고 합니다. 봄 햇살을 맞으며 꽃이 다복하게 핀 모습이 보기 좋아 옮겨 심으려 한다면 허사일 수 있습니다. 꿀풀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이라 이미 꽃이 피었다면 여름을 기다려 씨앗을 얻어야 하니까요.  

광대나물은 봄 들녘이 가장 잘 어울립니다. 누군가 작은 꽃을 들여다보면 아래쪽 꽃잎들이 마치 혀를 쑥 내밀고 ‘메롱’하는 듯 보인다고 하기에 저도 한 번 들여다봤습니다. 그러고 있노라니 기분이 유쾌해지고 절로 웃음이 나더군요. 그렇다면 광대나물인 이유가 잎 모양이 아니라 이렇게 사람을 즐겁게 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행복하고 즐거운 꽃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27.노루귀- 봄이 급했나, 눈 헤치고 꽃자루 쑥






 


 

우리 꽃에 대해 강의할 일이 종종 있습니다. 전문가나 학생이 아닌, 풀과 나무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꽃 이야기를 할 때면 꼭 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도 자꾸 잊히는 식물 이름을 굳이 기억하려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게임하듯 추측해보고, 직접 만나보면 재미나서 의외로 쉽게 기억됩니다.  

산자락에 봄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노루귀도 그런 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꽃이 핀 뒤 그 아래에서 말려 올라오는 어린잎을 보면 왜 노루귀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그 연유를 금세 알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이 노루 귀를 꼭 닮았거든요. 그것도 솜털 보송한 사랑스러운 아기 노루 귀를 말이지요.

만일 노루귀를 이번에 처음 보는 것이라면 봄이 무르익은 다음에야 산에 오르는 게으른 산행꾼이거나 빨리, 높이 올라가는 데만 신경 쓰느라 주변에 자리한 소중한 풀과 나무를 헤아리지 못하는 돌격형 산행 스타일일 확률이 높습니다. 노루귀는 전국 어느 산에서나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니까요.  

숲에 봄이 오면 올망졸망 키 작은 봄꽃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행여 키 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릴까 서둘러 올라와 꽃을 피우는 부지런한 식물들이지요. 특히 노루귀는 잎도 없이 꽃자루부터 올라옵니다. 얼었던 땅이 녹기 무섭게 연하디 연한 꽃자루를 반 뼘쯤 길이로 내보내는데, 그 꽃자루에 보드랍고 하얀 솜털이 다복하게 나 있지요. 한자리에서 나오는 여러 개 꽃자루 끝엔 2cm가 조금 안 되는 귀여운 꽃이 흰색 또는 분홍색, 아주 드물게는 보라색으로 핀답니다.  

사실 노루귀에는 꽃잎이 없습니다. 그럼 꽃잎으로 보이는 것은 무엇이냐고요? 꽃받침(혹은 꽃잎과 꽃받침이 구분되기 전 모습이라 해서 ‘화피’라고도 합니다)이며, 그 가운데로 미색 수술과 좀 더 진한 노란빛 암술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잎은 꽃이 한껏 자태를 뽐냈다 싶을 즈음에야 나옵니다. 노루 귀같이 생긴 어린잎이 봄이 무르익으면서 활짝 펼쳐지지요. 개성 넘치게요. 크게 세 갈래로 갈라진 잎 모양은 물론이거니와, 약간 두터운 질감이며 간혹 잎 표면에 나타나는 흰색 얼룩까지도요.  

노루귀는 봄소식을 전하듯 눈을 헤치고 작은 꽃을 내민다고 해서 파설초(破雪草), 설할초(雪割草)라고도 부릅니다. 학명 중 속명 헤파티카(Hepatica)는 간장(肝腸)이란 뜻을 가진 헤파티커스(hepaticus)에서 유래했는데, 세 갈래인 잎 모양이 간장을 닮아 생겨난 명칭입니다. 영어 이름 역시 이와 유사한 뜻을 가진 아시안 리버리프(Asian liverleaf)입니다.

노루귀는 예로부터 장이세신(獐耳細辛)이라는 한약명을 가지고 약으로도 쓰였습니다. 잎은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한다는데, 미나리아재빗과 식물이 그러하듯 독성이 있어서 뿌리를 제거하고 살짝 데친 다음 물에 담가 쓴맛이나 독성을 우려내야 합니다. 이즈음엔 관상 자원으로 많은 주목을 받습니다. 특히 꽃 색깔이 다양해 색깔별로 모아 키우는 재미가 있답니다.

봄이 오긴 하는 모양입니다. 성급한 노루귀가 올라올 숲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을 보니 말입니다. 
[출처]: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이유미의 우리꽃 산책> / 주간동아


  

28.얼레지- 산골 처녀 뺨 같은 분홍빛 꽃송이



 

봄 숲엔 수많은 우리 꽃이 피어납니다. 올망졸망 피어나는 꽃들 중 어여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지요. 그 많은 봄꽃 가운데 많은 이의 첫사랑 같은 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얼레지입니다. 얼레지는 제게도 첫사랑 같은 꽃입니다. 작고 소박한 것만이 우리 꽃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하던 막연한 느낌을 바꿔준 꽃이지요. 꽃잎을 한껏 뒤로 젖힌 채 피어난 분홍빛 꽃송이가 얼마나 인상 깊던지.  

이름도 참 특별합니다. 얼레지라니. 외국에서 들여온 꽃이름 같지만 분명 토종 우리 꽃입니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연유는 알지 못합니다. 땀이 많이 나는 사람에게 생기는 어루러기라는 피부질환이 있습니다. 피부에 얼룩얼룩한 황갈색 또는 검은색 반점이 생기지요. 이를 ‘얼레기’ 또는 ‘어루지’라고도 부르는데, 잎에 난 얼룩무늬 때문에 이를 본떠 얼레지라고 부른 것 아니겠느냐고 추측하는 분도 있네요. 한편으론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이 고운 꽃이 피부에 생기는 곰팡이라니, 심정적으로는 결코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영어 이름은 Dogtooth Violet입니다. 어디에서 개 이빨을 상상했을까요? 꽃을 유심히 보면 꽃잎 안쪽에 결각이 진, 진한 보랏빛 무늬가 있습니다. 안쪽에 꿀샘이 들어 있다고 곤충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주는 표시선 같지요. 영어 이름도 아름다운 얼레지와는 어울리지 않네요.

이른 봄 산에 가면 간혹 야생화 군락을 만나는 행운이 찾아옵니다. 숲은 도시보다 봄이 늦게 찾아드는데, 키 큰 나무는 아직 잎도 틔우지 않은 이른 봄, 현호색이나 꿩의바람꽃 무리와 함께 핀 얼레지 군락은 평생 잊지 못할 장관입니다.

하지만 얼레지가 아무리 고와도 집 안으로 옮겨올 생각일랑 마세요. 아주아주 가는 뿌리가 땅속 깊이깊이 들어가 있으므로 끊어지지 않게 옮기는 게 참 어렵거든요. 그냥 산에 와서 한 번씩 보라는 뜻이라고 생각하세요. 땅속에는 알뿌리가 있는데, 한 해에 하나씩 생기면서 깊이깊이 뿌리 내립니다. 아주 배고프던 시절엔 이 알뿌리를 구황식물로 이용했다는데, 어지간해서는 그리 이용하기도 어렵답니다.  

그 대신 잎은 나물로 먹기도 하지요. 약간 시큼하면서도 참나물이나 취나물과는 다른 얼레지 나물만의 색다른 맛이 있습니다. 얼레지 묵나물로는 국을 끓여 먹기도 하는데, 미역국 맛이 난다 하여 ‘미역취’라고 부르지요. 하지만 이 식물에는 독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한 번 삶아 우려낸 뒤 먹어야 합니다. 하긴, 보기도 아까워 여간해선 먹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얼레지는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언 땅을 녹이고 올라온 잎새는 아기 손바닥처럼 넙적하고, 두터운 녹색 잎에는 자색 얼룩이 있답니다. 그 사이로 꽃자루가 올라와 꽃잎 6장을 한껏 펼쳐내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지요. 꽃잎을 완전히 뒤로 젖히고 긴 보랏빛 암술대와 그것을 둘러싼 수술대를 고스란히 드러낸, 수줍은 산골 처녀치곤 파격적인 얼레지의 개방을 이 봄엔 꼭 한 번 구경하세요.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29.깽깽이풀- 봄볕 받아 올망졸망 고운 자태




대지에 봄기운이 가득합니다. 얼었던 땅이 녹아 성글어진 숲에서 가장 먼저 기다려지는 우리 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깽깽이풀입니다.  

깽깽이풀은 본래 희귀식물입니다. 제가 연구직 공무원이 된 다음 가장 먼저 맡은 연구과제가 바로 ‘희귀식물 보전’이었습니다. 첫 과제여서 열정이 솟구치던 시절이었고, 하루가 다르게 사라져가는 우리 꽃을 만나다 보니 더욱더 애틋한 마음이 들곤 했습니다.  

깽깽이풀도 그때 처음 만났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본래 자라는 곳이 아주 제한적이어서 이 꽃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한걸음에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깽깽이풀이 얼마나 곱디곱던지. 자생지에서는 여전히 위태롭게 살지만, 제가 일하는 국립수목원에 많이 증식하고 보전해두어 적어도 사라질 염려는 조금 줄었습니다. 그 덕에 저는 매년 봄을 깽깽이풀로 맞이하지요. 여러분도 꽃구경 오세요.

깽깽이풀이라니, 이름도 참 특별합니다. 이름이 얼마나 정다운지 불러만 봐도 가까워지고 즐거워지는 것 같지 않으세요? 이 꽃이 사는 곳은 그리 깊지 않아 봄볕이 충분히 드는 숲가입니다. 몇 포기씩 무리지어 핀 연보랏빛 꽃송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절로 감탄이 나오지요. 그런 것이 바로 봄에 누릴 수 있는 행운이고요.  

깽깽이풀은 매자나뭇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가을 겨울 내내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어느 봄날 느닷없이 작은 꽃망울들을 내어보내지요. 그렇게 올망졸망 맺힌 꽃송이들은 햇볕이 아주 좋은 어느 날 갑작스레 꽃잎을 펼쳐내며 환하게 웃습니다.

꽃이 피고 난 다음 마치 ‘쑥’ 하고 소리를 낼 것처럼 성큼 자라 올라오는 잎사귀 모양도 매우 재미납니다. 뿌리에서 하나씩 올라오는 잎사귀는 자줏빛을 띠며, 서로 마주 보고 반으로 올라왔다가 이내 자루를 길게 올리고 잎을 펼쳐내지요. 잎 모양은 둥글고, 특히 잎자루가 잎 밑부분이 아닌 중간에 달려 있어 아기 연잎처럼 느껴집니다. 신기한 것은 이 잎도 연꽃잎처럼 물망울이 떨어지면 흡수되지 않고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깽깽이풀을 구경하노라면 또 한 가지 재미난 점을 알게 되는데, 원래 한 포기가 자라던 자리에서 줄을 지어 가며 새순이 돋아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답니다. 왜 이런 모습일까 이유를 찾아보니, 개미가 깽깽이풀 씨앗을 물고 일정한 길을 따라 자기 집으로 가다가 중간에 떨어뜨린 곳에서 싹이 난 것이 줄모양이 된 것입니다.
 
개미는 왜 깽깽이풀 씨앗을 좋아할까요? 씨앗 표면에 밀선, 즉 꿀을 분비하는 선이 있어 개미들이 모이는 것입니다. 씨앗에 날개도 없고 솜털도 없어 자기 핏줄을 멀리멀리 퍼뜨릴 방법이 없는 깽깽이풀이 개미 힘을 빌리고자 만들어낸 지혜인 셈이지요.

깽깽이풀은 요즘에는 관상자원으로 관심을 모으지만, 예전에는 약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생약명으로는 모황련(毛黃蓮) 또는 선황련(鮮黃蓮)이라고 하며, 줄기와 뿌리를 약으로 썼다지요. 따사롭고 부드러운 봄 햇살과 함께 깽깽이풀처럼 아름다운 우리 꽃이 여러분 마음에 가득 피어나길 바랍니다.  [출처]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이유리의 우리뮨화




30. 제비꽃- 키 작은 꽃송이 봄 식탁에 딱!





봄 햇살이 따사로우니 몸도 마음도 들썩입니다. 햇살 따라 산책길을 걷노라니 들판이며 숲가에서 삐죽삐죽 올라오는 파릇한 새싹들이 보입니다. 행여 봄꽃 구경이라도 할까 싶어 두리번두리번 걷는 발걸음이 봄날처럼 가볍습니다. 흥얼흥얼 노래도 나옵니다. “보랏빛 고운 빛 우리 집 문패꽃 꽃 중에 작은 꽃 앉은뱅이랍니다.♬♪~.”  


그 작은 꽃, 제비꽃이 보이네요. 연약한 듯 보이지만, 겨울을 이기고 제일 먼저 올라와 여기저기 핀 모습을 보니 본성은 강인한 꽃입니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정다운 우리 꽃이기도 하지요.  

제비꽃이란 이름은 날렵한 꽃 자태와 빛깔이 제비를 닮은 데다, 제비가 돌아오는 봄에 꽃이 피기 때문에 붙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비꽃은 우리와 친근한 만큼 별칭도 많지요. 제비꽃을 흔히 오랑캐꽃으로 기억하는 이가 많습니다.

조선시대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 마을마다 이 꽃이 필 무렵이면 북쪽 오랑캐가 쳐들어와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부리처럼 길게 튀어나온 꽃 밑부분(이 부분을 식물 용어로 ‘거’라고 합니다. 꿀샘이 있는 곳이지요)이 변발한 오랑캐 머리채 같아서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니 사랑스러운 꽃 모양새와 달리 우리 민족의 수난 역사를 말없이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 밖에도 꽃 모양이 씨름하는 모습 같아서 ‘씨름꽃’ ‘장수꽃’이라 하고, 또 이른 봄 새로 태어난 병아리처럼 귀여워 ‘병아리꽃’, 나물로 먹을 수 있어 ‘외나물’, 소녀들이 이 꽃으로 반지를 만들었다고 해서 ‘반지꽃’이라고도 부릅니다.

한자 이름으로는 여의초(如意草), 전두초(箭頭草)라 하며, 한방에서는 자화지정(紫花地丁), 근근채(菫菫寀)라고 부릅니다. 제비꽃류를 통칭하는 속명이 비올라(Viola)인데, 색깔 가운데 보라색을 바이올렛(Violet)이라고 하는 이유는 제비꽃의 보라색을 보고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라지요.

제비꽃은 키는 작지만 길가에 흔히 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원줄기 없이 뿌리 근처에서 주걱형 잎이 여럿 달리고, 그사이로 올라온 크고 작은 꽃자루 끝에 제비처럼 날렵한 꽃송이들이 달리지요. 꽃잎 한쪽은 뭉툭하게 모아지고 다른 한쪽은 아름답게 벌어진 독특한 모양이고요.

마치 빨래집게가 올을 집듯 꽃송이 가운데서 꽃을 잡고 있는 꽃받침 모습도 독특합니다. 6월이면 열매가 익으면서 세 갈래로 갈라져 그 안에 가지런히 있던 종자들이 톡톡 튀어 나간답니다.  
 



 


 


어린잎을 무쳐먹거나 국으로 끓여 먹기도 하고 튀겨 먹기도 합니다. 잎을 소금물에 데친 뒤 썰어 밥 에 섞고 제비꽃을 몇 송이 얹어 만드는 제비꽃밥 같은 다소 호사스러운 봄 식단을 마련해도 좋을 듯합니다.
 
약으로는 열로 인한 종기를 비롯해 부인병 예방, 발육 촉진 등 여러 증상에 처방합니다. 잎을 따서 초산을 매염제로 염색하면 황록색 염료가 되기도 하지요. 서양에선 향기가 좋다고 향료 원료로 쓰기도 합니다. 화단에 깔리듯 심어 놓으면 금세 퍼져나가 이듬해엔 꽃방석을 만드는 관상용으로도 그만입니다.  

봄 산책 나가거들랑 제비꽃 한번 찾아보세요. 그 예쁜 모습에 절로 미소를 띠게 될 테니까요.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31. 현호색- 숲 속의 종달새 연보랏빛 자태





봄입니다. 하루하루가 다르고, 하루에도 아침, 낮, 저녁 날씨가 다 다른 변덕스러운 봄입니다. 때론 심술궂은 꽃샘추위가 닥쳐오고 바람도 스산하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따사롭고 부드러운 기운이 대기에 가득한 참으로 사랑스러운 봄입니다. 담장 위로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백목련이며 산수유가 춘흥을 한층 돋우네요. 이런 봄날이면 자연을 찾아 들로든 산으로든 떠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간 숲 속은 우리 생각보다 봄이 더디게 찾아옵니다. 아니, 봄은 진즉에 찾아와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이곳저곳에서 새싹이 삐죽삐죽 움을 틔울 준비를 끝냈지만, 아직 대지 색깔이 봄빛으로 바뀌지 않았기에 둔한 우리 눈엔 그리 느껴지나 봅니다. 향긋한 봄내음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 산자락에 접어들면 개울가 비탈면이나 양지바른 언덕, 아니면 논둑 위에서 앙증스러운 자태로 연보랏빛 꽃을 피워 부지런한 산행을 맞이하는 우리 꽃이 있습니다. 바로 현호색입니다.  

현호색은 우리나라 구석구석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도심과 조금 떨어진 한적한 시골 풍경에서는 어김없이 나타날뿐더러, 심심산골을 헤매다 보면 문득 눈앞에 나타나 유난히 반가운 꽃이기도 하지요. 현호색을 처음 봤다면 두 가지 이유 중 하나 때문입니다. 땅 위에서 피는 잔잔한 꽃에게 도통 관심이 없거나, 너무 늦게 봄 산행을 시작하는 게으름 때문이지요. 현호색은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몸을 녹이면 가장 먼저 싹을 틔우고 곧바로 꽃을 피워낸 뒤 한 달가량 있다 열매를 맺으니 말입니다.

현호색을 만나 보면 알겠지만 먼저 매우 독특한 꽃 모양이 눈에 띕니다. 손가락 두 마디쯤 길이로 옆으로 길게 뻗은 보랏빛 꽃의 한쪽 끝이 요염한 여인의 벌어진 입술처럼 위아래로 갈라져 벌어집니다. 꽃이 약간 들리면서 반대쪽 끝으로 가면 뭉툭하게 오므라져 있지요. 꿀주머니가 들어 있는 이 부분을 흔히 ‘거’라고 부릅니다.

현호색과를 총칭하는 속명 코리달리스(Corydalis)는 종달새라는 뜻의 희랍어에서 유래했는데, 꽃의 이러한 특징이 종달새 머리 깃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꽃이 활짝 핀 현호색은 숲 속에서 조금씩 다른 색깔과 모습으로 앉아서 노래하는 종달새 같아요.

현호색 뿌리를 거두면 그 중간에 괴경이란 덩이줄기가 달려 나옵니다. 괴경은 현호색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데, 이른 봄 밥상에 올라와 입맛을 돋우는 달래처럼 생겼지만 2배쯤 큽니다. 1년 내내 어두운 땅속에서 지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표면이 하얗고, 껍질을 벗기면 속은 노란색입니다. 이를 말려 쓰는 약재 이름도 현호색이랍니다.  





정말 재미있는 사실은 올망졸망 모인 현호색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부 그 모양이 다르다는 겁니다. 봄 햇살이 잘 드는 숲가에서 다채롭게 피어난 현호색을 구경하노라면 어느새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떠오를 듯싶네요.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32.각시붓꽃- 작은 꽃잎 속에 뜬 희망 무지개





하루하루 꽃소식을 기다리는 봄이면 한반도가 정말 넓은 땅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지난주에 다녀온 남쪽에선 여기저기 꽃소식이 가득한데, 중부지방에서의 본격적인 개화는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유난히 꽃소식 예측이 어렵습니다. 제가 일하는 국립수목원에선 기후변화에 대비하려고 벌써 몇 년째 전국 식물원과 수목원, 그리고 산에서 같은 나무와 풀로 꽃이 피는 시기와 곤충이 활동하는 시기를 모니터링하는데, 올해에는 모든 예측을 깨고 봄이 당겨졌네요.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린다는 애호랑나비도 덩달아 출현했습니다.  

각시붓꽃은 봄 산에서 만날 수 있는 키 작고 아름다운, 보는 이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을 만한 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붓꽃과 붓꽃속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지요. ‘각시’라는 단어가 앞에 붙은 이름에서 짐작했겠지만, 키가 작고 꽃도 작은 데다 일찍 핍니다. 잎도 가늘지요. 그래서 ‘애기붓꽃’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녀리고 작은 식물 이름 앞엔 각시둥굴레, 각시제비꽃처럼 ‘각시’ 혹은 ‘애기’ 같은 단어가 붙는데, 각시붓꽃도 마찬가지입니다. 꽃의 아름다움이나 빛깔이 붓꽃에 빠지지 않으며, 한 뼘 높이 정도로 작게 자라 귀엽고 정답습니다.  




꽃은 4월부터 피기 시작합니다. 장소에 따라서는 5월에도 피니 봄꽃치곤 제법 오래 볼 수 있는 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꽃줄기 끝에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꽃이 하나씩 달립니다.

이러한 꽃송이가 한 포기, 두 포기, 때론 여러 포기가 무리 지어 올라와 각기 주변 경관과 적절히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지요. 봄에 꽃대가 올라올 즈음 키를 같이 높여 올라온 잎들은 살짝 늘어지기도, 바로 서기도 하는데, 자유롭지만 조화롭게 꽃과 어우러지는 모습이 자연의 완벽한 구도와 아름다움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꽃이 지고 나면 가을에 열매가 익기 시작하지만 잎들은 30cm 정도까지 계속 자란답니다.

각시붓꽃이 좋은 점은 지나치게 귀하고 까다로운 식물이 아니라, 관심만 갖는다면 봄에 산을 찾는 사람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그런 식물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숲에서 풀과 나무를 눈여겨 들여다보고, 이 아름다운 꽃을 발견해 그 멋진 모습을 마음에 담을 줄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드문 듯싶습니다. 전국 웬만한 산지에서 볼 수 있으니 올봄엔 많은 사람이 각시붓꽃을 만나는 행복을 누렸으면 합니다.  

봄 숲엔 고만고만한 붓꽃 집안 식구가 여럿 있는데, 각시붓꽃과 비슷하면서 키가 더 작은 난쟁이붓꽃이 있고, 뿌리가 솔처럼 엉클어지고 딱딱해 실제 솔로 써도 무방한 솔붓꽃도 있습니다. 노란색 꽃이 피는 노랑붓꽃과 금붓꽃, 노란색 무늬가 아름다운 노랑무늬붓꽃도 있지요.  

분에 심어 키우면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고, 지피 조경용으로 심으면 아름다운 봄꽃 화단이 됩니다. 뿌리는 약재로 쓰는데, 소화를 돕고 타박상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각시붓꽃이 속한 붓꽃속은 학명으로 아이리스(Iris)입니다. 꽃잎에 그려진 무늬가 무지개 같다고 해서 무지개 여신 이름을 땄습니다. 각시붓꽃 꽃잎에 그려진 작은 무지개를 보며 희망찬 봄을 만끽하길 바랍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33. 꿩의바람꽃- 순백의 아네모네가 너였구나





봄비치곤 제법 많은 비가 내려 온 대지가 촉촉하게 충분히 젖었습니다. 주말에 한식이 있어 성묘를 계획했던 분은 다소 낭패스러웠겠지만, 주말에 내린 비로 얼마나 많은 초록 생명이 힘을 얻었을까요! 사실 이때가 산불 염려도 가장 큰 시기여서 애써 가꾼 숲이 한순간에 타버릴까 조마조마했던 산림 관계자들이 한숨 돌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제 봄꽃은 활짝활짝, 새싹은 쑥쑥 자라 올라 연둣빛 싱그러운 봄 숲을 만들겠지요.  

