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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5/17성년의날 과../18민주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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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365일♡

2021. 5. 16.

계엄군의 퇴각과 양민학살
5월 21일은 석가탄신일로 공휴일이었다. 광주시민들은 어제의 참상을 뒤돌아보고 계엄군의 만행에 항의하기 위해 아침부터 금남로로 모여들었다. 오후 1시 계엄군은 시민을 향하여 사격을 하였다.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던 시민들 수십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갔다. 이때부터 시민들은 무장의 필요성을 느꼈고 서둘러 무장하기 시작했다. 거센 항쟁에 밀린 계엄군은 퇴각하면서 무차별 발포하여 사상자를 내고 조선대 뒷산을 넘어 화순의 길목인 주남마을로 철수했다. 전남대병원 옥상에 설치한 기관총(LMG)의 위력은 계엄군의 퇴각을 서두르게 하였다. 전남대에 주둔하고 있던 계엄군은 교도소로 퇴각했다. 시 외곽지역으로 철수한 계엄군은 27일 충정작전에 투입될 때까지 광주 외곽도로를 차단, 봉쇄하고 인근을 지나는 차량에 무차별 사격을 가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또한 송암동으로 이동하던 계엄군과 그 곳에 주둔하고 있던 전교사 병력간의 오인사격으로 군인들이 희생되자 그에 대한 화풀이로 원재마을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중학생에게 총질을 가했을 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을 수색한다는 명분으로 청년들을 끌어내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무장시민군의 등장
5월 21일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의 총격에 많은 시민들이 희생되자 시민들은 무장의 필요성을 느꼈다. 일부 시위대는 화순, 나주, 해남, 영암 등 시외지역으로 진출해 광주의 참상을 알렸다. 전남의 여러 지역에서 응원 시위부대가 왔다. 광주시위의 진압에 동원되어 텅 빈 지서, 경찰서, 예비군 무기고에서 M1소총, 카빈소총, 기관총과 탄약, 화순광업소의 TNT까지도 날라져왔다. 이들 무기들이 시민에게 지급되면서 이른바 '시민군'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 싸움은 시민군과 계엄군의 총격전으로 전개되었다. 최신식 무기의 정예부대와 비조직적이고 낡은 무기로 무장한 시민군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광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혈전을 벌였다. 5월 21일 도청 앞에서 전개된 시민군과 계엄군과의 시가전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시민군은 자발적인 지도부가 형성되어 무기조작법과 무기관리 등 무기소지자의 통제가 실시되었고 일반차량을 통제하는 등 시민군의 활약은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졌다.

항쟁 5일째 되는 22일, 시민군이 도청을 장악하고 어지러운 거리를 자발적으로 청소하는 등 질서를 회복해가기 시작했다. 시장과 상점들도 문을 열고 전기, 수도 등은 관련 공무원의 지원으로 해결되었다. 많은 부상자들 때문에 혈액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헌혈자가 잇따랐고 황금동 아가씨들까지 자청하여 제공했다.
치안력이 없는 상황에서도 은행 같은 금융기관에 대한 사고는 한 건도 없었고 금은방 등 일반 상점에도 별다른 사고가 없었다. 시민군과 항쟁지도부의 식사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도움으로 해결되었다. 시민군 지도부에서는 차량통행증, 유류발급증, 상황실출입증 등을 발부하는 한편 외곽지대 자체방위를 맡은 시민군과 유대를 갖고 지원하기 위해 기동타격대를 편성, 출동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시민들의 높은 시민정신과 도덕성, 자치능력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

[출처] [5.18 민주화 운동 ] 5.18 민주화 운동 사진 |작성자 데이콤이지

다 올릴수 없어 조금만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