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

북두 홍찬수 2014. 11. 2. 21:43

 

여순 여행때 찍은 사진을 정리해  본다.

여순감옥에 대한 자료를 못 챙겨서 부족하지만 이해하고 보시길....

지난해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서 카메라를 주머니에서 꺼내지도 못했는데

그래도 이곳에는 맘대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먼 훗날에 우리들 손자손녀가 쑥쑥 자라거든 당당히 이야기 해주길 바라며

재미있게 보아 주었으면 감사~~~~~~~~~

여순감옥 전면 건물로 현대식 건물처럼 보인다

역사가 1900년대에 세워진 건물이다

후에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이 1907년에 증개축을 했다.

 

정면 문패가 여순 일본 러시아 감옥 옛터라고 ....

3층건물로 러시아 야전병원은 1층 회색벽돌이고

붉은색 적별돌은 일본군이 증축한것으로 구분된다.

잔디밭에 불룩 솟은곳이 음식물 지하 저장창고이다.

감옥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오른쪽 작은 안내판은 금연과 확성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문구이다.

수감자들이 입었던 복장으로

색상이 청색과 붉은 색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무슨 의미인지??

소제는 면(광목이다)

수감방에는 약 1,5평정도 크기이며 창문이 있으며 2개의 나무통이있다

세면용과 대소변용으로 판단되고

짚신 6개가 정리되어 있는것으로 보아 6명이 생활한것 같다.

복도 중간에 철망으로 아래를 볼수있게 해 놓았으며

이러한 수감방이 1,,2,,3층 약 300여개정도로 추정된다

감옥을 소개한 책자가 없어 대략 짐작을 해 본다.

무엇에 사용했던 물건인가?

일본군들이 사용했던 물건들을 정리해보았다.

 

천황폐하 만세 라고 외치며 목숨바쳐

충성한 놈들은 1번 사발에 고봉으로 밥을 주거라....

어중이 떠중이는3~4번 사발에 밥을주고

악질 골수들은 5~6번 사발에 밥을 주도록 하여라....

밥 그릇이 커지면 나무는 얇아지고

밥 그릇이 작아지면 나무든 두꺼워지고

사진을 자세히 보면 그릇의 크기가 각기 다르다.

잔인한 놈들 차라리 굶겨라.....

먹는것 가지고 장난치면 천벌을 받는다.

나무를 깍아서 식사량을 조절해 가며 수감자들을 관리를 해왔다.

우리의 영웅 안중근의사께서는 어떻했을까???

 

TV드라마에서 자주보던 전화가이다

수화기 받침대가 아주 인상적이다.

최근 드라마 각시탈에서 도 등장했던 전화기다.

 

여순감옥에는 무게가 상당히 무거운 청동 선풍기가 있다....

옆에 있는 물건은 무엇에 쓰였는지??

설명서가 없어 이정도로 친구들에게 소개하는거로 만족해야 하나?

미안한 마음뿐이다.

지난해 상해 임시정부청사에 갔을 때 중국 공안국 직원이 사진촬영을 못하게 했는데

그래도 이곳은 사진 촬영을 허용하는 것도 감사해야 할듯..

 

이 도자기함은 또 어느 용도로 활용했을까?

금계관 전투를 지휘했던 노가마레스키의 술 단지였나??

아니면 꿀 단지였을까?

중국 친구들도 글자를 못 알아보고

 그냥 밑에 술 주자(酒)만 알아보는데....

후에 알아서 다시 댓글로 정리해보자....

 

아~~

추억에 타지기  베 임용선생님이 떠오른다.

헌데 자판기가 우리와 많이 다르다.

탁상용 시계도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듣 한데

지금도 하루에 2번은 정확히 시간을 맞춘다 ㅎㅎ~~

오전 오후 12시30분 아마 점심식사 시간에 맞추어 졌나??

 

저울과 카메라인가??

사진을 급히 찍고 다른곳으로 이동하느라 정확히 확인을 못했지만..

저울은 요즘과 디자인이 큰 차이가 없다.

 

어라~~

사진이 중복되었네....

모시모시 송 대장 통신보안....

 

우리가 20대에 흔히 보았던 기름 버너이다.

1945년 이전에도 기름 버너를 사용했던것 같다.

해성이는 물 끓이고 중찬이는 신라면  사오고  사근이는 그릇 챙겨라...