복수초, 제비꽃, 노루귀처럼 부지런한 봄꽃이 봄소식을 알린 지도 여러 날 지났지만 사실 숲에서는 봄이 더디 오지요. 깊고 높은 산에서는 더더욱 늦는답니다. 이제 봄비도 충분히 내렸으니 따사로운 봄햇살이 며칠 지속되고 나면 깊은 산에서도 이런저런 꽃소식을 기다려볼 만합니다.

특히 눈처럼 깨끗한 흰 꽃이 가지가지 피는 바람꽃이 가장 기다려지는 주인공이지요. 꽃대가 하나씩 올라오는 홀아비바람꽃, 똑같이 올라오는 두 개의 꽃자루 끝에 피는 쌍둥이바람꽃, 옆에서 서로서로 외치듯 피어나는 나도바람꽃,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회리바람꽃, 변산바람꽃 등 숱한 바람꽃 형제가 대부분 봄에 피지만 정작 그냥 바람꽃은 한여름에 핀답니다. 

꿩의바람꽃은 그중에서 비교적 흔하고, 꽃도 큼직하며, 잎도 귀여워 눈에 잘 띄는 종류입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 볕이 드는 낙엽수 밑을 눈여겨보세요(아직 나뭇가지엔 잎이 트기 전입니다).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거예요. 물론 아무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제법 산이 높고 좋은 숲의 구성을 갖춘 곳이어야 한답니다. 



 


 


꿩의바람꽃은 바람꽃속, 정확한 학명으로는 아네모네(Anemone)속입니다. 아네모네는 그리스어로 ‘바람의 딸’이라는 뜻이니 우리말 이름인 바람꽃이 전혀 이상하지 않지요. 실바람에도 살랑일 만큼 가녀립니다. 어떻게 저리 가녀린 줄기에 꽃이 달릴까 싶지만 그래도 언 땅을 뚫고 나와 씩씩하게 꽃을 피웁니다. 화피(花被·꽃잎과 꽃받침이 구분되지 않아 그리 부릅니다)가 8장에서 13장까지 달리는데 참으로 깨끗한 흰색으로 곱답니다. 꽃 밑에 잎처럼 달리는 것은 잎이 아니라 총포라고 하지요.  

잎은 꽃이 질 즈음 세 갈래씩 두 번 갈라지지만 그 끝이 둥글둥글해 부드러운 느낌입니다. 이 잎이 양분을 열심히 만들어 땅속줄기에 저장하는데, 다른 식물이 비로소 기지개를 켜고 다투어 나올 즈음 지상에서 사라지지요. 한방에선 죽절향부(竹節香附)라는 생약 이름으로 쓰기도 합니다.  

이른 봄 숲에 피어나는 모습만으로도 꿩의바람꽃은 아름답습니다. 혼자 자라지 않고, 키가 고만고만한 작은 꽃들과 무리지어 피어나 고산에 봄 꽃밭을 만들지요. 빨리 보고 싶네요.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34. 앵초- 몰랐지? 내가 ‘프리뮬러’라고!



 

조심조심, 살짝살짝 다가오던 봄이 이젠 밀려들어 옵니다. 특히 양지바른 숲가는 봄 햇살이 쏟아지듯 그 속도 또한 빠르지만 더없이 부드럽고 화사해 좋기만 합니다. 지천에서 봄꽃들이 저마다 꽃망울을 터뜨리니 밀려오는 춘흥을 더는 감당할 길이 없네요.  

이즈음 되면 봄 숲의 꽃들도 잔잔하고 여리기만 해서는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지요. 하지만 앵초는 그 독특한 자태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운 빛깔로 한순간에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빼앗아버립니다.

앵초는 앵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봄이면 이 땅의 산과 들에서 너무 귀해 보기 어렵지도, 그렇다고 너무 흔해서 식상하지도 않을 만큼 만나면 그저 반가운 마음이 든답니다. 계곡이나 냇가 옆에 무리지어 피는데, 막상 앵초가 자라는 곳은 그리 습하지 않으면서 밝은 곳이지요. 한 포기만 봐도 균형 잡힌 완전한 모습인데, 무리지어 피면 장관입니다. 어린 배춧잎처럼 잔주름이 잡힌 듯한 길쭉한 잎사귀가 땅에서부터 몇 장 자라나고, 그사이로 한 뼘쯤 되는 꽃대가 올라옵니다. 그리고 적게는 7개에서 많게는 20개의 꽃봉오리가 한자리에 모여 사방으로 달려 아주 예쁘지요.  

앵초꽃의 분홍빛 역시 너무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아 참 적절하게 곱다 싶습니다.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지고 한 장 한 장 꽃잎마다 가운데가 오목한 통꽃이어서 봄의 요정이 불다가 버린 나팔 같습니다.  

앵초라는 좀 특별한 이름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이 식물을 한자로 앵초(櫻草)라고 쓰는 것을 보면 분홍색 꽃 모양이 앵두꽃을 닮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밖에 풍륜초, 취란화 등으로도 부르지요. 서양 사람들은 앵초 집안 식물로 수많은 원예품종을 만들어 심습니다. 이들을 모으면 책 한 권이 될 만큼 다양하지요. 꽃시장에 가보면 프리뮬러라고, 더러는 화단에 심어 키우기도 하는 색색의 꽃들이 다 이런 서양의 앵초 원예품종이랍니다. 앵초는 식물 전체를 약으로 쓰는데 진해, 거담, 소종 같은 효과가 있어 기침, 천식, 기관지염, 종기 등에 처방하며, 어린 싹은 살짝 데쳐 나물로 무쳐먹기도 합니다.

프리뮬러, 즉 앵초에는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옛날 독일의 어느 산골 마을에 ‘리스베스’라는 소녀가 병든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아픈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리스베스가 벌판으로 나가 앵초를 꺾으려 하자 꽃의 요정이 나타나 “앵초가 피어 있는 길을 가다 보면 성이 나타날 것입니다. 성문 열쇠 구멍에 앵초 한 송이를 꽂으면 문이 열립니다. 자, 어서 가보세요!”라고 했지요.  

그 말에 따라 리스베스가 성에 도착하자 성 주인은 마음에 드는 보물을 하나 고르라고 했습니다. 리스베스는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작은 구슬 하나를 골라 어머니의 병을 말끔히 고쳤는데, 부귀영화보다 어머니를 위하는 착한 마음씨에 감동한 성 주인과 결혼까지 하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전설이 전해오는 독일에선 앵초를 ‘열쇠꽃’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봄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 꽃 산책을 떠나보세요. 앵초가 그러하듯 봄 숲의 꽃들은 틀림없이 여러분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35. 동의나물- 샛노란 꽃송이 소리 높여 희망 합창



봄이 가득합니다. 도심에는 눈부셨던 백목련이 벌써 지고 개나리, 진달래가 흐드러집니다. 이 아름다운 봄이 너무 성큼성큼 지나는 듯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그래도 숲에서는 봄이 찾아드는 속도가 차분해 매일매일 광릉 숲을 거닐며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봄 숲에선 물소리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얼었던 땅이 녹아 어디선가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봄이 오는 속도에 맞춰 들려옵니다. 숲의 나무들에게 이 물소리는 생명의 소리일 듯싶습니다. 생명을 담아 나뭇가지에 올라서 새싹을 틔우고, 여린 봄꽃을 피워내는 소리니까요.

봄에 동의나물을 만나면 마음이 더욱 밝아집니다. 봄이 흐르고 생명이 흐르는 그 물가에서 작게 무리 지어 피어 있으니 말입니다. 한 시인은 동의나물을 두고, 방긋방긋 눈웃음 지으며 가득한 햇살을 머금은 듯 행복한 표정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고 표현하더군요. 정말 동글동글, 반질한 귀여운 잎사귀, 샛노랗고 오목하며 예쁜 꽃송이는 수줍은 산골 소녀처럼 밝고 곱답니다.  

동의나물은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전국의 산, 그곳에서도 습한 곳, 개울 옆 등에서 자라지요. 속이 빈 줄기가 비스듬히 자라다 뿌리를 내리면 그곳에서 다시 곧은 줄기가 나오고 때론 가지를 만들어 전체적으로 한아름 되는 포기를 이룹니다. 키도 많이 자라야 어른 무릎 높이를 넘지 않아서 전체적인 모양이 참 좋답니다.

뿌리 주변에서 모여 나는 둥근 콩팥 모양의 잎, 그 위로 올라온 꽃자루에 달리는 노란색 꽃송이들을 들여다보면 5~6장의 꽃받침잎(꽃잎이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안쪽으로 역시 노란색의 많은 수술을 보기 좋게 받쳐주어 아름답지요.   





왜 동의나물이라고 부를까요? 지방에 따라선 동이나물이라고도 하는데, 언제나 맑은 냇가에 발을 담그고 자라며 둥근 잎사귀를 깔때기처럼 접으면 마른 입술을 축이는 물 한 모금 담을 수 있는 작은 동이가 될 듯하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만,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강원도 일부 지역에선 얼개지 또는 얼갱이라고도 하지요. 영어 이름은 멤브라나세오스 마시 마리골드(Membranaceous marsh marigold)입니다. 

동의나물은 물가에서만 사는데, 그런 특성을 이용해 요즘엔 우리 꽃 정원의 연못 주변에 심어 키우기도 합니다. 한방에선 노제초, 수호려라는 생약명으로 뿌리를 포함한 모든 부분을 약재로 씁니다.

진통, 최토, 거풍(去風) 같은 효과가 있고 가래가 많이 생기거나 몸살 기운이 있을 때, 머리가 어지럽거나 상한 음식을 먹었을 때도 치료제로 쓴다고 합니다. 이름 뒤에 나물이라는 글자가 붙은 식물이 그러하듯 먹을 수는 있지만 다소 독성이 있습니다. 꼭 어린잎을 삶아서 잘 우려낸 뒤 먹어야 합니다. 사실 먹어버리기엔 참 고운 꽃을 피우는 식물이지요.  

환히 핀 동의나물 무리를 보니 분명 건강하고 밝은 희망과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네요. 여린 꽃들도 그러한데, 우리도 비록 힘겹지만 그래도 가족에게 혹은 직장에서나 세상에서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36.금낭화- 고고한 자태, 첫눈에 반할 만하네



 

요즘 먼 산을 바라보면, 나무들이 가지마다 새순을 피워내 전체적으로 색색이 몽실몽실 얼마나 고운지 모릅니다. 고개를 발아래로 돌려 둘러봐도 설레긴 마찬가지입니다. 하루하루 빛이 다르게 피어나는 우리 꽃들로 봄 숲에선 말 그대로 꽃과 신록의 향연이 벌어집니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개성과 아름다움이 또 얼마나 다채로운지요.
 
그런데 우리 꽃에 마음을 빼앗겨 오늘도 봄 숲길을 두리번거리며 거니는 많은 이에게 우리 꽃 첫사랑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어보면, ‘금낭화’였다고 대답할 분이 여럿일 듯싶습니다.  

수줍은 듯한 진분홍빛 꽃송이가 휘어진 줄기에 조랑조랑 매어 달리고, 끝이 양 갈래로 갈라져 살짝 올라간 하트형 꽃잎 사이로 시계추가 매어 달린 듯 희고도 붉은 또 다른 꽃잎이 늘어져 나옵니다. 아침 햇살에 꽃잎이 투명하게 드러나고 그 끝으로 맑디맑은 이슬이라도 달린다면 첫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 아름다운 꽃 금낭화의 원산지는 한동안 중국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설악산 봉정암 근처에서 처음 발견됐는데, 중국에서도 자라는 것으로 미뤄 중국 식물이 사찰을 통해 전해졌을 것이라고 학자들이 추측한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 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식물 자원에 대한 조사가 활발해지면서 그동안 정밀하게 조사하지 못했던 크고 작은 산에서 금낭화를 그리 어렵지 않게 찾게 되자 이젠 금낭화가 그 뿌리마저 순수한 진짜 우리 꽃이라는 데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합니다.  

금낭화란 이름도 아름다운 주머니를 닮은 꽃이라는 뜻입니다. 그 밖에 모란처럼 아름다운 꽃이 피지만 등처럼 휘어져 등모란 또는 덩굴모란, 어찌 보면 여인들이 치마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주머니를 닮은 꽃 모양 때문에 며느리주머니, 며늘치 등으로도 부르지요.



 

금낭화는 현호색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인데 자라면 어른 무릎 정도 높이까지 올라옵니다. 남부지방에선 3월 말이면 벌써 꽃송이를 볼 수 있고, 북쪽으로 올라오며 4~6월에 걸쳐 꽃을 피우면서 바로 씨를 맺습니다. 금낭화의 가장 큰 용도는 아무래도 관상용인 듯싶습니다. 적당한 높이, 고운 빛깔과 풍성한 느낌을 주는 꽃, 적절히 갈라진 잎사귀 모습과 연한 빛깔이 꽃만 커다랗게 커져버려 쉽게 질리는 서양 꽃에 비해 잔잔하면서도 기품 있는 아름다움을 자랑하지요. 게다가 꽃을 볼 수 있는 기간이 봄부터 여름까지로 긴 데다, 한 번 심으면 몇 년 동안 싹을 틔워내고 꽃을 피워 정원에서 키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우리 꽃입니다.

산골에선 금낭화를 나물로 먹기도 합니다. 봄에 어린순을 따서 삶은 다음 며칠 동안 물에 담가 독성을 우려내고 나물로 무쳐 먹거나 나물밥으로 먹기도 한다지요. 이 식물엔 유독 성분이 있으므로 그냥 먹어선 절대 안 됩니다. 약으로도 이용하는데 뿌리와 줄기에 프로테르펜이라는 성분을 함유해 고혈압을 낮추고 종기를 가시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혹시 아직 첫사랑 우리 꽃을 찾지 못했다면 금낭화와의 조우를 적극 권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37.피나물- 노랑 꽃 + 초록 잎 = 황금빛 봄 물결





“천지간에 꽃입니다./

눈 가고 마음 가도 발길 닿은 곳마다 꽃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지금 꽃이 피고 못 견디겠어요.(후략)” 

김용택 선생님의 시 한 구절입니다. 꽃을 보고 봄바람이 단단히 든 제 마음과 똑같네요. 누구나 같은 마음인가 봅니다.

이즈음 숲 속에서 봄꽃 향연을 벌이는 꽃은 아무래도 피나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숲길을 걷다가도 갑작스레 주변이 환해진 듯한 느낌이 들어 보면 샛노란 피나물 군락이 끝없이 이어지네요. 이 밝고 맑은 꽃 잔치가 한 주일도 못 넘기니, 보기만 해도 아깝습니다.

피나물은 양귀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중부 이북 산지에서 주로 자라지요. 제가 일하는 국립수목원에도 지천입니다. 제가 본 가장 아름다운 피나물 무리 중 하나는 바로 국립수목원 에코로드를 걷다 만난 피나물들입니다. 키가 한 뼘에서 어른 무릎 정도 높이까지 자라는데, 다복한 포기를 만드는 데다 꽃과 잎사귀가 모두 큼직하니 시원스러워서 보기에도 좋습니다.  

봄이면 원줄기 끝 잎겨드랑이에서 한 개에서 세 개 정도 길게 꽃자루가 나오고, 그 끝에 진하디 진한 노란색 꽃이 하나씩 달립니다. 햇살을 받으면 마치 빛나듯 고운 빛의 꽃잎 네 장이 균형 있게 모여 꽃 한 송이를 이룹니다. 여러 줄기가 모여 한 포기를 만드는 데다 군락을 이뤄서 자라니, 한창 핀 피나물 무리는 황금빛 물결이 일렁이듯 아름답지요. 진한 초록색 잎은 5~7갈래로 불규칙하게 갈라지는 우상복엽으로, 진한 노란색 꽃잎과의 조화가 인상적입니다.  

이 즐거운 꽃에게 왜 하필 피나물이란 이름이 붙었을까요. 말 그대로 ‘피’와 관련해 붙은 이름으로, 양귀비과 식물이 그러하듯 피나물도 줄기를 자르면 붉은색 유액이 나옵니다. 참고로, 봄꽃 중에서 꽃잎이 네 장으로 같은 양귀비과에 속하는 애기똥풀은 유액이 아기 똥처럼 노란색이랍니다. 피나물은 일부 지방에선 노랑매미꽃, 봄매미꽃이라고도 부릅니다. 한자로는 하청화(荷靑花)라 하고, 영어로는 버널 셀란딘(Vernal Celandine)이라고 하지요.

이름 끝에 나물이란 단어가 붙은 식물은 대개 나물로 요리해 먹을 수 있습니다. 피나물 역시 이른 봄 어린순을 잘라 나물로 먹긴 하지만 식물 자체에 독성이 있으므로 어린순만 따야 하며, 데쳐서 한참 우려낸 다음 조리해야 독성이 사라지고 쓴맛도 없앨 수 있음을 꼭 기억하세요.  

한방에선 하청화근(荷靑花根)이라고 해서 뿌리를 약재로 이용합니다. 진통, 거풍, 활혈, 소종 같은 효능이 있어 관절염, 신경통, 피로, 타박상, 습진, 종기 등에 두루 처방한답니다.

정원에 심기엔 꽃 피는 기간이 짧은 피나물의 아쉬움을 달래줄 만한 꽃이 있습니다. 피나물과 아주 비슷한 매미꽃이지요. 전체적으로 꽃이나 포기는 피나물보다 작지만 봄부터 피기 시작하는 꽃은 한쪽에서 열매가 익어 가는데도 여름 내내, 심지어 초가을까지 피고 지고를 계속 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환하게 핀 피나물처럼 하루하루 눈부신 봄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38. 홀아비꽃대- 이렇게 고운 꽃이 ‘홀아비’라니






꽃이 피는 일도 그렇습니다. 뜸들이고 또 뜸들이다 하나 둘씩 툭툭 꽃망울을 터뜨리더니 요즘 유행어로 빛의 속도로 순식간에 꽃들이 피어버려 한동안은 말 그대로 꽃천지가 되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잎이 나는 속도가 그리 느껴집니다. 폭삭폭삭한 봄 숲의 분위기가 멋졌는데 어느새 사방에 싱그러운 신록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사람도 나무도 풀도 봄기운에 들떴지만 이름만큼은 그래서 더 외로운 듯 느껴지는 꽃들이 있습니다. 바로 홀아비바람꽃, 홀아비꽃대지요. 두 식물 모두 꽃대가 하나씩 올라와 그런 이름이 붙은 식물이며, 봄에 흰 꽃이 핀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홀아비’라니! 이름만 듣고 어떤 모습의 꽃을 상상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꽃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맑고 깨끗한 모습을 가졌답니다. 이리 고운 꽃에 혼자라는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재미난 이름을 붙인 옛 어른들의 해학에 절로 미소가 떠오릅니다. 이 꽃들은 그냥 만나면 거리감을 느낄 만큼 깊은 산에서 자라지만 장난스러운 이름을 부르고 나면 금세 정다워지잖아요.  

홀아비꽃대는 홀아비꽃댓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같은 집안에 속한 꽃대라는 식물은 대가 2개 올라오지만 홀아비꽃대는 하나씩 올라옵니다. 산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이에요. 숲이 무성해 녹색이 우거지기 전이라면 너무 양지바른 곳도, 그렇다고 어두운 깊은 숲 속도 아닌 곳에서 꽃대를 잎사귀에 쌓아 쑥쑥 올라옵니다.

그리고 봄 햇살을 받아 점차 잎사귀를 사방으로 펼쳐내고 이내 특별한 자태를 보이지요. 연한 녹색 비늘처럼 번뜩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잎은 4장씩 달립니다. 엄격히 말하면 잎이 2장씩 마주 달리지만, 달리는 마디가 워낙 짧아 그리 느껴집니다. 이 잎만으로도 개성이 넘친답니다.

잎이 펼쳐지기 전 이미 만들어진 꽃들 역시 아주 독특합니다. 앞에서 그냥 하나의 꽃대라고 말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하나의 꽃차례입니다. 어찌 보면 촛대에 올린 흰 초처럼 보이지요. 꽃차례에 둘려 달리는 삐죽삐죽한 흰 기관은 꽃잎이 아니라 수술이랍니다. 식물학적으로도 특별한 구조를 지니는데, 화피(꽃잎이나 꽃받침)는 없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밑부분이 3개씩 붙은 형태입니다. 잘 살펴보면 가운데 있는 수술에는 꽃밥이 없으며, 양쪽 수술은 수술대 밑부분에 꽃밥이 있습니다.  

쓰임새로 치면 특히 보기에 좋아 우리 꽃을 좋아하는 분이 이 꽃을 많이 키웁니다. 정원에서는 큰 나무 아래에 심으면 좋고, 보통은 나지막한 분에 모아 심으면 한 계절 자연의 풍미를 가까이서 느낄 수 있지요. 한방에서는 은선초(銀線草)란 생약이름으로 쓰는데 한기나 독, 습한 기운을 없애고 피를 잘 돌게 하는 등 여러 증상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증상에 따라 달여 마시거나 민간에서는 술을 담가 마신다고 하네요. 키우고자 하면, 종자 파종을 해도 되지만 그보다는 보통 포기 나누기를 하는 것이 쉽습니다. 비옥한 땅이라면 아주 잘 자랍니다.  

홀아비꽃대. 혼자 있는 것이 얼마나 애처로운 일이면 이 여리고 고운 꽃에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요. 홀아비꽃대는 서로 기대며 그 쓸쓸함을 대신합니다. 사람도 꽃도 기대어 살아가야 하나 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39.매발톱꽃- 독특한 꽃 색깔… 관상용으로 딱!




식물 이름 중엔 동물 이름 붙인 것이 많답니다. 강아지풀, 토끼풀, 노루귀… 대부분 친근한 식물이지요. 이런 식물들에 왜 동물 이름이 붙었을까요? 강아지 꼬리를 닮은 강아지풀, 토끼가 잘 먹는 토끼풀, 새로 난 잎이 솜털 보송한 새끼노루 귀처럼 귀여운 노루귀…. 

이처럼 동물 이름이 붙은 식물들을 잘 관찰하다 보면 정말 이름 한번 잘 지었다 싶을 만큼 적절한데, 매발톱꽃도 그러합니다. 한 번 보면 아름답고 특별한 꽃 모양에 먼저 반하게 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꽃에 왜 매발톱이란 무서운 이름이 붙었을까요? 궁금하다고요? 

