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하얀머리 2014. 1. 24. 01:01

 

 

1월  24일   금요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프랑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1567년 이탈리아의 사부아이에서 귀족 가문의 맏이로 태어낫다, 1593년 사제가 되어 선교사로 활동한 그는 특히 칼뱅파의 많은 개신교 신자를 가톨릭으로 회드시켰다, 1599년 제네바의 부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어 1602년 교구장이 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는 많은 저서를 남기고 1622년에 선종하였다, 

 

 

 

 

 

 

 

 

 

 

오늘의  복음

 

 

 

마르코.3.13-19.

< 예수님께서는 당신께 원하시는 이들을 부르시어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그분께서는 열두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 었다.

 

이렇게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데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마태오, 열혈당원 시몬,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사도로 선택하신 열두 사람의 이름을 전해 줍니다, 유다 이스카리옷 말고는 모두가 훌류한 사도로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분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이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참으로 보잘것없고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깊이 사랑하시고 몸소 가르치시어 사도로 파견하신 것을 묵상하면서, 주님께서는 평범함과 부족함이야말로 더없이 비범한 당신의 일을 담을 그릇이라는 것을 보여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언젠가 읽은 네델란드의 화가 고흐에 관한 평전의 한 대목이 감동적으로 다가옵니다, '그가 살고 있는 작은 방' 다른 방과 별다른 점도 없는, 작고 단순한 데다 볼품없는 방이 캔버스에 아무렇게나 그려져 있다, 그런데 갑작기 작은 침대는 단순한 침대가 아니라 인간의 모든 고난이 몸을 뉘는 자리가 된다, 시들 또는 거인들이 주사위 놀이를 할 것 같은 탁자는 네 개의 버팀목이 있는 선사 시대의 화판이 된다, 거룩하게 비어 있는 의자는 주님께서 오시어 앉으시기를 기다리는 자리가 된다.

 

뛰어난 재능, 화려한 조건, 첫눈에 사로잡히는 매력 들을 사랑하는 이 시대에 살면서 사도를 선택하시는 주님의 그 마음을 닮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소박한 이들의 고난을 일상에서 주님의 자취를 발견하는 화가처럼, 주님께서 사라을 보시는 눈은 세상의 기준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진정한 제자로서 첫발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별을 기다리며 / 정기모


밤사이
흩뿌리던 하얀 눈들이
잠든 나뭇가지를 흔들자
서로의 등을 토닥거리며
더 깊으므로 잠드는 시간
웃자라기만 하는
한겨울 그리움의 순들은
봄을 꿈꾸는 길목으로
겨운 걸음마를 시작하는데
쓸쓸하게 흩어지는
사는 동안의 안부가
나비 되어 날아오르다
따뜻한 별 등에 업히면
사소한 날들조차
추억이 되는 그리움에
아직은 입술 파랗게 떨리는
눈 쌓이는 귀퉁이마다
저무는 안녕보다는
별을 꿈꾸는 안녕을
동그랗게 그려 넣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