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한 장마와 불편한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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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20. 7. 29.

지리한 장마가 시작되던 일주일 전 1년 그리고 두달을

방황하던 녀석이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십몇년의 세월 반복되어지는 일이기에

오랫만에 보는 반가움이랄것도 사치이고

계절에 맞지 않는 옷에 슬리퍼 끌고 들어서는

모습에 한숨뿐이고 또다시 억장이 무너졌다.

딱히 해줄 이야기도 들어야 할 이야기도

없어 말없이 고깃집으로 데려가 겹살에

이슬이만  비워내며 침묵을 지키고 들어왔다.

어차피 마주 앉아 미주알 고주알 지나간 과거를

들추어 내본들 아님 그냥 내가 하고픈 이야기는

녀석에겐 우이독경(牛耳讀經)일 뿐이니

그저 말없이 지켜봐야 할 뿐이다.

몇일전 몇푼 쥐어준 용돈을 들고 바람좀 쏘이구

오겠다는 녀석의 거짓말은 알고도 속아주고

아님 모르고도 속아주고 말아야 했다.

오랫만에 편지지를 꺼내어 녀석에겐 그저

이순(耳順) 부모의 잔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을

내용의 편지를 써서 책상위에 올려 놓았다.

집 나가 있을때 내 영혼의 자유로움과

불편한 동거에서 얻어지는 그저 별 사고없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손톱만큼의

부모로서의 의무감 사이에서 번뇌의 시간만

길어지고 서서히 지쳐가는 나를 발견한다.

밤낮으로 게임기에 매달리고 집구석에 같이

쳐박혀 서로의 눈치를 봐야하는 불편한 동거다.

저녁 먹지 않겠다는 녀석을 등돌리고

혼자 치킨 한조각에 이슬이만 비워내고

억지로 잠을 청해 보지만 쉽지 않다.

할일 없이 폰만 만지작 거리다 몇개 되지도 않는

톡 대화방에서 어쩔 수 없이 살려야 하는

단톡방 몇개만 남겨두고 모두 빠져나왔다.

어차피 내가 옆구리 찌르듯 먼저 톡을 해야

그저 형식적인 답을 받아내는 그러한 톡방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동안 고민하기도 했다.

이미 지난 밤 일기예보를 확인 했음에도 눈을

뜨자마자 베란다로 나가 밖을 확인한다.

아무래도 오늘은 비를 맞더라도 어딘가 나서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