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다도이야기

여민류혜숙 2011. 4. 3. 13:20

다도의 정의

 

다도란 무엇인가

茶道란 茶를 마시는 일과 관련된 여러 가지 다사(茶事)를 통해 심신을 수련하는 것, 차를 마시는 멋과 더불어 인간의 건전한 삶의 길을 걷자는 것을 말함이다. 정상구의 『韓國茶文化學』에서는 건전한 삶의 길이란 심신(心身), 즉 몸과 마음을 건전하게 하며 멋 속에 삶의 도리를 다하자는 것으로 논하고 있다.

차는 처음에 약용으로 사용되었을 만큼 기호음료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몸을 건강하게 하는 보건음료로서 효과가 큰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차는 우리 인간들이 건전한 삶의 길을 걷는데 있어 가장 소중한, 몸을 튼튼히 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귀중한 기호음료이다. 뿐 아니라 차를 끓이고 마시며 대접하는데 있어 따르는 정성과 예의범절  및 청정하고 고요로운 분위기 등에서 알뜰한 각성의 생활을 체득(體得)하게 된다.

 

다도의 성립은 중국 당나라의 육우가 8세기 중엽 을 지은 때부터 비롯되었다. 그뒤 다도는 중국을 비롯해 우리나라와 일본 등으로 유포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해 고려시대에는 귀족계급을 중심으로 다도가 유행했고 조선 시대에는 사원을 중심으로 그 전통이 이어졌다. 조선시대에 들어 와 한때 쇠퇴기를 갖던 다도는 19세기에 들어서 다시 일기 시작했다. 그 당시 초의선사는 을 지어 다도의 이론적인 면 과 실제적인 면을 크게 정리, 발전시켰다. 초의선사는 다도를, "따는데 그 묘(妙)를 다하고, 만드는데 그 정을 다하고, 물은 진 수(眞水)를 얻고, 끓임에 있어서 중정(中正)을 얻으면 체(體)와 신(神)이 서로 어울려 건실함과 신령함이 어우러진다."


이와 같이 다도는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차로 좋은 물을 얻어 알맞게 우러나게 해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다도를 관통하는 정 신을 다도정신이라 하여 다실의 분위기, 다구의 아름다움, 차의 성품, 차를 끓이는 여러가지일 등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것을 뜻한다.

다도정신은 다인들의 정신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데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그것을 증명해 준다. 차인들은 차를 통해 세속적이고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초월하고자 했다.

 

즉, 다도는 우리 인간들의 정신면에 있어 사심 없는 맑고 깨끗한 마음씨를 기르고 나아가 봉사하고 일하는 실천력을 기르고 이를 통하여 너 나 할 것 없이 다같이 한없는 기쁨 속에 깨달음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禮는 차 생활의 예법이요 행동의식인 과학적인 차원이요 형이하학적인 범주이다. 그리고 禮는 과학적 차원인 차 생활에 예의범절과 법도를 통하여 얻어지는 정신세계의 심미안적 예술세계요, 그 예술성을 포함한 정신적 만족감 등을 말한다. 그리고 道라고 하는 경지는 형이상학적 경지에서 최고도로 승화되어 이루어진 절대의 경지요 진리의 차원이다. 이 경지는 완벽한 깨달음의 경지로서 상대적인 것이 무너지고 오직 하나의 세계로 선악과 시비와 유무와 색채와 형상과 언어가 떨어진 경지이다.

우리나라의 다도정신에는 중정이 강조되었는데, 이것이 유교의 다도정신으로 중국의 다도정신에서 강조하는 중용(中庸)과 일본 의 화(和)와도 서로 상통한다.



한국다문화의 특징

 


인류는 차를 애초에 식용할 수 있는 식물이자 병을 낫게 하는 약으로 썼다. 그러나 싫증나지 않는 좋은 맛과 각성효과, 생산의 용이함 등으로 기호 음료로 발전하면서 음다(飮茶)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음다 문화"는 차나무와 물과 다구와 사람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물질적 정신적 성과이다. 따라서 한 지역에 사는 민족의 오랜 음다 문화는 그 민족의 생활관습과 민족적 특성, 실미적(審美的) 능력, 정신적 가치체계 등 크게 변하지 않는 내면적 바탕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문화의 외적 현상은 인접문화나 정치적 상황, 경제와 사회현상 등의 지배를 받아, 포용. 전이. 창조를 거쳐 변하게 된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1400년 이상 이어져온 한국의 다문화는 부분적으로는 변화하면서 나무의 뿌리나 줄기와 같은 민족 문화적 특성과 철학을 지녔으므로 다가올 시대에는 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한국 다문화는 다례. 다도철학. 음다풍속. 다구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1.儀式茶禮(Tea Ritual)의 발달

 한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의식다례가 발달하였다. 평상다례와 구분되는 의식다례는 山神. 조상신. 가신(家神).누에신 등에게 차를 끓여 올리는 헌공다례와, 살아 있는 사람에게 격식과 예를 갖춘 행사로서 차를 드리는 진다의례(進茶儀禮)가 있다.


