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씨(宣氏) Blog: 새털구름 불어보기

以闡發 幽光 於百世之下 是爲尊祖 睦族 .............한국 선씨종회.....

1681년 선응뢰님이 쓰신 보성선씨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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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씨의 유래/1681년에 쓴 선씨

2011. 1. 10.

 

1681년도에 선응뢰님이 쓰신 보성선씨의 유래

 

 

선응뢰님은

보성선씨 안렴공(선윤지) 후손 선시중(능성현령)님의 7대손입니다.

   당시 선씨중 최고의 석학이 아니셨을까요?


 

보성선씨들 중 

    (보성계열): 선복주,선응뢰. 선찬두. 선남두.선문교 


    (장흥계열): 선형중 선이례 선형의 선세징 후손들은 반드시 보셔야.....

    

    소개할 선응뢰님의 글을 보면

    1600년대 이전까지는보성선씨 양파는 화합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음을 알게

    합니다. 그 당시에는 명나라 귀화운운하는 얘기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한반도 시초의 선씨는 막연히 "8학사 7대신이 올때 참여하여 오시지 않았나 

    하는 정도의 정보밖에 없었다" 하셨습니다.

    선응뢰님은 너무나 답답하여 한서(중국의 어떤 책자로 보아야)를 몽땅 뒤저

    선씨들 천사(遷徙)자료를 직접 확인하셨는데

    "한나라말 이주해왔다" 문구를 확인하셨습니다.

    노대부 후손이라는 말씀은 일언 반구도 없었습니다.

    이는 한반도 선씨들이 중국득성시조 세분중 누구의 후손이였는지

    당시에는 전사(傳史) 조차 없었음을 알게합니다.

    노대부의 후손이라는 설은 선씨들이 보유한 전사(傳史)에서 유래하였

    음이 아니라 남의 씨족정보를 이용했을 뿐임을 알게합다.

    

    1681년 신유년에  조선땅의 모든 선씨들의 자료를 모아 한개의 족보를

    복원하였는데 아홉분의 쟁쟁한 계열별 대표들이 참여하셨음을 실명으로

    기록해두셨읍니다.

    다행이 조도계열(조성.홈동)에서

    기사년(1749년 안렴공 후손들의별보시)까지의 

    선씨가 하나였다는 모든 옛 기록들을 고스히 보전해왔는데

    이중 선응뢰 선대님의 글(신유보 서문)은 어떠한 이론으로도 뒤집을 수 없는

    진실된 내용들입니다.

    말미에 실린 선남두님(능성 7대손)의 시에도

    선씨의 선조들이 중국서 왔다는 말씀 외에는 다른 말씀이 없습니다.

    참고로 당시 족보 편찬위원 아홉분들은 금세(今世)의 어떤분들보다 선씨에

    대해서는 박사들이셨고 가문을 사랑하시던 자랑스런 선씨들의 선대들임을 

    감히 누가 이론을 제기할 수 있을까요?

  

 

 

선응뢰님의 글 원본과 신유보 초안(신유년 족보)은 안렴공 후손들이 반드시 보전 중일것임을 확신(간접 증언)합니다. 이글은 판서공(선윤지) 후손들 정축보(1757년)에 실려 내려온 전사(轉寫)분입니다.

 

선응뢰(宣應賚)撰

族譜 何爲而 作也 憂世系之失 其傳而 作也 古人有言曰   吾東方宣氏  來自中國而  或曰 參於八學士之來   或曰 參於七大臣之來  流傳之說  雖不可 盡信 余嘗觀 漢書    高祖之 年有曰   宣虎 以擊陳豨之功  封千戶侯  又 有宣義  亦以功  封千戶  侯而 逮至漢末   中國之宣多竄海東 以此言之則  八學士七大臣之說   雖不可徵而   自中國之說   庶可驗矣  嗚呼  當初  一源分爲百派蔓延 數州者   其麗不億則    豈非吾祖宗積德累仁之攸致歟 按廉使之立祀酬勳 旣載於 輿地    楡城君之畵像褒功昭著 於玉冊則 元非後昆 所可槩論而   至若南原府使諱安景四代孫 重倫氏  以穿楊妙技參 於重試之魁 六代孫 世徽氏  亦以文章大才 居於謁聖之元 此則 拔萃選及第而 其餘名 參龍虎之榜 身登司馬之門者  固不可彈記也  雖然 先世 族譜 失亡之後 古人已去 後孫益遠則 此後世系 孰從而知之 慈與同宗同志者寶城居 宣燦斗 南斗 文翮及 長興居 宣衡重 以禮 衡懿 世徵 等  期會于鳳林寺 參考  門長 宣復周氏 若干輯錄 又 考諸家之遺籍纂成 是譜 噫我同源一派人  觀此世系則 其無追遠 敦睦之意乎  其中或有分派之 未詳者 故別錄 于族譜之末 以爲日後 知者之考 正云爾

