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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장본인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오사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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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2010. 1. 8.

 

 

 

 

 

 

 

 

 

 

 

 

 

 

 

 

 

 

 

 

 

 

 

 

 

며칠전 준배가 언제 보아도 한국인의 긍지가 느껴지는 가슴 뿌듯한 내용인 이순신 장군의 자료를 올렸었다.

근자에 인터넷상에서 심각한 역사 왜곡을 부채질하는 대전에 사는 야후 사이트의 어떤 블로거는 임진왜란을 자기자신의 독자적인 역사관으로 조일전쟁[朝日戰爭]이라고 자주 지칭하기도 한다.

일본 오사카의 오사카성[大坂城]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요 조선의 주적이었던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근거지였다.

이곳을 가보면 화강암을 자로 잰듯 잘라서 축조한 섬나라 일본의 섬세한 축성술 하나만은 눈여겨 보아 줄만하다고 볼수있다.

어떤이는 도쿄시내의 보도를 걸어며 끝없이 이어지는 보도블록의 이음선이 한치의 오차없이 평행선을 이루며 이어지는것을 보고 놀란후 한국의 서울에 온후 시내의 보도블록 이음선의 형태가 그 와는 대조적으로 너무나 균일하지 못한 모습을 보고 한탄한적이 있었다.

또한 1995년 당시 리히터 강도 7이 넘는 대지진이 일본 코오베를 엄습했을때 무너진 한신 고속도로의 교각 사진을 보면서 OOO은 나름대로 또다른 형태로 감탄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것은 지름의 둘레가 큰 외기둥으로 줄줄이 이루어져 한신 고가도로를 떠받치던 동강난 기둥속에서 드러난 철근이 콘크리트속에서 견고하게 시공된채로 형성되어 있는 그 형태를 보고 한편으로 감탄과 놀라움의 감정이 교차되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는 국내의 교각 기둥에 사용되는 철근 구조와 비교하여 아주 튼튼하고 조밀하게 자리잡고 있는 기둥의 내부 구조를 보고 과연 저 정도로 일본인들은 튼튼하게 교각을 제작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1979년 최봉근은 학교에서 김광수와 이야기를 나누던중 자기는 국민학교 5학년때인 1974년 겨울방학때 가족들과 일본여행 당시 오사카성을 한번 둘러보았다고 했었다.

그로부터 13년후인 1987년 김광수는 오사카와 코오베 사이의 아마가사키시에 건설 노동자로 해외 취업을 나갔었다.

그가 주로한 일은 오사카, 코오베간 도시 도로의 가드레일을 설치하는일이었다.

그러한일을 찾아 그곳으로 간 주목적은 당시 한국의 건설현장에서 받는 급료의 10배에 해당하는 급료를 받을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2여년간의 시간을 보낸후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들었던 최봉근의 일본 여행 당시의 말이 생각나서 그곳으로 한번 가보기로 했다.

그는 그곳 내부에는 1층 에서 5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그랬었다.

아마가시키 이나바소의 숙소에서 아침을 먹은후 양복으로 갈아입은 김광수는 지하철을 갈아타고 오사카성으로 향했다.

실제로 그곳에 가보니 목조 구조의 건물 내부에 관광객들을 이동시킬수 있게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5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올라간뒤 6,7층은 망루격으로 바깥의 오사카성 주변 풍경을 볼수있게끔 비어있었다.

내부에는 그다지 볼것도 없었지만 에펠탑같은 철근 구조도 아닌 목조건물 내부를 이용하여 엘리베이터를 장치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일본인들의 일면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입장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지인들에게 선물할 것을 찾다가 뒷면에 이름을 기계로 각인시킬수 있는 메달을 20여개 마련한뒤에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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