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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올림픽 육상 영웅 인간 기관차 자토펙과 프라하를 침공한 소련군의 T-55 전차 - Olympic Athletics Heroes of the Czech nickname human locomotive Zatopek and Soviet Red Army T-55 tanks invading Pr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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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n Tank

2021. 11. 8.

1952년 한국 6.25 전쟁중 핀란드 헬싱키에서 개최된 올림픽 남자 5000m 결승 경기에서 

마지막 트랙에서 질주하다 쓰러져 5위에 머물렀던 영국 육상 선수 크리스토퍼 채터웨이와 

14분 6초 6의 기록으로 우승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던 체코슬로바키아의 육상 영웅으로

 별명이 인간 기관차였던 자토펙 - 1952년 7월 22일 

 

금메달 - 자토펙(903번 : 체코슬로바키아)  은메달 - 알랭 미뭉(607번 : 프랑스)  

동메달 - 헤르베르트 샤데(740번 : 독일)  4위 -고든 프라이스(영국) 5위- 크리스토퍼 채터웨이(180번 : 영국) 

 

체코슬로바키아의 에밀 자토펙은 1948년 처음으로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여 10,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5,0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여 목에 걸었다. 

4년후 다음 올림픽인 헬싱키 올림픽에서는 5,000m, 10,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한 번도 뛰어본 적이 없는 마라톤에도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에밀 자토펙은 1952년 핀란드 헬싱키 올림픽에서 육상 금메달  3관왕을 달성했다.

경기 도중에도 다른 선수가 자토펙을 앞지르면 그는 한동안 힘이 빠진 것처럼 거리를 유지하다가 

"그것 밖에 안 돼?  난 힘이 더 남아있다고."하며 여유롭게 추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다.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보유자가 다른 종목에서 금메달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현재까지 에밀 자토펙이 유일하다.

또한 보통의 장거리 육상선수의 경우는 달리면서 상체와 머리를 꼿꼿이 세우는 반면에 

에밀 자토펙은 상체와 머리를 옆으로 불안하게 움직임에도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런 모습으로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식식대며 달리는 그에게는 

인간 기관차(The Human Locomotive)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에게 누군가가 왜그렇게 웃기게 뛰냐고 물어보자

 "이 종목은 기계체조도 아니고, 피겨 스케이팅도 아니잖아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체코의 올림픽 육상 영웅 인간 기관차 자토펙과 프라하를 침공한 소련군의 T-55 전차 - 1968년 

 

 

1922년 9월 19일 생이었던 체코의 육상 영웅 자토펙은 1945년 제 2차 세계대전 종전후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가 나치 독일로 부터 해방이 되자 자토펙은 해방 조국의 군대에 자원해서 국방 의무에 임한다. 

자토펙은 군 복무 중에도 완전군장을 하고 밤에는 플래쉬를 들고 달리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방독면을 쓰고 다리에 무거운 추를 달고 달리기 연습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어떤 때는 그의 아내를 업고 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자토펙은 1968년 소련군의 체코 프라하 침공 당시때 자유진영을 지지하는 행동을 하고 '2천어 선언'에 참가하면서 그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물론 선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간 건 아니지만 소련의 요구로 

자유진영을 지지한 주요 인사들의 지위가 박탈되었는데, 육군 대령이었던 그 역시 각종 지위를 박탈당하여 

길거리 청소부로 전락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가 되었을 망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체코 정부가 그에게 준 불이익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그를 다른 의미로의 '영웅' 으로 간주하게 되면서 제 2의 프라하의 봄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게 되자 

체코 당국에서는 아예 일반 대중들하고 격리시키려 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그는 체코의 우라늄 광산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이후, 깊은 탄광에서 작업모 하나를 달랑 쓰고 

우라늄 광을 캐는 노역에 시달렸고, 풀려난 뒤에도 감시에 놓이는 등 정치적으로 사면되기까지 

20년이 넘도록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된다.

그는 1989년 벨벳 혁명이후 다시 복권되지만 병으로 시름시름하다가 결국 2000년에 프라하에서 사망한다. 

자토펙은 선수 은퇴 후 말년을 호의호식하며 살 수도 있었지만, 자유를 갈망하는 큰 일에 주저하지 않고 

뛰어들었기 때문에 그가 진정한 국민영웅으로 추앙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2000년 12월 6일 체코 프라하에서 국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엔 체코 국가와 

자토펙의 고향 민요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수천 명의 추모인들이 모여 애도의 눈물을 흘렸다. 

라미네 디아크 국제육상연맹(IAAF)회장은

 "우리가 그의 죽음에 슬퍼하는 이유는 그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4개나 따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도 평범한 한 인간이었으며,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위해 온 몸을 던진 투사였기 때문이었다."고 애도했다. 

이날 장례식엔 훗날 체코 대통령이 되는 밀로시 제만 수상 등 주요 요인들은 물론 후안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등 각계 인사가 대거 참여해 슬픔을 함께 했다. 사후 IOC는 그에게 피에르 드 쿠베르탱 메달을 수여했다. 

그의 부인은 2020년 3월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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