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타 (동영상) ★

朴泳柱 2019. 8. 29. 12:22

                                                                    "Elvira Madigan" OST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바장조 K.467   

Mozart, Piano Concerto No.21 2nd mvt in F major K.467, Andante 

                          Performed by The city of Prague (Czech Praha) Philharmonic Orchestra

                          演奏 : 프라하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 (체코 프라하 交響樂團)

   Wolfgang Amadeus Mozart (27 January 1756 – 5 December 1791)

   was an Austrian composer, pianist, violinist, conductor

    2015年 11月 17日 作 

  피아노 협주곡 21번 C 장조(K.467)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85년에서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이다.

  곡의 구성

  1.알레그로 마에스토소 (Allegro Maestoso)         장엄하고 활발하게.       C major

  2.안단테 (Andante)                                          조용하게  andante in F major

  3.알레그로 비바체 아싸이 (Allegro vivace assai) 매우 빠르고 힘차게       C major

  Wolfgang Amadeus Mozart's piano concerto no.21 in C major (K.467)

  second movement (andante in F major).

  1785년 3월 9일에 작곡된  이 작품은 그의 30여 곡에 달하는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1783년 이후 빈에서 개최했던 예약 연주회를 위해 작곡된 일련의 작품들(K.466,467,482)

  가운데 한 곡이다. 이들 협주곡들은 피아노 협주곡의 고전적인 완성을 보여주는 명곡들임과

  동시에 요즘에도 가장 빈번하게 연주되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이다.

    Concerto 21 para Piano e Orquestra - Mozart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 바장조 K.467, Andante "Elvira Madigan" OST

    게시일 : 2010. 3. 22.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독일어 : Herbert von Karajan)                                                                  

    본명은 헤리베르트 리터 폰 카라얀(Heribert Ritter von Karajan)

    1908.4.5 - 1989.7.16)은 오스트리아지휘자이다. 

    그는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35년 동안 상임지휘자였다.

    그는 20세기 전후 시기에 가장 유명한 지휘자 중의 한 명이며

    세계에서 가장 음반 녹음을 많이한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Karajan e Orquestra Sinfônica de Berlin                                                    

    베를리너 필하모니커(Berliner Philharmoniker:2002년 이후 공식명칭

             

    독일의 대표적인 관현악단으로

    독일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클래식 관현악단 중 최상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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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minor(단조는 소문자로 씁니다)의 조성을 지닌 20번과 C major

                        (장조는 대문자로 씁니다)의 조성을 가진 21번은 분위기가 완전히 딴판이라는 뜻입니다.

                        20번이 전반적으로 어둡고 격정적인데 비해, 21번은 맑고 밝아서 개구쟁이 같은 느낌마저

                        풍기는 곡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차르트가 대책 없이 개구쟁이 짓을 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밝음의 정조(情操)를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음악의 품격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 합니다.

                        느린 2악장에서 보여주는 슬픔도 결코 신파로 빠지지 않으면서 애잔한 분위기를 고조

                        시킵니다. 협주곡 21번은 그렇게 ‘웃음과 슬픔의 2중주’라는 모차르트 음악의 요체를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소문자 적힌 것은 minor scale (단조 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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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리넷 협주곡 가장조 2악장 K.622              2015.07.13. 朴泳柱 作  

    Mozart, Clarinet concerto in A major 2nd mvt K.622, Adagio            

Performed by Oskar Michallik (German Clarinetist)                          

                                       & Staatskapelle Dresden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             

             

                               《클라리넷 협주곡 가장조》(K. 622)는 모차르트가 평소 친분이 깊었던 클라리넷 연주가

       안톤 슈타들러(Anton Stadler)를 위해서 작곡한 클라리넷 협주곡이다. 1791년 10월 경

       에서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클라리넷이 충분히 발달되지 않았던 당시에 이미 클라리넷의

       가능성을 꿰뚫어 보고 악기의 특징을 잘 살려 작곡한 모차르트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이 곡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마지막 협주곡 작품이다. 특히 오케스트라독주 

       악기간의 절묘한 조화와, 독주악기의 절제가 특징이다.

