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처럼 용수철처럼 일요일처럼_유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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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배우

2022. 1. 27.

담벼락에 기대 선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모자를 한 사람은 달력을 닮았다

그들은 대화를 나눈다 그들의 손이 움직인다

새처럼 용수철처럼 일요일처럼

손목에 걸린 우산처럼

그들의 대화는 흔들리고, 들리지 않는다

새처럼 용수철처럼 일요일처럼

모자를 닮은 한 사람이

달력을 닮은 다른 사람을 넘겨보지만

그것은 그냥 人間에 대한 질문 그러나,

달력의 뒷면이 모자에 닿을 때

그것은 퍽 쓸쓸한 풍경이다

때마침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

일 년이 몇 장 남지 않은 장면에서 놀라는 우리처럼

담벼락에 기대 선 두 사람은 대화를 멈춘다

우산을 펼쳐 든 사람들처럼 손을 꼭 잡는다

새처럼 용수철처럼 지나갈버릴 일요일처럼

이상하지 않게 새처럼 용수철처럼 일요일처럼

                                                               유희경 시집_《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