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하얀머리 2019. 10. 8. 01:46






10월  8일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오늘의  복음




루카      10.38 - 42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집을  방문하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은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오셨을  떄  마르타가  바뻤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르타의  입장에서는  시중드는  일은  도와주지  않으면서  예수님  발치에  앉아만  있는  마리아가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하는  마르타에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고  하십니다.


이  대목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마르타는  활동을  의미하고  마리아는  고나상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관상이  활동보다  우선해야  한다거나,  마르타는   조동을  뜻하고  마리아는  기도를  뜻하기에  노동보다는  기도가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맞이하는  마르타나  마리아의  마음이  서로  달랐을  것같지  않습니다,  마르타  역시  예수님을  뵙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그분을  접대하는  것보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  순간  가장  중요하다고  알려  주십니다.

우리  마음  안에  마르타와  마리아의  두  가지  모습을  늘  지니고  살아갑니다,  주님의  목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이고  그분과  일치하여  살고  싶은  마음과  현실에  충실하고자  하는  욕구가  함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가운데  무엇  하나를  선택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이  둘을  내  삶  안에  어떻게  조화시킬까  하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  생활에  대한  영감을  얻고,  우리  생활을  통하여  신앙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몫을  택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의 복음

하얀머리 2019. 10. 7. 00:53





10월  7일     월요일         묵주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16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현재의  터키  중심으로  한  이스람  제국)은  세력  확장을  위하여  유럽을  침공하였다,  1571년  10월  7일  그리스도교  연합군은  그리스의  레판토  항구  앞바다에서  벌인  '레판토  해전'에서  이스람  제국을  무찔렀다,  이  전투의  대승은  묵주  기도를  통한  성모님의  간구로  하느님께서  함께하신  덕분이라  여기고,  이를  기억하고자  비오  5세  교황은  "승리의  성모  축일"을  제정하였다,  훗날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오늘의  복음




루카     1025 - 37

<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그때에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뭉럿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ㅠ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꼐,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를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튼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자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지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지  물으시는데,  율법  학자는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잊붕  계명을  꼽습니다,  이  대화의  골자는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누가  이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이웃과  이웃이  아닌  사람들을  분명히  구별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  역시  다른  유다인들이나  유다교로  개종한  사람들만  자신의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이해했지,  사마리아  사람들을  포함한  다른  민족들을  사랑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하여  율법  교사가  가지고  있던  이웃의  범위를  확장시켜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웃이란  특정  국적이나  종교를  지닌  사람들이  아니라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입니다,  거기에는  나와  사이가  좋지  않거나  내가  적대시하는  사람들도  포함해야  합니다,  그것을  이해할  때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역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사랑은  마음에만  간직하는  사랑이  아니라  실천에  옮기는  사랑입니다,  율법  교사에게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기본은  연민입니다,  그  사람의  아품과  필요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가엾이  여기는  마음은  곧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느끼시는  마음이고,  또  우리가  서로에게  가지기를  원하시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들도  자비를  입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복음

하얀머리 2019. 10. 6. 00:02





10월  6일    일요일         연중    제27주일

군인  주일     성  부르노  사제  기념  없음



한국  교회는1968년부터  군  사복에  종사하고  있는  군종  사제를  비롯하여  군인  성당,  국군  장명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물질적으로  돕고자  해마다  10월  첫  주일을  '군인  주일'로  지내고  있다,  오늘  전국  각  본당에서는  군의  복음화를  위한  특별  헌금을  봉헌한다.






오늘의  복음




루카      17.5 - 10

< 너희가  믿음이  있으면 !.>



그때에  사도들이  주님꼐,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메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더해  달라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ㅜ한  믿음이라도  있ㅇ르면,  이  돌무화과  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돌무화과나무는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기에  강한  바람에도  잘  견딥니다,  반면에  겨자씨는  씨앗  가운데  가장  작은  것에  해당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작은  믿음도  돌무화과처럼  견고한  나무를  뿌리째  뽑아  바다에  심겨지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주인과  종의  관계에  관한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종은  주인에게  명령을  받은  모든  힘든  일을  수행하고  나서도,  주인과  함께  식탁에  앉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시중을  들어야  합니다,  종은  무슨  일을  하든,  주인에게  ㄴ내세울  것이  없고,  어떤  권리나  보상도  요구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하여  믿음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무자비한  주인이시라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봉사을  해  주실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서  오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그  믿음에서  하느님께  온전히  승복하는  제자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확고하고  위대한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겨자씨만큼  작고  깨지지  쉬운  믿음이라도,  거기에서  생각지도  못한  능력이  나오고,  삶의  경이로움과  영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한  믿음을  더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