       또한 협주곡으로는 이례적으로 카덴차가 없다.

       이 협주곡은 슈타들러에 의해 1791년 10월 16일프라하에서 처음 연주된 것으로

             보이나,역시 정확한 기록이 없어 연구자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첫 연주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구성

       곡의 구성은 3악장으로 다음과 같다.

       1.알레그로 (Allegro

       2.아다지오 (Adagio)

       3.론도. 알레그로 (Rondo. Allegro)             

       의문점   

       가장 먼저, 현재까지 모차르트의 자필 서명이 담긴 원본이 발견되지 않았다.

       처음 악보가 출판된 것은 1801년이다. 음악학자들 사이에서는 악장간의 완성도 차이가

       크다는 것을 이유로 모차르트의 스케치를 기초로 하여 누군가가 첨가하여 완성한 곡이

       아니냐는 의문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 곡이 슈타틀러를 위해 작곡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슈타틀러가 갖고 있었던

       개인악기가 당시 널리 쓰이던 클라리넷과는 또 다른 특수한 악기였기에 독주악기에 대한

       의문도 있다. 원래 슈타들러가 갖고 있던 개인악기는 당시에 유행하던 악기인 바셋 호른

       모양에 마개를 첨가한 것이다. 이것은 일반 클라리넷보다 아래로 두 음 더, 즉 저음 다까지

       연주할 수 있었던 클라리넷이다.

       후대의 연구가들은 ‘바셋 클라리넷’으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연구상 편의를

       위한 것이지 슈타틀러 시대의 용어는 아니다.

       슈타틀러는 '자신이 발명한 새로운 클라리넷'이라고만 했다.

       그러나 이 곡이 바셋 클라리넷을 위해 작곡된 것인지는 모차르트의 원본이 발견되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1801년 첫 출판된 악보들의 독주악기가 A조의 가-클라리넷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보통 가-클라리넷으로 연주한다.

       이것은 아마 19세기 당시에 가-클라리넷이 널리 쓰이고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 된다.

       1950년 이후 학자들과 클라리넷 연주자들 사이에서 원곡 복원 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져 요즘엔 바셋 클라리넷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Clarinet concerto in A major, K. 622 - Adagio      

 Mozart Clarinet concerto in A major K.622 2nd mvt, Adagio(Out of Africa OST)

게시일 : 2013. 8. 14.

Out of Africa (1985)
In 20th century colonial Kenya, a Danish baroness/plantation owner has

a passionate love affair with a free-sprited big-game hunter (IMDb)
Wolfgang Amadeus Mozart - Clarinet concerto in A major, K. 622 - Adagio
It was written in 1791 for the clarinetist Anton Stadler. It consists of the

usual three movements, in a fast--slow--fast form (Allegro-Adagio-Rondo)

It was one of Mozart's final completed works, and his final purely

instrumental work (he died in the December following its completion).

The concerto is notable for its delicate interplay between soloist

and orchestra, and for the lack of overly extroverted display

on the part of the soloist (Wikipedia)

Composed by Wolfgang Amadeus Mozart

(1756 - 1791, Austrian composer, conductor, violinist, pianist)

      덴마크에 사는 카렌은 막대한 재산을 가진 독신 여성이다.     

      그녀는 친구인 브릭센 남작과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아프리카 생활을 꿈꾸며 결혼을

      약속한다. 캐냐에서 결혼식을 올린 그들은 커피 재배를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고,

      브롤은 영국과 독일간에 전쟁에 나간다. 혼자 남은 카렌은 어느날 초원에 나갔다가 사자의

      공격을 받게 되고 데니스란 남자에게 도움을 받는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카렌에게 있어서 데니스는 인생의 나침반 구실을 한 남자였다.

      결국 남편과 이혼한 카렌은 사랑하는 데니스에게 결혼을 요구하지만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데니스는 그대로 지내기를 원한다. 결국 카렌은 그 곳을 떠나기로 ........