차는 사람이 몹시 좋아하며 몸에 유익하면서 정신을 맑게 하는 각성효능이 있으므로 귀중한 음료였다. 따라서 사람이나 神을 대하여 경건하고 기쁜 마음을 나타내는 최상의 대접으로 차를 썼다. 그리고 차의 각성효과는 신과 인간의 교감이 이루어지게 하고, 신에게 헌공한 차는 다시 인간이 마심으로써 뜻을 같이한다는 유대의식도 생기게 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인간의 염원이 신에게 전달되고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간                                        단한 제사에는 차를 제일 중요한 제물로 여겨 다례를 올렸다.


조상신 등의 혼령에게 차를 올린 최초의 사서(史書)기록은 661년에 가야국(A.D. 42-562) 시조인 수로왕에게 차를 올렸다는 내용이 있으며, 고려(918-1392)의 사찰에서는 승려나 불자의 혼령에게 차를 올린 기록들이 있다.


조선시대(1392-1910)에 왕실과 귀족층에서는 간단한 제사에서 차를 올렸는데 낮에 지내는 제사를 "주다례(晝茶禮)"라고 했고,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지내는 제사를 "별다례(別茶醴)"라고 하였다. 이러한 다례는 외국에는 없는 이름이다. 조선 말엽에는 서민층도 "주자가례"를 본 따 제사다례라는 독특한 문화가 생겨났고 기제사에 차를 쓰기도 했다.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산 사람에게 차를 올리는 의식을 거행한 경우도 많았다.

팔관회나 정월 초하루의 조회, 조정의 큰 잔치, 중형(重刑)을 줄 때 등에 왕과 신하가 의식 진행절차에 따라 종중히 차를 마셨으며,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의례, 그리고 왕실의 행사로 태후나 왕자의 책봉, 왕태자 생일 축하 등에도 격식을 갖추어 진다의례(進茶儀醴:차를 들고 가서 드리는 의식)를 행하였다.

근세에는 회갑연때에 부모에게 의식을 갖추어 차를 오리는 다례도 행하여졌다.


2.수양다도의 발달

한국은 중국과 달리 마시는 물이 맑고 좋으므로 단순한 마실거리로 차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손님 접대시에 술이나 대용차도 흔히 썼다. 그런데 차의 중요한 특성인 각성효과와, 茶事에서 세밀함과 정성이 있으면 차의 맛이 크게 다르다는 점은 항상 공부하며 깊게 사유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잡념을 없애며 수양하게 하는 음료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즉 다사와 음다는 유가, 불가, 도가의 도에 이르는 길의 안내자인 동시에, 도에 도달한 경지의 마음과 정신상태가 되는 것이었다.

음다가 수양에 도움이 된다고 여겼음을 알 수 있는 앞선 기록은 설총(薛聰, ~692 ~746~)이 "차와 술은 정신을 깨끗하게 한다 (茶酒以淸神)"는 내용과, 최치원(崔致遠, 857~894~)이 차를 참선하는 노인이나 도가의 신선들이 좋아하는 선물로 인식한 내용과 한께, 자신은 차를 얻었으므로 근심을 잊게 되었다는 글에서 볼 수 있다.

수양다도를 중시한 대표적 다인으로 한국의 다도사상을 최초로 확립한 사람은 이색(李穡, 1328~1396)이다. 그는 차를 손수 끓여 마시는 일을 誠意.正心.修身하는 일로 여기는 군자수신의 다도관을 가졌다. 즉 茶事는 유학의 달도(達道)를 위한 실천적 공부방법이었던 것이다. 또한 草衣 張意恂(1786~1866)은 다사의 泡法(우려내는 법)은 中道思想의 공부라고 하였고, 秋史 金正喜(1786~1856)는 차를 끓여 마시는 것이 道의 本體를 터득하는 것이라고 했다.


 불가에서는 이웃나라와 마찬가지로 다도는 禪과 같다는 인식이 일찍부터 있어왔다. 이러한 다선일여(茶禪一如)는 승려뿐 아니라 선비들도 마찬가지여서 고려와 조선시대의 문인들은 "한 잔의 차는 바로 참선의 시작", "차의 맛은 선의 맛", 혹은 "茗禪(Tea Zen)"이라는 글을 썼다. 또한 차는 부처라고 했으며, 7세기 보천(Bochun)의 불공다례에서 알 수 있듯이 차를 마시면 깨우쳐 오도(悟道)하게 되고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여겼음을 史書나 詩文, 민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리고 조주(JoJu)의 "끽다거(차 한 잔 마시고 가게)"라는 의미로 흔히 쓰였다. 따라서 승려들은 평소의 다생활도 마음을 청정하게 닦는 수행으로 여겼다.


도가(道家)에서도 차를 마시면 몸과 마음이 수양되어 득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도가의 도인을 신선이라 하는데, 한국 신선사상의 근원은 중국 도가와는 별개로 민족의 시조인 단군이 신선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와서 독특한 한국단학(丹學, Korea Dan-hak)으로 발전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 도가적 다도사상은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많이 지니고 있다.

