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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한국의 아름다운 다리 - 순천 선암사 승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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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명소

2020. 4. 26.












순천 선암사 승선교(順天 仙岩寺 昇仙橋) - 만다라(1981)



순천 선암사 승선교(順天 仙岩寺 昇仙橋)는 전라남도 순천시 선암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아치교이다. 

1963년 9월 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00호로 지정되었다.  

길이 14m, 높이 4.7m, 폭 4m로 조선 숙종 39년(1713년) 호암화상이 6년 만에 완공한 다리이다. 

기저부(基底部)에 별다른 가설이 없고 홍예(虹預)는 하단부부터 곡선을 그려

 전체의 문양은 반원형을 이루고 한 개의 아치로 이루어졌다.

 다리 중심석 아래의 조그맣게 돌출시킨 석재는 용의 머리 같기도 하다. 

이 다리는 고통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건너는 중생들을 보호 수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개요 선암사의 부도(浮屠)를 지나 경내에 이르면 시냇물을 건너야 되는데 그 건널목에 놓인 다리가 승선교이다. 

시냇물의 너비가 넓은 편이라서 다리의 규모도 큰 편인데, 커다란 무지개 모양으로 아름답게 놓여있다. 

 기단부(基壇部)는 자연 암반이 깔려 있어 홍수에도 다리가 급류에 휩쓸릴 염려가 없는 견고한 자연 기초를 이루고 있다.

 다리의 아래부분부터는 길게 다듬은 돌을 연결하여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를 쌓았으며, 

그 짜임새가 정교하여 밑에서 올려다보면 부드럽게 조각된 둥근 천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홍예를 중심으로 양쪽 시냇가와의 사이는 자연석을 쌓아 석벽을 이루고

 그 윗부분에도 돌을 쌓았는데, 모두 주변의 냇돌을 이용하였다. 

다리 한복판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밑으로 삐죽 나와 있어 장식적 효과를 주고 있는데,

 예로부터 이것을 뽑아내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전해오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불에 타서 무너진 선암사를 중건할 때 이 다리를 놓은 것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의 모습을 보기 바라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는데, 이 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웠다고 한다.  

무지개 모양으로 건설한 양식은 곧 보성 벌교 홍교(보물 제304호)와 같은데, 

2개가 모두 지역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양식상 공통점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다만 돌을 쓴 방식이나 마무리수법이 오래된 양식이며, 그 구조 또한 보다 웅장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미루어 

영조 때에 만들어진 벌교 홍교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만다라는 불법(佛法)의 모든 덕을 원만하게 갖춘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영화 만다라는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이 1981년 제작했던 한국의 걸작 영화였다.

 불교 영화 만다라속 지산(知山)과 법운(法雲)의 인연은 전북 이리시 부근 만경평야에서 시작된다.

그곳은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59년 제작했던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속에서 주인공 로저 O 손힐(케리 그란트)이 시카고 근처의 

어떤 외진 시골 지역에 버스 정류소만 하나 덩그러이 있는 허허벌판을 연상케 한다.

만경평야를 가로 지르는 비포장도로를 운행중이던 시외버스는 검문소에서 멈춘다.

그리고 완장을 두른 헌병이 버스로 올라와서 검문으로 승객들의 주민등록증을 검사하기 시작한다.   

그때 파계승 지산 (전무송) 은 삭발한 머리를 가리키며 '이게 신분증이 아니냐' 고 말하지만 

헌병에게 이끌려 검문소에 발이 묶여 버린다.

   그 광경을 지켜본 젊은 수도승 법운 (안성기) 은 안면도 없는 지산을 아는 스님이라며 

검문소에서 빼내고 그들의 고행은 시작된다.

전남 순천시에 소재한 선암사는 신선이 하강했다는 강선루가 사찰의 입구로 

첫 걸음부터 범상치 않은 곳이라는 생각을 느끼게 한다.

   스님의 낭랑한 독경과 풍경소리는 찾는 이의 마음까지 맑게 한다.  

 만다라의 당초 촬영 예정지는 전남 구례 화엄사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선암사 그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대웅전 옆의 노전은 지산이 한때 동료 학승이었던 주지스님에게 '소주를 가져오라' 고 호통쳤던 곳이다.

선암사의 승선교를 건너 대운전옆 노전으로 들어온 법운은 소주를 술잔에 부어 마시는 지산을 나무라지만 

'마음의 부처' 를 외치는 지산에게는 '소귀에 경읽기' 였다.   

큰방으로 불리는 승방에 들어가면 만다라에 나타난 스님들의 일상생활이 그려진다.  

 한 노스님이 죽비를 들고 한번, 두번, 세번을 치면 스님들이 하나둘씩 기상하고 스승과 제자의 선문답이 진행된다.   

법운이 스승으로부터 '병속의 새를 꺼냈느냐' 는 질문을 받던 선원의 한 담벼락. 지금도 그곳 선원에서는 

선원장인 향산스님과 전각스님등 제자들의 수행정진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병속의 새' 와 관련하여 향산스님은 "병속의 새를 꺼내고 못 꺼내는 문제는 

물리적인 차원이 아닌 마음의 차원" 이라고 말한다.   

서울의 한 윤락가에서 지산은 색계를 어기게한 첫사랑이자 윤락녀인 옥순(방희)과 거리낌없이 어울린다.   

법운도 윤락녀의 유혹을 받지만 색계를 지킨다.  

 나중에 법운과 지산은 설악산 오색약수터 한 암자에 그들만의 터를 잡는다.   

겨울눈이 가득한 설악산에 나타난 두 사람의 모습은 영상미의 압권이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만다라의 주촬영기술은 공간촬영이다" 며 "공간촬영은 사람을 중심이 아닌 

주변에 두어 여백을 최대한 두도록 한 촬영기법" 이라고 말했다.   

지산은 그곳에서도 방황한다.     

그는 진정한 불법을 설파하지만 맹목적인 구복만을 요구하는 신도들앞에서 '사이비' 로 외면당한다.  

 결국 지산은 두손을 합장한 채로 동사하며 깨달음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후 법운은 암자와 지산의 시신을 함께 태워 화장식을 한다.   

서울 남대문앞 빵집에서 법운은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어머니(박정자)와 만난다.   

어린 법운을 친척집에 맡긴채 재가한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버린 것이다.   

아마 법운은 그제서야 '병속의 새' 를 꺼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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