      1910년대 덴마크 여성인 카렌 브릭센(메릴 스트립)은 아프리카 케냐에 있는 자신의

      커피 농장으로 가던 중 벌판에서 기차를 세워 상아를 싣는 데니스 휜치 해튼

      (로버트 레드포드)과 만난다. 미리 아프리카 커피 농장에 가 있던 약혼자 브로

      (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와 만나자마자 결혼식을 치르고 농장에 살게 되는 카렌은

      사냥을 떠나 며칠씩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일에 지친다. 

      아프리카에서 만나게 된 데니스와는 첫눈에 반하지만, 서로 안타깝고도 아쉬운 

      눈빛만을 주고받은 채 제 갈 길을 간다. 아프리카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남편과는 점점 멀어져만 가던  데니스와 다시 만나게 되고, 어느날 데니스의 방문을

      받게 된다. 데니스가 들고온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모짜르트의 음악이 아프리카의 들판을

      공명시키고, 이들 두사람의 마음까지 공명시킨다.(클라리넷 협주곡 가장조 2악장 K.622)  

      두 사람은 함께 사파리를 떠나 야영 중에 춤을 춘다.

      카렌은 남편이 옮아온 매독에 걸려 덴마크로 요양을 떠났다가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오지만,

      남편과는 이혼을 한다. 카렌은 자유롭고 싶어하는 데니스와의 결혼을 어렵사리 약속하지만...
      영화상 줄거리처럼 실제로 블릭센은 약혼자 브로(1886~1946)에게 매독에 전염되어

      평생을 고생했으며 1925년 남편과 이혼하고 데니스(1887~1931)와 실제 사랑했지만

      영화처럼 그는 비행기사고로 죽고 말았다. 데니스가 죽은 뒤에 슬픔에 빠진 그녀는 은둔해

      있다가 소설가로서 활동하며 노벨문학상 후보에 2번이나 오른다.

      자서전 아웃 오브 아프리카 (Out of Africa)

      (1937년 발표)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제작  :  미국

                        Directed (감독)     by      Sydney Pollack (시드니 폴략)

                  Screenplay (각본) by      Kurt Luedtke (커트 러드케)
                  Music (음악)          by      John Barry (존 베리)
                  Starring (출연)       :        Robert Redford (로버트 레드퍼드)
                                                         Meryl Streep (메릴 스트립)
                                                         Klaus Maria Brandauer(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

                  Release dates        :       December 18, 1985 (개봉일 : 1985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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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2악장 사장조 K.216 아다지오                                                

                              2.모차르트 小夜曲 사장조 13번 작품 525,1악장 알레그로 (Eine Kleine Nacht musik)             

           3.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1번 마단조 작품 304 1,2악장(Allegro,Tempo di Menuetto)          

                              4.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中 편지의 이중창(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      

       

Mozart  Piano Concerto No.21 in C Major, K.467
지휘 요엘 레비 Yoel Levi, Conductor

피아노 손열음 Yeol-Eum Son, Piano
연주 KBS교향악단 KBS Symphony Orchestra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C장조 K.467 내 인생의 클래식   2013.02.01 16:36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K.467>이 곡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입니다. 물론 그 유명세는 영화 <엘비라 마디간>(1967) 덕택입니다.

이 영화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세계적인 히트곡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미국의 빌보드 톱10에까지 올라갔을 정도입니다.
<엘비라 마디간>은 1960년대에 제작된 영화 중 보기 드물게도 인상파적 영상미를

연출해냈던 영화인데, 그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협주곡 21번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악장으로

손꼽히는 2악장 안단테가 곳곳에서 흘러 나옵니다.

덕분에 협주곡 21번의 ‘별칭’이 바뀌는 일까지 생깁니다.

원래 이 협주곡의 별칭이었던 ‘군대’가 ‘엘비라 마디간’으로 바뀌었다는 얘깁니다.

