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슬

소리없이 내리는 이슬비에 꽃잎이 열리지만 거칠게 내리는 장대 비에는 꽃잎이 닫힌다.

15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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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폴더 다림질을 하다가..

부엌에서 다림질을 하다가 문득 옷소매와 목둘레가 낡고 닳았다는 생각이 흠칫 들었다. 옷장에 걸려있는 여름용 옷들 중에 유난히 이 옷을 자주 착용했다는 것도 여름철 마다 찍힌 사진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따로 손세탁할 때나 다림질할 때마다 유난스레 꼼꼼하게 다루는 것만 봐도 이 옷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이유가 뭘까? 무늬 없는 하얀색에 심플한 디자인이 평소 취향이지만 자유스럽게 四通八達 되는 넉넉함이 내 육신에게 지난 35년 동안 무한한 자유를 허락해주기 때문이지 싶다. 몇 년 후 바지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뜻밖에 윗도리랑 같은 리넨이다. 아래 위로 걸치니 천생연분이다. 입고 있으면 삼라만상이 가볍다. 물건도 시간이 흐르면 색과 모양새가 변 하는 건 당연한 법 바지 허리 고무줄이 닳아 헐렁해졌고 바..

댓글 기본폴더 2021. 6. 15.

11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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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폴더 새 얼굴

학창 시절에 그림 그리기를 참 좋아했던 나는 중학 시절에는 벽지 도안으로 군 대회에 참여해서 상을 따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진짜 많이 그렸던 것은 바로 만화책 주인공의 얼굴이었다. 한 번은 고향에서 함께 성장했던 친구가 미국을 방문해 나를 만나러 왔다. 거의 40년 만에 만난 그 친구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쏟아낸 첫마디 "너 그때 만화 참 많이 그렸잖아.." 그 정도로 나와 함께 성장했던 친구들에게 나는 그런 아이로 각인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랬었지 수업시간에 몰래 그리다가 선생님한테 들켜 혼나고.... 얼굴을 그리려면 제일 먼저 동그라미부터 그려놓고 그다음에 눈과 코 그리고 입, 순서로 얼굴이 완성된다. 어른이 되면 서서히 동심은 사라지지만 지금도 '동그라미' 하게 되면 나는 여전히 얼굴을 제일..

댓글 기본폴더 2021. 6. 11.

01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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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폴더 처방전

한 때는 마음에 울분이 생기거나 속에서 화산이 터질 것 같으면 서랍을 정리하거나 바닥 구석구석을 돌아가며 닦으면서 올라오는 열도 내리고 그러다 보면 마음도 정리 정돈이 되곤 했었다. 최근에는 마음에 그늘이 내리기 시작하면 얼른 도마와 칼을 잡는 습관으로 바꿨다. 유튜브에서 보여주는 요리 가운데 직접 만들어 먹기에 간단한 것들을 흉내를 내다보면 치밀어 올라오던 울화도 음식과 함께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재가 되는 것 같아 이 방법을 자주 써먹고 있는 중이다. 평소 짠 음식보다 매운 음식을 더 좋아하는 편인 나는 당면한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면 그에 대응할 매운맛의 강도를 한층 더 높여서 조리를 한다. 코가 뻥 뚫리자 속도 뚫리고 눈물까지 흘리게 되는 걸로 보면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보는 것 같기도 해서 당분간..

댓글 기본폴더 2021. 6. 1.

18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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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폴더 너를 만나...

아침에 차고 문을 열고 나갔다 어둠과 함께 찾아오던 우리 집. 그냥 먹고 잠만 자는 공간으로 취급하던 그때는 우리 집에도 봄이 오고 꽃들이 피고 지는 계절이 있는지도 몰랐다. 돈 버는 일이 이민 삶의 목표요 신앙으로 믿었는데 가게를 닫고 한 동안 숨을 고르고 나니 그때서야 집 구조에서부터 계절의 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뜨면 생명이 있는 것들에게 점점 관심이 폭증하기 시작하게 되자 그동안 생물 대신 집 안에 무생물로 된 장식물들을 하나씩 들어내기 시작했다. 텃밭에 자라는 것들에서 시작된 관심이 화초를 사다 심고 물 주고 자라는 걸 매일 확인하는 재미가 솔솔 하다. 숨을 토해내는 생명에 귀를 기울이게 되자 손길도 따라가게 되었다. 이제는 실내보다 햇볕을 쬐며 바깥을 둘러보며 머무는 시간도 늘어났다. 자..

