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장성 답사

북두 홍찬수 2014. 11. 2. 20:49

천리장성 답사 2번째이다.

봉황산성(鳳凰山城)은 요양(遼陽)의 요동성(遼東城)과 본계(本溪)의 초하구(草河口) 주변의 많은 고구려산성(高句麗山城)이 밀집된 곳이다.  

고구려시대에 수(隋)나라와 당(唐)나라 군대가

평양성(平壤城)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처야 하는 산성이다.

주변 산세가 험하고 산에 물이 풍부하여

전쟁시 백성들이 이곳으로 피난을 하였을 것이다.

산세가 험한 바위로 형성딘 봉황성 전경이다.

주차장에서 인증샷을했디.

안내 표지판에 봉황산의 등산로와 산 봉우리들을 설명해 놓았다.

최고봉이 836m라고 하며 산행을 하는데 5~6시간 걸린다고 한다..

 

봉황산은  동족 풍경구와 서족 풍경구로 나누어 지며

서쪽으로 가면 정상으로 올라 갈 수 있으며

중간에 2인용 작은 케이블카를 설치해 놓았다.(요금은 인민폐 100원).

산성의 문패가 봉황산이다.

세월의 흔적을 표현하듯 목판에 발라 놓은 칠이 벗겨져있다.

문패 옆에 붉은 오성기가 펄럭이고 있는데 .......

 

동쪽 산과 서쪽 산 가운데에 성문을 만들어 놓았다.

봉황산을 들어가려면 이 문을 반드시 통해야 들어갈수 있다.

수나라 당나라 100만 대군이 온다고 해도 이 문을 통해야

봉황산으로 들어갈수 있게 산과 산을  연결하여 산성을 만들어 놓았다.

봉황산 중턱에서 동쪽 단동방향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산세 험하고 첩첩산중.....

저곳으로 고구려군과 수나라 당나라 100만 대군이 700년 동안 전쟁을 했을 것이다.

240년전 열하일기의 연암 박지원 사신단 일행과 청나라로 저 곳을 걸어서 지나갔을 것이다.

 

봉황산(鳳凰山) 위에서 바라보는 봉황성(鳳凰城)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반대쪽 단동방향(丹東方向)과 다르게 평지가 많이 보인다.

ㅎㅎㅎ~~

이 글씨를 어찌 읽어야 하나?

장수고산? 산고수장?

글자 그대로 봉황성에는 물이 풍부했다.

봉황산에는 폭포수가 흘러 내리고 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은 아닌듯 하다.

폭포수 옆에는 인자한 관음보살이 가슴에 감로수 병을 들고 서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향을 피우고 소원을 빌고있다.

함께한 친구가 향불을 피우고있다.

황색 도포를 입은 도사가 흐믓한 표정을 짖고있다.

친구는 무엇을 소원하고 있을까?

부디 만사형통 하기를....

봉황산을 내려와 가이드가 이야기를 한 당나라 고성에 왔다.

고성이라 해서 기대를 했건만 최근에 만들어 놓은 성이었다.

몇년 지나면 지붕에 풀이나고 몇백년이 지난고성으로 변해있겠지..

성내 사이에 수로를 만들어 놓았다.

 

당나라 고성에 모 택동 전람관이 있었다.

전람관에는 모 택동의 일대기를 사진으로 전시되있었다.

모택동(毛澤東)과 아들 모안영(毛岸英)의 다정한 모습이다.

1950년 한국전쟁(韓國戰爭)때 모 택동(毛澤東)은 북한을 지원하여 파병을 하는데

이른바 항미원조(抗美援朝)때 모 안영(毛岸英)이 이 전쟁에 참가해 전사(戰死)를 했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했던가???

 

여기 대리수(大梨樹)풍경구에는 고구려성도 당나라성도 없었다.

모 택동 전람관만 보고왔다.

 

모 택동(毛澤東) 동상에 삼배(三拜)를 하고 나니

고구려 문화유적 답사를 잘 하라고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