대장은 주사가 있는 친구는  반드시 6번 그릇에 라면을 담아주시게... 

 

이것은 또 무었인가?

유리관에 보전되있어 유리에 내 모습도 보이네 ㅎㅎ~

사형수가 사형장으로 불려갈때 썼던 대나무 가면이다.

동료들이 누군지 못 알아보게 사용했던 것 같다..

사형장에 가면 종교의식 이 끝나고 나면

이 가면을 벗기고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

아레 사진은 여순감옥의 조직도이고

내부의 수감방을 감시했던 감시대이다.

 

조직도를보면 감옥을 얼마나 세부적으로 관리 했는지를 한 눈에 알아볼수있다.

 

햔재 우리 가족이 서있는 곳이

3층 감옥을 한 눈에 전체를 볼수있게 설계되어 있는 감시초소 감시대이다..

 

감시대에서 전면을 중심으로 좌측과 우측복도를 고개만 돌리면 한눈에 감시할수있으며

복도에 철망으로 되어있어 아래층에서 움직임을 감지할수있다.

 

복도에 공간을 만들어 철망으로 막아 위에서나 아래에서 동시에 상황을 감시할수있다.

 

복도 천정에 환기구를 설치놓았다.

불행중  다행으로 수감자들이 조금이라도 햇볕을 볼수있게 설계한것 같다.

 

복도를 중심으로 좌우 수감방이다.

 

35번방 단재 신채호선생님께서 수감생활을 했던 곳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인증샷을 했는데 아내의 좁을 어깨가 내 마음을 슬프게 한다.

그 옆 36번 방에는 이회영 선생님께서 수감생활을 하셨다.

고문형틀과 각종 고문기구들을 전시해 놓았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각종 고문기구들로 가득하다.

큰 대자 형틀에 인심 쓴다고 베게도 있다

.철로 만들어 놓은 수감의 형태도 다양하다.

쇠꼬챙이 와 나무 몽둥이 나무를 세워 만들어 놓은 형틀

발에 쇠방울을 달아 놓은 족쇠등.....

 

고문용 수갑이 다양하다.

세공기슬이 좋지 않았던것 같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밥 그 릇이 6번 그릇이었을까??

 

피곤한 사람들이 와서 쉬는곳이 아니다.

반 일을 외치고 독립운동을 햐셨던

애국지사들께서 이곳에서 고생을 하셨을 것이다.

 

쇠방울을 단 족쇠의 무게는 얼마나 나갈까?

 

보면 볼수록 으스스하고 소름이 돋는다.

드라마에서 고문할 때 사용했던 것과 하나도 틀린게 없다.

최근 각시탈이란 드라마를 보았을 때 지하방에서 고문 받던 배우가 문득  떠오른다.

 

이것은 수감자에게 허리를 묶고 발을 묶는 족쇠이며 원형 무쇠 덩어리를 달아놓았다.

 탈출자 혹은  탈출 의심자들에게 채웠던 기구이다.

잠을 잘때도 풀어주지 않았으며 중범자에게는 1년이상도 족쇠를 채웠다고 한다.

살이 벗겨지고 고름이 생기고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족쇠에 달린 쇠 방울의 무게는 11kg이라고 밑에 사진에 적어놓았다.

 

이렇게 쇠 사슬로 묶어놓고  족쇠에 쇠방울까지......

아~~

어쩌란말이냐?

아베는 아런것도 모르는거냐?

 

이건 또 뭐하는 도구냐?

아래 사진이 말해 줄거다...

 

야외에서 작업할 때 2인1조로 허리에 쇠고랑으로 허리벨트를 착용하게 하고

다리를 함께 족쇠를 채워 도망을 가지 못하게 했다.

누가 인간의 생과 사를 심판할 수 있겠는가??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다.

인명은 오로지 하늘만이 정 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에 도전한 사람들..

 

의무실 오른쪽 문에 붙어있는 문패이다.

의무실에 치료를 받으러 왔다가 이 문패를 보게 된다면

독립운동을 했던 선조들께서 어떤 심경이었을까?

 

교수형을 집행했던 사형장이다.

천정에 도로레에  밧줄을 걸어놓고  줄 끝에 옳가미를 지어놓았다.

바닦에는 작은 의자가 하나 있다.

사진에는 없지만 옆방에는 작은방 2개가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마지막 휴식처이다.