물론 ‘군대’라는 별칭도 모차르트가 붙인 건 아니었습니다.

행진곡풍으로 당당하게 시작하는 1악장 때문에 후대 사람들로부터 얻은 닉네임이었습니다.

어쨌든 영화 <엘비라 마디간>이 세계적 히트를 기록한 다음부터,

이 협주곡은 그냥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이름으로 통하게 됩니다.

음반가게에 가서 “엘비라 마디간 주세요” 하면, 협주곡 21번을 곧바로 꺼내줬을 정도입니다.

    피아 데게르마르크(Pia Degermark, Swede, 1949.8.24 -)는 Sweden의 俳優이다.

                          

                   

                          

                                           

                 

                   

               

덴마크, 세인트 조지 교회 앞 오크나무 아래에 조성 된 엘비라 마디간 & 식스텐 스파레의 묘지      

1889년 사망, 위 영화 내용은 실화                                        

20~30대는 이 영화를 잘 모를 듯합니다. “남자는 여자의 머리에 총구를 겨눕니다.

하지만 차마 쏘지 못합니다. 그때 어디선가 나비 한마리가 나풀나풀 날아 옵니다.

그녀는 나비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그 나비를 쫓아갑니다.

그녀가 나비를 마악 손에 잡으려는 순간 화면은 멈춥니다. 이윽고 들려오는 두 발의 총성.

아름다운 초원에서, 인상파 그림 같은 햇살을 역광으로 받으면서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죽어 갑니다. 지독한 낭만주의입니다. 1967년도 스웨덴 영화 <엘비라 마디간>입니다.

엘비라는 서커스단에서 줄을 타는 소녀였습니다. 육군 중위 식스텐과 사랑에 빠집니다.

전쟁을 혐오하는 식스텐은 아내와 두 아이를 버리고 엘비라와 함께 자유를 찾아 떠납니다.

카메라는 두 사람의 도피행각을 쫓아갑니다. 그 도피는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합니다.

두 사람은 돈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수시로 세어보고, 허기에 지친 엘비라는 토끼풀을

뜯어 먹기도 합니다.
지금 읽어보니 약간 민망합니다. 어쨌든 이 영화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세계적으로 유행시킨 것과 더불어, 당시 17살에 불과했던 발레리나 출신의 여배우

피아 데게르마르크 단숨에 스타로 만들어 버립니다. 청순하기 이를 데 없는 외모의

그녀는 1967년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후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제대로 증명하지 못한 채 곧바로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맙니다.

모차르트가 협주곡 21번을 작곡한 해는 빈에서 보낸 ‘생애 마지막 10년’의 딱 중간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1785년입니다. 이 해에 모차르트는 3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잇달아

써냅니다. 20번부터 22번까지입니다. 특히 21번은 20번을 작곡하고 난 후 불과 한 달도

안돼 세상에 첫선을 보입니다. 이렇게 속전속결로 걸작을 써냈던 것에 대해,

후대의 음악사가들은 대개 모차르트의 ‘천재성’이라는 맥락으로 해석하곤 했습니다.


당시의 모차르트에게 가족의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가장 중요했던 두 개의 수입원은

피아노 레슨과 연주회였고, 그중에서도 연주회는 항상 새로운 레퍼토리를 선보여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숙제였습니다. 물론 그 연주회들은 모두 ‘예약’ 연주회였습니다.

올 손님들이 이미 정해진 연주회였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주로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이었는데, 모차르트의 연주회에 단골로 찾아오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니 모차르트는 지난번에 했던 곡을 다시 반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지난번 연주했던 곡과 새로 선보일 곡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야 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지난번에 오셨던 손님이 이번에도 또 오셨는데,

분위기기 비슷한 곡을 잇따라 연주하면 손님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항상 뭔가 색다른 음악을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모차르트가 느끼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봅니다. 그것이 바로 20번에 이어 21번을 듣는 ‘핵심적 매뉴얼’이 됩니다.

