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하얀머리 2017. 2. 25. 01:50






2월  25일        연중   제 7 주간    토요일









오늘의  복음






마르코      10.13  -  16

< 어린와 같이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 한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꼐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맞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 한다."


그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오늘의  묵상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으로 어린이를 내세우신 것은 이례적입니다,  어린이는 예나 지금이나 세상을 알아갈 수록 먹고 갖는 것에 욕심을 내고, 질투하며 사랑을 독점하려고  하고  자기 뜻 대로 되지 않으면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리는 이들이기 때문입1니다,  더욱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노출된 요즘 어린이에게 순진함이나 단순함은 어울리지 않은 듯싶습니다.


그런데 어린이와 같이 되어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어린이의 숨겨진 마음이 있습니다,  엄마에게 한참을 혼나고도 울면서 다시 엄마에게 안기는 것이 어린이  입니다,  욕심을 한껏 부리가다가도 이내 잊고 작은 것에 다시 행복해지기도 합니다,  어른들처럼 생각이 많아서 잠을 못 이루는 일도 없고, 누군가를 미워하면  기억 창고에 담아 두고 늘 꺼내 드는 어른들과는 다릅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상징하듯 천사 같은 사람들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주신 분별력과 혀와 눈, 그리고 귀와 마음을 통해  "그분의 위대하신 영광을 보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소리"를 듣는 사람에게 열린 나라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욕심에 매이지 않고 오히려,  "인생이란 그 세월 풀과 같아서, 들꽃처럼 그렇게 피어나지만, 바람 한 번 스쳐도 이내 사라져,  그 있던 자리조차 알 길 없네,"하는  시편 저자의 말씀에 따라 어린이처럼 매 순간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열린 나라입니다.  내가 꿈꾸고 있는 천국이 정말 이런 모습인지 되물어 보면 좋겠습니다. 

 
 
 

나의 이야기

하얀머리 2015. 7. 25. 01:06

 

 

 

 

 

7월  25일      토요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야고보 사도는 갈릴레아의 벳사이다 출신으로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 사도의 형이다, 어부인 야고보는 갈릴레아 호수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동생 여한과 함께 주님의 부르심을 바다았다, 그는 베드로 사도, 요한 사도와 더불어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세 제자 가운데 하나이다, 열두 사도에는 애고보가 둘 있는데,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작은[소] 야고보'와 구분하여 '큰[대] 야고보'라고도 부른다, 42년 무렵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였다.











오늘의  복음






마태오 20.20-28

<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닝네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낟,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낟,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오늘의  묵상







"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술잔을 생각하시면 이해하시기가 아주 쉽습니다, 내 앞에 있는 잔은 내가 마실 분량입니다, 그래서 잔은 어떤 사람의 몫, 그의 운명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잔을 함께 마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자기들이 예수님의 잔을 마실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들이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 잔이 어떤 잔인지도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한 것일까요? 당신의 잔이 무엇인지를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아버지께  "이 잔을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도들은 예수님의 잔을 결국 마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그들이 계속하고, 그분께서 선포하신 하늘 나라를 선포하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분을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하며, 당연히 그 잔을 마실 수밖에 없는 운명이였습니다, 사도들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한 야고보는, 그가 마실 잔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을 때에 그 잔을 거부하지 않았고 예수님의 고난을, 그분의 죽음을 함께 지고 갔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지니지 않고서는 부활만을 선포할 수 없습니다, 주음 없이는 부활이 없습니다, 은연중에 죽음 없는 부활만을 바라고 있는지는 않는지, 또한 적극적인 자세로 우리의 신앙에서 십자가와 즉음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곰곰이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나의 이야기

하얀머리 2013. 7. 2. 05:25

 

 

 

매일 복음 말씀을  저의  사정에  의하여

 

7월  말일까지  쉬게  되겠씁니다,

 

대단히  죄송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