매발톱꽃은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합니다. 그 과 식물이 으레 그러하듯 꽃 모양은 고운데 식물체에는 독성이 있어 자신을 방어하는 무기로 삼지요. 이 꽃 뒷부분, 톡 튀어나와 꿀이 고이는 부분을 ‘거(距)’라고 부릅니다. 이 부분이 마치 병아리라도 낚아챌 듯 발톱을 오므린 매의 발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매발톱 종류의 식물에 붙는 속명 아퀼레지아(Aquilegia)는 독수리란 뜻의 라틴어 아퀼리아(aquilia)에서 유래됐다고도 하며, 거 안에 꿀이 고이므로 물이란 뜻을 가진 ‘aqua’와 모으다란 뜻을 지닌 ‘legere’의 합성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매발톱꽃은 우리나라 모든 산, 특히 계류 인근에 많이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키는 다 자라면 어른 허벅지 높이쯤 될까요? 이른 봄 야들거리고 동글거리는 새잎이 나오는데, 뿌리 근처 잎은 세 갈래씩 두 번 갈라져 마치 불규칙한 작은 잎 9장이 달린 것처럼 보이지요. 봄이 되면 줄기가 올라오고, 줄기에 붙은 잎은 세 갈래씩이며 점점 자루가 짧아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꽃은 늦은 봄 혹은 여름에 핍니다. 줄기 끝에 고개 숙여 달리는 꽃은 갓난아기 주먹만큼이나 크거니와 빛깔도 보랏빛과 노란빛이 어우러져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색깔을 지니지요. 그 모양 또한 매의 발톱을 닮은, 툭 튀어나온 부분을 갖고 있어 이 집안 식물 말고는 닮은 식물을 찾기가 어려울 만큼 특별하답니다. 

매발톱꽃은 관상용으로 인기가 많아요. 못가나 개울가처럼 습기 많은 정원에서 키우면 주변과 잘 어울리며, 큰 화분이나 옹기 화분 또는 플라워 박스에 모아 심어도 멋있지요. 꽃꽂이용으로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한 집안 식물인 하늘매발톱도 있으며, 다양한 종류가 개량돼 요즘 야생화 화단에 가보면 여러 빛깔의 꽃을 만날 수 있지요. 식물체가 매우 튼튼하고 관리도 쉬워 잘 자라므로 어떤 정원에나 잘 어울리는 야생화입니다.

한방에선 식물체 전체를 누두채(漏斗菜)라 하며 통경(通經), 활혈(活血) 같은 효능을 지녀 여성의 월경불순 등에 주로 처방한다고 합니다.  

매발톱 자생지를 보면 높은 산, 습윤한 곳이 많은데, 깊은 산 계곡 주변의 양지바르고 통풍이 잘되는 곳이나 돌이 있어 배수가 잘되는 물가에서도 자랍니다. 물 빠짐에만 신경 쓰면 추위에도 아주 강하게 버티지요. 번식은 주로 씨앗을 뿌리거나 포기나누기를 하는데, 특히 씨앗을 묵히지 않고 뿌리면 콩나물처럼 발아가 잘됩니다.

매발톱꽃을 모아 재배하는 사람들은 쉽게 교잡이 일어나고 저절로 씨앗이 떨어져 독특한 모양의 꽃들이 새롭게 나오므로 이를 모아 키우는 재미가 크다고 합니다. 색다른 우리 꽃 키우기에 폭 빠질 만한 식물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40.붓꽃- 기쁜 소식 ‘아이리스’가 너였구나


 

 

 

 


계절은 돌이킬 수 없이 봄에서 여름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하지만 한낮은 무덥네요. 신록은 더욱 싱그럽게 우거집니다. 올해 초여름은 꽃나무들이 피어내는 꽃잔치가 유난합니다. 아까시나무 꽃도 지금이 절정이고, 무엇보다 이팝나무 꽃이 거리마다 하얗게 피어 가득합니다. 숲에선 산딸나무니 층층나무니 하는 나무들의 꽃도 한창이네요. 이 나무들이 매년 그 자리에서 피고 지고 했지만 올해 꽃은 특별히 풍성합니다. 옛 어른들은 이팝나무 꽃이 많이 피면 그 해 풍년이 든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가 참말이었으면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즈음 피어나는 꽃은 대부분 흰 꽃이네요.

하지만 이 풍성한 흰 꽃나무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피어나 돋보이는 꽃이 하나 있습니다. 붓꽃입니다. 흔히 우리나라 야생화는 소박할 뿐 화려하지 않다고 하지만 이런 선입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주먹만큼 큼직하고 화려한 무늬의 보랏빛 꽃잎을 가진 아름다운 우리 꽃이 있는데, 바로 붓꽃입니다. 붓꽃은 마을 뒤로 이어진 야트막한 산길에서도, 작은 도로 옆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튼튼하게 자라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이 정다운 꽃을 만날 수 있답니다.   

붓꽃은 꽃 모양 자체가 워낙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데다 신비스러운 보랏빛 덕에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붓꽃은 그 함초롬한 꽃봉오리가 마치 먹물을 머금은 붓과 같다고 하여 붙은 아주 고운 우리 이름이지요. 때론 붓꽃이란 이름을 두고 창포나 아이리스(Iri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붓꽃과 한 집안 식구이면서 물가에 자라므로 꽃창포라고 부르는 식물도 있는데 사실 이는 단옷날 머리 감는 창포와는 전혀 다른 식물입니다. 또한 아이리스라는 서양 이름은 세계가 함께 부르는 붓꽃류를 총칭하는 속명, 즉 집안 전체를 지칭하는 말이니 그리 부른다고 잘못된 건 아니지만 정확한 것도 아니지요.  











붓꽃류의 서양 이름 아이리스는 무지개란 뜻이랍니다. 이 꽃의 꽃말도 비 온 뒤 보는 무지개처럼 ‘기쁜 소식’입니다. 또한 프랑스 나라꽃이기도 한데, 여신 유노의 예의바른 시녀 아이리스는 유피테르가 집요하게 사랑을 요구하자 자신의 주인을 배반할 수 없어 무지개로 변해 유노에 대한 신의를 지켰다는 전설을 가졌습니다. 그 때문인지 이 꽃은 촉촉한 봄비가 내린 뒤 혹은 이른 아침 이슬을 머금고 싱싱하게 피어오를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붓꽃은 붓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땅속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자라 점점 커다란 포기가 둥글게 만들어지지요. 봄이면 삐죽삐죽 돋아나온 잎사귀는 어느새 난초 잎을 닮은 시원한 모습으로 자라고 여름처럼 느껴지는 늦은 봄엔 그 틈에서 꽃대가 나와 붓솔 같은 꽃송이를 두세 개씩 달다가 어느새 주먹만한 꽃송이가 환하게 피어납니다.

붓꽃 꽃잎은 6장인데, 이 가운데 바깥쪽 3장이 진짜 꽃잎으로 보랏빛 꽃잎에 호랑이 무늬 같은 얼룩이 그려져 더욱 아름답고, 꽃잎 가운데 3장은 수술이 변해 꽃잎처럼 됐으니 더욱 신기합니다.

이리도 아름다우니 당연히 관상용으로 많이 쓰입니다. 식물체 자체가 워낙 튼튼해 아무 데서나 잘 자라고 적응력도 뛰어나 도로변 화단에 줄지어 심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됐으며, 가정집 화단에 심어도 포기를 이뤄 아름답습니다. 생약 이름은 마린자(馬藺子)로 한방에서 쓰지요. 

마지막 봄이 가는 길목에서 붓꽃의 아름다움에 한번 빠져보길 바랍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41.큰꽃으아리- 탐스럽고 아름다운 자태 몰랐네



아침저녁으로 선뜻선뜻한 기운이 봄의 끝을 붙잡는 듯하지만 한낮이면 어김없이 찌는 듯한 여름 날씨가 됩니다. 며칠 간격을 두고 숲길을 거닐곤 하는데 그때마다 꽃 피우기 절정을 이루는 숲의 주인공이 바뀌곤 하네요. 

요 며칠간 주인공은 단연 큰꽃으아리였습니다. 숲가에서 다른 식물과 적절히 얽혀서 꽃을 피우는데, 꽃송이가 아주 큼직하고 탐스러우며 아름다워 우리에게 이런 꽃이 있었나, 왜 아직까지 몰랐나 싶을 만큼 대단하답니다.

큰꽃으아리는 가늘게 덩굴을 뻗으며 이리저리 풀숲 사이에서 자라지만, 엄격히 말하면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는 낙엽 지는 덩굴성 나무입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는데, 아주 우거진 숲 속도 아니고 그렇다고 척박한 산등성이도 아닌, 좋은 숲의 가장자리 정도에서 자라지요.   


 

 

 

 

꽃은 지름이 8~10cm로 아주 큼직합니다. 꽃색도 흰색이거나 약간 상앗빛이어서 한 번만 봐도 시원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답니다. 미나리아재빗과 식물들은 꽃잎과 꽃받침이 따로 구분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사람이 꽃잎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화피(花被)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큰꽃으아리는 이 화피가 6~8장으로 비교적 많이 달리고 그 끝이 뾰족해 개성 있는 모양을 만들지요. 안쪽으로는 꽃밥 여러 개가 납작해진 수술과 끝 부분에 털이 달린 암술도 엿볼 수 있답니다.  

가을에 익어가는 열매는 갈색 털이 가득한 긴 암술대가 그대로 남은 채 둥글게 모여 달려 언뜻 보기엔 할미꽃 열매를 연상시킵니다. 할미꽃과 큰꽃으아리는 자라는 모양이나 키, 꽃 색깔이 전혀 다르고 하물며 나무냐 풀이냐도 서로 다르지만, 같은 과(科)에 속하는 식물인 점을 기억하면 비슷한 모양의 열매가 달리는 게 하등 이상할 것도 없지요.

전자연(轉子蓮)이라고도 하고 지방에 따라선 개미머리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꽃을 봐도, 덩굴에 달린 잎 모양을 봐도 개미 머리에서 연상되는 왜소함은 없으니 왜 그리 부르게 됐는지 현재로선 알 수가 없네요. 영어로는 라일락 클레머티스(Lilac Clematis)로, 라일락처럼 아름답고 향기롭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방에선 철선련(鐵線蓮)이라고 하여 약으로 썼는데 통풍, 중풍, 황달, 배뇨, 통경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지요.

요즘 큰꽃으아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관상적인 가치 때문일 것입니다. 도시엔 식물을 심을 만한 흙땅이 별로 없잖아요. 있어도 비싼 땅에 식물을 심는 일은 드물고요. 하지만 회색 도시 속에서 자연에 대한 동경이 날로 높아져 그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덩굴성 식물입니다. 구조물이나 담, 벽을 타고 올라가는 덩굴성 식물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아주 좋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지요. 또 큰꽃으아리처럼 꽃이 특별히 아름답고 풍성한 덩굴성 식물은 분에 담아 지지대로 모양을 만들면서 키우게 되므로 정형화된 모양의 나무에 비해 훨씬 다양한 형태로 키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러저래 관심이 높아진 덩굴성 식물, 그중에서도 큰꽃으아리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꽃을 가진 우리 꽃이니 앞으로 이 식물 주가가 높아질 것은 당연할 듯합니다. 초여름 숲에서 남보다 먼저 만나보길 바랍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42.터리풀- 화끈하게 무더기로 피어나 ‘방긋’



쏟아지는 햇살이 참 뜨겁습니다. 벌써 이리 더운데 여름을 어찌 날지 걱정부터 앞섭니다. 그래도 숲 속은 초록이 먼저 눈을 시원하게 해주고 나뭇잎의 왕성한 증발산 덕에 시원하지요. 거기에 산길을 오르다 흐드러지듯 피어난 소담스러운 터리풀 무리를 만나면 더욱 시원해지곤 합니다. 터리풀 꽃송이들이 하늘을 이고 앉아 혹은 깊은 숲가로 흘러나와 한 무더기 뭉텅 피어나면, 맑은 계곡에서 선녀를 만난 듯 한여름 무더위가 씻은 듯 사라지고, 마음까지 밝고 정결해지니까요.  

터리풀은 장미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전국 산자락이나 숲가 혹은 산꼭대기 초원지대에서 자라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꽃은 아니지요. 터리풀은 자라는 장소나 높이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빠르면 6월부터 피기 시작하고 8월까지 볼 수 있기도 합니다. 딱 여름 동안만 피어나는 꽃이지요.   









 








터리풀이 어떤 곳에 있어도 눈에 들어오는 첫 번째 이유는 키가 커서일 것입니다. 다 자라 꽃이 피고 나면 1m쯤 되니까요. 무성하게 자라는 여름 풀 사이에서 좀 더 효과적으로 햇빛을 차지하려는 노력의 결과일 것입니다. 줄기 끝에 달리는 꽃은 아주 작지만 수없이 많은 꽃이 산방상(房狀)으로, 다시 취산상(聚狀)으로 모여 달려 풍성하게 펼쳐집니다. 처음 피는 꽃은 연한 분홍빛이 돌기도 하지만 점차 흰빛에 가까워지지요.

손바닥처럼 갈라진 커다란 잎이 달리고 그 옆으로 아주 작거나 퇴화해 흔적만 남은 소엽이 6쌍에서 9쌍까지 마주 달리는데, 작은 잎과 그보다 조금 큰 잎이 번갈아가며 달려 아주 재미있습니다. 제일 위에 달리는 큰 잎의 길이가 15cm 정도 되니 아주 큼직한 잎이라고 할 수 있지요. 

왜 이름이 터리풀일까요? 예전엔 털이풀 혹은 털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꽃차례 모양이 털이개 모양을 닮아 그리 불렀을까 하는 추측을 해봤습니다. 한자로는 광합엽자(光合葉子)라 하고, 영어 이름은 메도스위트(meadowsweet)입니다. 학명 가운데 속명 필리펜듈라(Filipendula)는 라틴어로 ‘실’이라는 뜻의 필룸(filum)과 밑으로 처진다는 뜻을 가진 펜듈루스(pendulus)의 합성어입니다. 기본 종의 뿌리가 마치 작은 공 같은 것이 실에 매달린 듯 보여 그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하네요.  

벌이 꿀을 빨아 오는 원천이 되는 밀원식물이 되며, 어린순은 먹기도 합니다. 터리풀류의 전초나 뿌리는 약초로도 쓰는데, 특히 화상이나 동상에 쓴다고는 하지만 그리 특별하게 이용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꽃이 많지 않은 한여름 화단에서 좋은 관상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식재할 때는 식물체가 커서 마치 관목으로 보일 정도로 풍성하므로 여러 포기를 모아 심어 놓으면 아주 특별한 모습의 정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 꽃꽂이용 절화로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제가 이 꽃을 처음 만난 것은 아주 오래전 식물을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건봉산 계곡에서였습니다. 금강산을 찾아가는 길목인 그 계곡은 민통선 지역이었는데, 낯설고 새로운 땅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식물을 찾아다니다 만난 것이 터리풀이었습니다. 마치 갈 수 없는 북녘땅을 그리움으로 바라보는 듯 높다란 산정에서 흐드러지게 핀 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더운 여름에 정말 느낌 있는 꽃이랍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43. 산딸나무- 수백 송이 아름다운 ‘십자가’ 달렸네






6월 숲의 주인공이 단연 산딸나무라는 데 크게 이견이 없을 듯합니다. 사실 숲이 아니어도 이즈음엔 공원이며 길가며 정원에 산딸나무 꽃이 지천입니다. 아무리 나무에 무관심한 목석같은 이라도 나무 전체를 모두 하얗게 뒤덮은 산딸나무 꽃의 특별하고도 깨끗한 아름다움을 보고 눈길을 주지 않거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산딸나무는 층층나뭇과에 속하는 낙엽 지는 작은큰키나무입니다. 꽃이 피기 전에는 줄기가 나는 모양이나 잎 생김새가 층층나무 또는 말채나무와 아주 비슷하지요. 하지만 꽃이 피면 달라집니다. 다른 두 나무는 꽃이 작아서 쟁반 모양을 만들어 모여 달리는 데 비해 산딸나무는 딱 보기에 어린아이 주먹만한 큼직하고 개성 있는 꽃들이 달리니 말이지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한 송이 꽃이라고 인식한 것은 식물학적으로 보면 수십 송이 꽃이 모인 꽃차례입니다. 산딸나무 꽃은 아주아주 작습니다. 이 작은 꽃들이 공처럼 둥글게 모여 달리는 게 지름 1cm 남짓이니, 가뜩이나 우거진 초여름 숲에서 눈에 잘 띌 리 없지요. 그래서 생겨난 부분이 바로 흰색 포(苞)입니다. 흔히 꽃잎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잘못이지요. 작은 꽃잎이 극복할 수 없는 문제를 포가 대신해 그 어느 나무보다도 크고 화려한 꽃나무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고 다른 특징을 개발해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멋진 성공을 거둔 나무인 셈이지요. 만일 누군가가 산딸나무 꽃잎이 몇 장이냐고 물어온다면 네 장이라고 하지 마세요. 꽃잎이 아니라 포가 네 장이니까요.  











꽃이 지고 나면, 아니 꽃가루받이가 잘 이뤄진 순간부터 포는 그 기능을 상실하고, 꽃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둥근 부분이 열매로 익어갑니다. 열매 역시 작은 열매가 모여 산딸기 같은 하나의 둥근 열매모임을 만드는데, 하늘을 향해 달린 딸기 같은 그 모양이나 붉은 빛깔이 꽃 못지않게 멋지지요. 물론 먹어도 됩니다. 딸기처럼 달콤하진 않지만 산행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어요. 산딸나무라는 이름은 바로 이 열매의 모양이 산에서 자라는 큰 나무에 딸기 같은 열매가 달린다고 해서 붙은 것입니다. 지역에 따라선 들매나무, 박달나무, 쇠박달나무, 미영꽃나무라고도 하지요.  

물론 이리 멋진 모습이니 조경수로 많이 씁니다. 전 세계적으로 몇 종류의 산딸나무가 있어 서양에서도 인기가 높습니다. 산딸나무 꽃빛은 흰색이지만 더러 그 끝에 분홍빛이 돌기도 하고 이를 잘 선발하거나 열매 크기를 아주 큼직하게 하여 가을까지 아름다움을 즐기도록 조경수 품종을 연구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한때는 이 나무가 예수의 십자가를 만든 나무라고 해서 파동을 겪은 적이 있는데, 이는 믿음 대신 잘못된 외형을 좇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듯 틀린 이야기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예수가 살았던 그 더운 지방의 나무가 우리나라 추운 겨울을 나지 못할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신의 뜻은 이러한 쉬운 변심에 진실한 마음이 중요함을 알리듯, 포 네 장을 열 십(+) 자 모양으로 만들어 나무 한 가득 수백 송이의 십자가를 달아놓았습니다. 굵은 나무를 켜서 대패질한 나무 표면 역시 희고 깨끗합니다. 목재도 질기므로 옷감을 짜는 데 필요한 북을 만들거나 농기구, 자루, 망치, 절구공이 등을 만들 때 씁니다. 꽃과 잎을 야여지라고 해서 약으로 쓰기도 하는데 지혈과 수렴 기능이 있다고 하네요.
[출처]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이유미의 우리꽃 산책> / 주간동아



44. 산수국- 변하는 것이 어디 꽃 빛깔뿐이랴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곱지 않고 의미 없는 식물이 없지만, 산수국은 특별한 설렘을 줍니다. 신비스러운 남빛 혹은 보랏빛 꽃이 좋고, 하늘을 반쯤 가린 숲에서 무리지어 피어나는 모습은 좋은 풀, 멋진 나무를 수없이 보고 다니는 제게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멋진 자연 풍광 가운데 하나지요.  

사실 산수국은 우리나라 대부분 지역에서 자랍니다. 꽃이 무리지어 핀 모습을 보고, 꽃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조금 큰 풀로 생각하는 이가 많지만, 다 자라야 높이 1m를 넘지 못하는 분명 작은큰키나무(소교목)입니다. 꽃은 한여름에 핍니다. 새로 난 가지 끝에 접시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둥글고 큰 꽃차례(산방화서)가 달리지요.  

산수국의 가장 큰 특징은 유성화(有性花)와 무성화(無性花)를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접시처럼 생긴 둥근 꽃차례의 가운데 쪽은 꽃잎이 퇴화되는 대신, 암술과 수술이 발달한 작은 유성화가 달리고 그 가장자리에 지름 1~3cm의 무성화가 달린다는 겁니다. 화려한 무성화를 보고 꽃가루받이를 도와줄 곤충이 찾아오면 기능적인 꽃인 유성화에서 결실이 이뤄집니다. 말하자면 꽃들이 효율적으로 분업을 하는 셈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수국은 야생 산수국에서 유성화를 없애고 화려한 무성화만 가득 만들어 공처럼 크고 둥글게 보이는 화려한 식물입니다. 물론 결실은 맺지 못합니다. 하지만 수국속(Hydrangea)은 세계적으로 워낙 많이 알려진 종류여서 꽃 빛깔 혹은 꽃잎 모양에 따라 수백 가지 원예품종이 나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지요.   








산수국은 한자로 산수국(山水菊)으로 씁니다. 말 그대로 산에서 피는, 그리고 물을 좋아하는 국화처럼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입니다. 영어로는 마운틴 하이드랜지어(Mountain Hydrangea)라고 합니다. 산수국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꽃 빛깔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주의 아주 큰 산수국 무리에서 꽃 빛깔의 변화를 조사한 일이 있는데, 그 변화무쌍함과 아름다움에 깜짝 놀란 기억이 납니다. 마음 같아선 수십 가지 품종이 나올 법하지만 이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지요. 빛깔의 변화를 고정시키는 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흰색으로 피기 시작한 꽃은 점차 시원한 청색이 되고 다시 붉은색 기운을 담더니 나중엔 자주색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토양 조건에 따라 알칼리 성분이 강하면 분홍빛이 진해지고 산성이 강하면 남빛이 더 강해진다고 하지요. 이러한 꽃의 특성 때문에 인위적으로 토양에 첨가제를 넣어 꽃 빛깔을 원하는 대로 바꾸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꽃의 꽃말도 ‘변하기 쉬운 마음’입니다.  

한방에선 수국류, 그중에서도 수국의 기본 종이 되는 종류를 수구화(繡毬花) 또는 팔선화(八仙花)라고 부르며 뿌리와 잎, 꽃 모두를 약재로 씁니다. 심장을 강하게 하는 효능을 가졌으며 학질과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세에 처방하고 열을 내리는 데도 많이 쓰지요.

일본에선 수국차라고 하여 우리나라 산수국과 비슷한 잎으로 만든 차가 있습니다. 잎에 단맛이 있어 농가에서 부러 재배하여 만들기도 합니다.

산수국을 보기가 어려워지는 건 우거진 숲에서 그들이 점차 밀려나기 때문입니다. 희귀식물은 아니지만 한두 곳 정도에서는 멋진 산수국 군락이 두고두고 유지되도록 숲의 변화가 약간 더딜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네요.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45. 섬백리향- 발끝에 묻은 향기 백 리 간다네







섬백리향.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나요. 넘실대는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한 점의 섬, 말만 들어도 시원하고 신선하네요. 거기에 백 리를 가는 향이 더해지니, 얼마나 멋진 식물입니까. 실제로 섬백리향을 마주하고 제대로 겪어본다면 그 기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지면으론 그 아리따운 향기를 전할 방법이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네요.

