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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과의 유래와 역사] 설 명절에 빠질 수 없는 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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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 13.

[한과의 유래와 역사] 설 명절에 빠질 수 없는 한과












설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설 명절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중 하나가 한과입니다.


친구의 소개로 한과를 직접 만드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나 주문하였답니다.

맛보기도 좀 챙겨주셔서 집에 오자마자 먹어보았는데요 그렇게 달지 않고

맛도 좋더라고요. 조청도 직접 다 만드셔서 하셨다고 하니 정성이 가득

들어있는 한과라 맛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맛있고 정성 가득한 한과, 한과는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요?
궁금하시죠? 오늘은 우리나라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과자 한과의 유래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과의 유래]
한과류를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확실하게 알 수는 없으나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제사 음식으로 菓(과자)를 쓴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신문왕 3년(683년) 왕비를

맞이할 때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예물을 보내는 물건 중 꿀이 있어 한과류를

만들었다고 추정할 수 있으나 문헌에 의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고려 시대부터입니다.










[한과의 역사]
우리나라 과자의 기원은 과실이 나지 않는 계절에 곡식을 과실의 모양으로 본따

대용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어 그 역사는 매우 깊다고 생각되는데요,

한과 주재료는 대개 곡물과 꿀과 기름입니다.


식품역사상 이 세 가지가 모두 갖추어져 사용되어진 시기는 부족국가 및 삼국시대

입니다. 부족국가시대에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등의 부락제가

있었습니다. 이때에는 군중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춤을 추었다고 하는 농경의례와

같은 의식이 있었는데 이때 다른 음식과 함께 한과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된 점으로 한과의 존재를 유추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본래

한과류가 차에 곁들이는 음식으로 만들어졌고, 음다(飮茶)풍속이 성행된 것은 불교가

융성했던 통일신라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숭불사조가 고조되었던 통일신라에서 음다풍속과 육식절제풍습이 존중됨에 따라

채식음식의 발달과 함께 곡류를 주재료로 한 한과류의 발달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일입니다. 통일신라시대 후기로 가면 다과상, 진다례, 다정모임 등의 의례행사가

형성 되는데 이에 따라 한과류도 급진적으로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고려시대 또한 불교를 호국신앙으로 삼아 살생을 금했던 만큼 육식이 절제됨에 따라

차를 마시는 풍속과 함께 한과류가 한층 더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고려의 한과류

중에서는 특히 유밀과가 발달되어 불교행사인 연등회, 팔관회 등 크고 작은 행사에

반드시 고임상(高杯床, 큰상)으로 쌓아 올려졌습니다. 또한 왕의 행차 시에는 고을이나

사원에서 유밀과를 진상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한과류 중 유과류는 민간에서도 유행하여 주 로 정월초하룻날에 많이 해 먹었습니다.

당시 민간에서는 유과를 튀길 때 부풀어오르는 높낮이에 따라 서로 승부를 가리는

놀이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한과의 유래와 역사] 설 명절에 빠질 수 없는 한과






[한과라는 이름이 붙여진 까닭]
한과는 韓국의 과자가 아닌 漢의 과자입니다. 즉 한국의 과자라는 뜻이 아니라 漢 의 뜻을

가진 과자입니다. 전통적으로 과자는 식사시간 이외에 먹는 것입니다.漢의 뜻은 엄청 많이

있습니다.여기서는 "끼니때 밖"이라는 뜻이 있는데요, 즉 식사 때 이외에 먹는 과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식사를 대용하는 것이 아닌 고급 간식용 과자라 할 수 있습니다.


한과는 아무 때나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아니었고, 잔치상이나 제사 때에나 볼 수 있는 고급

음식이었습니다. 옛날 어린이들은 한과 하나 더 얻어먹으려고 밤잠을 설쳤다는 일화도 있답니다.




한과의 유래와 역사 잘 보셨나요? 요즘은 과자의 종류가 참 많고 맛도 다양하지만 우리 전통의

한과가 많이 알려지고 애용되었으면 좋겠네요.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