 

2층 나무의자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바닥이 밑으로 꺼지면서 교수형을 처했던곳이다

2층에서 교수형을 당한 사람을  검시관이 삶과 죽음을 한단을 하고

아래층에 원형나무통에 넣어었다.

 

 

북대문 ~

이곳은 죽은 이들이 드나들던 문이다

교형장에서 형을 마친 사람들이 저승으로 갈때  이문을 지나서 뒷 동산에 묻혔다.

안중근 의사께서도 이  북대문을 통해 한 많은 생을 마감 하셨을것이다.

 

믄패가 "감옥묘지장경복원" 이라쓰여있다.

감옥에 있던 공장에 묘지를 발굴하여 원형으로 복원해서 옮겨놓은 전시관이다.

 

교수형을 당한 시신을 일본순사 2명의 호위 아래

북대문을 통해 뒷 동산으로 옮겨지고 있는 장면이다.

 

뒷 동산에 옮겨진 시신을 묻기 위하여 땅을 파는 장면이다.

 

엄중해야 하는 하관식에 조문객이 없다.

오로지 총칼에 채찍을 든 일본순사 2명과 시신을 올기고 묻는 수감자뿐이다.

망자에게 이승에 한을 달래줄 술 한 잔도 없다.

 

헉!

이게 어찌된일인가?

교수형을 당한 시신들이 촘촘하고 빼곡하다

무덤이 아니고 유골을 저장했던 저장고 같은 생각이든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안중근의사의 시신은 찾지도 못했는데 

이곳 어디엔가 있을텐데....

나무통속에 죽은이에 대한 인적사항이라도 적어두지...

러일전쟁 전시관을나와 다음 전신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이 전시관은 우리 선조들이 중국에서 항일 활동을 했던

사진을 전시해 놓은 한국관이다.

 

 

 

.

 

독립운동을 하사다 여순감옥에서 순국 하신 분들의 흉상을 만들어 놓았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안중근의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여순애서 옥사를 했다는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여순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않다.

 

 

이곳이 안중근의사께서 하알빈에서 압송되어

 순국하시기  전까지 생활하셨던 감옥 독방이다.

방안에는 침대1개 나무통2개 짚신 한 켤레 조그만 책상과 의자1개가 있고

책상위에는 의사께서 사용하시던 먹과 벼루가 놓여있었다.

 

안중근의사의 짧은 삶을 동판에 새겨 후손들에게 인중근 의사께서

조국을 찾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내용이다.

 

단재 신채호선생님의 흉상이다.

 

35번방의 비밀

단재 신채호선생님께서 수감생활을 했던 35번 방이다.

 

1880년 충남 대전 출생이다.

문학 언론 역사학자이셨던

단재선생님은 세수 할 때도 꽂꽂히서서 세수를 했다고 한다

일본군에게 고개나 허리를 숙이지 않았다고 옷이 다 졋어도.......

 

 역사가 오로지 난국의 희망이라는 일념으로

중국 만주 일대를 주유천하 하며 고구려역사의 흔적을 찾아

길림성 집안시에서 1년간 마무르시며  선조의 흔적을 찾아 다니셨다.

저서 "조선상고사"에 많은 기록을 남기셨다고..

특별히 역사를 강조한 내용이 KBS 역사스페셜에 방영되었다.

 

1923년 의혈단장 김원봉에게 조선혁명선언문과

행동지침서 5가지와 7가지 사화 암적인 요소를 제거 할

7가살이란 것을 의혈단에게 지시한다.

단재 선생께서는 의혈단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인과 함께 어음을 위조 해 교환하러 중국인 이름 유맹언으로

신분을 세탁하고 일본을 거쳐 대만으로 오는도중 대만에서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여순에서 옥고를 치루다가 병이 악회되었다

일본군은 선생께 병 보석을 해주겠다 고 하엿지만

끝내 거부하고  56세 나이로 순국하셨다.

평소 역사를 강조하셔서 노역을 하는 중간 짧은 시간에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독립군들에게 역사를 알리면서  옛 고구려의 땅 발해의 땅

우리의 땅에서 독립은동을 할수있도록 정신적 주체가 돠셨던 것이다.

 

우당 이회영선생님의 흉상이고  55세에 순국하셨다..

 

36번방의 비밀

동북의 호랑이 이 회영선생님께서 수감생활을 하셨던곳이다.