 아! 당초 한 뿌리에서 여러갈래로 나뉘어 수주에(여러곳) 퍼져 그 수를 해아릴수 없으니,어찌 우리 조상님들께서 쌓고 베푸신 덕과 어지심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안렴사공의 공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지어 모셨음이 여지(동국여지승람으로 봄)에 실려있고 유성군의 화상찬(나라에 공이 많은 분들의 초상을 그려서 공을 써넣어 종묘나 전각에 모셔둠- 일반적으로 공을 기리는것을 말하기도)이 옥책(공신교서나 실록의 기록으로 이해됨)에 훤히 나타남은 우리 후손들이 (구지)말할바 아닙니다. 남원부사 휘 안경님의 4대손 중륜씨에 이르러 빼어난 활솜씨로 중시(당하관을 상대로한 과거)에서 장원을 하셨고,  6대손 세휘씨 또한 문장(학문)이 뛰어나 알성시에서 장원을 하셨으니 이는 바로 출중함으로 뽑히어 급제하였고 그 이름이 용호지방에 들고 몸은 사마방목의 문에 올랐었는데 참으로 이런 기록들을 탄할(시비) 수 없습니다.그러나 선세의 족보를 잃어버린 후 옛분들은 이미 돌아가시고 후손들은 갈수록 멀어지고 있으니 앞으로의 세계를 누가 알아서 이어갈것인가? 이에 뜻을 같이하는 동종들.보성사시는 선찬두.남두. 문력과 장흥사시는 선형중.이례.형의.세징님과 더불어 봉림사에 모여 문장이신 선복주씨가 모아서 만든 약간의 기록을 참고하고 여러 집안에 보전되어온 자료들을 살펴(고증)서 편집 완료하니 바로 이 족보입니다. 아 ! 우리 한뿌리 한파 동종이 이 세계를 보게되면 조상을 숭배하고 동종끼리 화목할 마음이 어찌 없겠습니까? 이중에 혹 파가 불명한 분들이 계시기에 보 끝에 수록해 두었으니 후일에 밝혀진 분들은 바로 잡기 바랍니다.

(말미:宣南斗님의 시)

 吾門請遡先公說   來自中原幾百年   按使楡城前後   白蓮丹桂弟兄聯    

 醇儒碩士皆豪傑   笏峨冠互續連   却恐世泯滅   獨修遺譜示來賢

 우리 宣門 유래 옛분들 말씀하길,

 까마득한 옛날 중원에서 건너왔다네,

 안렴공.유성군의  선대며 후손들로,

 초시.대과 급제한 귀한 형제들 끊임없었고,

 지조있는 유생. 큰 선비들 모두호걸이며,

 고관 대작 높은 벼슬 끊임없이 이어가네

 세대 멀어저 잃어버릴 걱정마세.

 옛보첩 잘다듬어 내놓으니 현자들 찾아드네

http://blog.daum.net/qianfu/6036555


 

      

           아래:1757년 족보에 보전조치한 원문

 

    위글은 1681년도에지으신 글로 보성선씨 판서공 후(세칭 도촌. 홈동파)

    1757년(정축년) 족보에 실려 전해온 내용입니다. 정축보는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기탁 보존 중입니다.

     요점 정리

1.우리 선씨들은 중국에서 왔다.

2.중국에서의 이주 시점을 정확히 아직 알고있지

   못하나

    8학사(당나라)가 올때     혹은

    7대신(미상)이 올때 참여하여 왔다는 설이있다.

3. 그러나 한서(漢書)를 직접 확인한바

    "선호.선의 두분이 하나라 고조 때 1000호후에

     피봉되었다"는 내용과

    "한나라 말에 상당수의 선씨들이 해동으로 피신

     하였다" 기록되어 있었다.

      이 내용이 정확한 정보다.

     (한 고조 건국당시 공신인 선호.선의 두분에

       대한 내용은 한서 16권 부록 공신표 확인됨)

4.안렴사의 공은 여지(확인되지 않음)에 실려있고

   유성군의 공은 옥책(좌리공신교지: 유성군의

   행적이 낱낱히 기록되고 공신교서가 실린

   조선왕조실록으로 해석해야)에 기록되어 있다.

5.이런 선대들의 훌륭한 행적이 족보가 없다면

   어찌 후손에게 그 내용들이 전해질수 있겠는가? 

