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장성 답사

북두 홍찬수 2014. 11. 2. 21:34

612년 2차 고구려(高句麗)와 수(隋)나라와 전쟁(戰爭)때 113만의 대군을 이끌고

수(隋)나라 양제(煬帝)는 오늘날 북경(北京)주변 탁군(涿郡)에서 군대를 집결하여

육로군(陸路軍)과 수로군(水路軍)으로 나누워 고구려(高句麗)를 침략(侵略)했다.

우중문(于仲文) 528천명, 우문술(宇文述) 528천명, 수양제(隋煬帝) 264천명

총 132만명이 고구려 정벌(高句麗征伐)에 나선다.

이중 10만명은 산동반도(山東半島)의 동래에서 군선을 건조(軍船建造)하고 동원(動員)해서

요동반도9遼東半島) 끝인 비사산성(卑沙山城)과 장산군도(長山群島)를 거처

평양성(平壤城)으로 공격(攻擊)을 하게한다.

 

645년 당(唐)나라 이세민(李世民) 역시 수양제(隋煬帝)와 마찮가지로 이세적(李世勣)을

앞세워 탁군(涿郡)에서 군사를 일으켜 요동정벌(遼東征伐)에 나서고

당태종(唐太宗)은 친히 요하(遼河)의 늪을 건너 요동성(遼東城)을 공격함락(攻擊陷落)시킨다.

탁군(涿郡)은 수양제(隋煬帝)가 완성했다는 경항대운하(京杭大運河)의 북쪽지점으로

군사(軍事)와 군량미(軍糧米)를 운하(運荷)를 통하여 쉽게 운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천리장성 답사(千里長城踏査)는 요동성(遼東城)터를 답사(踏査)해 본다.

요녕성 요동평원(遼寧省遼東平原)에 축성(築城)한 고구려 산성(高句麗山城)을 정리해 본다.

고구려 산성(高句麗山城)은 동북3성(東北3省)에 약120여개 이상을  축성(築城)한 것으로

정확한 위취나 산성의 수(數)의 기록(記錄)은 거의 찾아 보기 힘들다.  

 

요동성(遼東城)이 있던 자리에 요나라가 세운 커다란 탑(塔)이 하나 세워저있고

이탑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태자강(太子江)이 흐르는데

백탑(白塔)애서 태자강(太子江) 강변까지가 요동성(遼東城) 있었던 성터라고 전해진다.

요동성(遼東城)은 최고 높이가 30m정도였고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평지(平地)에 쌓은 평지성(平地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612년 2차고수전쟁때(高隋戰爭)때 수양제(隋煬帝)는 113만 대군으로 요동성을

공격(遼東城攻擊)하지만 요동성 정복(遼東城征服)을 실패하자

수양제(隋煬帝)는 별도로 30만 대군으로 별동대(別動隊)를 만들어

우중문(于㑖文)과 우문술(宇文述)에게 평양성을 공격(平壤城攻擊)하게한다

을지문덕장군(乙支文德將軍)의 살수대첩(薩水大捷)이 이시기에 벌어진 전투였다.

을지문덕장군(乙支文德將軍)께서 우중문(于㑖文)에게 보낸 시(詩)를 올려본다.

 

輿隨將于仲文詩(여수장우중문시)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장군의 뛰어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뚫었으니.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기묘한 전략은 지리를 능통하게 연구한 것 같고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쌓은 공덕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雲止(지족원운지)

만족함을 알고 원하건 데 전쟁을 멈추어 주시길......

 

 

요양 백탑(遼陽白塔)에대한 기록을 동판(銅版)에 새겨놓았다.

중국 76개 탑중에 하나이고 국가급 문화재보호(國家文化財保護)를 받고 있으며

건축시기(建築時期)는 1161~1183년 요(遼)나라(거란족) 금(金)나라(여진족)때

세워진 탑이며 약 800여년의 역사(歷史)를 가지고있다.

높이는 71m  8각 벽돌탑이며 중간에 8면에 불상(佛像)을 세워놓았는데

중앙에는 좌불상(坐佛像)이고 양 옆으로 서있는 불상을 만들어놓았다.

중국 6대 고탑으로 기록되있다.

 

 

백탑앞에는 사각형의 추추돌로 추정되는 돌이 놓여있었고

지하 유리관에도 많은 석조유물(石造遺物)이 전시되어있었다.

한(漢)나라때 세웠던 광우사(廣佑寺) 절터에서 나온것일까?

아니면  고구려 요동성(高句麗遼東城) 성터에서 나온 유물(遺物)일까?

 

 

 

 

백탑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는데

이곳에는 흰색 붉은색 비단잉어가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잉어에게 먹이를 주며 피로에 지친 여행을 즐기고있다.

백탑 하단부(白塔下段部)는 커다란 돌로 기초를 다져놓고 위에 회색 벽돌로 탑을 쌓았으며

벽돌 탑위에 불상을 세우고 작은 기와로 처마를 만들어 놓았다.

 그 위로 13층의 탑을 높게 쌓아놓았다.

이 백탑(白塔)을 세운 목적이 전쟁에 승리(戰爭勝利)를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승리탑(勝利塔)이 안일까?

 

각(角)을 살린 난간위에 불상을 세우고 곡선으로 주변을 부드럽고 조화롭게 만들어놓았다.

 

백탑주변에는 연세 지극한 분들이 한가롭게 게임과 춤으로 일상을 달래고 있다.

 

광우사(廣佑寺) 한(漢)나라때 세웠던 사찰이라 한다.

어떤 연유로 소실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명(明)나라 홍무(洪武)16년에 복원했다고....

광우사(廣佑寺)에는 세계 최대의 금동불상(金銅佛像)이 모셔저 있다고 하는데

광우사는  백암산성(白岩山城)을 다시 답사(踏査)하기로 해서 들리지 않았다.

 

유유히 흘러 요하강(遼河江)을 만나러 흘러가는 태자강(太子江)이다.

요양시(遼陽市)를 흐르는 태자강(太子江)에는 커다란 다리가 놓여 있는데

위에 사진은  백암산성(白岩山城)에서 짝은 태자강(太子江) 모습이다.

백탑(白塔)과 태자강(太子江) 사이의 큰 도로 이름이 요동로(遼東路)로 표기되어 있다.

1400년전 수(隋)나라의 612년 때 2차 고수전쟁(高隋戰爭)의 아픔을 이겨내고

645년에 당(唐)나라에 의해 무차별 투석공격(投石攻擊)에도 버텨온 요동성(遼東城)이

봄 바람을 이용한 화공(火功)에 끝내 무너진 평지성(平地城)인 요동성(遼東城)은

 흔적도 없이 이름만 남겨 놓고 역사(歷史)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요동성터에는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다음 천리장성 답사(千里長城踏査)는 요동성 동쪽 백암산성(白岩山城)을 답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