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하얀머리 2014. 2. 2. 00:39

 

 

 

2월  2일    일요일      주님  봉헌  축일 

봉헌  생활의  날

 

 

 

교회는 성탄 다음 40일째 되는 날, 곧 2월 2일을 예수 성탄과 주님 공현을 마감하는 주님 봉헌 축일로 지낸다, 이 축일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한다, 예루살렘에서는 386년부터 이 축일을 지내ㅆ으며 450년에는 초 봉헌 행렬이 여기에 덧붙여졌다, 6세기에는 시리아에서 이 축일이 거행되었고, 로마는 7세기 후반에 이를 받아들였다, 8세기 중반에는 '성모 취격례(정화) 축일"로 부르기로 하였는데, 18세기 프랑스 전례에서 '주님 봉헌'으로 바뀌였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날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제정하여,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날로 삼았다, 이에 따라 교황청 수도회성은 해마다 맞이하는 이 봉헌 생활의 날에 모든 신자가 수도 성소를 위해 특별히 기도하고, 봉헌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권고한다.

 

 

 

 

 

 

 

 

오늘의  복음

 

 

 

루카.2.22-40(또는 2.22-32)

<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격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하나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들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들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한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섰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계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의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이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레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오늘의  묵상

 

 

 

젊은이들이 즐겨 부르는 가톨릭 성가 469번 '사랑하면 알리라,'라는 젠 성가의 가사는 이러합니다,

 

"언제나 나는 물었다, 언제나 주께 물었다 ' 세상은 사랑 찾는데 왜 고통이 있냐고? / 오직 한마디 내게 주었네, 마치 물음에 답하듯이, / 사랑하라 알고 싶거든 빛이 속음을 너 보리라, / 사랑하라 말해 주네, / 사랑 하면 알리라, / 사랑하라, 슬픔 가고 기쁘을 찾으리."

 

오늘 주님 봉헌 축일에 교회는  '봉헌 생활의 날'을 지내며 주님께 봉헌된 삶을 선택한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들은 위 성가 가사처럼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찾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십자가의 주님께 세상의 모순과 고통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정직하고 강렬하게 물었던 이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의 논리와 복음의 가르침 사이의 적당한 타협에 만족할 수 없는, 뜨거운 마음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진리에 대한 추구는 사랑의 선택 안에서만 그 참된 길을 발견하는 것임을 깨닫고 그 길을 걷기로 결심한 이들입니다.

 

독일에 머물렀던 시절, 오랜 숙고 끝에 봉헌의 삶을 선택한 한 분과 교분을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욕심과 바람이 아니라 오직 정직하게 '진리와 진실을 찾는 이'가 되기를 바라던 성실한 젊은이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공동체와 이웃을 위한 사랑의 삶에 그토록 애타게 찾던 진리가 있음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많은 수도자가 자신의 서원을 더욱 새롭게 다지는 이 복된 날, 문득 자신의 응답의 결실에 감사하고 있을 그가 떠올랐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봉헌 생활의 길은 수도자들만이 아니라 조금은 다른 방식이지만 우리 모두에게도 주어져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신생살이에서 실천할 사랑의 소명을 주님네게서 부여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  루

 

 

             글    /     김    철

 

 

책을 서너장 보고
詩 제목도 달았다

저녁밥 상에는
숭늉을 만들어 마시고
식후엔 빠지지 않고
커피도 한잔 마셨다

이거 말고
내가 더 있기를
바란 적이 있는가

오늘은 촉촉이 비도 뿌렸다
꽃잎은 떨어지고 나는 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