댓글 기본폴더 2021. 5. 18.

13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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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폴더 나이를 잊어라

65세부터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노인'으로 대접받는 나이다. 사회적으로 어른으로 대접받고 국가로부터 각종 복지혜택의 수혜를 받는다. 그러나 내 나이가 어때서? 나이가 들었다고 사회적으로 노인 취급을 받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100세 시대에 접어들면서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 ▲ 나이를 잊어라! 초로의 나이를 무색하게 건강과 활력을 간직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귀옥 씨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귀옥 씨는 요가로 하루를 시작하고 또 마감한다. 바쁜 이민 생활 속에서 그것도 초로의 나이에 요가를 가까이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과도 같았다.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익숙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었다. ▲ 이귀옥 요가화보집 ’ 65세, 그 편견을 넘어서" 이씨는 요가체험에서 경험적으로..

댓글 기본폴더 2021. 5. 13.

11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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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폴더 Top of The World

- RH Rooftop Resturant - New York Meatpacking District에 이런 식당이 있다는 걸 이번에도 딸 때문에 알게 되었다. 특이하게도 1층에서 부터 4층까지는 'RH' (Restoration Hardware) 럭셔리 가구 매장이라는 점이다. Mother's Day 의 왕관을 쓴 나는 마치 Top of World 에 들어 선 기분이 되었다. 점심과 더불어 주변을 즐기기에 기가 막히는 장소였다. 일명 '샹들이에 맛집'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엘리베이트에서 부터 천장과 벽이 거의 유리와 샹들리에로 장식이 되어있다. *참고로 식당 모든 가구와 장식품은 RH 제품 '팬데믹'이라는 감옥으로부터 해방이 된 우리는 상큼한 주변 분위기에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신선하고 화려하고 분위기까지..

댓글 기본폴더 2021. 5. 11.

11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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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폴더 옛 애인

온통 백지로 도배된 한 권의 책이 우연히 내 손에 들어왔다. 혹시 먹물이 튀어나올까 해서 슬그머니 90쪽을 건너려다 그만 아래에 빠져 버렸다. -내쇼날 지오그래픽- 새의 깃털처럼 머리가 하얗게 센 다음에 옛 애인을 만나고 싶다던 중년의 상사를 그녀는 기억한다. 완전히 늙어서.... 한 올도 남김없이 머리털이 하얗게 세었을 때, 그때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데.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면 꼭 그때. 젊음도 육체도 없이. 열망할 시간이 더 남지 않았을 때. 만남 다음으로는 단 하나, 몸을 잃음으로써 완전해질 결별만 남아 있을 때 한강 소설 -흰- 91쪽 '젊음도 육체도 없는 옛 애인'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 이런 단어끼리의 인연은 꿈꾸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한참 후에 아니 그리 멀지 않은 날에 내게도 그런..

댓글 기본폴더 2021. 5. 11.

23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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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폴더 억울한 기회

메인 주 -일명 [vacationland]- 를 다녀왔다. 해마다 가을이 보이기 시작하면 일정까지 다 잡아 놓고도 이런저런 이유로 여러 차례 가을을 다 놓치고 이렇게 봄에 다녀왔다. 평소 남편이 챙기지 않는 내 생일을 비롯해 결혼기념일까지 기억하고 챙기던 딸아이는 결혼 40주년이 아닌 39주년인데도 불구하고 메인 주에 있는 Cape Elizabeth 호텔에다 예약을 해 줬다. 지난 39년동안 인내로 헌신하고 봉사했던 그 수고를 남편 대신 딸이 인정해준다고 생각하니 벅차기도 하지만 지난 1년 이상 '팬데믹'이라는 감옥생활로 인한 그 답답함으로부터 탈출하게 되는 절호의 찬스로 여기게 되자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집을 떠나 동네를 벗어난다는 것도 신나고 샤워를 갓 끝낸 듯한 깔끔한 하늘과 함께 떠난다는 것..

