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장성 답사

북두 홍찬수 2014. 11. 2. 21:24

태왕 묘(太王墓)를 답사하고 장군총(將軍塚)과 고분벽화(古墳壁畵)가 있는 오회분 묘(五盔墳墓)를 찾아간다.

장군총(將軍塚) 주차장 앞에 다른곳에서 볼 수 없었던

고구려(高句麗) 28대 왕들을 소개해놓았다.

1대 동명성왕(東明聖王 朱蒙)에서 28대 보장왕(寶藏王)까지 700년 왕조(王祖)를 소개하며

고구려(高句麗)는 중국의 북방 소수민족(中國北方少數民族)이 통치했던 나라라고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한 배경을 한글로  설명을 해놓았다. 

 

장군총 전망대(將軍塚展望臺)라고 표지판이 되었다.

표지판을 따라가면 장군총(將軍塚)을 안내 설명하는 한족(漢族)사람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중국어로 설명을 해서 자세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20대 장수왕의 묘(長壽王墓)라고...

고구려 제20대 장수왕의 무덤(高句麗 20代 長壽王墓)으로 추정되는 장군총(將軍塚)이다.

발굴당시 도굴(盜掘)꾼에 의해 내부가 훼손되어 특별한 유물은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돌로 쌓아만든 무덤을 커다란 돌기둥 3개가 받쳐있다.

태왕 묘(太王墓)에는5개인데 이곳은 3개이다.

무덤의 쏠림현상을 막아주고 무덤을 지키는 병사를 형상했을거란 추정이다.

무덤위에는 바람이 통하는 문일까?

중앙에 통풍구를 만들어 놓았다.

무덤을 마닥부터 커타란 돌을 일정크기로 깍아 10층높이가 1단게 공사이고

그위에 안으로 드려쌓기로 다시 돌을 쌓아 만들었다.

무덤을 받치고 있는 돌의 크기가 비슷하며 북쪽에는 받쳐 논 돌이 2개뿐이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원래부터 2개를 세웠는지는 모르겠다

북쪽 돌기둥을 촬영했는데 어디로 갔는지???

한쪽에는 철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오르 못하게 계단을 막아 놓았다.

장군총(將軍塚) 동족에 작은 돌무덤이 있다.

왕비(王妃)나 후궁(後宮)의 돌무덤으로 추정하고 있고

묘의 훼손이 심하다.

장군총을 답사하고 고분벽화(古墳壁畵)가 있는 오회분 묘(五盔墳墓)를 찾아간다.

오회분 묘를 찾아가니 무덤에 문을 만들어 지하로 들어간다.

내부는 습하고 서늘했다.

사진 퐐영이 금지되어 있고 어두워서 벽화를 자세히 보아야한다.

안내하는 사람이 손전등으로 벽화(壁畵)를 비추어가며 설명을 했는데 카메라에 담을수없었다.

이곳에는 5~개의 무덤이 눈에띤다

묘를 1~5 순번을 정해서 관리하는 것 같다.

고구려 무덤이 돌무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 오회분 묘는 흙으로 봉분을 만들어 놓았다.

경주의 신라 왕릉 부여의 백제 왕릉과 같이 커다란 봉분을 만든 무덤이있다.

오회분 묘에서 고분벽화(古墳壁畵)는 사진 촬영을 못했지만 이것으로 대신한다.

부채 상단에 세계 문화유산지 중국 집안(世界文化遺産地中國集安)이라고 쓰여 있는것을보니

이곳이 집안시 전체 유적지가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것같다.

손아귀 들어오는 광개토태왕 비 (廣開土太王碑)....

대장이 가지고 싶어하니 사진으로 보낸다.

4면에 새겨진 비문(碑文)의 글자가 1,802자라고 한다.

 오회분 묘(五盔墳墓) 답사를 마무리로 고구려(高句麗)의 숨결이 묻어 있는

집안시의 짧은 시간 답사를 마치고 나오며

기념품상점에 들려서 호태왕 비(好太王碑)를 2개를 샀다.

하나는 함께했던 친구에게 선물로 주고 하나는 기념으로 보관할 예정이다.

기념품 상전에는 북한 물품이 많이 진열되어있고

호태왕 비가 크기별로 다양하게 만들어 진열해 놓았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인가?

살아 남은자가 강한 것인가?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쓰여지는 걸까?........

잠시 생각을 하며 길을 나선다.

다음 답사지역은 천리장성(千里長城)최북쪽 농안의 부여성(農安 扶餘城)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