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장성 답사

북두 홍찬수 2014. 11. 2. 21:18

환도산성(丸都山城)을 뒤로하고 집안시내(集安)를 지나

광개토태왕 묘(廣開土太王墓)와 태왕 비(太王碑)를 찾아 떠난다.

국내성(國內城)은 평지성(平地城)으로 집안시내(集安市)에 있었는데

대단위 아파트단지로 변해 아파트 축대로 착각을 해서 무심결에 지나쳤다.

준비없이 의욕만 가지고 떠난 여행 길에 또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동북쪽으로 시내를 벗어나 3km지점 좌측에 이정표가 있다.

호태왕민속촌(好太王民俗村), 장군총(將軍塚), 태왕 묘 태왕비(太王墓 太王碑)가 있다고 ...

장천묘지(長川墓地)는 찾아가지 않았다.

호태왕 비(好太王碑)에 정자를 지어 유리로 보호막을 만들어 놓았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서 안으로 들어가는데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을수 없게 통제를 했으며

태왕 비 주변에는 한국돈 천원짜리와 동전이 수북히 쌓여있다.

수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고구려 제20대 장수왕(長壽王)이 아버지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기록해 놓은것이다.

 

국강상광개토태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太境平安好太王).

국강상(國岡上)은 태왕능(太王陵)이 있는 땅이라 칭하고.

광개토태경(廣開土太境)은 영토를 넓게 확장한다는 의미이고.

평안(平安)은 백성들이 평안하게 하고.

호태왕(好太王)은 광개토 태왕의 별도 호칭이다.

 

비석의 높이는 6.39m

면은 1.35m ~ 2m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비문에는 총 3편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

첫 번째가 고구려 건국신화(高句麗建國神話)와 비의 건립경위(碑 建立經緯) 등을 기록했으며

광개토 태왕의 즉위연대(卽位年代)와 재위기간 (在位期間)등을 새겨 놓았다고.

 

둘째는 광개토 태왕이 대외 정복활동(對外征服活動)을 기록한 부분으로 시기와 이유

결과 등을 새겨 당시 국가 간의 상황을 판단하게 기록 해놓았다고.

 

셋째는 능묘(陵墓)를 지키고 관리하는 수묘(守墓)인의 규정으로

고구려의 묘제도(墓制度)의 실상과 수묘인의 신분을 기록했다고...

 

우리나라 경기도 구리시(京畿道 九里市)에 광개토태왕 공원(廣開土太王公園)이 있다.

 

광개토태왕의 묘(廣開土太王墓)이다

규모가 대략 국제규격 축구장보다 크게 느껴진다.

커다란 돌을 깍아서 축대를 쌓았으며 작은돌로 위를 덮어 놓았다.

한면에 커더란 돌을 중심에 맞추어 5개식 총 20개를 세워 놓았다.

무덤을 보호하는 수호병사(守護兵士)를 의미 한다고 한다.

모진 풍파속에 1,700여년 세월의 역사를 담고있다.

태왕묘 서족에 길게 만들어진 돌계단이 있다.

오래된 사진을 보면 예전에 이곳을 철재 계단으로 만들어저 있었다. 

게단을 따라 올라가 본다.

계단옆 돌틈 사이로 이름모를 들꽃이 피어있다.

조용필의 "들꽃"이란 노래가 생각난다.

돌틈사이 이름도 없는 들꽃으로 핀다해도~

내 진정 그대를 위하여 살아가리라~~

 

계단을 오르니 조그마한 문을 만들어 놓았고

그 안에는 2개의 석관(石棺)이 놓여있고

유리로 막아놓아 안을 볼수있게 해 놓았다.

앞에 제사(祭祀)를 모실수 있게 작으마한 제단(祭壇)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 과일과 제주가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호태 왕(好太王)을 모신 제단(祭壇)인 것 같다.

여기서 3배(三拜)를하고 나왔다(이지공 알지공 싼지공~~)

제단앞에서 집안시의 풍요로운 농촌풍경을 배경으로 1컷.

이곳의 돌은 특이하게 수정이 박혀있는 것 같고

보기에도 유난히 단단해 보인다...

고구려 제 20대 장수왕(長壽王)으로 추정되는 묘인 장군총(將軍塚)의 발굴당시

1938년 사진과 1992년에 단장해 놓은 사진을 비교해서 전시해 놓았다.

한쪽에 세워진 돌이 2개인 것으로 보아 북족에서 찍은 사진일것이다.

 

 

고구려 제19대 광개토태왕 묘(廣開土太王墓)를 시대별 사진으로 전시해 놓았다.

위 사진은 무심고 보면 작은 동산으로 착각 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진(秦)나라 진시황제(秦始皇帝)가 240년대 인물이고.

광개토대왕(廣開土太王)이 기원전 38년 인물이니

두 사람의 시대 차이가 그리 크지않다.

사진속 4개의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가 세워져있다.

4개의 면에 새겨진 비문 때문에 비교해서 전시해 놓은 듯하다.

사진속의 초립을 쓴 이는 감 삿갓이 아닐까???

태왕 비가 세상에 알려질 때 비석에는 1,700여년 동안

습기를 먹고 자란 이끼가 두껍게 덮여 있었다고 하며

이끼를 제거하는 과정에 글자가 많이 훼손되었다는 설(說)과

발굴당시 일본군(日本軍)에 의해 비문(碑文)이 훼손되었다는 설(說)도있다.

 

그래 가끔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압록강(鴨綠江)건너 북녁땅이 푸르게 병풍(屛風)을 휘둘렀구나..

한 폭의 풍경화(風景畵)가 따로 없다.

조물주의 작품을 감히 누가 평가하리....

아름답고 멋진 우리 강산이로세..

 

통일(統一)이 되는그날 평양성(平壤城)을 꼭 가리라....

광개토태왕 묘지(廣開土太王墓地) 주변에 이런 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

삶이 너무 무거워 가지를 축 늘어 트리고 있다.....

바닦에는 푸른 잔디가 아닌 네잎 클로버 풀이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