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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마산 의거 당시 경찰들의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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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2018. 3. 15.



마산시 부림동 철도 굴다리 밑에서 3.15 부정 선거를 규탄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 - 1960년 3월 15일




마산 무학국민학교 앞 도로에서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급히 이동하는 최루탄 발사기와 M1 카빈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 - 1960년 3월 15일


3.15 의거 당시 저녁시간대에 마산 시내 창동 시민극장 근처에서는 

경찰이 발포한 총탄에 사상자가 발생하게 된다.

 당시 시민극장 근처에 있었던 오성원이라는 청년은 

 경찰이 발포한 M1 카빈 소총의 총탄이

오른쪽 가슴으로 관통되어 목숨을 잃었다.




1960년 3월 15일 민주화의 성지 경남 마산에서는 이승만 자유당 독재 정권이 

획책한 3.15 부정 선거에 격분한 시민들의 봉기가 대대적으로 발생했다.

이승만 자유당 독재 정권은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시위가 격화되자 성난 군중들을 제압하기 위해 
M1 카빈 소총으로 무장시킨 경찰 병력을 시위 현장에 투입시켜 시위대를 무력으로 제지시키려고 한다.
당시 자유당 독재정권의 제 2인자였던 부통령 이기붕은 “총은 쏘라고 준 것이다”고 말해 화젯거리가 되었다.
3.15 부정선거와 이승만 독재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무장했던 최루탄 발사기와 M1 카빈 소총은 결국 참혹한 살륙을 벌이게 된다.
3.15 의거 당시 김주열은 마산 상업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3.15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나간 이후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로부터 27일 이후 1960년 4월 11일 오전 11시 30분 27일 동안 행방불명이 됐던 
김주열이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으로마산 중앙부두 바다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다. 
당시 마산경찰서 경비주임이었던 박종표는 열 여섯 살의 김주열 학생에게 
직격최루탄을 발사해 눈을 관통하게 함으로써 살해했다. 
그리고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숨진 김주열 군의 시신에 돌을 매달아 마산 앞바다에 수장시켰다.
박종표는 일제 강점기 당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체포, 구금하고 악랄하게 고문했던 친일헌병이었다.
그가 해방후 어떻게 처벌받지 않고 풀려났는지에 대해서는 동아일보 정운현 기자가 쓴 기사 
'친일헌병 박종표가 반민특위서 '무죄'받은 까닭'에 잘 나와 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경찰이 되어 시민들을 고문, 학살하고, 김주열 시신을 유기한 박종표가 일제 때 
헌병 아라이(新井)였다는 것은 고은 시인이 '만인보'에서도 쓴 바가 있다. 
향토사학자 홍중조 씨가 쓴 3·15의거(1992)에도 김주열을 학살, 유기한 박종표가
아라이였다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박종표는 이후 혁명재판소에서 최루탄을 발사하고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유기한 사실을 자백하고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나중에 다시 시신 유기만 인정하고 최루탄 발사는 부인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게 된다. 
 그는 김주열 열사의 시신 유기 과정에 대해 '3월 15일 밤 10시쯤 교통주임으로부터 최루탄이 눈에 박힌
괴이한 형상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연락을 받고손석래 마산경찰서장에게 보고하자,
서장이 '적당히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자 지프차를 타고 현장에 도착, 

시체를 담아 싣고일단 경찰서로 갔다. 
경찰서에서 시체를 유기하기로 마음먹은 후 다시 월남동 마산세관 앞 해변가로 시체를 가져가 
순경 한대진과 지프차 운전수의 조력으로 시체에 돌을 매달아 바다에 던졌다'고 자백한다.
그러나 김주열 군의 시체는그로부터 27일 후인 4월 11일 오전 10시
중앙부두 앞바다에 참혹한 모습으로 주먹을 꽉 진 채 떠올랐고, 
부산일보 허종 기자가 이를 촬영함으로써 AP통신을 통해 전 세계로 타전된다. 
 바로 이 김주열의 시신이 도화선이 되어 다시 마산시민들이 총궐기하게 되고,
시위는 서울로 확산돼 마침내 4월 19일 이승만이 물러나기에 이른다. 
 하지만, 떠오른 김주열 군의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은 
당시 경찰의 사악하기 그지없는 횡포였다. 
 당시 경찰은 김주열 군의 시신을 아무도 몰래 병원에서 빼내 야음을 틈타 고향 남원으로 보내버린다. 
주열의 싸늘한 시체를 실은 앰뷸런스가 남원 고향집에 도착하자 
경찰은 김군의 모친 권찬주 여사에게 시체 인수증의 서명을 요구한다. 
거의 실신상태에 있던 권 여사는 어금니를 깨문 채 벌떡 일어나
싸늘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시체를 못받겠으니 부정선거로 당선된 이기붕이한테 갖다주시오!" 
 일제 때 동포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하던 일본 헌병보 박종표는 해방후 
대한민국의 경찰이 되어 시민을 무차별 학살하고 어린 학생의 시신까지 유기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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