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하얀머리 2012. 9. 15. 01:20

9월  15일   토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함께하신 성모님의 고통을 기억하는 날이다, 자식의 아픔은 어머니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법이다, 시메온은 성모님의 그 고통을 이렇게 예언하였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젔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2.34-35) 성모님의 고통을 묵상하고 기억하는 신심은 오래전 부터 널리 퍼져 있었으며, 1688년 인노첸시오 11세 교황 때 이 기념일이 정해젔다, 1908년 비오 10세 교황은 '서 십자가 허양 추일' 다음 날인 9월 15일로 기념일을 옮겨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연게하여 기억하도록 하였다,

 

 

 

 

 

 

오늘의  복음

 

 

 

요한.19,25-27(또는 루카.2,33-35)

<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 !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축가.>

 

 

그ㄸ에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들을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오늘의  묵상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소설가 박완서 씨는 남편과 사별한 지일 년도 채 안되어 외아들을 잃었습니다, 26세 밖에 안 된 외아들이 죽자 그녀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벽에 달린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도화가 나 그것을 땅바닥에 던져 버렸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들을 데리고 가신 하느님을 그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긴 세월 동안 하느님을 원망하고 증오하던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온 종일 하느님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 번 고쳐 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하느님, 증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 내 살의를 위해서도 하느님은 계서야만 해...

 

 

시간이 흘러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며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때 나에게 포악을 부리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하느님께 안 계셨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지 기끔 생각해봅니다, 살기는 살았겠지요, 그러나 지금보다 훨씬 더 불쌍하게 살았으리라는 것만은 환히 보이는 뜻합니다, 그녀가 하느님을 원망하고 울부짖을 수 있었던 것도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십자가에 처참하게 못 박히시는 아드님을 보러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아드님께서 겪으시는 고통 하나하나가 어머님의 마음을 찔러 꿰뚫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과 증오가 끝까지 아드님을괴롭히는 그 자리에 고통을 참으며 아드님과 함께하셨습니다, 설모님을 그토록 강하게 만든 것은 하느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었습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 이 믿음이 성모님께서 우리를 깨우쳐 주시는 가르침입니다.

 

 

 

 

 

 

 

 

 

 

 

 

 

 

가을에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그렇게 주고받는

우리들의 반짝이는 미소(微笑)로도

이 커다란 세계를

넉넉히 떠받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십시오.

 

흔들리는 종소리의 동그라미 속에서

엄마의 치마 곁에 무릎을 꿇고

모아 쥔 아가의

작은 손아귀 안에

당신을 찾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어제 오늘이

마침내 전설(傳說) 속에 묻혀 버리는

해저(海底) 같은 그 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달에는

은도끼로 찍어 낼

계수나무가 박혀 있다는

할머니 말씀이

영원(永遠)히 아름다운 진리(眞理)임을

오늘도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불같이 끓던 병석(病席)에서

한없이 밑으로만 떨어져 가던

그토록 아득하던 추락(墜落)과

그 속력으로

몇 번이고 까무러쳤던

그런 공포(恐怖)의 기억(記憶)이 진리라는

이 무서운 진리로부터

우리들의 이 소중한 꿈을

꼭 안아 지키게 해 주십시오.

 

 

                                                      글     /     정   한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