섬백리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가운데 하나인 울릉도에서 자랍니다. 상상해보세요. 동해에 우뚝 솟은 청정의 공간, 안온함이나 비옥함을 기대하기 어려운, 그것도 험하고 가파른 바위 절벽 틈에서 피어나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꽃송이들을. 갖은 고난을 뚫고 귀한 장소에서 자라난 꽃이라 그럴까요. 혹 꽃향기가 발끝에 묻기라도 하면 백 리를 다 가도록 그 향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백리향이란 이름이 붙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만큼 식물체 전체에 향기가 가득하고 향이 강하다는 얘기지요. 섬백리향이 좋은 것은 우리 인간만이 아닌 모양입니다. 꽃이 한 무더기 핀 곳엔 어김없이 곤충들도 바쁘게 찾아오네요. 그들도 바다를 건너왔을까요. 아니면 태초부터 그곳에 살던 곤충의 후손일까요. 신비함과 궁금함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눈으로 보는 즐거움에 더해 향기로 느끼는 상쾌함까지…. 툭툭 건드리기라도 하면 그 향기가 손으로 전해오는 촉감 그대로 퍼져나갑니다. 섬백리향은 이렇듯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꽃입니다. 이 백리향 집안은 요즘 인기 있는 허브 식물 중 타임(Thyme)이라 부르는 종류에 속합니다. 독특한 향기를 먹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차로도 마시고, 음식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며, 각종 질환의 치료용으로도 씁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백리향 집안의 꽃들은 강장효과가 크고 우울증, 피로, 빈혈에도 좋다고 합니다. 우리의 섬백리향도 그리 이용하면 될 일입니다.   




꼭 울릉도에서 자라는 섬백리향이 아니더라도 백리향이 우리나라 내륙 고산지역에서 드물게 자랍니다. 서로 비슷한 특성이 많지만 섬백리향은 백리향보다 꽃과 잎이 크고 키도 커서 활용도가 여러모로 다양합니다. 섬백리향은 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옆으로 기면서 퍼져나가 그 높이가 한 뼘을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관상자원 가운데 지피식물(지면이나 바위를 덮으며 자라는 소재)로 활용도가 아주 높습니다. 축대나 벽 같은 곳 밑에서 키우면 줄기가 기면서 늘어져 자라 보기에 무척 좋지요. 분홍빛 고운 꽃송이들에 더해 그 향기가 주변 잡냄새도 없애주니, 벽 밑에라도 키우면 온 동네 사람의 기분도 좋아질 거예요.

재미난 사실은 이렇게 화분에서도 키울 수 있는 키 작은 식물임에도 섬백리향이 나무라는 점입니다. 섬백리향은 꿀풀과에 속하고 낙엽도 지는 진짜 나무입니다. 옆으로 기는 줄기에 가지가 위로 자라고, 여기에 서로 마주보는 타원형 잎사귀들이 매달리지요. 꽃은 분홍색인데 여러 개가 끝에 모여 한 덩어리처럼 보입니다.  

섬백리향은 한방에서도 여러 증상에 처방합니다. 열을 내리고, 기침을 멎게 하며, 경련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네요. 꽃이 피는 계절에는 수없이 많은 벌이 날아드는 좋은 밀원식물이 되기도 하지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섬백리향 같은 사람이고 싶다면 욕심일까요! 스스로 낮추어 자라면서 온몸으로 향기를 내뿜고, 가장 척박한 곳에서도 소박한 아름다움을 발산할 수 있는 섬백리향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46. 모감주나무- 초록 여름 빛내는 ‘노란 꽃 군무’





온 숲이 진한 초록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열대성 강우로 바뀌어가는 듯한 이즈음의 빗줄기. 한바탕 쏟아지기라도 하면 초록빛은 그 깊이를 더합니다. 그 초록빛 향연 속에서도 무척 환해 도무지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나무가 있습니다. 나무 한가득 주렁주렁 매달린 노란 꽃송이는 초록빛에 반사돼 더욱 샛노랗게 보입니다. 공원에서도, 가로화단에서도, 그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있는 나무. 만일 이 여름 어딘가에서 노란빛 꽃나무를 마주한다면 아마도 모감주나무일 것입니다.  

7월은 모감주나무 꽃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입니다. 줄지어 선 모감주나무 군락이든, 우아하게 수형을 잡고 선 정원의 독립수이든 한껏 피어난 이 나무의 꽃송이들은 마치 황금빛 물결을 연상하게 하리만큼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이토록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서, 이렇게 강한 빛줄기 속에서 어쩜 그리도 싱그럽게 서 있을 수 있는지! 가혹한 생활환경에도 굴하지 않는, 천진스럽고 환한 어린아이의 웃음처럼 그 꽃의 색은 밝기만 합니다. 우중충하던 우리네 마음까지 맑아지게 하네요.   



모감주나무 열매



모감주나무는 무환자나뭇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교목입니다. 노란 꽃잎을 자세히 보면 아래쪽에 붉은색 점이 있어 더욱 애교스럽지요. 가장자리가 톱니처럼 생긴 잎 모양도 개성이 가득하고, 꽃이 지고 난 후 생기는 열매 모양도 특별합니다. 마치 나무에 달린 꽈리인 양 주머니에 싸여 있습니다. 

지방에 따라서는 모감주나무를 두고 염주나무라고도 부릅니다. 열매 주머니를 벗기면 드러나는 씨앗이 까맣고 반질거려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해지지요. 그 모습도 염주로 적합하지만, 더욱 신기한 점은 염주를 엮으려고 열매에 구멍을 뚫기가 무척 용이하다는 것입니다. 2∼3mm만 뚫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뚫린다고 하네요. 모감주나무란 이름은 닳거나 소모되어 줄어둔다는 뜻의 모감(耗減)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이 역시 염주와 연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서는 ‘즐거운 나무’ 또는 ‘즐거운 열매’란 뜻의 이름을 가지며, 영어로는 ‘Golden Rain Tree’, 즉 ‘황금비나무’라고 합니다.  

모감주나무가 가장 유명한 곳은 천연기념물 제138호로 지정된 충남 태안 안면도 모감주나무군락입니다. 지금 그곳에 가면 해안선을 따라 100m쯤 이어진 모감주나무 꽃무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디보다 환하고 아름다운 꽃천지를 만나게 되지요. 이곳 모감주나무군락은 작은 해안가에 한정적으로 모여 있는데, 여러 학자가 이를 신기하게 여겨 조사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중국에 있는 나무 열매가 바닷물을 타고 떠내려 온 뒤 이곳에 닿아 자라게 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고 하네요.  

하지만 얼마 전 포항 영일만에서 모감주나무 대군락을 발견한 이후 완도, 백령도, 대구, 충북 월악산 중턱에서도 발견해 이 아름다운 나무가 한반도 전체에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됐습니다. 말하자면 우연히 중국에 있는 나무가 씨앗으로 떠내려와 정착한 것이 아니라, 흔치 않았을 뿐 본래부터 우리 나무였던 것입니다. 한방에서는 난수화라고 해서 꽃잎을 말려 간염, 장염, 지질(脂質) 개선 등에 쓴다고 합니다.  

너무 덥고 축축해 온몸이 끈적일 만큼 불쾌지수가 높은 때입니다. 거기에 이런저런 사고 소식도 들려오네요. 모감주나무의 노란 꽃이 참으로 큰 위로입니다.

인먄도 모감주나무 군락지​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47.부처꽃- 물가의 꽃방망이 ‘붉은 유혹’







비가 참 오래오래 많이도 옵니다. 물은 더없이 요긴하고 소중한 존재이지요. 생명체에게는 생멸을 결정짓는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물은 무섭기도 합니다. 물가에서 자라는 나무나 풀은 큰물이 나면 땅을 부여잡은 채 쓸려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씁니다.

이즈음 물 많은 물가에서도 그다지 강인할 것 같지 않은 줄기로 버티며 의연하게 꽃을 피우는 식물이 있습니다. 바로 부처꽃입니다. 이 대단한 빗줄기도 그 또한 지나가고, 잦아들겠지요. 그때가 되면 온통 붉은색으로 핀 꽃이 어느 물가에서나 더욱 아름답게 일렁이며 한여름 내내 이 무더운 계절을 시원하게 풍미할 것입니다.  

부처꽃은 북으로는 백두산 1000m 이상 초지에서부터 남으로는 제주 초원에 이르기까지 전 국토의 물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꽃입니다. 쉽게는 북한강 혹은 남한강을 따라가다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지요. 물을 아주 좋아해 물가에서만 사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한두 포기 있으면 그저 그렇다가도 여러 포기가 모여 있으면 금세 화려한 꽃무리로 변신을 하지요. 

꽃색도 진분홍빛이어서 여간 인상적인 게 아닙니다. 1m 정도 높이까지 자라는데 곧게 올라가는 네모진 줄기에서 많은 가지가 갈라져 나오고, 갈라진 줄기 끝마다 진한 분홍빛 작은 꽃이 층층이 모여 달립니다. 꽃이 핀 모습을 멀리서 보면 붉은 꽃방망이처럼 느껴집니다. 꽃잎 여섯 갈래 가운데 수술 부분은 노란색이어서 하나하나 꽃 모양이 더욱 귀엽지요.  

 



왜 부처꽃이란 이름이 붙었을까요. 워낙 특별한 이름이어서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터인데, 확인된 문헌 속에서는 아직까지 그 이유가 알려진 바 없어 궁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학명 중 속명 라이스럼(Lythrum)은 ‘피(血)’라는 뜻의 그리스어 라이트론(lytron)에서 유래한 것으로, 꽃이 붉어서 붙은 이름입니다. 이 강렬한 꽃빛깔 때문인지 꽃말도 ‘호수’와 ‘정열’입니다.  

이 꽃의 가장 큰 용도는 뭐니 뭐니 해도 관상용입니다. 빼어나게 아름다우면서 물가에 심을 수 있는 소재가 흔치 않은 실정에서 본다면 부처꽃의 존재는 단연 반갑지요. 특히 꽃피는 기간이 길고 재배가 손쉽다는 장점을 지닙니다. 물가 식물에 일반인의 눈길이 쏠리기 시작한 것은 최근 일입니다.

부처꽃에 대한 관심도 공원이나 일반 가정에서 연못을 만드는 일이 늘면서 시작됐다고 봅니다. 물가에 꽃을 심어두고 보려는 이가 늘어난 게 결정적 이유가 됐습니다. 요즘 일어나는 생태공원 만들기와 하천 복원도 일조를 했지요. 물가를 식물이 살고 물고기도 쉬는 공간으로 되돌리는 일을 하면서 부처꽃이 새삼 대접받게 된 거지요. 아름답기도 하면서 이러저러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식물이 별로 없으니까요.

한방에서는 털부처꽃과 함께 천굴채라고 해서 늦여름에 채취한 전초를 볕에 말려뒀다가 이용하는데 방광염, 종독(腫毒), 이뇨장애, 수종(水腫) 등에 처방합니다. 특히 사카린과 타닌을 함유해 지사제로 많이 쓰며, 이질이나 자궁 출혈에도 처방한답니다. 혹 올여름 물가로 휴가일정을 잡았다면 꼭 한 번 이 붉고 아름다운 꽃을 기억해뒀다가 찾아보길 바랍니다. 색다른 기쁨을 줄 것이 틀림없거든요.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48.노랑어리연꽃- 여름 물가 노란색 향기 너였구나




여름이 곁으로 다가섰다. 강렬한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나뭇잎도, 숲 속의 풀잎도 무성하게 자란다. 때론 너무 무성하게 자라 보는 사람을 놀라게도 한다. 그래서일까. 화려하고 강렬한 꽃은 언뜻 지쳐 보이기도 한다. 이럴 때면 잔잔한 물가에서 피어나는 우리 풀꽃이 더욱 그립다. 여름 물 위에 피는 꽃이라면 흔히 연꽃과 수련을 떠올리지만 연꽃이나 수련은 족보를 따지면 아무도 심지 않아도 절로 자라는 이 땅의 우리 식물은 아니다. 물론 우리와 함께 문화를 만들고 사랑받아온 역사가 오래이니 넓게 봐서 우리 꽃이라 한들 누구도 탓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 연못을 차지하고 스스로 자라온 만큼 진정한 우리 꽃이라 보고 싶다.

알고 보면 우리에게도 물 위에 떠서 자라는 아름다운 꽃이 여럿 있다. 흰색의 작은 꽃이 고운 어리연꽃과 좀어리연꽃, 노란색 꽃을 피워내는 노랑어리연꽃, 왜개연꽃, 그리고 가시가 무성하며 보랏빛 꽃송이가 매력적인 가시연꽃…. 생각만으로도 흐뭇해진다. 그중에서 마음만 먹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꽃이 있다. 바로 어리연꽃과 노랑어리연꽃.  







먼저 어리연꽃은 꽃 크기가 작지만 온 연못을 가득 채운 잎사귀와 그 위에 떠오른 하얀 꽃송이가 무척 귀엽다. 잎겨드랑이에서 꽃자루가 자라고 그 위로 지름이 2cm 남짓한 꽃송이가 피기 시작한다. 다섯 갈래의 백색 꽃받침(꽃잎이라고 착각하는 이가 많다)은 가장자리에 술처럼 가는 털이 달려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꽃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부는 노란색으로 빛난다. 영어로는 워터 스노플레이크(Water snowflake)라는 예쁜 이름이 있다.

어리연꽃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꽃은 노랑어리연꽃이다. 꽃이 더 크고 노란색이다. 그 때문일까. 노랑어리연꽃이 핀 여름 연못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영어로는 펠티포미스 플로팅 하트(Peltiformis floating heart) 혹은 마시 플라워(Marsh flower)라고 부른다. 희귀종인 좀어리연꽃은 이름 그대로 잎도 꽃도 아주 작아서 어리연꽃과는 금세 구분이 가능하다. 지역에 따라서는 흰어리연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작고 귀여워 큰 연못보다는 작은 항아리 같은 곳에 키울 때 더 어울린다.  

한방에서는 노랑어리연꽃을 치료제로 이용한다. 생약명은 행채(荇菜)라고 하며 잎, 줄기, 뿌리를 모두 이용한다. 간과 방광에 이롭고 해열, 이뇨, 해독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임질이나 열 또는 한기가 있는 여러 증상에 처방하며, 부스럼이나 종기가 생기면 생잎을 찧어 상처 난 부분에 붙인다. 최근 수생식물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연못 등 물이 있는 작은 공간을 집 안에 들이는 조경 붐이 일면서 어리연꽃이나 노랑어리연꽃 같은 물에 뜨는 수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이를 재배하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식물들은 넓은 연못에 수련 대신 심어 키우면 훨씬 은은한 맛을 느낄 수 있고, 돌확이나 옹기항아리 같은 곳에 심어 실내 또는 정원 한쪽에 놓고 보는 것도 좋다. 이 경우 물을 갈아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 여름, 노랑어리연꽃 무리를 가장 확실하게 만나고 싶다면 국립수목원(광릉) 수생식물원을 찾으면 된다. 이 꽃을 바라보면 이토록 좋은 우리 수생식물자원을 두고 왜 외래 식물만 곁에 두려 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더욱이 수질오염이 가속화하면서 우리 식물 가운데 수생식물의 감소 속도가 가장 두드러진 점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연구 보전은 전문가의 몫으로 치더라도 우리는 이런 우리 꽃을 알아보고 소중히 하는 일에서부터 우리 꽃 보전을 시작해야겠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49. 노루오줌- 숲 속 약용식물 진분홍 꽃도 좋아라





사람이나 꽃이나 이름으로 덕을 보는 경우도 있고, 이름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별꽃, 나비나물 등은 이름은 예쁘지만 별꽃은 너무 작아서, 나비나물은 꽃잎이 아닌 작은 턱잎의 특징이 나비모양인 탓에 실망을 주기도 한다. 쥐오줌풀이나 개불알꽃은 이름으로 유추되는 이미지는 좋지 않지만 막상 꽃을 보면 참 곱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여름, 무성한 숲 속에 이름 때문에 아름다움이 감춰진 또 다른 꽃이 있다. 노루오줌이 바로 그것이다.  

왜 하필 이 고운 꽃을 두고 노루오줌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노루가 살아갈 만큼 깊은 산골에서 피는 식물인 데다 식물체에서 약간 찝찝한 냄새가 나기 때문. 하지만 노루오줌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에게는 그리 유쾌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을 붙일 때 아무리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다 해도 말이다. 실제 노루오줌이 사는 곳은 맑고 깨끗한 청정지역이다.  







 


노루오줌은 범의귓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아주 크게 자라면 꽃대 높이까지 모두 합해 70cm 정도 자란다. 곧게 올라간 줄기는 두세 번 갈라지는데 작은 잎들이 모여 이뤄진 잎을 달고 있다. 지름이 3mm나 될까 싶은 작은 꽃들이 모여 길이가 30cm에 달하는 고깔모양의 커다란 꽃차례를 이룬다. 비록 아주 작은 꽃들을 지니지만 자신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려고 서로 조화롭게 모여 있는 노루오줌 꽃의 슬기가 참으로 부럽다. 더욱이 진분홍빛 꽃잎은 그 때깔이 얼마나 맑고 투명한지 모른다.  

예전에 노루오줌의 가장 중요한 쓰임새는 약용식물이었다. 유명한 약재인 승마와 유사하게 생겨서인지 생약명으로 소승마(小升麻) 또는 구활(求活)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뿌리는 특별히 적승마(赤升麻)라고 해 약으로 썼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채취한 꽃이나 잎, 줄기를 말려뒀다가 잘게 썰어서 사용한다. 땅 위에서 자라는 부분(보통 소승마라 부르는 부분)은 해열과 진해 효과가 있어 감기로 인한 열, 기침, 두통, 몸살 기운이 있을 때 처방하고 적승마, 즉 뿌리 부분은 진통작용과 혈액순환 효과가 있어 근육통, 타박상, 관절통에 처방한다.

요즘 노루오줌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관상학적 가치 때문이다. 서양의 경우 노루오줌의 형제쯤 되는 노루오줌속(屬) 식물들을 잘 개량해 여러 색깔과 모양의 품종을 만들어 화단에 모아 심거나 화분에 옮겨 심어 키운다. 꽃꽂이용으로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러 종류가 자생하며 지역에 따라 많은 변이를 보인다. 그 가운데 더 좋은 꽃 모양이나 빛깔을 찾아내려는 노력도 많이 이뤄지고 있다. 여름휴가철 숲길을 거니는 행운이 주어진다면 노루오줌의 아름다움을 꼭 한 번 만나보길 바란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50.기린초- 별이 내려와 노랗게 피었나









온 나라가 찜통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데일 듯 뜨거운 여름 햇볕. 하지만 그 아래서도 씩씩하게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이 있다. 기린초 꽃이다. 기린초는 돌나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전국 산지 양지바른 바위틈에서 주로 자란다. 키가 20cm 정도 되는 줄기 여러 개가 모여 포기를 만들고, 이들이 다시 모여 작은 무리를 이룬다.  

어긋나게 달린 주걱 모양의 잎은 두텁게 살이 찐 다육질이며, 잎 가장자리에는 무딘 톱니가 동글동글하게 나 있다. 여름에 피어나는 꽃은 노란 색이다. 끝이 뾰족한 꽃잎 5장이 모여 이루어진 꽃송이가 줄기 끝에 달린 모습은 흡사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을 연상하게 한다. 꽃이 한창 피었을 때 수술의 빨간 빛깔도 매력적이다.  

이 꽃이 기린초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노란색 꽃 빛깔에서 연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 일부 지방에선 혈산초라고 부른다. 요즘 기린초는 관상적 가치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항아리 뚜껑 같은 곳에서 한 아름 포기를 만들어 핀 꽃은 보기에도 탐스러워 마음을 환하게 한다. 화단에 심어도 좋은데, 특히 돌이 있는 정원의 바위틈에 심어두면 생태적, 조경적으로 좋다.  

기린초는 관상적 가치 외에 비채(費菜), 백삼칠(白三七), 양심초(養心草) 등의 생약명으로도 불리는데 지혈, 이뇨, 진정 효능이 있어 토혈, 코피 등 피가 나거나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울렁거리는 증상에 처방하며, 타박상이나 종기 등엔 생풀을 짓찧어 붙이기도 한다. 봄에 연한 잎과 줄기는 살짝 데쳐서 나물로도 먹는데 맛이 담백하다.

기린초가 인기를 끄는 또 다른 이유는 특별한 관리 없이도 잘 자라기 때문이다. 자주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면 너무 크게 자라 고민일 정도여서 게으른 사람에게 적당한 식물이다. 기린초가 자라는 곳은 바위틈이나 돌이 많은 숲 가장자리지만 양지에서 키우면 더 튼튼하고 균형감 있게 자란다. 물론 반그늘에서도 잘 자란다.  

기린초는 비슷한 종류가 여럿 있으며 대부분 이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 가는기린초는 기린초보다 잎이 가늘고 길며 줄기가 1~2개로 적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한자로 토삼칠(土三七), 경천삼칠(景天三七), 영어로는 아이준 스톤크롭(Aizoon stonecrop)이라고 한다. 울릉도와 독도에서만 자라는 섬기린초는 꽃이 많이 달리고 뿌리에서 굵은 가지가 나오며 키가 기린초와 비슷하지만, 잎이 도란형 또는 주걱 모양으로 위쪽이 더 넓고 열매 끝이 가지처럼 뾰족해 구분이 가능하다. 비교적 최근에 금대봉, 태백산, 두타산 등에서 새로 발견된 태백기린초는 잎이 넓은 광타원형으로, 줄기 끝에서 로제트형으로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이유미의 우리꽃 산책Ⅰ[ 1회~25회]


1. 금강초롱-그 고운 이름을 불러주세요

 


곱디고운 보랏빛 초롱을 닮은 꽃을 피우는 금강초롱


무더위가 한풀 꺾인 이즈음 깊은 산, 맑은 곳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곱고 귀한 우리 꽃이 있습니다. 바로 금강초롱입니다. 강원도 산지나 경기도 명지산, 경북 황악산 같은 높고 깊은 산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꽃입니다. 바위틈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서서 보랏빛 초롱을 닮은 꽃을 피우는 금강초롱을 보면 감히 누가 그 흉내를 내볼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요. 금강초롱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이 식물의 역사와 의미를 구태여 따져보지 않더라도 짧은 감탄과 함께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우리 꽃 산책’에 첫 번째 꽃 친구로 금강초롱을 소개하는 것은 이 꽃의 특별한 아름다움이나 꽃이 피는 시기가 바로 이즈음부터라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꽃이라는 이름에 가장 걸맞은 식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자생 식물이 4000여 종 있답니다. 그 가운데 전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그러니까 이 땅에서 사라지면 지구에서 멸종하게 되는 식물이 300종인데 이들을 특별히 ‘특산식물’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금강초롱은 여기에 그치지 않지요. 식물 집안(속) 자체가 통째로 ‘특산 집안’인 것은 통틀어 일곱 개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가 금강초롱 집안입니다. 게다가 분포범위 자체가 좁으니 세계적으로 보면 꼭 보전해야 하는 희귀식물이지요.  

금강초롱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밤에 불을 밝히는 초롱을 닮은 꽃이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꽃을 한번 보면 그 고운 이름이 딱 어울린다는 것을 절로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이름은 이렇게 고운데 세계 사람들이 공통으로 쓰는 학명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식물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나카이라고 하는 일본인 식물학자입니다. 그가 자신을 촉탁교수로 임명하고 우리나라 식물을 조사하도록 지원해준 하나부사에게 보은의 뜻으로 학명을 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 나카이(Hanabusaya asiatica Nakai)라고 정해버린 것입니다.