1악장은 ‘군대’라는 별칭의 이유가 됐을 만큼 행진곡풍으로 당당하게 문을 엽니다.

C장조의 으뜸화음으로 제시되는 주제부를 머릿속에 꼭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계이름으로 ‘도솔도미 파미레도시’입니다. 관현악 총주가 주제부를 여러차례 반복한 다음,

피아노가 산뜻하게 등장합니다. 기교적으로도 현란합니다. 한데 잠시 후에 피아노 독주가

어두운 단조의 선율을 아주 잠깐 연주합니다. 바로 그 지점, 피아노가 갑자기 선율적으로

어두워지는 부분도 머릿속에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우울한 정조는 금세 사라지고

다시 장조의 밝은 색채로 돌아옵니다. 피아노가 보여주는 이런 색채감, 아울러 피아노와

관현악 파트가 주제 선율을 주고받는 장면들에 집중하면서 1악장을 들으시면 됩니다.

2악장은 그 유명한 안단테입니다.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이름을 얻게 만든 악장입니다.

현악기들이 잔잔한 물결 같은 주제 선율을 노래하고 피아노가 이어받습니다.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들어도 귀에 쏙 들어오는 아름다운 악장입니다.

3악장은 약간 수다스러운 느낌으로 시작합니다. 현악기들이 짧은 음형을 새가 지저귀듯이

노래하고 관악기들이 거기에 가세하면서 음량이 점점 커집니다. 그리고 드디어 피아노가

등장합니다. 역시 약간은 수다스러운 느낌으로 피아노가 달려 나가고 관현악이

리드미컬하게 조응합니다. 그렇게 피아노와 관현악이 대화를 주고받다가 매우 화려하고

강력한 느낌으로 곡을 마무리합니다.

3악장은 전체 악장들 가운데 가장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1악장은 행진곡풍의 당당함, 2악장은 애틋한 슬픔,

3악장은 경쾌하면서도 약간 수다스러운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기계적인 도식이긴 합니다만, 그런 식으로 머릿속에 새겨두는 것도 음악 듣기에 적잖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K.467

모차르트가 1785년에 작곡한 3개의 협주곡 가운데 두번째 작품이다.

피아노 협주곡 20번 K.466이 나온 지 불과 한 달 뒤 자신이 주최하는 예약 콘서트에서

모차르트가 직접 독주 파트를 연주할 작품으로 작곡한 것이다.

 

이 곡은 기존의 협주곡 영역을 탈피해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가 교향악적으로 하나가

되는 내용을 지닌 충실한 편성으로 관현악법을 전개시켰다.

그 점에서 [피아노 협주곡 20번]과의 구조상의 공통점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곡이 주는 우아하고 감미로운 인상은 단조에다가 어둡고 질풍노도와 같은

피아노 협주곡 20번의 인상과는 사뭇 다르다.

 

행진곡풍으로 시작하는 곡의 분위기, 끓어오르는 듯 희극적인 정서가 강한 피날레,

중간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아름다운 칸타빌레를 관철시키는 안단테, 곡의 무게중심이

완연하게 피아노 독주에 잡혀 있는 점을 보면, 모차르트가 전 작품인

[피아노 협주곡 20번]에서 탈피하려 했던 사교계의 유흥음악 영역으로 다소 후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1785년 3월 부르크 극장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초연됐는데, 성황리에 개최된 음악회에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참석해 그 성공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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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크트 마르크스 공동묘지에 장례]

 모차르트의 장례식은 친구들이 준비했다. 평소의 후원자인 고트프리트 반 슈비텐

 (Gottfried van Swieten)남작이 많이 애써주었다. 모차르트는 당시 비엔나의

 관습에 따라 공동묘지의 평범한 묘지에 다른 시신들과 함께 매장되었다.

 비엔나 성문 밖에서 남쪽으로 있는 장크트 마르크스(St Marx) 공동묘지였다. 