차를 끓여 마시면 심재(Purification). 전일(Absorption). 좌망(Meditation)하여 도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즉 귀중한 차를 정성 들여 끓이는 일은 도를 닦는 과정이며, 차를 마신 후에는 득도한 뒤와 같이 자유롭고 조화로우며 자신과 사물을 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규보(1168~1241)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Teaism and Taoism are same"이라고 말했다.

음다를 수양방법으로 여긴 것은 선비나 승려들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차는 외로뭄을 달래고 마음을 다스려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여겼고, 나아가 도를 깨칠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도 다생활이 마음을 수양하고 정신을 깨끗하게 한다는 점이 중시되어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명상다례법을 수련하기도 한다.


3.문사중심의 다도문화


1) 문사중심의 다도문화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걸쳐 일반적 음다퐁속에서 그 주체는 왕과 쥐족, 문사와 승려, 그리고 무인들과 백성들도 포함되어 그 폭이 넓었다. 그러나 천년이 넘는 생활문화로서 다도를 발전시켜 맥을 잇고 음다풍속의 주도적 역할을 한 계층은 문사(文士)들이었다. 이에 비해 일본 다도의 전통은 무사(武士)중심이었고, 중국은 귀족계층이 주도하였다.


한국 다문화의 전성기이자 문인다도가 꽃을 피운 때는 고려 중엽인 12세기부터 조선초인 15세기까지와 조선 말엽 18.9세기이다. 고려때는 성리학자 다인이 주축이었고, 조선말에는 실학자 다인들이었다. 즉, 한국의 문인다도는 문장가 보다는 학자들을 중심으로 성한 것이 특색이다. 그리고 茶詩文도 무척 많이 남겨, 70편 이상 남긴 문인으로 이색, 서거정, 김시습, 정약용, 신위, 홍현주 등 6인이나 되어 중국보다 훨씬 많다.

이러한 문사음다풍습은 현대에도 이어져 학자나 예술가나 지도자층에 다인구가 많으며, 다도를 습득하고자 할 때에는 행다법의 수련뿐만 아니라 선조다인들의 고전 다서를 공부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2) 옛 관리의 다도 중시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공무를 행하는 관리들이 차를 마시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입법. 행정. 사법에 관여하는 간리는 음다를 업무로 여길 만큼 중시하였다. 그들은 정중히 차를 마심으로써 공무를 치우치지 않고 올바르게 행할 수 있다고 였기 때문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법을 다루는 사헌부에서는 다시(Tea ceremony Time)를 행하였다. 조선초기에는 서울에 있는 관청 모두 다시를 행하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다시를 행하는 청(廳 ; 마루)이 따로 정해져 있었으며, 때로는 다시가 업무의 전부이기도 했다. 또한 고려의 왕은 사형과 유배를 선고하는 의식에서 정중히 차를 마셨고, 이어 신하들도 격식에 따라 차를 마신 후 최종 결정을 했다.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관리가 공무를 하기 위해 말을 달려가다가 쉬는 역에 차를 마실 수 있는 "다원(茶院)"이 많이 있었으며, 고려의 관리들은 다방관청에서 수시로 차를 마실 수도 있었다.

이와 같이 관리들이 다도를 중시한 것은 다문화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유가사상의 영향이 컸다. 따라서 관리들은 평소에도 차르 마시며 청덕을 기르고자 노력하였으므로 한국은 청백리 다인들이 적지 않다.


3)다방군사(茶房軍士)


다문화가 크게 성했던 고려시대에는 조정과 왕실의 의식다례와 외국손님접대와 관리들의 다시(茶時)등을 원만히 행하기 위해 정부기관으로서 다방(Tea government office)이라는 관청이 있었다.

다방에는 여러 관직외에도 군사(Soldier)가 100명에서 수백명까지 소속되어 있었다는 점이 매우 독특하다. 그들은 왕과 태자가 궁궐밖에서 행사할때나 돌아올 때 물주전자와 이동화로, 다구와 차짐등을 운반하였고 다사(茶事)를 했으며 다방(Tea government office)에서 하는 일을 수시로 도왔다.



4. 독창적다구의 발달


1)독창적 다구의 발달

 한국의 다구는 중국다구의 영향도 받았으나 대체로 매우 독창적인인 것이었다. 의식다례가 유난히 발달한 한국은 다구도 제사때나 예의를 갖출때 쓰는 것이 발달하여 민족문화적 특성을 지녔다. 그리고 일찍부터 야외용 다구가 발달하였다. 산이나 들의 천신(天神), 용신(龍神), 그리고 옥외(屋外)부처 등에게 차를 바쳤고 선비들은 물가나 산 속에서 즐겨 차를 끓여 마시는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다도를 예술문화로서 즐기는 계층이 귀족이나 백성들보다는 문인들이므로 심미적 기준도 이 땅에 사는 선비들의 예술적 감각과 사상에 기초하여 그 차원이 무척 높았다.


