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향곡, 소나타 (동영상) ☆

朴泳柱 2019. 8. 27. 12:32

Chopin Piano Sonata No.3 in b minor, Op.58   I. Allegro maestoso

게시일 : 2014. 5. 23.

Piano Sonata No.3 in b minor, Op.58  I. Allegro maestoso

Piano Sonata No.3 in b minor Op.58   II. Scherzo. Molto vivace

게시일 : 2014. 5. 23.      Arthur Rubinstein

Piano Sonata No.3 in b minor, Op.58  II. Scherzo. Molto vivace

Frédéric Chopin Piano Sonata No.3 in b minor, Op.58   III. Largo

게시일 : 2014. 5. 23.
Piano Sonata No.3 in b minor, Op.58  III. Largo · Arthur Rubinstein

Piano Sonata No.3 in b minor, Op.58   IV. Finale. Presto, non tanto

           게시일 : 2014. 5. 23.

Piano Sonata No. 3 in B Minor, Op. 58: IV. Finale. Presto, non tanto 

Arthur Rubinstein · Frédéric Chopin ℗ Originally Recorded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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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l Gilels - Chopin Piano Sonata No.3 in b minor, Op.58

게시일 : 2013. 3. 9.

Frederic Chopin Piano Sonata No.3 in b minor, Op.58
Emil Gilels, piano

Kate Liu – Sonata in b minor Op.58

게시일 : 2015. 10. 15.

All rights reserved 2015
The Fryderyk Chopin Institute, Polish Television T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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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리크 쇼팽 (1810 ~ 1849)이 1844년에 작곡한 작품입니다. 

작품 주요 정보

장르 건반  

작품형식 Sonata 

작곡년도 1844 

출판년도 1845 

평균연주시간 27:32 

레이팅 

악기편성 Piano Solo

초연연도 / 초연장소 미상

초연자 작곡가 자신으로 추정됨.

헌정, 계기 드 페르튀 백작 부인.1844년 건강이 악화된 쇼팽은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접해

정신적으로 침울했으나, 연인 조르주 상드의 저택에서 회복되었고, 누나 부부가 그를 방문한

것이 그에게 큰 힘을 준 듯함.

그러는 동안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어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소나타.

          

      

쇼팽의 소나타는 모두 세 곡인데, 1번을 제외하고는 소나타 형식과 좀 거리가 있다.

1번은 연주가 거의 되지 않고, 2번은 장송행진곡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그 중 3번은 쇼팽이 죽기 5년 전인 조르쥬 상드의 집에서 작곡한 곡으로, 가장 쇼팽의 곡답게

연주의 큰 기량을 요구한다. 이 곡이 그의 연인 조르쥬 상드와의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파리에서 정착하게 된 쇼팽은 리스트의 소개로 그 당시 남장을 하며 여성해방을 부르짖던

조르쥬 상드를 만나게 되고 여성스러운 성격의 수줍은 쇼팽은 사랑에 빠져 동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 무렵부터 폐결핵을 앓고 지중해의 진주로 불리는 아름다운 휴양지

마요르카섬에서 극진한 상드의 간호와 모성애 같은 사랑으로 많은 작품을 썼다.

피아노 소나타 제 3번 작품 58는 1844년 노안의 조르쥬 상드 집에서 그녀와 함께 지낼 때

작곡된 곡. 전체적인 규모가 웅대하며 쇼팽의 천부적인 각종요소가 이 곡에 포함되어 있다.

쇼팽의 전 작품 중에서 이보다 더 넓고 장대한 느낌의 것도 없을 것이다

제 1악장 - 알레그로 마메스토소 Allegro maestoso
제1주제는 행진곡풍의 화음에 떠 받쳐져 묵직하게 연주되며 ,제 2주제는 애무하는 듯한

칸타빌레의 선율을 유도한다, 제시부의 최후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회고적이다.그 센티멘탈한 개운치 않음은 우리들의 가슴에 와 닿는다.
제 2악장 - 스케르쪼 몰토 비바체 Scherzo. Molto vivace
우아하고 경쾌한 자제력이 있는 스케르초. 아름답고 빠른 8분음표가 상하 좌우로 쉬는

일 없이 진행된다.감미로운 악장이다.
제 3악장 - 라르고 B장조 Largo
노안의 상드의 조용한 거실에서 상드와 쇼팽 두 사람이 조용하게 달콤한 사랑을 이야기

하고 행복에 취해 있는 듯하다.

