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 _<졸업장 -안동 찜닭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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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배우

2022. 1. 21.

 

졸업장

    ㅡ안동 찜닭 생각

 

학력고사를 두어 주 앞두고 내가 또 칵 죽고 싶어져/학교 안 가고 술 취해 드러누워 있을 때,/벼 타작하던 아버지가 찜닭을 들고 자취방엘 왔다/삼부자가 그 놈의 학교 졸업장 하나 못 받으면 무슨 망신이냐고,/이거 먹고 내일은 꼭 가라고 맛있는 거라고//살림 잘 들어먹고 공납금 잘 안 주던/이상한 아버지가 보기 싫어서/나는 말없이 그걸 먹으며, 찜닭이 맞나 닭찜이 맞나/소주나 한잔 더 했으면 좋겠네,/생각하고 있었다 공부도 연애도 안 되어 그만,/집이고 학교고 뭐고 멀리멀리 탈출해버리고 싶던/시인 지망생, 하지만 찜닭에 누그러진 열아홉/ 아버지 경운기 몰고 육십 리 길 돌아가자/ 포기했던    <확률 · 통계>단원을 다시 펼쳤다//안동고등학교 일 학년 중퇴생 아버지는 십 년째 고향 앞산에 누웠고/이 학년 중퇴생 형과, 그 밤 열심히 찜닭 뜯던/누이는 민중으로 돌아가/안동 찜닭으로 부산서 먹고들 산다/닭하고 무슨 원수가 졌는진 몰라도/개업 축하하러 와 다시 찜닭 앞에 앉고 보니,/어느덧 삼십 년이 흘렀구나//안동고등학교 삼십삼 회 졸업생, 졸업장 너무 많아 탈인 나는/누이가 익혀 낸 찜닭을 먹고 있지만,/내가 삼십 년 전 그 밤으로 돌아가 있는 걸 아무도 모를 것이다/연거푸 소주잔을 비우고는 있지만 여전히/시도 연애도 안 돼 칵 죽고 싶은 오십,/닭찜이 맞나 찜닭이 맞나 생각 중인 걸 모를 것이다//뭐가 맞니껴, 물으면 나의 귀신 아버지는 술에 절어/횡설수설할 것이다. 그냥 맛있는 거라고, 학교는 가야 한다고/어옜든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고 

                                                                (이영광 시집 《끝없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