*다조(Boiling Tea Table)와 상보(덮개 보자기)


다조는 온갖 다구를 올려 놓고 찻일을 하는 넓은 탁자의 종류로서 조리대에 해당된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인의 음다풍속을 보면, 붉은색의 다조를 놓고 그 위에 온갖 다구를 놓은 후 붉은색의 비단상보를 덮는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큰 다조가 사랑방이나 마당 혹은 처마밑에 놓여 있는 것을 차끓이는 풍속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평평한 큰 다조에 화로와 퇴수기를 제외한 온갖 다구를 올려 놓고 차를 끓인다. 때로는 다조가 다과상(茶菓床)을 겸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조위에서는 물을 다루는 일을 하므로 천을 깔아 일하기 편하게 하며, 상보를 덮어둔 오늘날의 다조상보는 고려의 전통에 따라 역시 삿된 액을 쫓아내는 붉은색을 쓴다.


*석지조와 다구함

 신라의 네 화랑 선인인 사선(영랑, 술랑, 남랑, 안상, 6세기 이전)이 경포대와 한송경에서 석지조라는 돌못화덕을 사용하여 천신께 차를 끓여 바쳤다. 석지조는 큰 돌덩이 하나에 바람구멍이 있는 풍로와 물을 담는 작은 못이 함께 파져서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 한국만의 독특한 다구이다.

또한 승려화랑인 충담(忠談, ~765~)은 남산의 부처에게 차를 끓여 올렸는데, 이때 다구를 담아 짊어졌던 앵통(벗나무 다구 Box)이 있었다. 충담은 육우와 동시대인이나 다구는 사뭇 다르다.



*찻그릇(茶器)

 한국은 의식다례용 찻잔이 발달하였는데, 그 용량이 매우 크거나 굽이 무척 높은 찻잔이 많이 쓰였다. 그리고 "茶"字를 써 놓은 신라.고려.조선의 오래된 다기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 제사에 쓰는 다병(茶甁)이나 신이나 부처에게 올리는 찻잔에 "茶"字를 새긴 것은 일반 그릇과 구별하여 예의바르고 귀중하게 다루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반 음다용 잔은 1인용 잔과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마시는 큰 잔이 있었다. 문사다도가 성했던 고려 말렵에는 1인용 찻잔의 안쪽에 학이나 그름 모양의 백색상감이 새겨져 있는 잔들이 많았는데, 이는 탁한 乳茶(Milky tea of powder)보다 맑은 탕차를 선호함으로 인해, 다탕을 담았을 때 그 형상이 비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귓대다완이 있어 말차를 솔로 점다할 때나 탕차를 삼베에 걸러 각잔에 따를 때 썼다.

오늘날의 한국다기는 실용성과 손바닥의 촉감을 중시하는 편이다.


*다술과 공대와 다선


고려시대에는 말차를 끓일 때 거품을 일으키기 위해 여럭 가지 모양의 고리다술(many ring tea spoon)을 써서 휘저였다. 또한 단차를 잘게 부수기 위하여 대나무 막대로 된 공대(Kongdae)를 썼으며 17세기에는 말차를 휘젓는 대나무 다선(dasun, tea 솔)을 세계 최초로 독창적으로 만들었다.


2) 세밀하고 자연스러운 행다례

한국 다례의 특징은 세밀함과 자연스러움에 있다.

차를 끓이는 주인은 차의 본래 성품을 잘 드러내기 위해 세밀하고 정성을 들여서 끓이는 유가적 공부자세를 지닌다. 동시에 주인과 손님의 전체 행동은 군더더기가 없고 인간 본위이며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워, 차와 주인과 손님은 하나의 자연이 되는 도가적 모습이다.이는 인위적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마음이 자유롭고 편안한 자연스러움이다. 그리고 차를 끓일 때는 차가 주인공이고, 차를 마실 때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며, 차를 마신 후에는 정신이 주인공이 된다.

한국 다문화의 특성은 이상에서 살펴본 바 외에도 민족다문화의 우월함에 확신이 있었으며 다신계(차로써 신의를 맺은 동아리), 초당다옥과 온돌 다실, 茶字 부적, 茗席(茶會)등도 독특하였다.

동양에서도 개성있고 멋이 있으며 심오한 철학을 지녀 아름다운 마음을 창출하는 한국의 다문화는 세계 문화를 아름답게 하는데도 기여할 것으로 생각된다.




5. 한국의 다구 감상


1) 가야, 고구려, 백제의 다구


① 토기 기대 화형잔


이 꽃모양의 잔은 잔입술을 눌러 만들어 웃 사람이 마신 잔 입술자리 에 다음의 아랫사람의 입이 닿지 않도록 배려하여 만들어진 찻잔으로 짐작된다.



② 청동 초두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三神사상이 있어 이 초두의 三足도 三神사상에 서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이 삼족 초두는 산이나 야외에서 찻물을 끓 이거나 茶湯을 끓일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③ 고구려의 간이화덕

굴뚝이 달린 이동식 화덕은 산이나 들에서 차를 끓였거나 음식을 데우는데 사용되었을 것이다.





④ 은제 유개잔, 잔탁

일본의 『동대사요록(東大寺要錄)』에 백제의 귀화승인 행기(行基, 66 8~749)가 말세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차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으 므로 백제의 승려들은 7세기 이전에 이미 차를 마셨다고 볼 수 있다. 백제는 지리나 기후로 보아 차문화도 일찍부터 발달하였으리라는 추측이 가나, 신라와의 전쟁에져서 멸망했으므로 사료가 드물어 몹시 아쉽다.