하나부사는 한일병합의 주역이자 조선총독부 초대 공사를 지낸 인물이니 참으로 치욕적인 사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도 학명이란 것은 세계적인 약속이니만큼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렇게 풀 한 포기에도 나라 잃은 아픔의 역사가 담겨 있답니다. 광복절이 있는 8월에 꼭 기억해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 땅 우리 꽃에 대한 사랑의 첫걸음은 지금 피고 지고를 거듭할 이 땅의 금강초롱을 한번 제대로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주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금강초롱의 전설


옛날 금강산 자락에 다정한 오누이 둘이 살았는데, 누나의 병을 치료할 약초를 구하기 위해 달나라로 홀로 떠난 남동생이 돌아오지 않자, 누나는 아픈 몸을 추슬러서 간신히 초롱불을 들고 밤에 찾아 나섰다가 엎어져 변을 당했는데, 이 소녀가 들고 있던 초롱불이 꽃으로 환생되었다는 애절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금강초롱의 학명이 일본인 명으로 된 이유


경기도 가평 북쪽의 그늘진 산속에서 8~9월에 꽃을 피우는 한반도의 고유식물이다. 하지만 세계 식물학계에서 통용되는 금강초롱꽃의 학명은 ‘하나부사야 아시아티카 나카이(Hanabusaya asiatica Nakai)’다. 일제 강점기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1882~1952)이 1911년 금강초롱꽃을 새로운 속(屬)으로 명명하면서 자신에게 조선식물 연구를 제안한 초대 주조선 일본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1842~1917)를 기리기 위해 붙인 이름이다

식물의 학명은 이를 처음 발견하고 연구한 사람이 붙인다. 국제식물명명규약(International Code of Botanical Nomenclature·ICBN)에 기초해 속명(屬名)과 종소명(種小名·속 내에서 그 종이 갖는 특징), 명명자를 라틴어 형식으로 적는다. 금강초롱의 경우 ‘하나부사야’가 속명이고, 아시아에서 주로 자란다는 의미에서 ‘아시아티카’라는 종소명이 붙었다.

조선총독부의 촉탁직으로 조선식물 연구를 했던 나카이는 ‘금강초롱꽃속’을 비롯해 ‘금강인가목속(Pentactina·1917)’, ‘미선나무속(Abeliophyllum·1919)’ 등 다수의 한국 특산속 식물을 발견했다. 그 중 몇몇 식물에 일본식 학명을 붙였다. ‘하나부사’가 된 금강초롱을 비롯해 조선화관(朝鮮花菅)·평양지모(平壤知母)라고 불리는 꽃의 학명(Terauchia anemarrhenaefolia Nakai)에는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1952~1919)의 이름이 올라 있다. 울릉도가 원산지인 섬초롱꽃의 학명은 ‘캄파눌라 다케시마나 나카이(Campanula takesimana Nakai)’다.  [출처] : 중앙일보] '하나부사'가 아닌 '금강초롱'으로 …



2. 곰취- 산나물의 제왕 노란 꽃도 황홀


 


“봄도 아닌데 웬 곰취!”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곰취 하면 아이 손바닥막한 잎이 떠오릅니다. 곰취는 주로 봄에 난 싱싱한 새 잎을 쌈으로 먹는 대표적인 산나물입니다. 쌉쌀하면서도 오래도록 입안에 남는 향기가 일품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산나물의 제왕’이라는 거창한 별명도 붙여놓았답니다.

잎이 조금 억세지기 시작하면 호박잎처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쌈을 싸먹거나 초고추장을 찍어먹기도 합니다. 예전 지리산 산골마을에서 억세진 곰취 잎으로 간장·된장 장아찌를 담근 것을 먹은 적이 있는데 입안에 맴도는 향기며 그 맛이 얼마나 일품이던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워낙 인기 있는 산나물이다보니 요즘은 재배도 하는데, 산지마다 조금씩 맛과 향이 달라 서로 제 고장 이름을 붙여 부르곤 합니다.  

이렇게 누구나 알아보는 곰취 잎. 하지만 정작 곰취 꽃을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누가 뭐래도 식물이 가장 주목받는 중요한 기관은 바로 꽃인데도 우리는 그동안 먹는 데만 눈이 어두워 진짜 곰취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곰취에게도 꽃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면 정말 식물에게 미안해해야 합니다. 자연에서 자라는 모든 고등식물은 당연히 꽃이 핍니다. 곰취 꽃은 여름이 서서히 물러나고 저만치 가을 기운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하는 바로 이즈음 하나둘 피기 시작해 초가을까지 만나볼 수 있는데, 정말 놀랍도록 곱게 핍니다. 꽃을 보려고 곰취를 키워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말이죠.  

곰취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자라는 곳도 그 범위가 매우 넓어 그야말로 한라에서 백두까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자랍니다. 흥미롭게도 제주 한라산에도 곰취가 많은 편인데 그곳 분들은 곰취를 잘 먹지 않는답니다. 아마도 산에 기대어 살기보다 바다에 의지해 살아온 까닭에 해산물 쪽 먹을거리가 더 발달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곰취는 다 자라면 1m가 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어른 허벅지 높이 정도까지 자랍니다. 심장과 신장의 중간쯤 되는 모양을 가진 잎이 뿌리 주변에 크게 여러 장 달리고 줄기를 따라 작은 잎이 달리죠. 꽃은 노랗게 핍니다. 국화과 식물이어서 우리가 꽃잎이라고 생각하는 그 하나하나가 사실 각각의 꽃 한 송이로, 이러한 꽃이 모여 작은 꽃차례를 만들고 다시 원추형 꽃차례를 이룹니다.  

혹 집에 마당이 있다면 낙엽 지는 나무 사이 햇살 드는 곳에 곰취를 심어보세요. 봄에는 잎을 따서 즐기고 늦여름부터는 꽃을 즐길 수 있어 그야말로 일거양득입니다.


 


그렇다면 왜 ‘곰취’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곰이 나타나는 깊은 산에서 자라기 때문일까요? 한자로는 웅소(熊蘇)라고 하는데, 어느 이름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밖에 잎 모양이 말발굽과 비슷하다 해서 마제엽(馬蹄葉)이라고도 합니다. 곰취 뿌리는 호로칠(胡蘆七)이라고 부르며 약으로 쓰기도 하죠. 한방에서는 폐를 튼튼히 하고 가래를 삭이는 효능이 있어 기침, 천식, 감기 치료제로 사용합니다.
 
비가 그친 뒤, 하루하루 점점 더 맑고 높아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곰취 꽃이 노랗게 피기 시작하면 가을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랍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곰취의 효능


변비 - 섬유소가 매우 풍부하게 함유되어있는 곰취는 변비치료는 물론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고한다

항암효과 - 베타카로틴과 비타민C가 다량 함유되어있는 봄의 대표적인 나물로 항암효과가 있다고한다

천식.기침 - 가래를 삭히고 폐를 튼튼하게 해주는 효능이있어 기침이나 천식,감기등에 효능이있다고한다

노화방지 - 항산화효과가있는 비타민C와 베타카로틴을 함유하고있어 노화를 방지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곰취나물 만드는 법 (1인분 312칼로리 )


1) 우선 조리하기전 말린 취나물은 물에 담가 불려주세요

2) 그런다음 불려진 취나물을 냄비에 넣고 취나물이 잠길 만큼 물을 부어준후 끓여주세요

3) 그러다 끓어오르면 불을 약한불로 줄여주신 후 30~40분간 더 삶아주세요 그런다음에 곰취를 물에 2~3회

     깨끗하게 헹궈주신 후 6시간 도 물에 담가 두시면 된답니다.

4) 그렇게 6시간동안 물에 담가두었던 곰취의 물기를 꽉 짜주세요, 물기를 짜기전 곰취의 억쎈 부분을 제거.

5) 물기를 뺀 곰취나물에 재래간장과 다진마늘 ,다진파를 넣어무쳐주세요



3. 노랑어리연꽃- 연못의 처녀, 한약재로도 좋아라


 



평생을 풀이나 나무를 찾아 산과 들을 누비는 저 같은 식물학자들은 책상머리에 앉아 있다 보면 이 땅 이곳저곳에서 피고 지고 있을, 이런저런 꽃 생각으로 마음이 절로 간절해지곤 합니다. 막상 여름이라는 계절을 보내려 하니 물가에서 자라는 수생식물 꽃구경을 놓쳐버린 것이 가장 아쉽네요.
 
우리는 흔히 잔잔한 물 위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 하면 제일 먼저 수련이나 연꽃을 떠올리지요. ‘물의 요정’이란 별명으로 숱한 노래와 그림에 등장하는 수련이나,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탐스럽고 고결한 연꽃은 모두 참으로 곱습니다. 게다가 꽃에 담긴 이야기나 쓰임새도 무궁한 좋은 식물들이지요. 하지만 이 두 식물은 모두 원산지가 우리나라가 아니랍니다.  

자생식물이 아니라는 사실에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련이나 연꽃의 화려함에는 조금 못 미쳐도, 보면 볼수록 매력 넘치는 고운 우리의 수생식물이 여럿 있으니까요. 물가에서 자라는 진분홍빛 털부처꽃이나 보랏빛 물옥잠 꽃도 참 예쁘고, 꽃잎을 빼놓고는 잎이며 줄기며 꽃받침이며 온통 가시가 무성해 신비롭고 개성 넘치는 가시연꽃도 있답니다.

우리의 눈길을 기다리는 멋진 자생식물 중에서도 노랑어리연꽃의 아름다움은 특별합니다. 주로 중부 이남 지역의 물에서 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수염 같은 뿌리가 물속 땅에 자리 잡고, 가늘고 긴 줄기의 마디에 잎이 1~3장 달리며, 잎자루가 길어서 물 위로 떠오르지요.

지름이 5~10cm 되는 방패형 잎은 윤기로 반질거리고, 꽃은 여름에 핍니다. 초여름에 시작해 여름이 가도록 오래오래 볼 수 있어 참 좋습니다. 꽃 지름은 3~4cm 되는데, 무성하고도 고요한 여름 연못에 잔잔한 꽃송이들이 이어지듯 펼쳐져 피어 있는 모습은 그 어떤 풍경보다도 장관이랍니다.  

노랑어리연꽃의 꽃잎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더욱 멋져요. 노란색 꽃잎 가장자리에 마치 레이스처럼 가느다란 털이 달려 있답니다. 꽃이 노란색이 아닌 흰빛이고, 크기가 조금 작은 꽃들을 보셨다면 그건 그냥 어리연꽃이랍니다.  

노랑어리연꽃은 먼저 한방에서 이용합니다. 생약명은 행채( 菜)라고 하며 잎, 줄기, 뿌리를 모두 쓰지요. 간과 방광에 이롭고 해열, 이뇨, 해독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임질, 열과 한기를 조절하는 여러 증상에 처방하지요. 부스럼이나 종기의 경우 생잎을 찧어 상처 난 부위에 붙인다고 하네요.  

최근에는 물이 있는 공간이 도시에서도 매우 중요한 생태학적 공간으로 여겨지면서 노랑어리연꽃 같은 우리 수생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널따란 연못에 수련 대신 심어 키우면 훨씬 은은한 멋을 느낄 수 있고, 또 돌확 또는 옹기 같은 곳에 심어 실내나 정원 한쪽 공간에 놓고 보는 것도 유행이지요.  

 


눈여겨 찾아보면 주변의 작고 오래된 저수지 같은 곳에서 자라는 노랑어리연꽃이나 어리연꽃을 만날 수 있는데, 그렇게 만나는 꽃들을 바라보는 일은 분명 행복입니다. 이런 행운은 마음을 열고 찾아보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먼저지요. 쉽게는 제가 일하는 국립수목원(광릉) 수생식물원에 찾아오면 어김없이 있습니다.  

한번 이 꽃들을 바라보고 나면 이토록 좋은 우리 수생식물 자원을 두고 왜 그동안 외래식물만 곁에 두려 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하지요. 게다가 이즈음에는 수목원에서 전국(일부는 전 세계)에 있는 귀하고 보전해야 할 수생식물을 모아 전시회도 여니 한번 들러보세요. 잔잔한 수면의 꽃들과 함께 걸으면서 가는 여름을 갈무리해보기를 권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4. 동자꽃-한여름 뜨거움 간직한 ‘주홍빛 하트’




바람도 비도 지나가고 선뜩선뜩 가을 기운이 느껴집니다.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는 걸 절실히 느끼는 와중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나이가 들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저는 거기에 더해 올여름 놓치고 만 꽃구경 생각을 하면 아쉬움이 더욱 절실해지곤 합니다.  

여름 꽃에 대한 그 미련을 주홍빛 동자꽃을 보며 달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일하는 광릉숲길을 거닐다 한여름 내내 피었을 이 꽃이 아직도 선명한 꽃빛을 남기고 있어 얼마나 반가웠던지요.  

동자꽃은 먼저 이름이 참 특이하지요? 겨울 채비를 위해 마을로 내려간 스님이 눈이 쌓여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스님이 내려간 언덕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앉아 기다리다 그대로 얼어 죽은 동자승을 묻어준 자리에서 한여름 그의 얼굴처럼 동그랗고 발그레한 꽃을 피운 식물이 돋아나 동자꽃이라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주홍빛이 워낙 선명한 꽃은 짙어질 대로 짙어진 초록을 배경 삼아 매우 인상적입니다. 석죽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인데 우리나라에는 제주도나 울릉도 같은 섬 지방을 제외하고는 어느 산에서나 그리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키는 보통 무릎 높이 정도지만 잘 자라면 허리까지 오기도 합니다. 잎은 줄기에 잎자루도 없이 마주나는 타원형이고, 꽃은 지름이 손가락 두 마디쯤 되며, 꽃잎을 5장 가진 갈래꽃이지만 꽃받침이 통 모양으로 길게 달려 통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동자꽃은 전추라화(剪秋羅花), 천열전추라(淺裂剪秋羅) 등 한자 이름으로도 불리고, 학명은 리크니스 코그나타(Lychnis cognata)입니다. 속명은 ‘붓꽃’이라는 뜻의 희랍어 리크노스(lychnos)에서 유래했는데, 꽃이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어로는 ‘코리안 리크니스(Korean lychnis)’라고 부르지요.  

  


어디에 쓰이냐고요? 아무래도 관상용으로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다소 습기가 많은 숲 가장자리나 나무 심은 주변에 다른 식물과 함께 식재하면 아주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 수 있지요. 야생화는 꽃이 아름다워 심어 놓아도 나무 그늘이 지면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동자꽃은 반그늘이 적당합니다.
 
꽃잎을 한번 잘 들여다보세요. 꽃잎 끝 쪽이 오목하게 들어가 하트 모양을 하고 있지 않나요? 붉은 심장 모양으로요. 그것도 5개씩이나. 이 작고 소박한 숲 속의 꽃송이들이 얼마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알 듯도 합니다.

그 붉은빛의 뜨거움은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이를 따뜻하게 만드는 주홍빛이어서 참 좋습니다. 우리 꽃의 아름다움이 바로 그런 것 같아요. 평범한 듯하지만 하나하나 마음을 담아서 보면 새록새록 특별한 아름다움이 깊이 들어 있고, 그 안에는 정겨움이 숨겨져 있는…. 

지나가는 여름에 가졌던 치기 어린 뜨거움이 남아 있거든 동자꽃 주홍빛 꽃잎에 담긴 그 빛처럼 아름답고 의미 있게 갈무리하길 바랍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5. 독도의 술패랭이꽃-장하다, 씩씩하고 아름다운 네 모습



독도에 다녀왔습니다. 식물을 조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래전부터 언제 한번 제대로 조사해보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갑작스레 토종 식물에 관심이 고조되어 여기저기 다니고 조사하는 일이 많다 보니 차일피일 탐방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막상 독도를 찾아가 보니 남들이 손을 놓을 때 찾아가리라 괜한 고집을 피웠던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독도는 노랫말처럼 동해에 떠 있는 외로운 섬이었습니다. 독도에 사는 여러 생물에 대한 보고서나 논문을 보았고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저 막연히 깎아지듯 서 있는 절벽 같은 바위 사이에 식물이 드문드문 가까스로 살고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독도에는 생각보다 식물이 많았습니다. 큰 나무는 없어도 흙이 앉은 자리나 바위틈 사이사이 강인한 생명들이 회색 돌섬을 푸르게 덮고 있었습니다.  

독도에서만 자라는 식물은 없지만, 50여 종류의 식물 면면을 보니 문득 독도에 산다고 해서 특별히 외로운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도는 정말 우리 토종 식물이 사는 우리 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독도 식물은 울릉도와 가까운 섬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내듯 섬괴불나무, 섬제비쑥 등이 서식하며 육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사철나무, 바랭이, 털쇠무릎, 억새 같은 식물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조금 일찍 찾아갔다면 노란색 땅채송화와 섬기린초가 아름다웠을 것 같고, 조금 늦게 갔다면 가을이 깊어가면서 절벽 사이 보라색 해국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육지 들판과 마찬가지로 박주가리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 술패랭이꽃이 여름의 끝을 잡고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습니다.

오늘 보여드리고 싶은 꽃은 바로 술패랭이꽃입니다. 술패랭이꽃은 석죽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술패랭이꽃을 모르신다면 혹시 패랭이꽃은 아시나요. 패랭이꽃은 한국산 야생 카네이션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술패랭이꽃은 패랭이꽃과 자매 식물이지만 꽃빛이 연분홍이고 이름에 나타나듯 꽃 끝이 마치 술처럼 잘면서도 길게 갈라져 있습니다. 꽃빛이 곱고, 분백색이 나는 줄기는 연약해 보이지만 강인하고 아름답습니다. 술패랭이꽃은 흔치는 않지만 전국에 분포합니다.

 패랭이꽃 종류는 보통 석죽(石竹)이라고 부릅니다. 마디가 있고, 그 마디를 서로 마주보고 감싸며 2장씩 달리는 잎이 대나무 잎을 닮았습니다.

술패랭이꽃은 바위산 같은 척박한 곳에서도 자리 잡고 비바람 혹은 뜨거운 햇살 속에서도 잘 자랍니다. 꽃이 피면 오래오래 볼 수 있으니 집 안에서 키우기 좋은 최고의 식물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집 안 식물을 통틀어 구맥(瞿麥)이라 부르며 생약명으로 이용하기도 하죠.




술패랭이꽃이 자라는 독도에 다녀오니 관념 속 독도가 어느새 친근한 우리 섬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땅 어디에선가 술패랭이꽃을 만난다면 ‘지금 독도에도 한창 술패랭이꽃이 피었겠구나’ 하고 한 번쯤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6. 물봉선화- 손대면 톡… 날 건드리지 마세요!




‘손대면 톡 터지는’ 봉선화는 참 친근한 꽃입니다. 여름날 손톱에 곱게 물들이는 봉선화, 울 밑에 서서 고향을 떠오르게 만드는 봉선화는 알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살아온 역사가 그리 오래된 식물이 아닙니다. 고향이 인도인 식물이라서 섭섭하다고요? 그 대신 우리 땅에는 독특한 자태로 피어 늦여름 숲을 아름답게 만들고 손대면 톡 터질 것만 같은 우리 꽃 물봉선화가 있습니다.
 
물봉선화는 사람에 따라서 야봉선, 물봉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진분홍 꽃이 피는 물봉선화 말고도 노란 꽃이 피는 노랑물봉선화, 흰 꽃이 피는 흰물봉선화가 있답니다. 봉숭아 혹은 봉선화라고 부르는 이 꽃들은 모두 한집안 식구이지요. 이를 통칭하는 집안 이름은 임페티언스(Impatiens)로 ‘참지 못하다’라는 뜻입니다. 바로 손대면 톡 터져버리는 열매 특징을 따서 붙인 이름인데, 그래서 꽃말도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이지요.

한여름 서서히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물봉선화는 낮은 개울가, 자작한 물기가 남은 숲길, 혹은 깊은 산골짝 외진 물가에 자리 잡은 뒤 여름이 다 가도록 신비로운 꽃 모양새로 지나가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한풀 죽은 초록 숲가에 피는 데다 그 근처에는 늘 물이 흘러 뜨겁고 무거웠던 여름을 잔잔히 가라앉혀 주는 듯한 느낌이 든답니다.

포기가 워낙 커서 여러해살이풀 같지만 알고 보면 보기 드문 한해살이풀입니다. 다 자라면 키가 성인 무릎보다 좀 더 커지는 물봉선화는 줄기에 볼록한 마디가 있고, 잎은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나 있지요.  

숲 속에서 그저 평범하게 커나가던 물봉선화는 꽃이 피면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로 부상하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더욱 놀랍습니다. 통꽃 모양의 물봉선화 꽃은 앞쪽은 벌어진 여인 입술처럼 나뉘는데, 위쪽은 작고 아래쪽은 넓은 꽃잎을 가지지요. 그 벌어진 사이로 흰색과 노란빛이 어우러진 꽃잎 속살이 드러나고 자주색 점까지 점점이 박혀 더 아름답습니다. 벌어진 꽃잎의 반대쪽은 깔때기 끝처럼 한데로 모여서는 카이저수염처럼 동그랗게 말리는데, 그 모습 또한 아주 귀엽답니다.  

봉선화는 손톱 등을 물들일 때 사용하는데, 물봉선화는 어떨까요. 유사한 식물은 서로 성분이 비슷하므로 물론 물들이기가 가능합니다. 식물체 전체를 염료로 이용했다고 하지요. 하지만 봉선화처럼 손톱에 물이 들 만큼 강력한 염료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한방에서는 생약명으로 야봉선(野鳳仙), 좌나초(座拏草), 가봉선(假鳳仙)이라고 부르며 잎과 줄기, 때로는 뿌리를 약으로 썼답니다. 줄기는 해독과 소독 작용이 있어 종기를 치료하거나 뱀에 물렸을 때 사용하고, 강장효과를 지니는 뿌리는 멍든 피부를 푸는 데도 쓴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봄에 어린순을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지만 유독성분이 있어 충분히 우려낸 다음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먹을 만큼 특별한 맛은 아니므로 먹는 것은 포기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그 대신 습지에서 잘 자라는 특징 때문에 최근 조경용으로 관심을 모읍니다. 요즘 생태적 장소, 예를 들어 습지식물원이나 정원 등 식물을 심는 공간에 물을 끌어들임으로써 다양한 수서곤충을 비롯한 여러 생태적 조건을 조성하는 시도가 많이 이뤄지는데, 이때 꼭 필요한 소재가 바로 물봉선화랍니다. 도랑 옆처럼 물이 흐르는 곳에도 좋지요. 여름 숲가가 아름다운 이유는 색색이 무리지어 피는 물봉선화 식구가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글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7. 참취-나물뿐 아니라 흰 꽃도 일품


 


일주일 만에 숲에 나가니 가을빛이 완연합니다. 성큼성큼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절로 알겠더군요. 아직은 초록이지만 그 때깔은 한풀 죽어 은근함이 깊어지고, 가지 끝에서는 성급한 나뭇잎 몇 장이 노랗게 혹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숲가에 참취 꽃이 한창입니다. 참취 꽃은 흰빛이지만 한여름에 어울리는 투명한 흰빛이 아니라 딱 지금의 가을빛에 잘 스며드는 그윽한 흰빛이어서 마음에 더욱 애잔하게 와 닿습니다.  