 

조선 최대 명문가의 후손이며 선생의 6형제가 독립운동을 하기위 마련한

자금이 현시가로 1천억원이 넘는다고

전 재산을 털어 가족들을 데리고 만주로 넘어와 독립운동을 하셨다

신흥 무관학교를 건립하여 인재들을 양성하였고 무력에는 무럭으로 대항하셨다.

신식 군사교육을 받은 선생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주요건물 파괴하고

일본군 주요 인물을 상대로 암살단을 운영하기도 했다.

 만주벌판(동북)의 호랑이 라고 불리울 정도로

일본군의 경계1호 요주의 인물이셨다고 한다.

TV에서 자유인 이회영( 정동환, 안재모 출연)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후손으로는 이 종찬, 이 종걸 국회의원이다.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씨는 전 재산이 단돈299,000원이라는데...

누가 매국노인지 ??

우리 국민들은 왜 분노하지 않는것인지? ㅠㅠㅠ~~

 

최 흥식열사의 흉상이 모셔져 있고 36세에 순국하셨다..

 

1909년 서울출생으로 1932년 상해로 김구선생을 찾아가 애국단에 입단헌다.

1932년 5월 중국 대련에서 일본군 만주침략에 대한 영국및 국제연맹에서 조사차 방문을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일본 관동군 사령관 혼조시케루를 암살을 계획하다

.체포되아 여순감옥에 옥고를 치루었으며

1945년 8월14일에 일본 천황이 항복하기 하루전에 순국한 갓으로 알려져있디.

정부는 1991년에 대한만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유상근열사의 흉상이 모셔져 있고 33세에 순구하셨다.

 

1912년 강원도 통천 출생이다.

1930년 상해 김구선생님의 애국단에 입단한다.1

932년 최흥식과 함께 같은 임무를 받고 대련으로 와서

최흥식과 함께 체포되어 어순감옥에서 옥고를 치룬다.

1945년 광복 하루 전 날 최흥식과 함께 이곳에서 순국하셨다.

일본군들은 패망 멏 일전부터 독립운동을 하셨던 선조들을 대량 학살을 한것 같다.

정부는 196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했다.

우리 친구들중에 안가성씨(安家性氏)을 가진 친구들이 많이 있다.

특히 중찬이 중균이는 안중근의사와 학렬이 같은가?

 

최근 중국 정부는 안중근의사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여순감옥 공장 터 한 곳을 추모 기념관으로 꾸며 놓았다.

이곳 안중근의사 추모 기념관을 끝으로

부족하자만 여순감옥에 대한 소개를 마무리한다.

 

위사진은 안중근의사 추모 기념관을 알리는 문패이다.

추모 기념관에는 안 의사의 흉상이 모셔져 있고 앞에는

순국103주년 이라고 쓰여 있는  조화가 놓여져있다.

 

위 사진은 안중근의사께서 순국했던 날자와 위치를 소해한 내용이다.

 

가운데 사진은 교형장에있는 교수대를 그대로 기념관에 옮겨 놓았다.

교수형 밧줄밑에 의자위에는 안중근 의사의 초상이 놓여져있다.

 

또 한장의 사진은 안중근의사께서 옥중에서 쓰셨던 옥중서법이라 적혀있다.

 

1910년2월에 독립이란 글을 쓰신것 같다.

오로지 대한독립을 외치셨다.

낙관 대신 왼 손가락이  잘린 단지 손 도장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위 사진은 장태영 이란 분이 안중근의사를 평가한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주제일의협(亞洲第一義俠) 아시아의 제일가는 의협이다.

내 짧은 생각으로 볼때 "세계제일의협 " 안중근의사이다.

 

1910년 3월에 쓰셨던 인내라는 글씨다.

글씨체가 굵고 힘차고 절도가 있다.

여순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이라고 쓰여있다.

죽는날까지 독립괴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참고 견뎌내라고

"인내" 라는 굴을 후손들에게 전한다......

 

여순여행을  마무리하며

선조들께서 피와 땀 그리고 소중한 목숨까지 받쳐

세운 나라를 잘 발전시켜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것이다.

또한 일본은 수 차래 한반도를 비롯해 대륙진출을  하려고

수많은 샹명을 빼앗아간 이리떼 같은 놈을이다.

반성은 모기 눈물만큼도없다

오로지 자기네들이 맞다고 정당성만 주장하고 있다.

이기회에 나라가 있다는것에 감사하고 소중함을 알게되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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