⑤ 묘련사 석지조 (妙蓮寺 石池 )

돌 화덕과 돌 못(石池)이 동시에 있는 석지조기의 화덕은 깊이가 11cm로 얕아서 숯으로 불을 때게 되어 있다. 위쪽에 걸개발이 세 개 있어 작은 탕관도 올려 놓게 되어 있다. 돌못에는 먼 곳의 물을 길어 다가 가득 담아 놓고 찻그릇을 씻었고, 자연상태로 내버려져 있을 때 는 빗물 등이 고여 있게 되므로 돌못을 가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⑥ 토기 언정형완

* 토기 언정영 찻그릇, 통일신라, 8세기 이전, 입지름 16.8, 높이 6.1~6.5, 안압지 출토, 국립경주박물관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그릇 바깥에 묵으로 그린 풀꽃과 구름이 있으며 「言貞榮」이 쓰여 있는데 「貞」과「榮」사이에 작은 글씨로「茶」자가 씌여 있다. 이것은 일반 토기보다 고온에 구운 것으로 특 별한 의례때 사용되었으며, 굽이 없는 뒷바닥의 모양으로 볼 때 굽이 있는 받침이 따로 있었던 것 같다. 잔입술 바깥에 오목선이 둘러져 있고 전체적으로 흰 회색을                  띠고 있으며 매우 정선된 태토를 사용하였다.




⑦ 석굴암의 문수 보살상

경주 석굴암의 보존불을 향하여 우측벽의 두 번째 상은 문수보살로 서 오른손에 찻잔을 드고 있다. 이 잔은 바라진 듯한 반원형의 잔몸 에 굽이 뚜렷하다. 『삼국유사』에 보천과 효명 두 태자가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서 매일 새벽에 차를 달여 문수보살에게 바쳤다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의 신라인들은 지혜의 표상인 문수보살이 차를 좋아한 다고 여겼던 것 같다.





⑧ 토기 돗자리 문사발

신라문화의 전성기인 8세기경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이 사발은 식사용외에 茶를 위시한 여러가지 음를 를 마시는데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


2) 고려시대의 다구


① 청자 운학문 통잔

고려 말기의 통잔으로 표면이 거친편이나 학이 이상히 돋보이는 잔이다.






② 청자 흑백 상감운학 통잔

고려시대의 의식용 탁잔으로 그 선이 유연하고, 잔의 입술이 꽃잎형으로서 잔의 우아함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③ 청동다구류


회암사의 오맥나한께 올리는 고려시대의 청다다로 로 잔의 밑에 -회암오맥성전, 다기양오십- 이라 씌여진다. 윗지름이 20.51cm인 상당히 큰 동양의 찻그릇이다.






④ 청자철사불노초문차병

고려시대인들은 부귀장수를 염원하여 창자 도자기에 불로초를 새겼다. 손잡이와 수구를 보호하기 위하여 물통을 높게 고안해서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다.




⑤ 석제 차맷돌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고려의 차맷돌은 중국이나 일본의 뒷면이 납작한 원통형과는 달리 동그스름한 외(瓜)모양이다.





⑥ 은, 동제 찻숟가락


청동과 은으로 만든 말차뜨는 찻숟가락이다. 손잡이 뒤쪽에 고리가 달려 있어 차유(茶乳)를 휘저음으로써 차거품(乳花)이 일어나게 만든 것이 오늘날의 거품기와 비슷하다.






3) 조선시대의 다구


① 분청인화문완

구연부 외반에 백상감 인화가 조화를 이루어 그릇의 분위기를아름 답게 꾸며준다. 내부 저부에는 국화문이 모여서 한 송이의 국화꽃으로 피어나게 하여 아름다움을 더하여 준다.




② 분청귀얄문완

그릇 외부의 경치(유약이 시유되지 않은 부분)가 특색있게 나타나 있고 내부의 귀얄은 독수리의 날개짓 같이 매우 활달하게 보이며 그릇 바닥에 6개의 굽받침이 자연스러운 문양처럼 보인다. 남성의 혼이 보이는 수작이다.



③ 분청덤벙문완

무작위로 백토를 분장시켰지마는 잘 조화 연결되어 그릇의 외면을 분리하여 준다. 질서감과 아름다움을 주며 말차 한잔으로 색감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조선초기의 다완이다.



④ 백자 던덩이 사발

균열과 빙열이 불규칙속에 규칙적인 미를 보이고 저부의 더덩이는 애써 촌티를 더욱 부채질하여 주고 내부의 井은 거울 같이 보이는 우리 사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⑤ 백자양이 소문(素紋)잔 ․ 잔탁

하얀 소복한 여인의 날개를 보는듯한 손잡이의 아름다움과 가냘프다 싶을 정도의 형태감이 그릇의 미를 더욱 크게 늘려주고 안전감을 주는 받침이 포근하게 잔을 감싸주는 수작이다.