참취라고 하니 꽃이라기보다 나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요?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주로 가을에 꽃이 피는 국화과 식물 중에는 참취를 비롯해 수리취, 곰취, 서덜취 등 이름에 ‘취’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풀이 여럿이고, 이들은 각각 나름의 맛을 지녀 나물로 쓰이는 경우가 많죠.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그래서 그냥 ‘취나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참취입니다. 혹시 ‘나물에도 꽃이 피나?’ 하는 의문이 든다면 정말 식물들에게 크게 결례하는 것입니다. 고등식물은 모두 꽃이 피고, 그 식물의 잎이나 뿌리, 줄기를 우리가 나물로 무쳐 먹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 맛있고 향기로운 취나물의 주인공 참취가 더운 여름을 이겨내고 피워낸 꽃들을 한번 보세요. 얼마나 순결하고 기품 있는지 말입니다.

참취는 우리나라 산야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사람들은 봄마다 열심히 이 식물의 잎이며 줄기를 뜯어 가지만 그래도 왕성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줄기들이 자라 여름 끝 혹은 가을 초입에 하얀 꽃송이를 피워내죠. 크지도 작지도 않은 꽃송이(실제로는 여러 꽃이 머리 모양으로 둥글게 달리는 꽃차례)들이 갈라진 줄기마다 달려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나물로 쓰이면서도 이렇게 고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인상적입니다. 대부분 한쪽으로 치우친 우리 삶과 대조적인 모습이지 않나요?  

참취는 정상적인 조건에서 제대로 크면 1m 넘게 자랍니다. 우리가 나물로 뜯어먹는 잎은 줄기가 길게 올라오기 전 뿌리 주변에서 나는 근생엽입니다. 심장 모양으로 생겼죠. 이 잎들은 꽃이 필 때쯤 없어진답니다. 줄기에 달리는 잎은 좀 달라서 더 작은데, 밑부분의 잎은 잎자루가 길며 날개가 있어요. 모양도 달걀 같고요. 그러니 먹는 잎이 날 때의 참취는 잘 알아도 꽃 필 때의 참취는 모르는 이가 많답니다.  

참취는 당연히 나물로 쓰일 때가 최고죠. 대표적인 묵나물, 즉 삶아서 말려뒀다가 두고두고 먹는 나물입니다. 정월 대보름에 부럼과 함께 먹는 취나물을 기억하시죠? 봄에 생잎을 먹기도 하지만 쓴맛이 있고 향취가 너무 강해 봄에 먹으려면 일정한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줄기가 올라올 무렵, 순을 잘라 소금 넣은 끓는 물에 데쳐 잘 헹군 뒤 연한 부분을 골라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고기와 깨를 넣어 볶은 밥을 초밥처럼 싸서 먹어도 특별한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참취는 또 약으로도 씁니다. 특히 머리가 아플 때 말려둔 참취를 달여 먹는다고 하네요.  

제가 권하고 싶은 것은 마당 한켠에 야생화로 흐드러진 참취 꽃입니다. 서로 어우러져 한껏 피어 있으면 현란하지 않아도 풍성하고 깨끗하며 싱그럽죠. 텃밭처럼 만들어 봄에는 어린순을 따서 나물로 즐기고, 몇 포기는 남겨 가을 들꽃으로 즐기는 것도 향기로운 삶이지 않을까요.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8. 두메부추-탐스러운 연보라꽃 마당에 꼭 심고 싶어


 


 

꽃으로 치면 요즘이 1년 중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새싹이 삐죽삐죽 올라오고 아기자기하면서도 화려한 꽃이 가득한 봄도 좋지만, 서늘한 가을바람 한 자락에 은은한 들국화 향이 섞이는 이즈음도 참 좋습니다.
 
무성한 초록빛도 한풀 죽고, 하나 둘씩 단풍 들고 낙엽 져서 식물마다 깊이가 더해가는 사이에 피어나는 가을꽃들은 꽃빛이며 향기가 기품 있고 그윽합니다. 게다가 하나 둘씩 저마다 열매 맺는 결실의 계절이니 풍성하기가 이를 데 없죠.

이즈음에도 지난 여름 흔적을 이어가는 꽃이 있는데 바로 두메부추입니다. 이름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죠. 먼저 사는 곳은 깊고 깊은 울릉도 두메산골입니다. 지금처럼 개발되기 전인 지난 시절 아주 외로운 섬이던 울릉도 바닷가 절벽에서 바다를 향해 피어 있던 두메부추를 처음 보던 날, 그 쓸쓸하고도 아름답던 풍광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울릉도에선 흔히 볼 수 있으며, 강원도 바닷가나 북부 지방에서도 자랍니다. 하지만 워낙 장점이 많은 식물이라 이젠 식물원이나 공원 등 우리 꽃을 심은 곳이라면 어디든 퍼져 있어 더는 외딴 곳의 외로운 식물이 아니랍니다.  

두메부추는 부추와 같은 집안 식물로 백합과에 속합니다. 파나 부추 꽃처럼 둥근 꽃차례를 가졌는데, 꽃이 많이 달리는 꽃송이의 연보라빛이 무척 고와 쉽게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여러해살이풀이며 다 자라면 성인 무릎 높이쯤 됩니다. 꽃은 둥글게, 우산살처럼 일정한 길이의 꽃자루가 달려 마치 작은 공 같습니다. 지역이나 햇볕, 땅 조건에 따라 색감이 다소 달라지기는 하지만 연보라색, 연팥죽색, 분홍색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 있으면 단박에 아름다운 정원이 됩니다. 꽃이 오래가는 것도 장점이고, 이렇게 꽃이 가득하면 어디선가 나비며 벌이 찾아 들어와 뒤늦은 꽃대궐을 이룬답니다.  

부추처럼 먹을 수 있을지도 궁금하죠? 두메부추 잎은 아주 두텁고 육질이 풍부해 특별한 기호식품, 나아가 건강식품이 될 수 있습니다. 부추가 몸에 아주 좋은 식물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졌는데, 거기에 알로에의 끈적한 젤라틴 성분 같은 것까지 많이 나오는 두메부추를 보면 누구나 ‘아! 좋은 식품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있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또 잎새뿐 아니라 쪽파 뿌리처럼 생긴 인경 역시 맵싸하고도 신선한 맛이 좋죠. 그래서 야생화를 키우는 이들은 마당 한켠에 두메부추를 심어두고 꽃을 주로 보지만, 때론 쌈을 싸먹을 때 쪽파같이 생긴 두메부추 몇 포기를 뽑아 맵싸한 맛을 즐기곤 한답니다.

한방에서는 두메부추는 물론 같은 집안 식물인 산부추, 참산부추를 모두 혼용합니다. 생약명은 ‘산구’이며, 이들을 통칭하는 알리움(Allium)속 식물들에 혼용돼 쓰는 용어로는 ‘야생하는 마늘’이라는 뜻의 야산(野蒜), 혹은 ‘작은 마늘’이라는 뜻의 소산(小蒜)이 있습니다. 잎과 줄기는 특히 비위가 약해 음식을 잘 못 들고 수척해지며 소변을 잘 못 보는 노인에게 좋답니다.  

두메부추는 ‘마당이 생기면 꼭 심어야지’하고 꼽아둔 식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분이라면, 야생 식물을 캐는 것은 절대 안 되니 하나둘 꽃이 질 무렵 까만 씨앗 몇 알을 잘 챙겨두길 권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9. 배초향-보라색 꽃송이… 방아잎, 맞습니다



숲에서 식물을 만나는 방법은 여러 개가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 코로 향기를 느끼며, 감촉으로 인지하기도 하고 때론 미각으로 알기도 하지요. 가을이 되면서 눈은 이미 가지가지 물드는 단풍 빛과 들국화들의 향연으로 황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덧붙여 올해는 유독 향기가 마음을 지극히 자극합니다. 봄철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감각적인 꽃향기가 아니라, 낙엽이 지면서 구수하고도 달콤한 향기가 나지요. 특히 산국이나 감국 같은 국화과 식물이 내는 향기는 더없이 깊고 그윽합니다. 매일 숲길을, 혹은 수목원 길을 산책하며 향기에 취하면 마음이 가을처럼 깊어집니다.  

배초향은 향기와 빛깔에 맛도 어우러진 식물입니다. 먼저 꽃은 조금 연한 보랏빛입니다. 가을철 보랏빛 꽃은 용담에서부터 쑥부쟁이나 구절초 등 여럿이지만, 그중에서도 배초향은 가장 연해 자극적이지 않은 보랏빛이 아닐까 싶습니다.

향기는 맛과 함께 느낄 수 있는데, 쉽게 말해 허브식물이라고 보면 됩니다. 생각해보면 라벤더, 로즈메리, 카밀러 같은 서양 허브는 알면서도 진정한 우리의 전통 허브식물이라고 할 수 있는 배초향은 잘 몰라 안타깝습니다.

산에서 나는 배초향은 예부터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식물입니다. 그래서 마당 한켠에 몇 포기 키우면 두고두고 잎을 얻을 수 있고, 늦여름부터 가을 내내 고운 꽃구경도 할 수 있는 여간 좋은 식물이 아니지요.  



배초향은 꿀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며 이웃한 중국, 대만, 일본에서도 볼 수 있지요. 산 아래 낮은 곳에서부터 1000m가 넘는 높은 산 정상까지 분포하지만 햇볕이 드는 곳에서 잘 자랍니다.

다 자라면 1m쯤 되는데, 많은 가지를 만들어내고 가지마다 잎과 꽃을 매어 달지요. 꽃 한 송이는 1cm도 안 될 만큼 작고, 입술 모양의 길쭉한 꽃송이는 반쯤 꽃받침 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이 작은 꽃송이들은 10cm 정도의 원기둥 모양으로 둥글게 둥글게 모여 달립니다.

꽃은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아름다운 보라색이며, 꽃잎보다 더 길게 수술이 나와 있답니다. 우리가 먹는 잎은 길쭉한 심장모양으로 생겼고 두 장씩 마주납니다.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도 있지요.

꽃 사진을 보고 “이거 방아잎 아냐?” 하는 분도 있을 텐데, 맞습니다. 남부지방에서는 그렇게 부르며 매운탕, 추어탕 같은 음식에 넣어 끓이거나 생선회에 곁들여 먹기도 합니다. 식물체 자체에서 방향성 냄새가 나기 때문에 생선 비린내를 없애주지요.

고기를 싸서 먹거나 봄철에 어린순을 끓는 물에 데친 뒤 무쳐먹으면 부드럽고 독특한 향기가 그만입니다. 또한 잘 말려서 차로 마시면 훌륭한 허브차가 되지요. 이 밖에도 방애잎, 깨나물, 중개잎, 야박하, 참뇌기, 곽향(藿香), 토곽향, 어향(魚香), 인단초(仁丹草), 가묘향(家苗香) 등 아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이름 가지 수가 많은 것은 그만큼 우리 민족과 가까웠다는 증거겠지요.

배초향은 한방에서도 이용했습니다. 곽향이라는 생약으로 주로 감기, 어한, 두통, 복통, 설사, 소화불량에 처방합니다. 버짐이 피었을 때는 배초향 달인 물에 담가 치료하기도 하고, 입에서 냄새가 날 때는 그 물로 양치를 해도 좋다고 하네요. 좋은 향이 나쁜 냄새를 없애주지요. 가을이 배초향처럼 그윽이 익어갑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10. 산국(감국)-‘그윽한 향기’ 누구와 비교하리



가을은 국화의 계절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국화과 식물의 계절입니다. 고개를 들면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든 단풍잎들이 하늘을 가리지만, 고개를 숙여 숲가를 둘러보면 산국, 감국, 구절초, 쑥부쟁이, 해국 등 우리가 흔히 들국화라고 부르는 야생 국화과 식물이 가득합니다. 게다가 도시로 가면 이런저런 빛깔로 개량한 국화품종이 곳곳에 심어져 있어 가을을 더욱 풍성하게 해줍니다. 이 국화과 식물은 기품 있는 때깔도 멋지지만 무엇보다 그윽하고 서늘한 향기가 일품이지요.  

가을의 그 많은 국화과 꽃 중에서도 예로부터 ‘야생 국화’라 해서 사랑하고 애용한 꽃이 바로 산국입니다. 말 그대로 산에서 피는 국화인 산국은 무엇보다 우리 산과 들, 지천에서 피고 지기 때문에 더욱 마음 가는 식물입니다.   






이즈음 가을 길을 따라 우리 산야를 한번 돌아보세요. 들녘, 바위틈, 산언덕, 길가 등 어느 곳에 가나 한창 흐드러지게 핀 들꽃 속에서 어김없이 피어 있는 가을 꽃, 산국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만난 산국에 코끝을 가져가 보세요. 가을 청량함이 몸과 마음에 가득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해살이풀인 산국은 보통 성인 무릎 높이까지 커서 꽃을 피우지만 어린아이 키만큼 크기도 합니다. 백색 털이 소복하고, 잎 모양새는 흔히 국화 잎과 비슷하지만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달려 구별할 수 있답니다. 꽃은 흔히 소국이라고 해서 화분에 심어 꽃가게에서 파는 노란 꽃보다 작지만, 색깔은 소국보다 노란빛이 더욱 선명하고 향기도 더 진합니다.

또 산국과 아주 비슷한 식물로 감국이 있는데 꽃차례 지름이 좀 더 큰 특징으로 구분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산국과 감국은 구별이 쉽지 않고, 같이 쓰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야국, 황국, 야산국, 야국화 등으로 함께 불리기도 하고 한방에서도 그 약효나 용도를 동일하게 쓰지요. 주로 꽃을 말려 약으로 썼는데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러울 때, 특히 술독을 풀 때나 열을 내릴 때 사용했다고 합니다.

잎을 즙으로 내어 소금과 함께 쓰면 통증치료에도 그만이라지요. ‘본초강목’에는 오랫동안 복용하면 혈기에 좋고, 몸을 가볍게 하며, 쉬 늙지 않고, 위장이 편안하며, 오장을 돕고, 사지를 고르게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믿지 못할 이야기지만 ‘유향’이란 중국 사람은 국화를 먹고 1700세까지 살았다고 하니, 어쨌든 좋은 식물임에 틀림없지요.  

실제로 산국은 먹는 식물이기도 합니다. 어린 순을 삶아 물에 우렸다가 나물로 먹기도 하고, 10월쯤 좋은 꽃을 채취해 술에 담가 그 향기를 즐기기도 하며, 꽃을 따서 향기가 나가지 않게 밀봉해두었다가 뜨거운 차로 마시기도 했습니다.

음력 9월 9일에는 국화전을 만들어 먹기도 했고요. 그 밖에도 꽃을 말려 베개 속에 넣고 자면 머리가 맑아지고 단잠을 잘 수 있다고 합니다. 더욱 멋진 일은 이불솜 사이에 마른 꽃잎을 넣어두면 이불을 들썩일 때마다 조금씩 풍겨 나는 향기를 즐길 수도 있지요.  

옛사람들은 산국 향기를 즐겼는데, 향수 대신 산국 꽃을 향낭이란 주머니에 넣어 몸에 간직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기품 있는 풍류는 어렵더라도 가을이 가기 전 산국을 한 움큼 묶어 책상가에 말려두어야겠어요. 가을이 좀 더 머물 수 있게요.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11. 쑥부쟁이(개쑥부쟁이)-사냥꾼 청년과의 애잔한 전설 간직



 


산야의 나무는 단풍으로, 풀은 가을꽃으로 변신해 아름답습니다. 색깔 따라 일렁이는 마음도 주체하기 어렵네요. 더없이 좋은 푸른 하늘 아래의 가을볕 따사로운 풍광도, 촉촉한 가을비에 젖어드는 풍광도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가을 모습입니다. 그 풍광 속에서 연보랏빛 꽃송이가 풍성한 들국화도 보입니다.

 바로 쑥부쟁이입니다. 다소 신비롭고 때론 특별하면서도 고결해 거리감을 주던 보라색이 쑥부쟁이 꽃무리에서 빛을 발하면 금세 다정하고 넉넉해지면서 무엇보다 청량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들국화라는 말은 원래 식물도감에는 나오지 않는 이름이지요. 이즈음 산에서 만나 들국화라 불리는 꽃 가운데 주로 노란빛 꽃이 피는 것은 산국(‘주간동아’ 860호 참조)이거나 감국이 많고, 희거나 연분홍빛 꽃이 핀다면 구절초기 쉬우며, 연보랏빛으로 피어난다면 쑥부쟁이일 겁니다.

그런데 고민인 것은 그냥 쑥부쟁이는 꽃차례 지름이 좀 작고 분포도 제한적이어서 실제로는 보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바닷가는 물론, 산에서 가장 흔히 보는 그 꽃은 사실 ‘개쑥부쟁이’랍니다.

두 꽃을 구분하려면 작은 꽃송이를 싼 총포라고 부르는 부분이 가늘고 길게 올라온 특징을 찾아봐야 하고, 쑥부쟁이 잎 가장자리의 결각을 가려내야 하지만 사실 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답니다. 만일 우리꽃 산책을 처음 다니는 분이라면 산에 무리 지어 핀 꽃은 대부분 개쑥부쟁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쑥부쟁이라는 특별한 이름은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대장장이) 딸’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옛날 아주 깊은 산골마을에 가난한 대장장이 가족이 살았습니다. 이 대장장이의 큰딸이 병든 어머니와 많은 동생을 돌보며 쑥을 캐러 다녔기에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쑥부쟁이라고 부르곤 했다지요.

어느 날 마음씨 착한 쑥부쟁이는 산에 올라갔다가 상처를 입고 쫓기는 노루를 숨겨 살려주었는데, 노루는 은혜를 꼭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좀 더 길을 가다 이번엔 함정에 빠진 사냥꾼을 보게 됐고 칡덩굴을 잘라 던져서 꺼내주었습니다.

사냥꾼은 아주 잘생기고 씩씩한 청년이었는데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됐지요. 사냥꾼은 부모의 허락을 받아 다음 해 가을에 다시 찾아오겠노라고 약속한 뒤 떠났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가을이 돌아오길 몇 번, 사냥꾼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움에 야위어 가던 쑥부쟁이에게 몇 년 전 목숨을 구해준 노루가 나타나서는 소원을 빌 수 있는 노란 구슬 세 개를 보랏빛 주머니에 담아주고 돌아갔습니다.

쑥부쟁이는 첫 번째 구슬은 어머니 병을 낫게 하는 데, 두 번째 구슬은 사냥꾼을 나타나게 해달라는 데 썼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져 애타게 기다리던 청년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두었고, 착한 쑥부쟁이는 나머지 세 번째 구슬을 그 청년이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에 써버렸습니다. 하지만 끝내 청년을 잊지 못한 쑥부쟁이는 그만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죽고 말았습니다.  

쑥부쟁이가 죽은 자리에 풀이 무성하게 자라 아름다운 꽃이 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쑥부쟁이가 죽어서도 배고픈 동생들에게 나물을 뜯게 해주려고 다시 태어났으며, 이 꽃의 보랏빛 꽃잎과 노란 꽃술을 노루가 준 주머니와 구슬 3개라고 여겨 그 꽃을 쑥부쟁이라고 부르게 됐답니다. 쑥부쟁이는 아직도 청년을 기다리는 듯 해마다 가을이면 꽃대를 길게 빼고 곱게 핀답니다.  

혹 가을 산행 길에 아름다운 쑥부쟁이를 만나거든 연보랏빛 꽃에서 노란 구슬을 찾아보세요.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12. 털머위-스산함 날리는 노란색 생명력



겨울이 가까워져야 빛을 발하는 꽃이 있습니다. 흔히 겨울과 연관된 꽃이라고 하면 예전엔 매화나 동백나무를 떠올렸고, 야생화에 관심이 많아진 이즈음엔 눈 속에서 피어난 복수초를 떠올리지요.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이 꽃들은 아주아주 일찍 피어나는 봄꽃과 맥이 닿아 있는 식물들이랍니다.  

참으로 쓸쓸한 계절, 가을 끝자락에서부터 겨울까지 이어지면서 그 붉던 단풍빛마저 스러지고 난 후의 스산한 초겨울을 환하게 해주는 꽃이 바로 털머위입니다. 윤기 나는 잎새에 밝고 아름다운 노란색 꽃이 가득 피면 회백색의 쓸쓸하던 풍경이 금세 생기를 띠지요.

털머위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봄에 돋아나는 잎이며 줄기를 ‘머윗대’라고 합니다. 우리가 먹는 그 머위와 같은 집안식물임에도 자라는 장소, 모양, 시기가 모두 다르답니다.  

털머위는 다 자라면 꽃대까지 높이가 50cm 정도 되고, 콩팥처럼 생긴 잎은 머위와 비슷하지만, 잎이 두껍고 색이 진하며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긴 그래야 추위와 바람을 이길 수 있겠지요. 또 겨울에도 푸른 잎이 유지되는 상록성입니다.

그런데 이 고운 초겨울 꽃을 겨울이 모진 중부지방에선 보지 못하고 남쪽으로 가야만 만날 수 있다는 게 애석합니다. 그나마 온난한 해양성기후 덕분에 바다를 따라 좀 더 북쪽으로 올라와 울릉도에선 흔히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추위가 덜한 지방에서는 털머위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꽃 모양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고 항상 잎을, 그것도 예쁜 잎을 달고 있는 상록성인 데다 꽃이 흔하지 않은 시기에 꽃을 피우니 그 이상 좋을 수 없지요. 제주 같은 데서는 길가에 줄지어 심어 놓은 털머위를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여름과 초가을까지는 잎만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볕이 드는 길가는 물론이고, 그늘에서도 잘 견뎌냅니다. 숲 속에서도 잘 자라니 나무가 줄 지어 선 곳에 털머위 군락을 만들어 놓으면 어둑한 숲 속이 대번에 환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분에 담아 키워도 좋습니다. 요즈음엔 잎에 노란 얼룩이 들어간 변이 종도 나와 인기가 높답니다.  

털머위는 관상용 외에도 쓸모가 많습니다. 머위처럼 잎자루를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한방에서는 식물 전체를 연봉초(蓮蓬草)라고 해서 약으로 씁니다. 감기와 인후염에 효과가 있고 종기가 나거나 타박상을 입었을 때는 식물체를 찧어서 바르기도 합니다. 생선의 독성에 중독됐을 때는 즙을 내어 마시기도 한다지요.  

혹시 남쪽으로 길을 떠난다면, 쓸쓸한 생각이 가슴 가득 담겨 있다면, 추위를 앞두고도 밝고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털머위를 꼭 한 번 만나보길 권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13. 수크령- 산책길 곳곳서 몸 흔들며 인사



먼 산자락에선 억새가 일렁입니다. 강 하구에서 바닷물을 바라보면 갈대숲이 무성합니다. 자연은 화려한 꽃송이를 가져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닌 듯합니다. 식물 중에는 사람이나 곤충의 눈길을 끄는 꽃잎이 없어도, 달콤한 꿀내음이나 향기로 주위를 자극하지 않아도 바람결에 몸을 맡긴 꽃가루가 닿아 맺어진 인연에 의지해 살아가는 종류도 있습니다. 이런 꽃들은 곤충이 중매쟁이인 충매화와 달리 바람이 중매했다고 해서 풍매화라고 부릅니다.  

억새나 갈대가 그러하고, 들판에 핀 강아지풀이나 오늘 주인공인 수크령도 그러합니다. 늦은 가을에는 이런 풀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만들어내는 풍광이 마음을 더 흔들어놓습니다. 아마도 바람은 풀은 물론, 사람 마음까지도 움직이게 만드나 봅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이런 식물도 꽃을 피우느냐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고등한 모든 식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답니다. 다만 눈에 뜨이는 꽃잎이 없을 뿐이지요.   