 1791년 12월 7일이었다. 어떤 기록에는 당시의 비엔나 관습에 따라 조객들이 아무도

 따라가지 않았다고 되어 있지만 살리에리, 쥐쓰마이르, 반 슈비텐 남작, 그리고 두어명의

 음악가들이 끝까지 참석했다고 한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처럼 날씨가 나빠서 진

 눈깨비가 내리는 질척한 날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은 겨울 날씨답지 않게

 비교적 포근하고 맑은 날씨였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관은 당시 요셉2세의 칙령에 따라

 재활용관인 슈파르자르크(Sparsarg)관을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801년,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지 10년째 되는 해에 장크트 마르크스(St Marx)

공동묘지는 일정지역의 묘지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벌였다.

모차르트가 묻혔다고 하는 묘지도 정리되었다. 일반적으로 비엔나의 공동묘지들은

10년마다 묘지의 재활용을 위해 파헤쳐서 다시 묘지로 사용할수 있게 만든다. 

주로 무연고 묘지들이 대상이었다. 이때 다시 파낸 유골들 중에서 돈있는 사람들의

유골은 적당한 경비를 받고 장크트 마르크스 공동묘지의 한 쪽에 새로 지은 납골당에

보관했다. 묘지 재활용 작업 때에 누구의 유골인지 파악이 되는 것들은 해골에 당사자의

이름을 페인트로 적어 누구의 것인지를 밝혀 놓았다. 무연고 및 가난한 사람들의 유골은

분쇄하여 부피를 줄인후 짐머링(Simmering)에 있는 중앙공동묘지에 다시 매장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적당히 폐기한다.

모차르트가 묻혀 있었다고 생각되는 묘지에는 15-20개의 다른 시신들도 함께 매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묘지 일꾼들은 모차르트를 중류층 사람으로 간주하여

4-5구의 다른 유골들과 함께 다른 장소에 다시 묻었다고도 한다.

1784년에 문을 연 장크트 마르크스 공동묘지에는 7천 여기의 묘지가 들어설 자리밖에

없었다고 한다. 때문에 묘지자리를 하나 구하는 일은 언제나 프리미엄이었다.

모차르트가 매장된 묘지는 요제프 로트마이어(Joseph Rothmayer)라는 사람이

다시 파헤치는 작업을 맡았다고 한다. 그는 10년전 모차르트를 다른 시신들과 함께

바로 그 자리에 매장한 인부였다고 한다. 당시 로트마이어는 모차르트가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매장할 때에 모차르트 시신의 목부분을 철사로 묶어놓아 나중에 구별하기

쉽도록 해놓았다고 한다. 유골들을 다시 파내어 분쇄할 때에 모차르트의 것은 보관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로트마이어는 모차르트의 유해를 찾아낼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젠트랄프리드호프, Zentralfriedhof)의 모차르트 묘비.                            

그 안에 장크트 마르크스 공동묘지에서 추스린 모차르트의 유골 일부가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과연, 로트마이어는 자기가 철사로 묶어 놓았던 모차르트의 유해를 찾아냈다.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모두 백골이 되어 있었다. 이날 찾아낸 모차르트의 두개골(해골)은

모차르트의 친구인 요제프 라트쇼프(Joseph Radschopf)가 간직하기로 했다.

1842년 모차르트의 두개골은 라트쇼프의 친구인 야콥 히르틀(Jakob Hyrtl)이라는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 1868년, 히르틀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동생인 요제프 히르틀이 모차르트의

두개골을 인수 받았다. 요제프 히르틀은 골상학자였다. 요제프 히르틀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부인이 맡아 가지고 있었다. 1901년 요제프 히르틀의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모차르트의

두개골은 잘츠부르크의 국제모차르테움재단에 양도되었다.

모차르트의 두개골은 1902년부터 1955년까지 재단박물관에 전시되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하지만 1955년 이후에는 공개전시하지 않고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

박물관 직원에 의하면 전시되어 있는 두개골에서 밤중에 이상하게 음산한 소리가 자주 났기

때문에 무서워서 전시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노래부르는 소리가 들렸는가

하면 또 어떤 때에는 비명소리도 들렸다고 한다. 그 전에 두개골을 소요하고 있었던 사람들도

그런 섬뜩한 경험을 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더 이상 전시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법의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모차르트의 두개골을 여러번 면밀히 조사했다.