⑥ 청화백자 매화․조(鳥)

경기도 광주 분원작품으로 백자에서 옥색빛을 발하고 일필휘지의 조화가 매우 윤택한 분위기를 일깨워 주고, 굽은 안정감을 주도록 청화원권문을 두른 수작이다.




⑦ 동제 국자 은제 숟가락

가냘픈 손잡이에 끝부분을 접어 마감하고 여자의 유방처럼 아름다움으로 국자 부분을 만들어 실용적이며 미적감을 준다. 은제 차 숟가락 역시 손잡이 끝을 접었고 숟가락의 형태를 타원형 잎사귀 모양을 하여 보기가 지루하지 않고 실용성도 가미하여 준다.

  


3) 조선시대의 다구

  


  ■세계의 다도

 

한국와 일본의 다도의 비교


茶道란 무엇인가? 이것은 매우 어려운 난제이다

그러나 한국의 다도와 일본의 다도를 굳이 비교한다면, 무형식과 형식으로 나눌수도 있다. 즉, 우리의 다인들이 그저 차란 즐기면 되는 것이며, 일본처럼 딱딱하게 격식 차리는 것만이 다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다도는 과연 격식만 차리는 것을 강조할까?

그것은, 그렇지 읺다. 우리와 같이 차란 즐기는 것이다

다만, 한국과 일본의 현재를 따져보면, 그것의 연원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갔을때 한국과 일본의 다도가 동일하였다면, 그 이후부터 벗어나기 시작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귀족, 무사문화가 정신이 된 일본의 에도 시대는 말차를 중심으로 격식화된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말차도가..

사대부, 문사문화가 바탕이 된 한국의 조선시대는 전차를 중심으로 풍류를 즐기게 된 굳이 이름한다면 전차도가 각기 특성을 가지고 발전하게 된 것이다.

현대는 일본도 전차도와 말차도가 있지만 여전히 말차 중심의 다도를 뜻하고 있고 점차 전차가 인기를 넓혀가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도 전차에서 말차를 즐기는 인구가 점차 넓혀가고 있다.



 


세계의 다도


영서선사가 중국에 가서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와 함께 차 문화를 일본에 전래한 이래 일본 고유의 독특한 음다풍습을 형성하였다. 특히 풍신수길 시대의 고승인 센리큐가 다도를 집대성하여 다도의 보급과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일본의 다도는 전통적으로 환경이 좋은 정원에 다실 두고 '화․경․청․적'의 다도정신으로 보다 엄격한 규율과 정신으로 다도를 행하고 있다. 보통 주인이 문앞에 꿇어 않아 손님을 맞이하는데, 손님이 무사나 군인일 경우에는 반드시 무기를 다실 밖에 설치한 시렁에 걸어두고 다실로 들어오게 하여 다실 내에서는 평화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어떤 다실에서는 문 밖에 손님이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대야에 물을 준비해 두는 경우도 있다. 손님이 다실에 들어온 뒤에는 주인은 손님과 서로 절을 하면서 주인은 손님의 왕림에 감사를 하고 손님은 주인의 초청에 감사의 표시를 한다. 그리고 나서 손님은 다실 벽에 걸어둔 그림이나 글씨, 꽃꽂이 등을 감상하고 주인은 차를 다릴 물을 끓이고, 차완에 말차를 넣고 물을 부은 뒤 다선으로 잘 교반하여 손님에게 차를 대접한다.


땔감, 쌀, 기름, 소금, 간장, 식초와 차가 생활필수품이라 할 정도로 차는 대만사람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주요 음료이다. 주로 반 발효차인 오룡차, 포종차를 즐겨마시고 자스민차를 들기도 한다. 식당이나 호텔에는 주로 자스민차를 많이 내놓고, 가정에서 또는 차모임에서는 고급의 고산 운무차를 즐겨마신다. 거리곳곳에 전통다관이 있어 손님을 만날 때 또는 여가가 있을 때 다 관에 와서 차의 향기와 맛을 음미한다.


중국은 한족을 포함하여 54개의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이 중 한족은 전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어 각 지역마다 고유의 음다 풍속과 생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지역에 따라 주로 마시는 차가 달라 양자강 이남 지역은 녹차나 홍차를 마시고, 산동성이북의 북방인은 자스민차, 복건성과 광동성은 우롱차, 티벳등의 서쪽지역은 떡차나 벽돌차를 즐겨 마시고 있다.


그러나 한족들은 차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소수 민족과 같이 차에다 버터나 소금과 같은 재료를 넣지 않고 차만 우려 마시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음차 방법에 있어서도 차와 물의 등급에 대해 세분화되어 있으며 우롱차의 경우에는 의홍에서 생산되는 소형의 자사다구를 사용하여 차를 우려 마시며, 광동지역에서는 얌차라 하여 차를 마시면서 여러 가지 만두나 튀김 요리를 먹는 음다풍습이 보편화되어 있다.


이들 광동 요리는 기름기가 많기 때문에 차를 마시지 않고는 요리를 많이 먹을 수가 없기에 먼저 무슨 차를 마실 것인지 주문을 받은 뒤 차를 마시면서 종업원이 끌고 다니는 요리 운반 차에서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먹으면 된다. 일반적으로 가격이 비싼 편이 아니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다관이나 호텔에서 얌차를 먹으로 오는 사람이 적지않다.