갈대나 억새는 작심하고 길을 떠나야 만날 수 있지만, 수크령은 훨씬 가깝게 있습니다. 한강 둔치나 천변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길에서, 혹은 모처럼 가을을 만나러 떠난 산행의 하산 길에서, 혹은 시골마을 가장자리 정자에 잠시 들러 농주로 피로를 풀며 느긋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면 만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멋진 수크령과의 조우는 해가 질 무렵입니다. 꽃(꽃처럼 보이진 않지만)에 달린 빳빳한 털들이 석양을 받아 반짝반짝 생기가 돌면서 일렁거리는 장관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듯합니다.

수크령은 갈대나 억새 혹은 강아지풀처럼 볏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생김새로 치면 강아지풀과 비슷하지만 키가 훨씬 크고 꽃차례도 크며 색도 진합니다. 강아지풀보다 억세 보인다 싶으면 수크령이기 십상입니다.

수크령은 키가 1m까지도 크지요. 강아지풀을 닮은 이삭은 쉽게 말해, 꽃잎이 없는 꽃들이 다닥다닥 원통형으로 달린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리고 꽃가루받이가 이뤄지면 그대로 열매로 익어가는 거지요.

수크령이란 이름은 ‘남자 그령’이란 뜻이랍니다. ‘그령’이라는 식물이 있는데, 식물학적으로 수크령과는 별개입니다.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유명한 유래를 가진 그령은 암꽃과 수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좀 작아서 여성 같은 이미지라면, 수크령은 그령처럼 길가에 많지만 훨씬 억세고 강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실제로 이 풀의 이삭 생김새가 남성스러워 수크령이 됐다고 하네요.  

수크령은 생각보다 자주 보입니다. 건조한 기후에도 강하고, 옮겨 심기도 쉬우며,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고, 꽃이 오래 핀다는 장점을 지닌 식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천을 정리하면서 가장자리에 많이 심었다고 하지요. 화려하진 않아도 독특한 개성만으로 이렇게 훌륭한 장점들을 보여주는 꽃이 수크령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14. 더덕 - 향기만큼 예쁜 더덕꽃 보셨나요?




오감이 살아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꽃을 만날 때는 더욱 그렇지요. 눈으로 보는 즐거움이 가장 먼저지만 거기에 코로 맡는 향기를 보태면 그 아름다움은 더욱 깊어집니다. 숲에서 꽃들을 만날 때 살짝살짝 스쳐오는 향기의 그윽함은 느낄 줄 아는 사람만의 행복입니다.
 
식물은 때론 온몸으로 향기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백리향이란 꽃은 그 향기가 백 리를 가는 게 아니라 발끝에 스친 식물 향기가 백 리를 갈 때까지 이어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랍니다. 요즘 유행하는 허브식물인 셈이지요.  




더덕도 그렇습니다. 먹거리로만 아는 사람은 향긋하게 무쳐 먹고 구워 먹을 수 있는 더덕 뿌리만 떠올릴지도 모르지만, 알고 보면 더덕은 향기를 온몸으로 품어내는 식물이면서 특별하고 아름다운 꽃을 자랑하는 우리 꽃이랍니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옛일이 생각납니다. 식물을 처음 공부하던 시절, 숲길을 걷노라니 한 선배가 “이 근처에 더덕이 있나 봐! 향기가 난다. 잘 찾아봐”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식물 세계에 살짝 발을 들여놓은 초보자 눈에는 식물이 가득한 이 숲에서 잠시 스친 코끝의 인연만으로 더덕 존재를 알아챈 선배의 능력이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제는 많은 사람이 그런 체험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아무튼 그렇게 더덕은 제게 향기로 다가왔습니다. 익숙한 꽃향기가 아닌 몸 전체로 반응하는 그윽한 식물 향으로 말이지요. 다만 애석하게도, 이젠 우거진 숲에서 더덕을 만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답니다.  

더덕을 보고 또 한번 크게 감동했던 것은 꽃을 구경하고 나서입니다. 워낙 먹는 것으로 유명한 식물이라 잎 4장이 마주보며 달리는 독특한 구조의 덩굴식물이란 건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우거진 숲에서는 꽃을 잘 피우지 않는 탓에 한참 후에야 여름에 피는 더덕 꽃을 실제 볼 수 있었습니다.

먹는 식물에서 연상되는 실용적이고 평범한 모습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여지없이 무너졌지요. 초롱 모양으로 아래를 향해 달리는 더덕 꽃은 녹황색이 돌면서도 자주색 점과 무늬들이 멋지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이런 꽃도 있구나!’ 하는 감동을 안겨줄 정도로 매우 개성 있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지요.

왜 이 꽃에 더덕이란 이름이 붙었는지 명확하진 않습니다. ‘향약집성방’ 같은 책에서는 가덕(加德)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가’는 이두식 표기로 ‘더할 가’니 ‘더’로 읽어야 하고, 덕은 ‘덕’으로 읽는다고 설명해놨습니다.  

알다시피 더덕 뿌리는 갖가지 요리 재료로 쓰입니다. 한방에서는 더덕 뿌리 말린 것을 ‘사삼(沙蔘)’이라고 해서 귀한 약재로 치지요. 특히 열을 다스리고, 가래를 삭혀주며, 장을 튼튼히 하고, 독을 없애주는 등 무궁한 약효를 자랑합니다.

인삼(人蔘), 현삼(玄蔘), 단삼(丹蔘), 고삼(苦蔘)과 함께 백삼(白蔘)이라 부르며 오삼(五蔘)의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또 봄엔 어린잎을 삶아 나물로 무쳐 먹거나 쌈을 싸먹어도 향긋하니 좋습니다.

집에 마당이 있으면 덩굴을 올려 꼭 키우고 싶은 특별한 식물입니다. 오늘 저녁에는 재배한 더덕이라도 사서 방망이로 자근자근 두들긴 뒤 고추장 양념구이를 만들어 식탁에 올려놓으렵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15. 용담- 웅담만한 강장제… 꽃도 좋아라





날씨가 쌀쌀합니다. 첫눈 소식이 전해진 지 이미 여러 날이 지났고 겨울 한가운데로 성큼 들어섰지만, 아직도 지난가을에 미련이 남았나 봅니다. 늦가을까지 있던 꽃소식에 ‘혹시나’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되네요. 겨울 끝에 다다르면 빨리 봄이 오길 기다리겠지요. 그때까지는 이 늦은 꽃들에 대한 미련이 계속될 듯합니다.  

용담은 가장 나중에 만난 올해 꽃이었습니다. 국화가 지천이던 지난가을, 용담은 자신만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가진 꽃이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키와 꽃을 가지고서도 결코 기죽지 않은 채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모습, 어느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울 만큼 아름답고 신비로운 보랏빛 꽃, 아랫부분은 봉곳하게 부풀고 윗부분은 나리꽃처럼 벌어진 고운 꽃 모양새….  



용담 종류를 통틀어 부르는 학명 중 속명은 겐티아나(Gentiana)입니다. 학교 다닐 때 익숙하지 않은 학명을 외우느라 골치 아팠는데, 용담을 두고서는 ‘괜찮아’라는 말에서 겐티아나라는 발음을 쉽게 떠올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용담 꽃은 정말정말 ‘괜찮답니다’.

그런데 왜 용담은 꽃을 보고서는 도저히 떠올리기 어려운 이름을 가졌을까요. 용담은 한자로 ‘龍膽’이라고 합니다. 뿌리를 약으로 쓰는데 쓴맛이 워낙 강해 웅담(熊膽)보다 더하다고 해서 용담이 됐다고 하네요. 겐티아나라는 학명은 일리리언(Illyrian) 지방의 왕 겐티우스(Gentius)가 이 식물이 가진 강장제(强壯劑) 효과를 처음 발견한 것을 기념해 붙인 것이라고 합니다. 이래저래 좋은 약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경상도 지방에 용담과 관련한 이야기 하나가 전해옵니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겨울, 한 나무꾼이 사냥꾼에게 쫓기는 토끼를 구해줬습니다. 다음 날 다시 나타난 토끼는 눈 속을 파헤쳐 풀뿌리 하나를 꺼내줬는데, 그 풀뿌리를 먹은 나무꾼은 너무 쓴맛에 토끼가 자신을 놀리는 줄 알고 토끼를 잡아 화를 냈다지요. 그러자 토끼는 어느새 산신령으로 변했고,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갚기 위해 귀한 약초를 알려주노라 하는 말을 남긴 채 사라졌답니다. 그 풀뿌리가 바로 용담 뿌리이며, 나무꾼은 이를 팔아서 큰 부자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방에서 약으로 쓰는 부분은 다발로 된 굵고 허연 수염뿌리로 간기능 보호, 담즙 분비 촉진, 이뇨작용, 혈압강화, 진정 작용, 항염증 작용이 있어 소화불량, 간경변, 담낭염, 황달, 두통 등 많은 증상에 쓰인다고 합니다. 어린 싹이나 부드러운 잎을 먹기도 하는데 생뿌리나 잎을 술에 담가 몇 개월간 우린 뒤 먹으면 고혈압 같은 성인병에 좋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용담 꽃이 무척 아름다워 관상용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마디마다 송이송이 달리는 모습이 보기 좋고, 보라색도 매우 아름다우며, 무엇보다 개화기가 아주 길어 늦은 여름부터 꽃피는 식물이 별로 없는 초겨울까지 즐길 수 있어 더욱 좋지요.

용담은 용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제주를 포함해 남쪽에서 북쪽까지, 높은 산에서 낮은 언덕이나 들녘까지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자라는 진짜 우리 꽃이지요. 이즈음 간혹 남은 용담 잎은 초록빛에서 자줏빛으로 살포시 물들어 있습니다. 지금 산야와 참 잘 어울립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16.참억새- “아아 으악새~” 그 꽃이 맞습니다



초겨울, 흰 눈이 펑펑 내려 소담하게 쌓이기 전까지 들판은 참 스산합니다. 바람이라도 불어 마른 낙엽을 이리저리 쓸고 다니노라면 가슴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한 해의 회한들이 풀어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꽃 이야기를 하기엔 참 어려운 계절입니다. 하지만 꽃은 졌는데도 피어나는 식물이 있지요. 바로 억새입니다. 지난 가을부터 들판에 일렁이던 억새 무리는 하얗게 서리를 맞으면서도 여전히 그렇게 서 있네요.  

흔히 억새가 하얗게 부풀어 오르면 억새꽃이 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즈음 억새꽃은 핀 것이 아니고 진 것이랍니다. 억새꽃은 초가을에 핍니다. 볏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니 화려한 꽃잎은 볼 수 없고, 작은 꽃들이 줄줄이 ‘총’이라고 부르는 꽃자루에 달리며, 이들이 모여서 마치 먼지떨이 모양을 하고 있지요.  

꽃잎도 없이 꽃이 핀 줄 어찌 아느냐고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고 노란 수술이 밖으로 나와 달랑달랑 흔들거린답니다. 식물학적으로는 이때가 바로 꽃이 핀 것이고, 사람들 시각에서는 아직 피기 직전(정확히는 하얗게 부풀기 직전)의 모습입니다. 바람의 도움을 받아 꽃가루받이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가볍고 작은 씨앗이 익고, 그 익은 씨앗이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털이 부풀어오른 것이 바로 하얗게 핀 모습이지요. 어때요, 꽃이 핀 것이 아니고 진 것이 맞지요?  

억새란 이름은 어찌 붙었을까요? 억새는 다 자라면 사람 키를 훌쩍 넘기기도 합니다. 줄기를 옆으로 뻗으며 퍼져 나가는 억새는 잎 너비가 손톱길이만큼 되고 색깔은 녹색을 띠면서 가운데에 하얀 줄이 납니다. 가장자리에 있는 작고 단단한 톱니 때문에 자칫 손을 베일 수도 있지요. 보통 볏과 식물 가운데는 기름새, 쌀새, 솔새처럼 ‘새’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식물이 많은데, 아마도 억새는 그 날카로운 가시와 튼실한 줄기로 ‘억센 새’가 되었나 봅니다.

​억새



갈대 - 억새와 다른 점은 다발처럼 뭉탱이로 보이고, 갈색톤이며 뭉처있고 강가 등에 많이 보인다


그런데 혹시 억새와 갈대를 혼동하고 있진 않나요? 지금껏 많은 사람이 억새를 일컬어 갈대라고 잘못 부르기도 했는데, 사실 억새와 갈대는 별개 식물입니다. 오늘 주인공 억새가 산과 들에 많은 것에 비해, 갈대는 물이 있는 곳에서 많이 자랍니다.

 꽃도 억새는 밑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반면, 갈대는 가지가 위로 올라가면서 여러 번 갈립니다. 다 익고 난 후에도 갈대는 억새처럼 은백색이 아닌 갈색을 띠지요. 우리가 흔히 갈대숲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억새숲입니다. 낙동강 하구 을숙도 주변, 많은 물새가 둥지를 마련하는 그곳에서 자라는 것이 갈대숲이랍니다.  

억새들의 군무는 누구에게나 인상적으로 비치는가 봅니다. 노래와 시에 심심찮게 등장하거든요. 어지간히 나이 든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짝사랑’이란 노래의 “아아 으악새 슬피우우는 가아을이인가아요”라는 구성진 가락에서 ‘으악새’는 새 이름이 아니라 억새를 가리키며, ‘슬피 우는 것’은 바람 따라 흔들리는 억새 모습을 묘사한 것이지요. 단풍놀이가 끝나고 고산(高山) 설화 구경이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 산야에서는 명성산, 천황산, 재약산, 취서산, 신불산에서 마지막엔 제주 들녘까지 이어지는 억새의 군무가 슬프도록 아름답습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17. 한란- 추워서 더 고귀한 향기와 자태





날씨가 참 무섭게 춥습니다. 한동안 겨울 날씨가 따뜻한가 싶더니, 갑자기 닥친 한파에 눈까지 겹쳐 온 세상이 얼면서 마음까지 추워져 절로 움츠려들게 되네요. 기후변화는 단순하게 온난화 추세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돼 우리를 더욱 힘겹게 합니다. 어디 우리뿐이겠습니까. 자연을 구성하는 다양한 생물 역시 그렇겠지요.
 
우리나라 같은 온대 중부지역에서 식물들에게 가장 힘든 시기는 겨울입니다. 영하로 내려가는 기온에서는 수분이 정상적으로 이동하지 못한 채 얼어버려 생존 자체가 힘겨워지지요. 한해살이풀들은 물론, 여러해살이풀들도 지상부는 사라지고 땅속에서 겨울을 납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식물기관 중에서도 가장 연약하고 섬세한 꽃은 온실 속이 아니고서야 겨울에 피어나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겨울에 피는 꽃을 떠올려보면 먼저 동백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나무에 피는 꽃인 데다 조금 추운 전북지역으로만 올라와도 봄꽃이 돼버리지요. 그런데 정말 겨울에 피는 꽃이 있는데, 바로 한란(寒蘭)입니다. 이름도 추운 데서 피는 난초라는 뜻이지요. 한반도에서는 자생하는 곳이 제주 한라산자락 한 곳이라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봄꽃이 될 염려도 없는, 그냥 말 그대로 겨울꽃 그 자체입니다.  

한란은 난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가녀리고 향기로운 동양 난초의 품격을 잘 드러내는 꽃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선형 잎은 늘씬하게 뻗어 뒤로 젖혀지고, 한겨울 그 사이에서 올라온 꽃대에는 황색이라고도, 녹색이라고도, 자색이라고도 하기 어려운 아주 신비롭고 아름다운 꽃이 피지요.  

한란은 꽃 피는 시기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자라는 곳도 특별합니다. 제주 서귀포 자생지는 그 자체가 한란 종(種)과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은 유일한 한란 자생지로 가장 북한계(北限界)를 이룬다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난초들은 조직배양을 통해 대량 생산, 보급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꽃가게에서 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연 그대로의 다양한 변이를 지닌 자생지에 핀 한란의 경우, 정말 ‘탐욕스럽게’ 욕심내는 사람이 많아 대부분 훼손됐다는 점이지요. 현재 한란 자생지는 몇 겹으로 울타리가 쳐진 천연 요새 같은 모습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한란은 사람들이 하나하나 개체를 확인,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 손길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렇게 보호한 지 그리 오래지 않아 다 사라져버린 줄 알았던 한란이 여기저기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보존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도 흐뭇하게 보람을 느끼고 있답니다.  

혹시 1840년 제주에 유배되어 9년 동안 살면서 제주 한란을 재배하고 또 그 모습을 그림으로 즐겨 그린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제주 한란을 발견하고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날씨도, 세상도 추우니 그 고고한 한란의 자태와 은은한 향기가 더욱 귀하게 생각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18. 동백나무 - 따뜻한 섬마을엔 벌써 꽃망울?



누가 뭐래도 겨울꽃은 동백꽃이 아닐까 싶습니다. 좀처럼 흰 눈을 볼 수 없는 남쪽 섬에서 불붙듯 피어난 붉은 동백꽃잎에 소금이 변해서 된 듯한 하얀 눈자락이 흩날리다가 앉으면 동백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모습이 되지요.  

오래전 동백꽃은 겨울꽃일까, 아니면 봄을 알리는 봄꽃일까 하고 고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름에 ‘겨울 동(冬)’ 자를 붙였으니 겨울꽃일 듯싶지만 영하의 추운 날씨에 ‘웬 꽃?’하는 마음도 들고, 대개는 이른 봄 꽃소식을 전할 때마다 들먹이는 것이 동백꽃이다 보니 봄꽃일 듯도 싶었지요. 그런데 식물을 공부하느라 식물 따라, 꽃 따라, 때론 열매 따라 전국을 다니다 보니 알게 되더군요. 따뜻한 남쪽 섬, 동백나무의 제 고장에 가보니 분명 동백꽃은 겨울꽃이었습니다. 그곳에선 지금쯤 동백나무에서 꽃망울이 올라오고, 1월이면 동백꽃이 한창이기 때문입니다.






동백나무는 상록성이며 잎이 넓은 활엽수입니다. 7m 정도까지 자라는데, 간혹 18m까지 자라기도 합니다. 언제 봐도 싱그러운 잎새는 사시사철 윤기로 반질거리고, 가장자리에는 잔톱니가 있어 물결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꽃잎은 보통 다섯 장인데 간혹 일곱 장이 되기도 하고, 서로 조금씩 겹쳐서 아랫부분은 붙어 있습니다. 그 사이로 드러나는 수많은 수술은 마치 일렬로 붙여 돌돌 말아놓은 듯 단정하지요.  

짙푸른 잎새에 붉은 꽃잎, 그리고 샛노란 수술이 만들어내는 색의 조화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동백꽃만의 아름다움입니다. 여기에 오래되어 회갈색으로 매끈거리는 수피가 어울려 운치를 보태면, 동백꽃은 한겨울에 완벽한 아름다움을 선보입니다.

동백나무는 그 열매도 보기 좋답니다. 녹색의 작은 방울 같던 열매가 갈색으로 익으면서 세 갈래로 벌어지는데, 그 속에서 잣처럼 생겼으나 좀 더 큰 종자가 드러나지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서러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그 꽃 말이에요.♪♬” 

저는 동백나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노래입니다. 바로 ‘선운사’란 시에 노래를 붙인 곡인데요. 동백꽃의 장렬한 낙화를 두고 ‘눈물처럼 후두둑 진다’는 이 표현보다 더 마음에 와닿는 말을 지금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누구라도 동백꽃이 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 모습이 가슴속에 선연하게 새겨질 거예요. 꽃잎 하나 상하지 않은 그 붉은 꽃 덩어리가 그대로 툭툭 떨어지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모습을 두고 가장 극적인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제주나 이웃 일본에서는 이를 불길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연말이니 오페라 공연도 많은데요. 동백나무와 관련한 오페라도 있습니다. 뒤마의 소설 ‘춘희’와 이를 변형해 오페라로 만든 베르디의 ‘춘희’가 그것입니다. 원래 제목은 ‘라 트라비아타’인데, 주인공 비올레타는 한 달 가운데 25일은 흰 동백꽃을, 나머지 5일은 붉은 동백꽃을 들고 사교계에 나오는 여자였답니다. 일본에서는 동백나무에 ‘춘(椿)’ 자를 붙이지요. 그래서 ‘라 트라비아타’가 일본으로 건너가 ‘춘희’라는 제목이 붙은 거예요.

곧 춘희는 ‘동백나무 아가씨’란 뜻인데,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 ‘춘(椿)’ 자를 ‘참죽나무 춘’으로 읽기 때문에 ‘참죽나무 아가씨’라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원제 그대로 ‘라 트라비아타’로 쓰는 편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도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이미자 씨의 그 유명한 ‘동백아가씨’란 노래가 있지요. 꽃을 보고도 머릿속에 노래만 떠오르니, 연말이라 마음이 들뜨긴 했나 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19. 두루미꽃 - 날개 편 두루미처럼 행복 가득 기원



벌써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밝았네요. 우리나라는 언제나 역동적이지만, 되돌아보니 지난해에는 선거를 비롯해 유난스레 나라가 들썩거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어렵고 질시하고 분열됐던 한 해를 뒤로 하고 진정으로 희망에 찬 한 해를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나라는 물론이고 우리 가정과 개개인 모두가 말이죠.  

그래서 저는 새해엔 상서로운 일이 많길 바라는 마음에서 꽃으로 인사를 드릴까 합니다. 바로 두루미꽃으로요. 사실 연하장 등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새가 두루미인데, 흔히 학이라고도 부르는 두루미가 행복과 행운을 상징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두루미꽃 얘기로 근하신년을 대신합니다.  

흰 눈이 쌓인 겨울 들판에 두루미들이 우아한 자태로 서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마저 맑아져 스스로 고결한 느낌까지 듭니다. 식물인 두루미꽃도 곱기는 매한가지이지요. 봄이면 땅 위로 줄기가 올라와 심장을 닮은 예쁜 잎이 하나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또 하나의 잎이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거기서 꽃대가 올라와 희고 작은 꽃들이 줄줄이 촘촘하게 달리지요. 그 자태가 마치 날개를 편 두루미 같습니다. 물론 이름도 그런 모양 때문에 붙여진 것이고요.  

재미난 것은 이 세상 모든 새 가운데 두 번째로 큰 새에 속하는 두루미 집안과는 달리, 두루미꽃 집안 식물들은 키가 작다는 점입니다. 다 자라야 한 뼘쯤 올라올까요. 꽃대에 달리는 꽃들도 하나하나 구분되지 않을 만큼 아주 작지요. 또 두루미는 겨울 들판에서 만나지만 두루미꽃은 초여름 깊은 숲에서 만날 수 있어요.   





두루미는 다정한 부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평생 함께 간다고 알려졌지요. 물론 여러 마리가 무리지어 살긴 하지만요. 그런데 두루미꽃은 조금 다르답니다. 땅속에서 뿌리가 이어져 달리고 그 마디에서 줄기가 땅 위로 올라오기 때문에 보기엔 각각 다른 개체 같지만, 알고 보면 뿌리가 하나입니다.

형제도 부부도 아닌, 동일한 복제 개체들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하지만 여름 숲에 무리를 이루어 하얗게 꽃대를 올린 두루미꽃을 바라보면 진귀한 겨울철새 두루미를 만난 듯 아름답고 신선한 느낌이 듭니다.