꿈 꾸는 듯한 곳에서 눈을 뜨고 자기의 용모에 황홀해 하는 작곡자가 상기된다.
제 4악장 - 피날레 프레스토 논탄토 b단조 Finale. Presto, ma non tanto
화려하고 정열적이다.쇼팽이 작곡한 곡중에서 가장 당당하고 가장 위대한 음악이다.

 1악장 알레그로 마에스토소 b단조 4/4박자. 소나타 형식.

2악장 스케르초. 몰토 비바체 E flat 장도 3/4박자. 3부 형식.

3악장 라르로 B장조 4/4박자. 3부 형식.

4악장 피날레. 프레스토 논 탄토 b단조 6/8박자. 론도 형식. 악장 구성을 도식화하면,

서주-A-B-A-B-A-코다로 되어 있음.

▣ 바흐의 전통 형식과 새로운 구조의 결합
19세기 중반 피아노소나타 양식은 점차 시대에 뒤진 낡은 양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유행에 민감했던 작곡가 쇼팽은 당시 유행하던 연습곡, 주제와 변주, 론도, 녹턴 같은
비르투오소 형식의 작품들을 통해 연주 테크닉과 작곡 기법을 과시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동시대 보다 서정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감수성으로 낭만주의를 몸소
실천했던 작곡가 슈만은 모음곡이나 연작 형태의 작품들을 고안해낸 한편 소나타 같은
고전 양식에도 승부수를 던지기도 하였다.
쇼팽 역시 슈만처럼 고전적 열망을 완벽히 떨쳐내진 못했다.
쇼팽의 피아노소나타는 고전적 스타일의 이론과 구조, 발전 방식, 대위법 등등을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낭만주의적 이디엄과 자신의 개성적인 감수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
특히 그 구조적 통일감에서 공간과 쉼표에 대한 활용이 특이하다.
쇼팽에게 이것은 단순히 빈 공간 이상의 구조적 의미를 갖고 있는 만큼 소나타 양식을 보다
창조적인 방식으로 다루었다. 구조적 측면에서 새로운 완결성을 추구한 모습과 음향적
측면에서 이전의 음색이 이어지는 음색과 겹치면서 새로운 공간감을 형성해내고 있다.
피아노소나타 제3번은 1844년 노앙에서 작곡된 후 페르시우스 백작부인에게 헌정되었고
이듬해 1845년 5월 출판되었다. 쇼팽이 이 작품을 창작해내는 데에는 바흐의 음악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매일 아침 바흐의 전주곡과 푸가, 인벤션 등을 연습하면서
사실상 바흐는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음악적 본령이었다.
위대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가“쇼팽은 바흐처럼 바흐는 쇼팽처럼 연주해야 한다”라고
언급한 것은 바로 이러한 역학 관계를 가장 잘 이해한 현명한 통찰력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한 배경으로 쇼팽의 그 어떤 작품도 피아노소나타 제3번만큼 대위법적이고
고전양식에 충실한 두터운 텍스추어를 갖고 있지 않다.
18세기 바흐 시대에는 곡의 주제 선율은 뒤따라 등장하는 발전부의 모체 역할을 하였고
대위법에 있어서 지나친 감정 표현은 작곡가의 의도와는 상반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개인적이거나 표현적인 주제는 회피했다. 그러나 쇼팽은 이를 극복하고
제1악장에서 대위법적인 구성을 사용하면서도 내면적이고 처연하며 감상적인 주제를
사용했고 이는 마지막까지 환상적인 발전과 순환을 이끌어냈다.
피아노 소나타 제3번은 앞서 작곡한 피아노소나타 제2번을 모델로 완성한 만큼 전체적으로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이 곡의 진행과정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나갈 방향에 대한 확신과
완벽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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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 [ Fryderyk Franciszek Chopin ] 생몰년 1810~1849 국적 폴란드

주요작품

피아노 협주곡 제1번 e단조 Op.11
피아노 협주곡 제2번 f단조 Op.21
피아노 소나타 제2번 「장송 행진곡」 b♭단조 Op.35
피아노 소나타 제3번 b단조 Op.58
발라드 제1번~제4번
뱃노래 F#장조 Op.60
자장가 D♭장조 Op.57
연습곡 제1번~제24번
즉흥곡 제1번~제4번
마주르카 제1번~제51번
녹턴 제1번~제20번
폴로네이즈 제1번~제7번
전주곡 Op.28
스케르초 제1번~제4번
왈츠 제1번~제14번
발레 음악 「레 실피드」
환상곡 f단조 Op.49