중국 신강의 위구르족은 같은 민족이라 할지라도 음차 방법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 남쪽지역에서는 향차를 주로 마시고 밀크티를 마시지 않으나 북쪽지역은 이와 반대로 밀크티를 마시고 향차를 마시지 않는다. 위그르족의 밀크티는 몽고족의 밀크티와 비슷한데, 먼저 벽돌차를 파쇄한 뒤 차 덩어리를 철제 주전자나 알루미늄 주전자에 넣고 물을 붓고 끓인다. 차가 우러나면 신선한 우유 혹은 양젓을 넣고 다시 소량의 소금을 넣은 뒤 더 끓인다. 몇분 뒤에 찻잔에 따르어 식사와 함께 차를 마신다.


향차는 남쪽지역에서 구리주전자를 사용하여 차를 끓이거나 구리주전자가 없을 때는 목이 긴 도자기를 이용하여, 먼저 차와 함께 후추나 계피, 정향등의 향료가루를 주전자에 넣고 서서히 물을 부은 뒤 불위에 얹어 4-5분 끓인다. 차 찌꺼기나 향료가루가 찻잔에 함께 나오지 않도록 주전자에 거름망을 붙여 걸러서 마시며 보통 아침, 점심, 저녁 식사와 더불어 차를 마신다.


운남지방은 차나무의 원산지로서 여러 소수 민족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운남성에는 8개의 민족 자치주가 있으며 15개의 자치현이 있다. 이들 민족 중 한족의 음차 방법이외에 염파차, 수유차, 고차, 소차, 뢰향차, 유차, 용호투차 등 비교적 특이한 음용 방법이 많이 있다. 염파차는 먼저 차 덩어리를 부수어 작은 토기 그릇에 넣은 뒤 토관을 불위에 얹어 차잎이 '퍽퍽'하는 소리가 날 때까지 구운 다음, 토기관에 천천히 뜨거운 물을 붓고 다시 5분정도 더 끓인다.


소금 덩어리를 차탕 중에 넣고 끓여서 짠맛이 나면 화로에서 꺼내어 찻잔에 따른 뒤 개인의 기호에 따라 끓인 물을 더 부어서 마시면 된다. 염파차를 마실 때는 보통 옥수수떡을 함께 먹는 습관이 있다.


또 현지에서 전해오는 노래 중에서 다음과 같은 다가가 있다.


" 아침에 한잔의 차를 마시면 하루가 위풍당당해 지고,


오후에 한잔의 차를 마시면 일하는 것이 가벼워지며,


저녁에 한잔의 차를 마시면 정신을 일깨워주고 고통을 없애주며,


하루에 3잔을 마시면 벼락이 쳐도 움직이지 않는다. "



용호투차는 밀림 속에 사는 사람들이 감기 치료에 이용하는 비방으로서, 만드는 방법은 진하게 우려낸 뜨거운 차를 알콜도수가 높은 술이 담긴 술잔에 부으면 마치 용과 호랑이가 서로 싸우는 것과 같은 형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용호투차라고 부르고 있다. 특히 감기에 걸렸을 때 이 용호투차를 마시면 땀이나고 잠을 잘 자게 되어 몸이 가벼워지고 감기가 떨어지게 되므로, 현지인들은 감기 치료의 민간요법으로 주로 이용하고 있다.


티벳 지역은 고원 지대로서 기후가 한냉하고 건조하며, 음식은 육식위주로 과일이나 채소가 적어 인체에 필요한 비타민과 미네랄같은 영양 성분을 주로 차잎으로부터 보충하고 있다. 따라서 티뱃 민족의 차 소비량은 비교적 많은 편이며, '하루 양식이 없어도 되지만 차 없이는 못산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들이 연간 1인당 소비하는 양은 15Kg으로 차 소비량이 많은 영국보다 무려 5배나 많다.


티벳 지역의 음다 풍습은 밀크티와 수유차(수油茶), 그리고 차 그대로 우려마시는 방법이 있으며, 이중 수유차(수油茶)는 티벳 지방의 독특한 음다 방법으로 당나라의 문성공주(文成公主)가 티벳 왕에게 시집온 후 차 마시기를 제창하였을 뿐만 아니라 직접 수유차(수油茶)를 만들어 대신들에게 제공하여 점차 손님 접대의 예절로 자리잡게 되었다.


수유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긴 나무통과 다구가 필요하며, 다구는 대부분 금이나 은제의 금속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수유차 제조방법은 먼저 차잎(주로 緊壓茶)을 주전자에 넣고 끓인 뒤 버터와 소금 그리고 참깨, 땅콩, 수박씨, 잣, 호두 등의 재료를 넣은 나무통에 파를 부은 뒤, 나무로 만든 봉(棒)으로 아래 위로 왕복하면서 차와 기름 및 각종 재료가 잘 혼합되도록 한다. 수유차를 마실 때에는 일정한 예절이 있어 주부가 먼저 쌀보리 가루나 차즙으로 만든 가루떡을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 식탁 중간에 놓고 주인이 손님의 찻잔에 차례로 수유차를 따르고 "짜퉁 짜퉁"(차 드십시오)라는 말을 하면서 손님에게 차 마실 것을 권한다.


