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하얀머리 2014. 3. 26. 01:09

3월  26일     사순  제3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오.5.17-19.

<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큰사람이라 부릴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ㅇ않을 것이다,

 

그로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바리사이들의 율법주의로 말미암은 폐해에 대하여 자주 듣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완고한 마음을 강하게 비판하신 것을 알기에 오늘 복음 말씀은 오히려 낮설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1독서에서 볼 수 있듯이, 진정한 의미에서 율법을 배우고 익힌다는 것은 가장 깊은 지혜를 깨치는 것이자 온전한 생명의 길에 들어서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시며, 주님의 법을 제대로 깨닫고 몸과 마음에 새기는 '의로움'을 키우라고 격려하십니다,(마태 5.20)

 

사실 "탈무드"에서 볼 수 있듯이, 유다인들이 긴 세월 동안 율법을 배우며 연구하고 실천해 온 역사는 인류에게 큰 지혜의 샘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전통에 따르면, 율법을 배우는 것은 언제나 그 율법을 가르쳐 주는 이를 스승으로 삼아 정대적으로 따른다는 것을 뜻합니다, 일본의 문학인 우치다 다츠루가 쓴 "레비나스으ㅏ 사랑의 현상학" 이라는 책을 보면 "탈무드"의 주석자로 현대 철학의 거장인 에미뉘엘 레비나스의 유다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율법을 배우는 전통이 어떻게 그 철학에 영향을 미쳤는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레비나스는 평생 단 한 명만을 스승으로 모셨다고 하는데 그 스승은 놀랍게도 그가 여려 대학에서 만난 철학의 석학이나 교수가 아니라, 비견하기 어려운 "라삐" 곧 율법 하가였다고 합니다.

 

철학자 레비나스에게서 보듯이, 사실 스승과 함께해야 비로소 앎이 가능한 것이 있습니다, 우치다 타츠루가 잘 표현한 것처럼, 우리가 책을 선택해서 읽듯이 자신의 지식과 앎을 자신의 눈높이에서 수평적으로 확장하는 앎이 아니라, 수직적 차원의 앎은 스승에 대한 절대적 순종과 신뢰에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배움을 통하여 자신의 사심과 편견에 따른 관점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펴보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무지함과 무도함과 무력함도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율법을 읽고 깨쳐야 생명의 길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사순 시기에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도 이처럼 진정한 스승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모시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자신의 앎을 확장하거나 보완하고 충족시키는 가르침이 아니라, 저넉으로 새로운 그분의 길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움에서 우리의 영적 생명에 생기를 얻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春心 / 김 궁 원

꽃피어 만발하니
고운 임 올세라
꽃잎 따다 오실 길에 흩뿌리오리니
사뿐사뿐 오소
이내 오소서
고갯길 넘을 때는 길섶에 앉자
흰 구름에 이야기도 담으시고
산새들의 이야기도 담아 오소서

꽃 비가 하늘하늘 나리는 날에
흰 구름도 고개를 넘나드는 날
고운 임 기다리는 설렘도 잠시
무정할 싸 소식 없는 야속한 임아
이 봄이 가기 전에
꽃 피어 만발한 햇살 길 따라
사뿐사뿐 오소서
이내 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