쇼팽

평생 피아노곡 밖에는 쓰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 쇼팽은, 그 분야에 있어서는 영원한 왕관을

쓰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교향곡에 있어서의 베토벤, 실내악곡에 있어서의 하이든, 가곡에

있어서의 슈베르트처럼, 피아노에서의 쇼팽은 분명히 왕자이며 유일자이기도 했다.
그의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가을의 달빛을 느낀다. 그것은 창백한 은빛이 교교하게 만물을

비추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의 음악에 몸을 맡기는 모든 사람은, 달빛에 정화되어

고요히 빛나는 마음 속에서 꿈꾸는 듯한 기분이 된다. 그러나 그 환상적인 시인 쇼팽도,

한편으로는 고국 폴란드를 생각할 때 열렬한 애국의 정으로 건반을 피로 물들이는 정열의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프랑스어 교사를 아버지로, 폴란드의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를 어머니로

하여, 네 아이 중의 하나로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와 가까운 젤라조바 볼라에서

태어났다(1810년 3월 1일).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8세 때 이미 신동으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2세 무렵부터 바르샤바 음악원의 원장에게 이론과 작곡을 배웠고,

아달베르트 지부니에게 피아노 교습을 받았다. 이후 쇼팽은 아무에게서도 정식 피아노 레슨을

받지 않고 작곡에 전념했으며, 1824년에 들어섬과 동시에 갑자기 음악에 몰두하여 그 이듬해에

최초의 작품 「론도」를 출판했다. 1828년 아버지의 친구 야로츠키 박사와 함께 베를린으로

갔는데, 거기서 받은 자극으로 귀국 후 그의 음악 활동은 한층 활발해졌다.
20세 때 빈에 나갔는데, 그는 그 곳에서 모국의 슬픈 소식을 받아 들었다.

함께 빈에 나간 친구들이 모국의 위급에 앞을 다투어 귀국할 때 귀국하여 군대에 입대할 수

없었던 그는, 피아노에 의지해서 애국의 열정을 작곡에 기울이는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는 파리로 나갔다. 동경하던 파리는 무명의 천재를 당장 받아들여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폴란드에 호의를 보였던 프랑스의 사교계는, 얼마 후 섬세하고 고상한 쇼팽의 피아노

연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외에 다행히도 리스트가 재빨리 이 천재를 인정하여

파리 악단에 소개했기 때문에, 파리는 안심하고 그를 피아노의 명연주가로서 환영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작곡 면에서도 새로 자신의 앞길을 개척해 나가게 되었다.

쇼팽이 피아노의 세계에 혁신적인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공로는 참으로 지대하다.
기교와 표현에서 쇼팽의 피아노는 찬연하게 그 진기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름난 칼이 명공의 손으로 다듬어지면 더욱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것과도 같았다.

꿈과 환상에다, 정교하고 치밀함, 풍부한 시의 정신에서 솟아나는 예술의 삼매경,

그리고도 악상이 대담하고 독창적인 쇼팽은 완전히 독자의 세계를 열고 음악의 세계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그처럼 화려한 존재로서 귀족사회의 살롱에 드나든 쇼팽에게 여성의

접근이 없을 수가 없었다. 특히 여류 작가 조르즈 상드와의 교제는 너무도 유명하다.

상드와 쇼팽은 마요르카 섬에서 사랑의 기쁨을 누렸는데, 때마침 결핵을 앓던 쇼팽의 병세는

오히려 악화 되었다. 그래도 섬의 한 때를 아끼기라도 하듯이 그는 여기서 많은 주옥같은

명곡을 썼다. 하지만, 화려한 사교 생활을 좋아하는 상드와, 내성적이고 고독에 침잠하는

쇼팽이 언제까지나 이러한 생활을 견딜 수 없었다.

이윽고 파리로 돌아간 두 사람은 마침내 헤어지는 운명이 되었다.
한결 같은 예술에의 정진과는 반대로, 결핵은 차츰 쇼팽의 육신을 쇠약하게 하였다.

한때 병세가 조금 회복되어 그는 영국으로 연주여행을 떠났는데, 그것이 그를 과로에 빠뜨려

생명의 등불을 예상 외로 일찍 꺼지게 했다. 1849년 10월 17일, 그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침내 그는 세상을 떠났다. 시체는 해부했으며, 2주일 뒤에

마드레느 사원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임이 연주되는 속에서 장례를 치루었다.

