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이야기

여민류혜숙 2010. 9. 24. 18:20

차씨와 류씨의 내력
연안차씨 (延安車氏) 와 柳씨 내력


차씨(車氏)는

서기전(西紀前) 2704년(年) 황제이래(黃帝以來) 소호(少昊)·창의(昌意)를 거쳐

단군시대(檀君時代)에 신갑(辛甲)이 평양(平壤) 일토산하(一土山下)에서

왕씨(王氏)로 4세(世)를 지나 5세 왕몽(王蒙)이 7자(子) 왕림(王林)을 데리고

지리산(智異山)에 들어가 10여년(餘年)을 수도(修道)함에

신인(神人)이 세 번 성(姓)을 바꿔야 대창(大昌)한다 하므로

왕자(王字)에 동서(東西) 2획(劃)을 가(加)하여 전씨(田氏)로 하고

그 뒤 상하(上下)를 관통(貫通)하여 신씨(申氏)로 하고

또 천지양획(天地兩劃)을 가하여 차씨(車氏)로 하여 이름은 무일(無一)이라 하니

이가 곧 차씨(車氏)의 시조(始祖)이며

신라시대(新羅時代) 32세중(世中) 14승상(丞相)을 지냈으니

소위(所謂) 삼한갑족(三韓甲族)이었다.


차씨(車氏) 32세(世) 건갑(建甲)이 승상(丞相)으로 있을 때

신라 39대(代) 소성왕(昭聖王)은 림종시(臨終時)에 승상(丞相)을 불러

12세(歲)의 태자(太子)에게 왕위(王位)를 전(傳)하면서

아마도 서숙(庶叔) 언승(彦昇)이 왕위찬탈(王位簒奪)의 염려(念慮)가 많으니

연소(年少)한 애장왕(哀莊王)을 잘 보필하여 사직(社稷)을 굳건히 해달라는

고명(顧命)을 받들어 선정(善政)으로 대공(大功)을 세우고 돌아가니

애장왕(哀莊王)이 왕례(王禮)로서 장(葬)함에 세인이 차릉(車陵)이라 일컬어

소성왕묘(昭聖王廟)에 배향(配享)하고

42대(代) 흥덕왕(興德王)이 그 고을(기장현(機張縣) 만화동(萬化洞))을 높여

차성(車城)이라 하였다.


그 후(後) 과연 언승(彦昇)이 애장왕(哀莊王)을 살해(殺害)하고

스스로 41대 헌덕왕(憲德王)이 되어 수렵(군사훈련)을 일삼으니

승상(丞相)인 차승색(車承穡)이 아들 공숙(恭淑)과 함께

전왕(前王)의 원수(怨讐)를 갚고자 수렵귀로(狩獵歸路)에 복병(伏兵)으로 하여금

괴멸(壞滅)시키고저 계획한 것이 사전(事前)에 탄로(綻露)가 됨에

생질(甥姪)인 요동백(遼東伯) 김반전가(金盤傳家)에 피신(避身)하고 있던 중

부자(父子)를 체포(逮捕)한 자(者)에게 금(金) 천근(千斤)과

식읍만호(食邑萬戶)를 상(賞)으로 준다는 방(榜)이 붙자

김반전(金盤傳)이 욕심(慾心)이 생겨 밀고(密告)할 눈치를 알고

그날밤 다시 유주(孺州) 구월산(九月山) 묵방동(墨坊洞)에 들어가


조모성(祖母姓)인 양씨(楊氏)와 뜻이 같은 류씨(柳氏)로 변성(變姓)하고

이름은 승자(承字)를 빼고 색(穡)이라 하고

아들 공숙(恭淑)도 공자(恭字)를 빼고 숙(淑)이라하여

생명(生命)을 보전(保全)하여 숨어 살았다.


그 후(後) 신라(新羅) 경명왕(景明王) 2년(年)

고려(高麗)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남정(南征)할때

수레 천(千)대와 군량(軍糧)을 보급(補給)하여 전공(戰功)을 세워

삼한(三韓)을 통합(統合)하니

통합삼한익찬벽상이등공신(統合三韓翊贊壁上二等功臣)이 되어

대승(大丞)벼슬에 오르고 장자(長子) 효전(孝全)은 수공(首功)을 표(表)하여


본성(本姓) 차씨(車氏)로 복성(復姓)하고

대광백(大匡伯) 연안군(延安君)을 봉(封)하여 연안(延安)에 살게함에

관향(貫鄕)이 연안(延安)으로 중시조(中始祖)가 되었고


차자(次子) 효금(孝金)은 유씨(柳氏)를 잉존(仍存)하여

좌윤(左尹) 문화군(文化君)을 봉하고 문화현(文化縣)(유주(孺州))에 살게 함에

관향(貫鄕)이 문화유씨(文化柳氏)가 되었다.


이런 연유(緣由)로 차유양성(車柳兩姓)은 형제간(兄弟間)으로 혼인(婚姻)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연안차씨(延安車氏)는 연면(連綿) 46세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10여파(餘派)로 나뉘어져 전국에 산재(散在)하고 있다.


조선(朝鮮) 세조(世祖)때(1467) 북도(北道) 길주(吉州) 이시애(李施愛)

반란토벌(叛亂討伐)에 유공(有功)한 차운혁(車云革)(시호(諡號) 강렬(剛烈))의

손자(孫子)인 내어사(內御使) 득정(得禎)이 약(約) 560여(餘) 년전(年前)

칠곡(漆谷)에 우거(隅居)하였고

(칠곡(漆谷) 연호(蓮湖) 쌍청각(雙淸閣) 사당(祠堂)에

차운혁(車云革)의 영정(影幀)이 있음),

그의 6세손인 인(仁)이 성주(星州) 용암(龍岩) 본리동(本里洞)에 입향(入鄕)하여

현재 후손(後孫) 40여호(餘戶)가 모괴정(慕槐亭)을 중심(中心)으로

일촌(一村)을 이루고 있다.

출처 : 성씨의 고향, 엠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