6.그래서 선복주를 문장으로 하여  

   보성 대표로  선응뢰. 선찬두. 선남두.선문교 

   장흥 대표로  선형중 선이례 선형의 선세징

   관산의 봉림사(장흥의 봉림사는 확인되지 않음.

   장흥에 보림사는 있는데 옛날 이름이 봉림사인지

   알 수 없다)에 모여 각가정의 가승등 유적을

   근거하여 족보를 완성했다.매우 기쁘다.

7.계열이 불확실한 분들은 부록에 올려두었으니

   후세에 확인이되면 등재할것.

*.선남두님의 시(아래 참고)  말미에 실림


     이 글의 보존 경위

1757년 정축보에 부연 설명됨

此則 綾城 七代孫 應賚之 所作也而  應賚卽 允祉之派也

曾於康熙二十年 辛酉 本郡及 長興 樂安 諸宗   合謀修譜而

以此序昇之 於卷首矣    其後 以弼夏 壽龜等 變至  於各譜之境則

此序果 無用之文 不必錄之於此而   姑錄 于此者

以明 辛酉年 同始祖 合譜之意耳

    丁丑(1757년) 三月下澣 十六代孫  璨重

                                                                                                     

이 서문은 능성현령 선시중님의 칠대손이신 응뢰님이 지으신것입니다.

응뢰님은 바로 윤지님 파입니다. 옛 강희 20년(1681년)에 본군및 장흥,

낙안의 여러 종친들이 함께 족보를 복원하시고   이 서문을 족보의 첫

머리에 올렸습니다. 그 후 필하 수귀님이 변심하여 각보 지경(갈라섬)에

이르렀기 이 서문은 무용지물이 되어 우리족보 서문으로 실어둘 필요가

없어 원문을  족보 부록으로 기록하여 신유년(1681년)에  같은 시조로

족보를 복원했던 뜻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1757년 3월 하순  (도촌계열) 16대손 찬중

                                                                                                    

.............................................................................................                     

(진:다하다,완수하다,극치에 달하다,최고에 달하다,다 없어지다,사망하다,죽다,모든

전부의,만,다만 ~뿐). (증거). (덩굴, 덩굴풀 ,순무 ,덩굴지다,퍼지다,뻗다,감다). 

 ( 것,허락하는 소리,여러, 무리,이,~면(접속사),~와 같다,기재하다). (바=所 유,곳,

장소, 처소,이, 이에,語助辭,재빠른 모양,위태롭운 모양.  (여: 어조사,편안한 기운).

輿(여: 수레,가마,땅, 輿地-지구 大地-동국여지승람을 기초로한 각지방에 관한 책)

(나타날저 붙을착:입다,쓰다,다다르다).玉冊: 제왕 후비의 송덕문을 적은 옥조각을 엮은

책.(괴: 魁首, 우두머리,壯元,으뜸).重試: 문무에 당하관을 위하여 둔 과거 , 고려16대 예

종 17(1122)년에 처음 실시, 조선 세종때제도화, 10년에 한번씩 실시 합격자는 당상의 품계

로 올려줌.(알:뵈다,아뢰다,알리다,고하다,여쭈다,청하다 ,객사(客舍),명함,중개.(으뜸,

처음, 始初,우두머리, 장원,頭目,임금,첫째, 첫째가 되는 해나 날). 元非(원래가 아니다).

(여러,거의,바라건대,무리,서출,벼슬이 없는 사람,支孫,가깝다,바라다,많다, 수효가 넉

넉하다,살찌다,제거하다,하다,賤하다, 卑賤하다.若(같다,너,만일).(고:단단하다,방비

오로지).(탄알,과실,열매).(방:매,매질하다,배를젓다).(누구,어느,무엇,익다). 從(종:

좆다,순직하다) 徒(도:무리,동아리,걷다).衡(형). 懿(아름답다,좋다) (일찍,이미,이전에,

거듭,겹치다,더하다=增, 늘다,늘어나다,포개다.司馬(생원과 진사를 뽑음,小科로 初試와 覆

試). (려:곱다,우아하다,짝, 지나다,지나다=과거) (약: 같다,너,만일) 至若(그러다가).

萃(발췌: , 글 따위에서 필요 또는중요 부분을 뽑아냄, 또는 그런 내용=拔群. (교:움,움

막,간직하다,뚫을찬 일수도) (대강개:槪동자)姑(시어미고). 翹(높이날을

자로 우선처리, 翮:핵-력자 일수도, 선문핵.선문력 발음이? )

 용호(자웅을 기릴 수없는 훌륭한 분들).알성시(임시 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