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_당신에게 눈물이 있다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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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배우

2022. 3. 16.

>서문<

     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

     그곳은 아마도 너도 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  2022년2월22일 이어령

 

 

당신에겐 눈물이 있다

 

당신에게 눈물이 있다는 것은

영혼이 있다는 것

사랑이 있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고 애타게 그리워한다는 것

그리고 뉘우친다는 것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은

비가 그치자 나타난 무지개처럼 아름답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는 것은

가난 때문이 아니다

가난을 넘어서는 사랑의 눈물에서만

영혼의 무지개가 뜬다.

 

 

바다와 하늘로 만든 김자반의 맛

 

김을 모르고 서양 사람들은

카본 페이퍼라 한다

모르시는 말씀 그건 초록색 바다 밑

몰래 흑진주를 키운 어둠이라네

 

파도가 가라앉아 한 켜 한 켜 쌓여서

만들어낸 바다의 나이테를 아는가

어느 날 어머니가 김 한 장 한 장

양념간장을 발라 미각의 켜를 만들 때

하얀 손길을 따라 빛과 바람이 칠해진다네

내 잠자리의 이불을 개키시듯

내 헌 옷을 빨아 너시듯

장독대의 햇빛에 한 열흘 말리면

김 속으로 태양과 바닷물이 들어와 간을 맞춘다

 

김자반을 씹으면 내 이빨 사이로

여러 켜의 김들이 반응하는 맛의 지층

네모난 하늘과 바다가 찢기는 맛의 평면

 

이제는 손이 많이 간다고 누구도 만들지 않는

어머니 음식이라네

 

빈 장독대 앞에서 눈을 감으면

산간 뜰인데도 파도 소리가 나고

채반만큼 둥근 태양의 네모난 광채

고향 들판이 덩달아 익어간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