유해에는, 1830년에 폴란드를 떠날 때 친구들이 병에 담아 준 조국의 흙에 덮여

페르 라세즈의 묘지에 묻혔다. 또 그의 심장은 바르샤바의 성(聖) 십자가 교회에 보내졌다.
페르 라세즈에 있는 그의 묘지에는 지금도 향과 꽃이 끊이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여성들로 붐비고 있다.처 음에도 말했듯이 쇼팽은 생애를 통해 거의 피아노곡

작곡에 전념했다. 그러나 예외로서, 6개의 관현악곡 · 3개의 소나타 · 3개의 실내악곡 ·

17개의 가곡도 있다. 또 즉흥곡 · 뱃노래 · 녹턴 · 마주르카 · 스케르초 · 왈츠 · 폴로네이즈 ·

연습곡 · 전주곡 · 발라드 등은 어느 것이나 쇼팽이 개척한 피아노곡 형식이었고,

그 형식 위에 시정이 담겨 정열의 꽃이 피었다.

                             조르주 상드                     


 파리의 낭만주의 운동의 중심은 살롱이었다.

 쇼팽도 살롱에 출입함으로써 많은 친구를 얻게 된다.

 상류 사회와의 접촉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그의 귀족적인 취미를 만족시켰으며, 유명한

 부인들과의 교우는 확실히 정열적인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였다. 파리 도착 후 쇼팽

 이미 두번의 연애를 경험했는데 어느 것이나 열매를 맺지 못했다.

 1836년(26세) 그는 리스트(헝가리)로부터 고명한 여류 작가 조르주 상드(George Sand)를

 소개 받았다. 그녀는 연애 편력이 풍부한 것으로도 유명했는데 이미 남편도 아이들도 있는

 몸이면서도 가냘프고 여성적인 쇼팽에게 강하게 끌려, 두 사람은 이윽고 연애 관계에

 들어갔다. 쇼팽(폴란드)은 1837년의 방영 이래 심한 결핵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그를 간호하는

 상드의 애정은 그때까지의 그녀와는 다른 모성적인 것이었다. 1838년(28세) 두 사람은 남구의

 마요르카(Majorca) 섬에서 요양 생활을 했다. 상드의 간호 속에서 씩씩하고 강한 인격의

 영향을 받은 쇼팽의 창작은 이 무렵이 절정이었다. 「24개의 전주곡집」과 마지막 2개의

 「소나타」를 비롯하여 그의 대표적 걸작이 잇따라 작곡되어 갔지만,
 건강 상태가 좋아지는 징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최후의 연소

 1846년(36세) 상드의 전 남편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의 문제가 원인이 되어 두 사람의

 9년간의 사랑은 깨졌다. 상드의 곁을 떠난 실의와 고독에 찬 쇼팽은 건강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서 작곡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1848년(38세) 파리에서의 마지막 연주회를 마친

 쇼팽은 제자였던 스코틀랜드의 부자집 딸의 의뢰로 영국 여행을 떠났다.

 빅토리아여왕 어전 연주를 포함한 7개월 남짓의 여정을 마치고 파리에 돌아온 쇼팽

 병상은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작곡 활동은 거의 중단 상태였으며, 이듬해 1849년에는

 그리운 누나 루드비카가 간호하러 달려왔으나 재기는 이미 불가능했다.

 이 해 10월 17일 쇼팽은 세상을 떠나고 유해는 파리에 묻혔으며, 20년전

 폴란드를  떠날 때 선사받은 고국의 흙이 그 위에 뿌려졌다고 한다.

 꽃밭 속에 숨겨진 대포

 쇼팽은 여성적이라고 할 만큼 섬세한 감각과 고귀한 서정을 갖춘 선천적인 낭만주의자였다.

 피아노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그의 천분은 모두 피아노에 기울여지고,

 주옥과 같은 결정을 낳아 갔다. 그러나 이들 작품의 화려한 울림의 밑바닥에는 일종의 처절한

 기백이 흐르고 있었다. 슈만(독일)은 이것을 평하여 ‘꽃밭 속에 숨겨진 대포’라고 말했지만,

 이 기백은 러시아의 탄압에 대항하려 하는 조국 폴란드에 대한 애국심에 뿌리가 박혀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폴란드의 민속 무곡 마주르카(독주곡)를 유례 없는 예술 음악으로 빚어 내었던

 그의 열정과 투혼도, 더운 가슴에 들끓는 조국에의 향수어린 애정 때문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