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인배와 속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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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5. 14.

다산연구소 (이사장 박석무) 보내온 e메일 중에 유독 눈길을 끄는 내용이 있었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등조 선시대를 다룬 대중 역사서로 유명한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의 글이었다.

 

강 교수는 `소인배 승승장구론` 으.로 제목 붙인 이 글에서 학계의 소인배 군상을 

 

적나라하게 펼쳐 보였다. 조금 길지만, 그의 글을 인용한다.

 

소인배들의 특징은 대개 이러하다.

 

이들은 평소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마당발이다

 

내가 대학에 있으니 대학에서 목도한 경우를 들어본다. 이들은 교수 이기는 하지만 교수로서의 기본 임무인

 

연구와 교육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 대신 사람을 만나는데 시간을 다 보낸다.

 

만나 술이라도 한잔하게 되면 상대방과 족보를 맞추어 본다. 사람살이 그렇지 않은가.

 

처음 보는 사이라 해도 성씨를 따지고, 고향을 따지고, 초. 중. 고등학교와 대학을 따지다 보면

 

어느 곳에선가 반드시 겹치는 지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 지점을 확인하는 바로 그 순간 졸지에

 

선배와 후배가 된다. 이렇게 안면을 넓히고, 넓힌 안면은 늘 관리한다.

 

모임이란 모임은 다 참석하고 상사나 혼사는 빠질 수 없다.

 

... 남을 돕기를 좋아하여 남의 어려운 사연을 들으면 참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이 도와줬단 사실을 

 

결코 잊지 않고, 언젠가 그 사람이 자신에게 되갚아 줄 날을 기다린다.

 

높은 분이 더 높은 분이 될 것 같으면 그분에게 확실히 줄을 댄다.

 

줄을 당겨보고 튼튼하다 싶으면 아랫사람들을 쥐어짠다. 순식간에 실적이 올라가고 윗분은 흡족해하신다.

 

이렇게 해서 그는 외부에 유능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다. 이런 과정을 몇 번 되풀이하면 그는 선거를 통해서든, 

 

승진을 통해서든 자기가 바라마지 않던 자리에 오르고 권력을 잡게 된다

 

바라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남과 결코 각을 세우지 않던 성격은 갑자기 독선과 아집이 된다.

 

소인배에 대한 한탄은 옛사람이라고 다르지 않다. 다산 정약용은 이런 시를 남겼다.



한강물은 쉼 없이 흐르고/삼각산은 끝 간 데 없이 높아라



/강산이 변해도/ 간사한 무리는 없어지질 않네. /한 사람이 중상모략을 하면 /여러 입들이 차례로 전해/



치우친 말을 믿게끔 하니/ 정직한 이는 어디에 발 붙일까/.../ 옛 성인 훌륭한 성인 말씀에/ 향원(鄕愿)은

 

덕(徳)의 적(賊)이라 했지." 간사한 신하가 득세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시다.

 

마지막 구절의 "향원"이란 겉으로는 그럴듯해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나 속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일컫는다.

 

옛 성인, 즉 공자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 "덕의 적"이라고 말했다.

 

소인배를 요즘 말로 하면 속물쯤 될 것이다. 최근 출간된 계간지 "사회비평" 봄호는 "속물, 우리 시대의 초상" 이란 

 

제목의 특집을 실었다. 특집 수록 문에서 장은주 영산대 교수는 "속물은 세계사적으로 유례없이 성공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우리 근대성이 체계적으로 주조해낸 특별한 종류의 근대적 인간형에 대한 이름"이라고 규정했다.

 

급변하는 사회 환경과 처절한 생존경쟁 속에서 우리는 속물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속을 또는 소인배는 대다수 서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일는지 모른다.

 

먹고살기 위해 눈코 뜰 새 없는 서민들에게 속물, 소인배 타령이 어찌 가당키나 하겠는가.

 

하지만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강 교수의 글을, 다산의 시구를 곰곰 되씹어봐야 할 것이다.

 

속물주의(스노비즘) 란 용어 자체가 일반 대중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기보다는 지배층 내부에서

 

스스로 권면(勸勉) 하기 위해 사용했던 용어임을 알아야 한다.

 

중앙일보 문화부 차장 김영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