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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 - 1971년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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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

2018. 10. 10.






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 - 1971년 12월 25일 


1971년 오전 9시 50분 서울 중구 충무로 대연각 호텔에서 불이 나 21층 빌딩이 불탔다.

당시 국내 최고 높이의 사다리 차를 동원했으나 7층까지 밖에 미치지 못했다. 

이 화재로 투숙객 167명이 사망했고, 64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 당시 침대 매트리스를 잡고 고층에서 피신하는 투숙객 - 1971년 12월 25일 




서울 대연각 호텔 화재- 1971년 12월 25일 


1971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날 오전 9시 50분쯤 서울 중구 충무로 1가 

대연각 호텔에서 불이나 지하실 2층을 제외한 지상 21층 건물이 전소되었다.

이 화재는 당시 한국 화재 사상 최대의 인명 피해를 발생시켰다.



1971년 12월 25일에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동의 '대연각(大然閣) 호텔'에서 발생한 대한민국 최악의 화재 사고였다

이 대형 화재 사고는  세계 최대의 화재 사고들 중 하나이며, 호텔 화재 중에서는 단연 최대 사고로 

 사상자는 총 사망자 166명(추락사 38명),이었고 부상자 68명 그리고 25명이 행방불명되었다.

 사건 당일은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에 호텔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었던 상태라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건에 휘말린 인물들 중에는 주한 대만 대사관 위셴룽(余先榮) 공사 같은 귀빈도 있었다. 

11층에 묵고 있던 대만 대사는 10시간 만에 구조되었고 그를 구조한 소방대원들은 전원 1계급 특진했다. 

 오전 9시 50분경 대연각 호텔 1층 커피숍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원인은 프로판 가스 폭발이었다. 

카운터에는 프로판 가스 화덕이 있었는데 사고 당일에 예비용으로 20kg 짜리 프로판 가스통이 하나 더 있었다. 

이 예비 용기의 가스를 잘못 방출시켰거나, 혹은 가스가 누출된 상태에서 화덕으로부터 

그 가스에 불이 옮겨 붙은 것으로 추측된다.  

불길은 시작되자마자 대연각 호텔의 계단을 막아버려서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오질 못했다. 

엘리베이터는 말할 것도 없고, 한 시간 반만에 건물 전체(21층)가 불길에 휩싸였다.  

불이 이렇게 빨리 번진 이유는 하나였다. 

빌딩의 내장재가 온통 가연성 물질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벽을 한지로 발랐고, 인테리어는 목재를 많이 사용했다. 

객실 문도 목재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호텔 주변에는 5층 내외의 낮은 건물이 바짝 붙어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낮은 층에 있던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옆 건물 옥상으로 뛰어내리거나, 

커튼, 침대 시트 같은 걸 뜯어서 줄을 만들어 타고 내려오기도 했다.  

문제는 대연각 호텔이 당시 한국에서 드문 고층 건물이었다.

또한 21층이면 2010년대에도 일반인 기준으로는 제법 높은 건물이다. 

 탈출하지 못하는 고층 사람들은 창가에서 구조를 기다리기도 했다. 

생존자보다 사망자가 더 많았던 화재사고였지만 그 와중에 생존자들도 있긴 했다. 

대표적으로 7층에 있던 한 종업원은 복도에서 연기 냄새를 맡고, 

객실의 사람들을 전부 깨운 다음 옆 건물 옥상으로 피신시켜 

손님과 종업원 50명을 모두 무사히 탈출시키는 영웅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8층에서 침대 시트를 뒤집어쓰고 뛰어내려 

다행히 발목 부상만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여성도 있었다. 

그러나 사고의 결과가 워낙 비극적이었기에 소수의 영웅적인 모습이나

 행운 등을 크게 거론할 분위기가 되지 못했다.  

9.11 테러 당시 뉴욕 세계무역센터에서 탈출하려던 사람들처럼 건물 바깥으로 무작정 뛰어내린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화재로 사람들이 고립된 위치는 최하 6층부터였다. 

즉, 맨몸으로 뛰어내려 살아남을 수 있는 높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화재 당시 건물 주변에는 추락사한 사람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사실 대부분 사망자들의 사인은 추락사 아니면 화재시 발생한 유독가스 연기에 의한 질식사였다고 한다.  

대피가 어려웠던 이유는 빌딩 내부의 계단이 방화문이 없는 개방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계단이 유사시 비상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이 번지는 통로 역할을 했다. 

엘리베이터 역시 불이 나자 그대로 멈춰버렸다. 

비상계단도 별도로 없었고 스프링클러 같은 소화장비도 없었다.

또한 대연각 빌딩은 불이 난 호텔뿐만 아니라 옆쪽에 오피스 빌딩도 같이 붙어있는 구조였는데, 

이쪽으로 통하는 비상구가 대부분 잠겨 있었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도 잠겨 있었다. 

실제 진화 후에 20여 구의 시체가 이 옥상 출입구에서 발견되었다. 

그야말로 대피할 통로가 다 막혀버린 상황이었던 것이다.

 화재 당시 가장 가까운 소방서와 대연각 호텔의 거리가 700m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방서의 초기 출동은 매우 빨랐다. 

소방관 528명, 의용소방대원 113명, 경찰 750명, 구청 직원 400명, 군인 115명, 

의료반원 30명의 엄청난 숫자의 인원이 화재진압에 동원되었고, 

주한 미군까지 가세해서 미 8군 소방대도 출동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 몇 대 없던 고가 사다리 차량은 최대 7층 높이밖에 안 되었고

(현장에 출동한 것은 32m 1대와 15m 4대가 전부였다.), 

따라서 8층 이상에 있던 사람들은 꼼짝없이 죽음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궁여지책으로 사직동 소재 국궁 양성소인 황학정의 궁사들을 불러서 화살에 로프를 묶어 쏘게 했지만, 

화살이 로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무용지물이 되엇다.

 게다가 화재 규모가 여간 엄청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완전 진압에는 7시간이나 소요되었다.

 화재 자체는 이미 5시경에 다 진압되었지만 남아있는 열기 때문에

 7층 이상의 접근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시체 발굴 및 수습에도 18시간이 소요되었다.








남대문 방향에서 바라본 불탄 대연각 호텔 - 197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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