우선 그것이 모차르트의 두개골인지의 여부를 확인하고 이어 사인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나온 모차르트의 초상화를 근거로 두개골의 사이즈와 초상화에서의

머리 사이즈를 비교하는 등 여러 연구를 수행하였다.

가장 중요한 조사는 치아와 두개골의 형태였다. 학자들은 로트마이어라는 사람이 파낸

두개골이 모차르트의 것임에 거의 틀림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프랑스 골상학자들은

두개골을 통하여 모차르트의 병명을 밝혀내고자 노력했다. 이들은 모차르트가 평소에

두통이 심하였고 현기증이 있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어떤 병에 걸려 있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당시로서는 여러 첨단 방법을 동원하여 조사했다. 그러는데 모차르테움으로부터

모차르트의 두개골을 사용하여 더 이상 사인이든지 병명이든지를 밝혀서 발표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공연한 논쟁 꺼리를 제공하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또한 가톨릭으로서 윤리적인 문제도 있었다.

가톨릭은 신의 섭리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 관광상품에 모델로 등장하는 그림이다.

                          오스트리아 여성화가  Barbara Krafft (1764 - 1825, 바르바라 크라프트)                                                  


오스트리아역사기록보관소의 발터 브라우나이스(Walter Brauneis)라는 서지학자는

모차르트의 죽음과 관련한 모든 의학적 자료를 조사키로 결심했다.

우선 치아에 대한 자료부터 조사했다. 시신을 부검했던 의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온전한 치아가 일곱개 뿐이고 나머지는 떨어져 나갔거나 썩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츠부르크에 있는 모차르트의 두개골을 살펴보았더니 치아가 11개였다.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된 것인가? 부검의사가 잘못 계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11개의 치아 중에는 충치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1801년 다시 파낸 두개골에는 불행하게도 아래턱이 실종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아래턱이 실종되었을 때에 아래쪽의 치아도 손상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갖게 해주었다. 치아에 대한 기록이 정확치 않자 학자들은 DNA 검사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DNA를 비교할수 있는 자녀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모차르트의 두 아들(칼과 볼프강)은 모두 자녀가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므로 모차르트에게는 후손이 없다. 다만, DNA 검사를 위한 한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모차르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해를 파내어 그들의 DNA와 모차르트 두개골의 DNA가

일치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당국이 이를 허락할 리가 없다.

   

두개골을 숭상하는 것은 유럽에서 중세 때부터의 전통이었다. 가톨릭의 영향도 컸다.

가톨릭은 전통적으로 성자들의 뼈, 유물들을 숭배하였다. 교회마다, 수도원마다 어떻게

해서든지 성자들의 유물을 하나라도 간직하기를 원했다. 성자의 손가락을 보관하고 있는

곳도 있으며 치아와 머리칼도 좋은 숭배대상이었다. 어떤 교회에서는 성자의 시신을

미이라가 되도록 그대로 전시해 놓고 숭배하는 곳도 있다.

두개골은 모든 숭배 대상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유물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는 승천했기 때문에 두개골을 비롯한 어떠한 유해도 남아

있을리 없지만 만일 승천하지 않고 매장되었다면 아마도 이분들의 유해를 놓고 대단한

논쟁이 벌어졌을 것이다. 한편, 두개골은 콜렉션의 대상이었다.

특히 저명한 학자들의 서재에는 누구 것인지 모르지만 두개골이 있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학자의 학문적인 신비감을 더해주었다. 그런 이유에서 천재나 영웅들의

두개골은 대단한 수집품이었다. 특히 골상학자들은 천재나 영웅들의 두개골을 연구하는

것을 하늘이 부여한 사명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모차르트의 두개골이 관심을 끌게 된 것도 그런 배경에서였다. 모차르트뿐만 아니라

베토벤, 슈베르트, 하이든, 리스트의 두개골도 항상 콜렉션의 표적이었다.