두루미꽃은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작은 꽃들이 모여 만들어낸 꽃차례 길이는 손가락 두 마디쯤 되지요.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기 시작하면 흰 꽃이 있던 자리에 구슬같이 작고 붉은 구슬이 달려 이 또한 보기 좋습니다.

쓰임새로 보면 크게 쓰이는 듯싶지는 않아요. 주로 피와 관련한 증상에 효과가 있어 피를 맑게 하고, 피가 과도하게 나거나 토하거나 할 때 처방한다고 합니다. 생약 이름이 이엽무학초(二葉舞鶴草)인데 잎(날개)을 두 개 가지고 춤추는 학처럼 생긴 풀이라는 뜻이니 참으로 멋진 이름이지요? 그 밖에 지피용(땅에 넓게 깔리는 식물)으로 심기도 하고, 어린잎은 살짝 데쳐 무쳐 먹거나 된장국거리 혹은 묵나물로도 쓴답니다.

두루미가 행복과 행운의 상징이듯, 이 두루미꽃을 보면서 행복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20.복수초- 얼음 뚫고 피어난 ‘영원한 행복 전령사’



새해가 밝았습니다. 어제 뜬 해와 같은 해지만, 뜨는 해를 향해 간절한 모습으로 무엇인가를 기원하는 수많은 마음이 보이더군요. 새해가 있어 어려웠던 많은 일을 뒤로하고 새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새해 첫 우리꽃 산책으로 새해 인사와 축복을 전할까 합니다. 바로 복수초(福壽草)를 소개하면서 말이에요. 복수초가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고 오래오래 사시라고요.  

복수초라는 이름은 한자로 복 복(福) 자에 목숨 수(壽) 자, 즉 복을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뜻입니다. 노랗게 피어나는 복수초를 보면 누구나 축복받은 느낌을 갖게 되지요. 지방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땅 위에 꽃만 불쑥불쑥 튀어나온 것이 인상적이어서 땅꽃, 얼음 사이에서 피어나 얼음새꽃 또는 눈색이꽃, 새해가 시작할 때 피는 꽃이라서 원단화라고도 합니다. 눈 속에 피는 연꽃과 같다는 의미로 설연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꽃말은 동양에서는 ‘영원한 행복’입니다.  





재미난 것은 복수초가 서양에선 ‘슬픈 추억’이란 의미를 지닌다는 점입니다. 복수초 집안의 식물을 통틀어 부르는 학명은 아도니스(Adonis)인데,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이름과 똑같습니다. 아도니스가 죽어가면서 흘린 피가 진홍빛 복수초를 피워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땅속에 살던 페르세포네라는 여신이 아도니스를 살려내자, 제우스는 아도니스에게 평소 사랑하던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와는 지상에서 반년, 페르세포네와는 지하에서 반년을 살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복수초 역시 지하에서 살다 봄이 시작되자마자 사랑 이야기를 전하려고 지상으로 나오는 것이라니, 생각해보면 이 역시 역경을 초월한 사랑의 메시지임에 틀림없습니다.  

복수초는 일찍 핀다는 매력이 아니더라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밝아질 만큼 생김새가 참 아름답습니다. 복수초는 미나리아재빗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암갈색 수염을 많이 단 굵고 짧은 뿌리를 땅에 박은 채 겨울이 가기를 기다리다, 미처 봄이 오기도 전에 성급한 꽃망울부터 땅 위로 올려 보내지요.

햇볕이 따사로운 어느 봄날, 마치 풍선이 부풀어 오르듯 꽃망울이 커져 그 화려한 꽃잎을 한껏 벌려놓습니다. 20~30장이나 되는 수많은 꽃잎이 포개어 달리고, 그 사이에는 더욱 밝고 선명한 노란색 수술이 가득 모여 있지요. 그 수술 속을 헤치면 도깨비방망이처럼 돌기가 난 연둣빛 암술이 자리 잡고 있고요. 낮에 빛이 있어야만 펼쳐지는 복수초 꽃잎은 윤기로 반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복수초를 화분에 심거나 봄 화단의 앞자리에 심어 키우는데, 활엽수에 잎이 나기 전에 꽃이 피므로 활엽수 아래에 심어도 좋습니다. 복수초 꽃잎이 질 즈음 나뭇가지에 싹이 돋으므로 서로 햇볕을 가릴 염려가 없지요.

한방에서도 복수초를 이용합니다. 생약명은 측금잔화인데, 꽃이 필 때 뿌리를 포함한 전초를 햇빛에 말린 후 달여 이용합니다. 식물체 내에 배당체 아도닌을 함유하고 있어 심장을 튼튼히 해주고 이뇨효과도 있다고 하네요.  


복수초는 추운 노지에서 따뜻한 곳에 가져다 놓으면 2주일 만에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올 한 해 복수초를 잘 키워 내년 새해에는 이 꽃 한 포기로 존경하는 분에게 마음을 전하면 어떨까요. “복 많이많이 받으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하고 말입니다. 아름다운 정성과 복수초의 밝음이 그대로 전달될 듯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21. 노루발- 한겨울 눈 속 초록의 예쁜 잎



참 추운 겨울입니다. 눈도 많이 내리고요. 한동안은 눈이 내리는 족족 녹더니, 이번엔 오래도록 대지를 덮고 있습니다. 숲에 속속들이 내려앉은 눈도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차가운 겨울 숲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노라니 움츠러든 몸이 조금씩 훈훈해집니다. 무엇보다 이런저런 생각과 욕심, 회한으로 탁해졌던 마음이 깨끗해지고 정신도 맑아지는 듯해서 좋습니다.  

온 숲 바닥, 나무 사이사이에 순백의 눈이 때 묻지 않은 채 그대로입니다. 이를 배경 삼아 이리저리 뻗어 내린 회갈색 나뭇가지들의 조화가 참으로 그윽하고도 애잔합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겨울 숲 풍광입니다.  

이런 숲에선 생명의 느낌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간혹 산짐승의 발자국을 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흔적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문득 숲 바닥에 동글동글 살아 있는 초록 잎새들이 선명하게 눈에 박혀옵니다. 겨울 숲에서 작은 풀 한 포기는 점처럼 자라지만 그래도 생명으로 다가옵니다. 바로 노루발입니다. 노루 발자국은 눈 속에서 실체를 느낄 수 없지만, 노루발이라는 이름의 이 풀은 초록으로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노루발은 노루발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자 중부지방에선 흔치 않은 상록 풀입니다. 물론 한여름의 생기로 반짝이는 초록빛은 많이 퇴색했지만 한겨울에 이게 어딥니까. 콩팥 모양의 동글동글한 잎 여러 장이 한 포기를 만들며 이 산 저 산 어딘가에서 푸르게 살아 있으니 말입니다. 더러는 꽃이 달렸던 꽃대 그대로 열매가 익었다가 씨앗마저 터뜨려 내보내고, 남은 갈색의 대와 열매 껍질이 지난 계절의 흔적처럼 남아 있기도 합니다. 잎은 잎맥이 발달한 부분의 색깔이 연해 마치 무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흔적만 남은 꽃은 이미 한여름에 피었습니다. 한 뼘쯤 꽃대가 올라오고 10개 남짓한 흰꽃이 차례로 달리지요. 암술이 길게 뻗어 나온 모습은 아름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노루발의 전체적인 모습을 귀엽고 친근감 넘치게 만들어줍니다. 보통 한번 만나면 근처에서 몇 포기씩을 함께 보는데, 이는 가는 줄기들이 땅속에서 이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쓰임새로 치면 상록의 예쁜 잎이 있으니 관상용으로 가능할 듯한데, 다소 그늘진 정원 또는 화분에 담아 키우는 용도로 적절할 것입니다. 약용식물로는 유명한 풀입니다. 이 풀에 전하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한 부인이 사냥꾼을 피해 도망쳐온 노루를 치마폭에 넣어 숨겨주었고, 이후 아파서 사경을 헤맬 때 그 노루가 물고 온 풀을 먹고 살아났다는 내용입니다.

노루발이란 이름은 노루가 가져다 놓고 가서 붙은 것이라고도 하고, 가녀린 꽃대가 노루발과 같다고 해서 그리 부른다고도 합니다. 어찌됐든 한방에선 이 풀을 녹수초(鹿壽草)라고 해서 약으로 씁니다. 생약 이름에도 노루가 목숨을 살린 사연이 담겨 있네요.

노루발의 꽃말은 ‘소녀의 기도’라고 합니다. 고개 숙인 꽃송이들 모습과 순결한 흰빛이 그리 느껴지기도 합니다. 올 한 해 행복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부족한 글에 담아 꽃으로 대신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22. 매화(매실나무)- 고고한 雪中梅, 품격 있는 향기






사람들은 참 잘 적응하는구나 싶습니다. 이어지던 모진 추위 끝에 날씨가 좀 풀리니 모두 따뜻해졌다고들 하네요. 예전 같으면 추운 날씨인데도 말입니다. 그새 추위에 익숙해졌나 봅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서 날이 좀 따뜻한 것 같으니 이내 이런저런 꽃구경 생각이 나네요. 이즈음 떠오르는 여러 꽃 가운데 오래도록 사랑받는 꽃은 매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중에서도 이른 봄에 꽃이 피어 눈 속에서도 볼 수 있다는 설중매(雪中梅) 말입니다. 잔설 속에서 매화가 꽃봉오리를 열고 아주 은은하면서도 품격 있는 향기를 보낸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하지만 그런 욕심은 내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곧 다시 닥쳐올 추위에 꽃잎이 상할까 염려해서입니다.  

그런데 꽃 이야기를 하느라 매화라고 했지만, 정확한 식물학적 이름은 매실나무입니다. 사실 매화라 부를까, 매실나무라 부를까 고민이긴 합니다. 같은 나무인데도 이른 봄꽃을 피우면 매화가 되고 여름에 열매를 맺으면 매실나무가 되니까요. 열매 값어치를 생각하면 매실나무라 불러야 하고, 깊이 우러나는 단아한 꽃송이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매화라 불러야 제격입니다. 기준으로 삼은 식물도감에 매실나무라고 기록돼 있으니 공식적으로는 이를 따르려 하지만, 꽃에 마음을 빼앗겨 매화 혹은 매실나무로 오락가락하는 것을 과히 허물치 않았으면 합니다.  

설마 매화와 매실나무가 같은 나무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요? 매화는 나무지만 흔히 꽃이라고 생각하기 쉬워 꽃과 나무란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꽃이란 나무든 풀이든 고등 식물에겐 모두 있는 기관이지요.  

오늘은 꽃에 마음을 두고 이야기하겠습니다. 매화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 조상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군자의 고결함을 지녔다고 하여 사군자로 추앙받는 건 누구나 알 것입니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을 보면 옛 선비들이 매화를 귀하게 여긴 이유는 첫째 함부로 번성하지 않는 희소함 때문이고, 둘째 나무의 늙은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며, 셋째 살찌지 않고 마른 모습 때문이며, 넷째 꽃봉오리가 벌어지지 않고 오므라져 있는 자태 때문이라고 합니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꽃을 피워내는 그 의연한 기상과 단아한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을 것 같습니다. 물질은 너무 풍성하고 정신과 행동은 절제되지 않는 오늘날 가장 적절한 의미를 가진 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화 자태와 비견할 또 하나의 매력은 그 향기에 있습니다. 어떤 이는 매화 향기가 ‘귀로 듣는 향기’라고 합니다.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마음을 가다듬은 고요한 분위기에서 비로소 진정한 향기를 마음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매화를 따서 빚은 술은 매화주, 매실을 넣어 만든 술은 매실주입니다. 흰죽이 다 쑤어질 무렵 깨끗이 씻은 꽃잎을 넣은 매화죽이나 말려뒀다가 끓여 마시는 매화차는 향기를 아는 이들이 즐기는 음식과 차이지요. 

매화 꽃 모양은 다양합니다. 꽃을 보자고 만든 품종들은 빛깔에 따라 흰 매화, 홍매화로 가르고 꽃잎 수가 많으면 만첩매가 되며 가지가 늘어지면 수양매가 되지요. 그러나 특히 꽃을 즐기는 이들은 그 어느 품종보다 흰색의 홑겹꽃이 일찍 꽃을 피우고 향기가 짙다 하여 귀히 여기는데, 그중에서도 자색이 들어 있지 않은 녹두 빛 꽃받침잎을 가진 ‘청악소판’이란 품종을 가장 높이 치기도 합니다.  


꽃이 지고 난 후 익어가는 매실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따뜻한 매실차 한 잔을 마시며 오래 묵은 가지에서 피어날 매화를 기다려보렵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23. 팔손이- 비진도에서 만나는 우윳빛 꽃송이




올 초 문득 팔손이가 꽃을 잘 피웠을지 염려됐습니다. 겨울이 다가설 즈음부터 우리나라 가장 남쪽 끝에서 우윳빛 꽃송이를 한껏 피워, 보는 이 마음까지 환하게 만들어주는 꽃이 바로 팔손이인데, 올핸 남쪽에서도 한파가 계속돼 걱정이 앞서네요. 사실 땅도 얼고 물도 어는 겨울에 몸체 가득 수분을 담은 식물이 땅을 뚫고 올라와 꽃을 피우길 원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그래도 남쪽 따뜻한 곳이긴 하지만 겨울철 꽃 구경을 가능하게 해주는 꽃이 팔손이지요.  

팔손이는 풍모가 워낙 이국적인 데다, 제주나 남쪽 섬에서는 해변가에서 자라지만 중부지방에선 대부분 분에 넣어 실내에서 키우는 식물입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들여온 수많은 관엽식물 가운데 하나려니 생각하는 분이 많지만, 실은 이 땅에서 절로 나고 자라는 우리 자생식물이랍니다.

팔손이 자생지는 경남 통영에서 배를 타고 다시 한참을 가다 보면 나오는 한산면 비진도입니다. 이 섬에는 크게는 4m까지 자라는 팔손이 자생지가 있는데, 천연기념물 제63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지요. 물론 인근 다른 섬에서도 팔손이를 볼 수 있지만 태풍 피해를 입기도 하고 사람들이 마구 캐어 내다 판 탓에 천연 자생지가 많이 줄었답니다.

이렇게 귀하디 귀한 팔손이를 그래도 남쪽지방 정원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건 1970년대 이순신 장군 전승지를 꾸미면서 함께 했던 이식사업이 성공한 덕분이라고 합니다. 어찌 됐든 아주 먼 섬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겨울이면 풍성한 우윳빛으로 꽃을 피우는 팔손이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요.  

씩씩하고 무성하게 자라서 언뜻 풀처럼 보이지만 사실 팔손이는 두릅나뭇과에 속하는 작은 키 나무입니다. 그것도 언제나 푸른 상록수지요. 어린아이 팔뚝 길이만한 잎이 8갈래로 갈라진 모양새 때문에 팔손이란 이름이 붙었다지만, 7개짜리 잎도 있고 9개짜리 잎도 있습니다. 겨울철에는 잎이 아래로 처지는데, 꽃을 더 돋보이게 하려는 잎의 배려일까요.

팔손이에게는 엉뚱하게도 인도 공주와 얽힌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옛날 인도에 바스라라는 아름다운 공주가 살았는데, 어머니에게서 받은 예쁜 반지 2개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어느 날 공주 방을 청소하던 한 시녀가 반지들을 보고 호기심에 양손 엄지손가락에 하나씩 껴봤지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뺄 수가 없자, 큰 벌을 받을까 두려워 다른 반지를 덧씌워 감춰버렸습니다.


상심한 공주를 위해 궁궐의 모든 이가 손을 내밀고 검사를 받게 됐고, 시녀는 엄지손가락 두 개를 감췄지요.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떨어지면서 시녀는 한 그루 나무로 변했는데, 이 나무가 바로 팔손이라는 것입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는‘그렇다면 이 식물 이름은 팔손이 아닌 팔손가락이 돼야겠네’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해봤답니다.

비진도에서는 팔손이를 총각나무라고 부릅니다. 마음속에 비밀을 간직한 채 잎새처럼 넓적한 얼굴로 환하게 웃는 섬 총각의 투박한 모습을 보는 듯하네요. 그래서인지 팔손이의 꽃말은 ‘비밀’이랍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24. 새우난초- 오묘한 꽃 색깔 관상용으로 ‘딱’





한라새우난초​


우리 꽃을 만나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은 참 경이롭습니다. 이름 모를 산야의 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오면, 이내 마음에 담아뒀다가 두고두고 되새기곤 합니다. 거기에 꽃 각각에 깃든 사연과 의미들을 더하다 보면 안타깝고 놀랍고 즐거운 감정이 교차하면서 결국 입가에 미소를 띠게 되고, 그럼 어느새 꽃과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이 돼 있습니다.  

새우난초도 그런 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겨울 끝자락에 볼 수 있는 꽃으로, 원래 자생지에서는 제대로 된 봄에 피지만 분에 담아 실내에서 키우면 훨씬 일찍 꽃구경을 할 수 있지요. 자생난초라고 하면 춘란이라고 부르는 보춘화와 여러 변이품종이 좀 알려졌고, 거기에 더해 희귀한 한란(겨울이 시작할 즈음 소개드렸던 한란 기억나시나요?)의 쭉쭉 뻗는 잎사귀들을 보면서 뭉뚱그려 그냥 동양란이라고 부르며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우리 숲에는 야생 난초가 매우 다양하게 있고, 그중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꽃을 가진 난도 제법 여럿입니다. 그 가운데 새우난초와 그 집안 식구들이 관상용으로 가꾸기엔 최고인 듯합니다. 복주머니난이나 광릉요강꽃처럼 꽃으로 치면 더욱 화려한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자생지에서도 멸종 위기에 처한 종들이다 보니 보전하는 일이 더 급하고, 설령 곁에 두고 가꾸려 해도 키우는 일 자체가 매우 까다로워 죽이기 쉽습니다. 그러니 아예 포기하는 편이 낫지요.  





새우난초를 들여다보면 일단 꽃 색깔이 참 오묘합니다. 흰색과 분홍색과 갈색이 적절히 어우러져 특별히 무슨 색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색을 갖고 있습니다. 포기마다 안정감이 있는 전체적인 모습도 좋고, 약간 연한 느낌이 나는 주름진 잎사귀도 보기 좋답니다. 하지만 새우난초가 가진 진짜 재미는 같은 집안 식구인 금새우난과 피를 섞었을 때 경험할 수 있지요. 샛노랗고 화려한 꽃잎을 가진 금새우난과 새우난초를 교잡하면 그사이에서 정말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꽃 색깔이 나오고, 이들을 각기 품종화하면 고가에 거래할 수도 있습니다. 

새우난초는 제주를 비롯한 남해 섬 지방에서 드물게 자랍니다. 위로는 안면도에서까지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풀이지요. 밑부분이 포개지고 주름이 깊은 잎사귀가 2~3장 나오고, 그 가운데서 꽃대가 쭉 올라오면 키가 어른 무릎쯤 됩니다. 새우난초 잎은 상록성이지만 다음 해 봄에 교체되지요. 꽃은 원래 봄에 피며, 자생지에서는 4~5월이 개화 적기입니다. 꽃자루가 올라오고 여기에 줄줄이 꽃송이가 달리는데, 열 개쯤 될까요.

새우난초라는 이름은 뿌리를 보면 마치 새우등처럼 마디가 있어서 붙은 것 같습니다(이 마디는 1년에 하나씩 생긴다고 하네요). 또한 속명이 칼란데(Calanthe)인데, 이는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희랍어 칼로스(calos)와 꽃이라는 뜻을 가진 안토스(anthos)의 합성어라 하니 아름다운 꽃의 대명사라 할 만하지요. 한방에서는 구자련환초(九子連環草)라는 생약명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편도염, 림프샘염, 타박상, 종기로 인한 독 등에 쓰인다고 합니다. 보기도 아까운 꽃을 먹다니 아무래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새우난초 꽃구경이나 하면서 남은 추위를 이겨볼까 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25. 참뱀차즈기- 뱀같이 똬리 틀고 ‘황홀한 유혹’





올해는 계사년 뱀 해입니다. 뱀 해이다 보니 발밑을 스르르 지나가는, 보기도 좋지 않을뿐더러 징그럽기까지 하던 뱀 이미지가 좋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겨울잠을 자느라 한동안 사라졌다가 나타나 허물을 벗으니 매번 다시 사는 영생의 상징이요, 집안에 풍요와 재물과 복을 주는 신이면서 지혜로움까지 갖춘 존재이지요. 그래도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뱀을 좋아하긴 쉽지 않은데, 이런 모든 찜찜함을 한 번에 날려주는 우리 꽃이 있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뱀 모습을 한 참뱀차즈기입니다.
 
참뱀차즈기 꽃을 보면 정말 뱀을 닮았습니다. 통꽃인 꽃잎이 벌어진 모습이 마치 먹이를 잡아먹으려고 입을 크게 벌린 뱀 같지요. 길고 가늘게 나온 암술은 꼭 뱀 혀 같고, 자세히 보면 살짝 드러나는 수술들은 뱀 이빨 같습니다. 참뱀차즈기 한 포기에서 길게 올린 꽃대는 똬리를 튼 채 머리를 꼿꼿이 치켜든 뱀 모습처럼 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뱀 말이지요.

참뱀차즈기는 꿀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라 희귀식물 범주에 들기도 합니다. 참뱀차즈기의 식물학적 의미는 정말 특별하답니다. 설악산, 가야산, 소백산, 지리산 같은 크고 깊은 산, 물 빠짐이 좋고 살짝 햇살이 들거나 반쯤 그늘이 진 숲 속에서 드물게 자라니 식물로서는 귀한 존재이지요.


참뱀차즈기는 다 자라면 어른 무릎 높이쯤 됩니다. 줄기가 아닌 뿌리에서 나온 잎들은 긴 자루를 달고 타원형 잎을 가집니다. 꽃은 한여름에 핍니다. 연한 노란색 꽃이 꽃대 마디마디에 몇 개씩 달려 꽃잎을 펼치지요.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꽃이 여러 개 모여 있는 모습을 숲에서 만나면 참 아름답고 인상적입니다. 이 식물이 자라 꽃을 피우는 곳은 워낙 좋은 숲이라 그때 무더위가 한창이더라도 귀한 느낌이 든답니다.  




참뱀차즈기라는 이름에서 ‘참’은 진짜라는 뜻이고, ‘차즈기’는 자줏빛을 띤 차즈기라는 식물의 잎 모양을 닮았다는 의미로 붙었습니다. 주름진 잎이며 겨울에 땅바닥에 붙어서 난 모양이 배춧잎을 닮아 그런지 뱀배추라고도 하고, 곰보배추라고도 부릅니다.  

장소를 가리는 데다 재배법도 다소 까다롭지만 매우 훌륭한 관상용 식물입니다. 한 포기씩 심기보다 나무를 심어놓은 곳 가장자리쯤, 그늘이 조금 드는 곳에 무리지어 심는 것이 보기에 좋지요. ‘배추’라는 말이 붙은 별칭을 가진 식물답게 어린순은 식용으로도 쓰입니다.  

이쯤 되면 계사년에 가장 어울리는, 아름답고 소중한 뱀을 닮은 존재를 만난 것 맞지요? 뱀이 가지는 좋은 의미와 참뱀차즈기가 보여주는 고운 모습을 함께 간직하면서 행복하고 좋은 일만 가득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출처] : 이유미 국립수목원 산림생물조사과장 : <이유미의 우리꽃 산책> / 주강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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