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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잔재 청산 작업으로 사라진 창경궁 장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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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考古學]

2021. 1. 23.

일제의 잔재 청산 작업으로 1992년에 사라진 창경궁장서각(昌慶宮藏書閣) - 1957년

 

 

서울 창경궁 내부의 일본식 건물이었던 장서각 - 1957년 

 

 

서울 창경궁 내부의 일본식 건물이었던 장서각 - 1966년

 

 

 

 

창경궁장서각(昌慶宮藏書閣)은 1911년에 창경궁에 건립된 일본식 건물로, 조선 왕실 유물을 위한 

박물관으로 건립되어 사용되다가 왕실이 보유한 서적을 보관하는 도서관이 되었다. 

1938년 이전에는 이왕직박물관으로 불렸으며, 이후 도서관으로 운영되다가 1992년에 철거되었다.

한일 병합 직후인 1911년, 창경궁 자경전(慈慶殿)을 헐어내고 일본 양식의 건물을 지어 박물관으로 사용하였다.

1938년에 이왕직박물관의 물품들이 덕수궁 석조전으로 옮겨져 1939년부터는 서적을 보관·공개하게 되었다.

창경궁 장서각은 1945 해방과 1950~1953 한국전쟁이 지나고, 1960년에 7만여 권의 고서적을 보유한

‘창경원 장서각’으로 일반에 공개되었다.1980년대로 들어서 창경궁의 복원이 진행되면서 철거가 논의되었으나

보존되었고, 1992년에 한국 문화재 복원및 일제의 잔재물 철거 정책에 의해 결국 철거되었다.

 

장서각은 원래는 1918년 창덕궁에 설립된 조선 왕가의 여러 도서 자료들을 모은 서고가 

왕실도서관으로 설립된 이름이었다

원래 왕실도서관의 기능을 담당한 규장각은 구한말에는 그 기능이 축소되었다. 

1864년 고종이 즉위하자 규장각에 소장된 어제(御製), 어필(御筆), 선원보첩(璿源譜牒)등은 종친부로 이관되었다. 

또한 1868년에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많은 서적들이 다시 종친부로 넘어 오게 되었다.  

1908년에 대한제국의 궁내부는 규장각 기구를 개편하여 전모과,도서과,기록과,문사과를 설치하고 

규장각,홍문관,집옥재,춘방등의 서적을 정리하여 사간동 인수관으로 옮겼다. 

1909년에는 이러한 장서들 10만여권을 제실도서라 명명하여 제실도서관을 건립하고자 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1911년 2월 이왕직관제가 설치되고 6월에 적상산사고본의 실록 5,519책과 

선원보각의 자료들과 흩어진 전적을 수집하여 이왕직장서각을 건립하였다. 

1915년에는 창덕궁 낙선재에 4층 건물을 지어 이관하였으며 1918년 신축서고의 편액을 장서각이라 지었다.  

1945년 미군정청은 이왕직을 구왕궁사무청으로 개편하고 장서각도서를 관장하게 하였다.

한국 6.25전쟁 동안 많은 도서가 소실되었으며 6.25전쟁 초기 북한 공산 인민군이 

 적상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 1,760권 900책을 북한으로 반출해 갔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 문화재청은 2019년 3월 26일 전북 무주 적상산사고에 보관됐다가 북한으로 반출된 것으로 알려진

적상산사고본 등 ‘조선왕조실록’ 96책을 새로 확인해 국보로 추가 지정 예고했다.

조선왕조실록은 1973년 국보 제151호로 지정된 데 이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바 있다.

2019년 추가 지정 예고는 국보 제151-1호인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 일부가 국보 지정 당시부터

누락된 사실을 2016년 인지하면서 시작된 2년여 추적 작업의 결과였다.  

추가 확보한 것은 적상산사고본 4책과 오대산사고본 1책, 정족산사고본의 누락본 7책, 봉모당본 6책,

낙질 및 산엽본 78책이었다. 이들 실록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85책),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9책),

국립중앙박물관(1책), 국립고궁박물관(1책)에 소장돼 있었다.   

가장 큰 성과는 한국 6.25전쟁 때 북한군이 반출했다고 전해졌던 적상산사고본이

여전히 국내에 존재한 사실을 확인한 것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1책)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3책)에 각각 분산 보관 중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책은 ‘광해군일기’인데, 첫 면에 ‘무주적상산사고소장 조선총독부기증본’ 등의

인장이 찍혀 있다. 적상산사고본 발견으로 조선 4대 사고(史庫)인 정족산, 오대산, 적상산,

태백산 사고에 소장됐던 실록이 완질 또는 일부 형태로라도 국내에 모두 전해지게 됐다.

장서각은 1955년 6월에 창경원사무소로 관리가 이관되었으며

1969년에는 문화재관리국 장서각사무서가 신설되어 관리를 맡게되었다.  

1981년 대통령령 제10,588호 '문화재관리국직제개정령'에 의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으로 이관되었다.  

장서각(藏書閣)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부속된 한국학 전문 도서관이다.

현재 장서각의 위치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1981년에 건축된 지상 2층 지하1층 규모의 건물에서

자료를 보관하고 있으며 일반도서 및 마이크로필름자료의 열람이 가능하다.

장서각은 1950년 낙선재의 한글소설류, 1964년 칠궁(七宮·임금을 낳은 후궁 7명의 신주를 모신 사당) 소장 자료, 

1969년 봉모당(奉謨堂·정조가 역대 임금의 어필 등을 보관토록 한 곳)과 보각(譜閣)의 자료를 인수하면서 

명실상부한 왕실도서 자료관으로서 위상을 갖게 됐다.

소장 자료로는 조선왕조의 왕실족보류,어제어필류, 왕실탁본자료,왕실고문서류, 군영자료,

구한말의 한글소설등 8만여 책에 달하는 다양한 한국학관련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다.

“오늘날 장서각은 왕실 고문서 5300여 점을 비롯해 국보 3점, 보물 29종,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2종 등

약 16만 책의 고문헌을 소장하고 있다.

장서각은 “조선 건국까지 멀게는 600년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 기록문화의 정수이다.

 

 

 

 

창경궁 장서각 철거[김지은]

 

imnews.im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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