                           

1791년 12월 6일 이곳에서 모차르트 영결미사가 거행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모차르트 서거 240주년을 기념해서 1931년에 비엔나의 슈베르트연맹이 설치했다.

명판의 글씨는 AM DIESER STATTE WURDE DES UNSTERBLICHEN

W A MOZART LEICHNAM AM 6. DEZ. 1791 EINGESEGNET WR

SCHUBERTBUND 1931이라고 되어 있다.

영결미사가 거행된 카펠레(성당내의 작은 예배처)를 Totenkapelle라고 부른다.

현재는 사보이의 프린츠 오이겐의 영묘를 겸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수염이 자라는

카펠레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1750년부터 영결미사 용도로 사용되었던 장소라고 한다.

장크트 마르크스 공동묘지에는 모차르트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1791년에 모차르트를

매장했던 자리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자리라는 근거는 없다.

아무튼 묘비는 세워지고 무덤 모양은 있지만 땅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가묘(假墓)이다.

새로 만든 중앙공동묘지(첸트랄프리드호프)의 모차르트 묘지에는 장크트 마르크스

묘지에서 파낸 모차르트의 뼈들을 일부 추슬러서 매장했다고 하지만 그 뼈들이 정말로

모차르트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세계의 모차르트 애호가들은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에 있는 모차르트의 두개골이 만일 진짜라면 비엔나 중앙공동묘지의

모차르트 묘지에 안장해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모차르테움은 '무슨 말씀들을 그렇게 하시냐'면서 거절하고 있다.

                           

 

 

링슈트라쎄의 부르크가르텐의 모차르트 기념상 (Mozart Denkmal)

비엔나의 수많은 기념상, 조각 중에서 요한 슈트라우스의

황금상과 함께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모차르트 기념상.

높은 음자리표를 꽃으로 장식해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모차르트 기념상은 호프부르크 궁전과 연결된 부르크가르텐(Burggarten)의 초입에 있다.

부르크링의 큰길가에 있어서 찾기가 쉽다. 부르크가르텐의 모차르트 기념상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작품일 것이다.

기념상의 앞의 정원에는 높은 음자리표가 여러가지 꽃으로 단장되어 있다.

기념상의 하단 정면에는 '돈 조반니'와 '마술피리'의 장면이 새겨져 있으며 뒷면 하단에는

어린 모차르트가 아버지 레오폴드 및 누이 난네를과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모차르트 기념상은 1896-98년에 오스트리아의 조각가인 빅토르 틸그너

(Viktor Tilgner)가 완성하였다.

원래는 알브레헤츠플라츠(오늘날의 알베르티나플라츠)에 설립되었으나 1953년에

현재의 부르크가르텐으로 옮겨졌다.                        

                             

모차르트가 이렇게 생겼던 모양이다.

     

기념상의 대좌 뒷면에 있는 부조.오른쪽의 그림을 참고로 제작된 것이 틀림없다.

다만 모차르트가 사람들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다르다. 

어린 모차르트가 아버지 레오폴드,누이 난네를과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현재 링슈트라쎄의 부르크가르텐에 있는 모차르트기념상은 처음에는 알베르티나플라츠에 있었다.   

     자허 호텔 앞이다.   

     그러다가 1953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모차르트 카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다.

 

기념상의 전면 하단의 모습.

푸토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악기들과 악보도 보인다. 악보는 어떤 작품의 악보일까?

  

 대좌(조켈)의 명판과 푸토들

돈 조반니가 하인 레포렐로를 통해서 석상(콤멘다토레)에게 만찬에 초대한다고 말한다.

석상손님이 돈 조반니의 초대에 응해서 정말로 등장하자 돈 후안과 하인 레포렐로가 놀란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본 기념상과 주변.

비엔나의 한복판에 이런 숲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모차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