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장성 답사

북두 홍찬수 2014. 11. 2. 20:52

단동 박작산성(泊灼山城)으로 천리장성 답사를 해본다.

중국은 동북공정의 대표작품 백작산성을 호산장성(虎山長城)이라고

과감하게 문패도 바꾸었다.

고구려 산성을 답사하며 느끼는 것이지만

이렇게 산성을 잘 가꾸고 보전해 놓은 산성은 드물었다.

사잔에 호산장성(虎山長城)이라고 문패를 세워 놓았다.

밑에 만리장성 동쪽 시작지점이라고 표기를 해 놓았다.

언제부터인가?

중국은 만리장성 동쪽 시작 지점이 하북성 산해관에서부터 라고 했는데...

동북공정이 무엇인지 1980년대 이후부터 고구려 역사가

중국의 북방 소수민족의 역사로 바뀌고있다.

박작산성의 9번째 누각이다.

이곳으로 산성을 올라사 다시 이곳으로 하산을 해야한다.

누각의 현판이 호산장성이다.

이 지역 마을 지명이 호산이라고한다.

산성을 올라 9번째 누각을 배경으로 사잔을 찍었다.

건축양식이 중국풍이다.

있는그대로 역사적 고증없이 중국방삭으로 고쳐놓고

중국의 장성이라고 주장을 하고있다.

산해관의 만리장성은 규모가 이곳 보다 엄청 차이가 있다.

뒤편에 4번재 문이다

박작산성은 남쪽에서 1번문 2번문을 지나 3번째 문이 최고봉에 위치했다.

각 문위에서 적진을 내려 볼 수 있게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는데

총 9개의 문을  3~400m 간격으로 만들어 놓았다.

4번째 문을 지나니 갑자기 수직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어른이 혼자 지날수 있을 정도로 좁게 만들어놓았다.

 

급경사는 10여분정도 올라야 3번재 최정상에 오를수있다.

늦은 시간이라서 답사하는사람이 많지 않았다.

5번째 성벽에 담쟁이가 자라고있다.

이곳에서 3번재 정상이 잘 보인다.

마음은 정상인데 산이 가파라 걱정이 앞선다.

고구려는 산성을 쌓을때 돌을 이용해서 쐐기돌을 잘 받쳐서 쌓는게 특징인데

이곳은 회색 벽돌로 쌓아 놓았다.

한적한 산성길에 다정한 사람들이 답사를 하고있다.

이사람들은 이곳이 중국의 만리장성이라 믿고 있을것이다.

5번째 문에사 3번째 성곽이있는 정상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을 오르려면 거리는 짧지만 급경사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최고봉 3번째 문 입구에 광고판이 설치되었다.

고 배율 쌍안경으로 북쪽을 볼 수 있다고 사진으로 글로 설명해 놓았다

성 정상에서 바라보는 압록강의 중심 물줄기와 지천이 위화도를 끼고 흐를고있다.

석양에 비치는 위화도는 쓸쓸하기만 하다.

깃대를 흔들며 .....

이성계장군 북진을 하시지요.

지금이 때이옵니다.

어서 강을 거너시지요 장군~~~~

~

~

 아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데

천자의 나라를 어찌 공격할수 있겠느냐....

이유를 대거라..

병사들이 여름철 질병에 지치고 병들어 고생을 하고 있다고...

병기인  활에 붙인 아교가 더위에 녹아 내려 뎌 이상 북진을 할 수 없다고.....

쌍안경으로 압록강건너 위화도를 바라본다.

저녁 햇살에 압록강변에는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붉게 타던 뜨거운 태양도 지졌는지 마지막 혼 힘늘 다해 대지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불게 물든 압록강 강물을 바라보며

태조 이성계는 저 압록강 물을 말에게 먹이고 칼을 갈았겠지....

어데로 가야하나??

2번째 와 첫번재 문 봉우리 사이로 해가 저물어간다.

오늘 바쁘게 봉황산성과 박작산성을 돌아보았다.

최근 이곳을 한국사람들이 답사를 많이 온다고 한다.

요동성이 무너지고 봉황성이 무너지면 마지막 보루가 이곳 박작산성이다.

박작산성이 무너지면 평양서까지는 단숨에 쳐 들어갈수 있다.

612년 을지문덕 장군은 이러한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수나라 우중문장군을 평양성까지 깊숙히 유인릉 하여

청천강에서 한방에 30만 대군을 몰살시켰던

이곳 박작산성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