댓글 기본폴더 2021. 4. 23.

12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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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폴더 파스텔 색으로

저마다 추구하는 관심은 천태만상 일 것이다. 나는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가면 먹고 마시는 것보다는 분위기에 관심을 많이 두는 편이다. 분위기가 마음에 들면 모든 게 저절로 만족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테이블에 앉자마자앉자마자 우선 주위를 둘러보면서 만약 내 시선을 확 사로잡는 내 또래나 노부인을 발견하면 나의 관심은 내 자리에서 그쪽으로 옮겨진다. 그녀의 옷차림과 몸가짐에서 시작해서 음식을 먹는 모습과 제스처에 시선이 고정이 되면 그녀의 대화 톤까지 들으려고 애쓴다. 그녀처럼 먹고 그녀처럼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은 그녀가 풍기는 매력과 세련된 분위기를 쟁취하고 싶게 만든다. 나이를 먹고 늙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이왕이면 파스텔 색처럼 부드럽게 늙고 싶다. 늙었다는..

댓글 기본폴더 2021. 4. 12.

29 2021년 03월

29

기본폴더 반 개의 효과

‘아침을 먹었다’라는 말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된 시기는 가계를 닫고 난 뒤 부터다. 그전에는 집에서는 아침을 먹는 시간보다 몸단장 시간에 의미를 두다 보니 아침은 으레 건너뛰게 마련이었다. 가끔 가게로 가는 도중에 Panera Bread에 들러 아침을 주문할 때도 샌드위치 1인분에 커피 하나. 옆에서 먹으라고 떠 밀면 마지못해 한쪽 모서리를 Bite 하고 커피 홀짝 하면 아침을 먹었다는 포만감으로 가게에 도착하곤 했다. 이제 집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집에서 커피를 내리고 종이컵이 아닌 커피 잔으로 커피를 마시며 예전에 보이지 않았던 내 집의 구조 파악까지 하게 된 여유에 감사하며 오전 시간을 채우고 있다. 그러니까 오전 11시 반까지는 아침시간으로 여기며 즐기는 중이다. 나의 아침 식사는 반으로 시작한다..

댓글 기본폴더 2021. 3. 29.

22 2021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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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폴더 나도 '봄'

변덕스러운 3월이 가고 나면 곧바로 4월이 열리고 완연한 봄이 찾아온다. 겨울을 버텨낸 부활한 생명들이 여기저기 멍울을 터트리는 소리 듣기를 싫어할 사람도 있을까.... 봄은 모든 생명체들의 기다림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화창한 봄이 되면 떠 올리는 화가와 작품들이 있다. 바로 네덜란드 출신으로써 낭만적인 아티스로 잘 알려진 웰렘 하레츠 (Willem Haenraets) 대부분 그의 작품의 주제는 전원생활, 가족, 그리고 여인을 섬세한 터치로 완성시키는 낭만적인 아티스트이다. 특히 수채화 느낌으로 그린 탱고 춤추는 작품에서는 몽환적이기도 하지만 강렬하고 역동적인 감각까지 내 시선 안으로 초대가 되면 우주에 소생하는 만물이 다 보인다. 봄바람은 갇혀있던 것들을 밖으로 불러내는 기술자 이기도 하다 연인들의 속..

댓글 기본폴더 2021. 3. 22.

15 2021년 03월

15

기본폴더 나도 그리운 것들

누가 나한테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 숨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행요..." 할 것이다. 팬데믹으로 세상이 중단되고 잠겨 버렸다. 잠겨있는 사람들이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아래 글 작성자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아우성에 감동하며 함께 소리를 내본다. 여행이 그립다. 일상이 지겨워서만은 아니다. 역마살이 낀 탓도 아니다. 이국적 음식이야 우리나라에서도 웬만큼은 즐길 수 있으니 그것도 이유는 아니다. 도대체 이다지도 여행이 그리운 건 왜일까? 절대다수의 사람이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버킷리스트.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90%가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 내용을 분석한 연구를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버킷리스트는 산티아고 순례길..

댓글 기본폴더 2021.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