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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콩 RPG-2 방어용 미군 샌드백 보강 포탑 M41 워커 불독 경전차 - U.S Army defence of the Vietcong RPG-2 sandbag setting turret M41 Walker Bulldog Light Tank during the Vietnam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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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Tank

2021. 3. 7.

베트남전 초기 미군의 베트콩 RPG-2 유탄발사기 방어용 샌드백 보강 포탑 M41 워커 불독 경전차

 

 

베트남 당시 미군 기갑 차량의 크나큰 위협이었던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RPG-2 유탄발사기 

 

 

제 2차 세계대전 말기 1944년 소련은 전선에서 노획한 독일군의 대전차무기였던 판처파우스트와 판처슈렉및 

 미국에게 무기대여법으로 건네받은 바주카를 바탕으로 셋의 장점을 합친 대전차 무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 성과물로 70mm 구경의 LPG-44를 만들어냈다. 이 대전차 화기는 독일군의 판저 파우스트보다 작고 

가벼우면서도 미군의 바주카처럼 재장전이 쉬운 무기였고 1944년 말에 RPG-1으로 그 명칭이 변경되어 

양산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러나 70m 사거리에 140~150mm 수준의 관통력은 독일군의 판저 파우스트보다 위력이 약했고 기온에 따라 

명중률이 떨어지는 등 신뢰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어서 종전후 1947년까지 개량을 거듭하게 되었다. 

소련군 대전차무기의 탄두가 독일군의 판저 파우스트보다 작은 크기로는 

결코 관통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소련군은 1948년 RPG-1을 바탕으로 크기를 더 키운 무기를 만들기로 결정하게 되는데 

이것이 RPG-2 유탄 발사기였다. 

소련군 대전차무기 RPG-2는 RPG-1의 신뢰성 문제를 추가 개량으로 해결했다.

 탄두를 30mm에서 40mm로 키웠고 유효사거리 150m, 최대사거리 200m에서 

적국 중형전차를 정면에서 상대할 수 있고 중전차의 측후면을 충분히 관통할 수 있는 180mm 관통력을 지녔다.

 RPG-2 유탄발시기가 실전에 대량으로 등장한 것은 베트남 전쟁 초반이었다. 

일단 RPG-2 유탄발시기의 위력은 강해서 남베트남군과 미군을 괴롭혔으나 

실전 사용상 상당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RPG-2의 베트남 라이센스 생산판 B-40의 단점으로 첫째 탄두에도 발사기에도 안전장치가 없었다. 

그래서 운반중 땅에 떨어뜨리거나, 

심지어 발사를 위해 장전할 때 생기는 충격에도 그대로 자폭되는 경우가 많았다. 

두번째 탄두를 발사기에 고정하는 장치가 없었다. 

그래서 발사하기 직전까지 손으로 직접 탄두를 잡고 고정하지 않으면 

그냥 탄두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자폭되었다.

세번째 사정거리가 너무 짧은 탓에 목표에 엄청나게 근접해야 했다. 

그래서 1발만 발사하더라도 발사연기로 노출되기 쉬운 사수는 한번 쏘고 나면 적의 반격탄을 피할 수 없었다.

네번째  탄도가 곡선을 그리는 데다가 광학 조준기도 없이 철판에 구멍 뚫은 것 뿐인 조준기는 이동목표 공격시에는 쓸모가 없어서 정작 주 목표인 장갑차량보다는 박격포나 유탄발사기 대용으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RPG-2 유탄발사기의 거의 모든 문제점을 개량한 산물이 동시에 병행해서 개발중이었는데 

그것은 RPG-7이었다.

개량된 RPG-2라고 해도 RPG-7앞에서는 성능, 운용, 안전등 모든 면에서 열세를 드러냈다. 

그로 인해 RPG-2는 순식간에 도태되었다. 북베트남군은 RPG-2에 애착을 가지고 

B-40과 B-50으로 카피하기도 했지만 

RPG-7이 등장한 이후에  RPG-2는 주로 부비트랩용이나 유탄발사기 대용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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