손님은 한편으로 수유차를 마시면서 보리 가루 떡을 먹는데, 차를 마실 때 주의할 점은 찻잔의 차를 모두 마시지 말고 조금 남겨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티벳 풍습에 차를 모두 마셔버리면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주인의 입장에서는 손님 접대를 잘못한 경우가 되어 본의 아니게 결례를 하게 된다. 따라서 첫째 잔을 조금 남겨주면 주인이 만든 차가 마시기 좋다는 의미가 되므로 주인이 다시 차를 따라주게 되고 둘째, 셋째 잔도 마찬가지이며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을 때는 바로 차를 마셔버리면 주인도 더 이상 차를 권하지 않게 된다.


일반적으로 티벳인들은 매일 20잔 정도의 차를 마시며, 이것은 4ℓ정도의 양으로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는 아예 주전자를 화로위에 두고 종일 차를 마시기도 한다. 또한 라마교 사원에서는 직경이 1.5m 이상되는 대형 주전자에 종일 차를 끓이면서 참배객에게 차를 제공하고 있다.


몽고는 유목 민족으로 생활 습관상 하루 3번의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세 번의 차를 마시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뒤 가족들과 함께 한번의 식사를 하는 삼차일반의 습관이 있다. 만약 저녁에 소나 양고기를 먹을 경우에도 식사 후 다시 차를 마시고 잠을 자게 된다.


따라서 이들 지역의 차 소비량은 매우 많은 편이어서 1인당 연간 약 9kg의 차를 소비하고 있다. 몽고족이 하루 세 번의 차와 한끼의 식사로 어떻게 생활할 수 있는지 의아해 하겠지만 이들은 차를 마실 때 볶은 쌀이나 치즈, 밀가루, 튀김 등과 같은 밀크티를 마시기 때문이다.


영국인의 음다는 17세기에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궁중의 귀족층에서 시작되어 점차 서민에게까지 널리 확대되었다. 18세기 중엽, 영국인들의 아침 식사는 매우 풍성한데 비해 점심은 비교적 간단한 편이었고,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점심과 저녁 사이의 시간이 비교적 긴 편이었다.


따라서 베드포드공작 부인인 안나가 고안해 낸 방법은 오후 5시에 여러 사람을 초청하여 차와 과자 등을 제공하면 배고픈 것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찬성하게 되었고, 점차 귀부인들이 경쟁적으로 차회를 개최함에 따라 점차 일종의 예의로서 자리잡게 되었고, 커피 하우스나 레스토랑, 여관, 극장, 티 하우스 등에서도 오후 차를 제공하게 되었다.


오후 차는 '5시차'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보통 4시-5시 사이에 마시기 때문에 기차에서도 오후 차용으로 물과 우유, 설탕, 빵, 크레커, 과일들을 바구니에 담아 제공하고 있다.


영국인들은 매일 약 1.59ℓ의 음료를 마시는데, 이중 차가 약 37%, 커피 10%, 기타 우유, 과즙, 자극성 음료나 광천수가 차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1인당 약 4.5kg 까지 소비된 경우도 있었으나 지금은 약 2.5kg 정도를 소비하고 있다.


차의 소비 형태에 있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뜨거운 물로 차를 우려 마시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으나 미국인들은 아이스 티의 소비가 많은 편이다. 통계에 의하면 미국인들 중 차를 뜨거운 형태로 마시는 사람이 30%-35% 인데 비해 차갑게 마시는 사람은 65%-70%이다.


아이스 티의 유래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에서 개최된 국제박람회에서 리차드라는 영국의 차 업자가 차의 선전을 위해 박람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마침 7월경이어서 무척 더운 날씨였다. '차는 건강에 좋다' 라는 표시판을 걸고 뜨거운 홍차를 끓여 시음 활동을 하였으나 무더운 여름날씨 때문에 누구도 차에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는 홍차에 얼음을 넣고 '차가운 홍차'라고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권유하게 되자 더운 여름 날씨로 목이 마른 손님들이 대거 모여서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리차드는 영국인이었지만 미국에서 아이스 티를 만든 이래 미국 과일의 대표격인 레몬을 차에 넣어 상쾌함을 강화시킨 아이스 레몬티에 의해 미국 레몬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사막지대의 기후 영향으로 비가 적으며 소나 양고기가 주식이기 때문에 과일이나 채소의 섭취가 부족되기 쉬워 차를 많이 마시고 있다. 이들이 마시는 차는 녹차 위주로서 중국 절강성에서 생산된 주차(誅茶)나 미(眉茶)차를 주로 마시며 1인당 연간 소비량은 1kg을 넘어서고 있다. 모로코의 음차 역사는 200년이 넘으며 이슬람교를 믿는 관계로 술을 마실 수 없기 때문에 차를 많이 마시고 있다.


차를 마시는 방법은 차탕 중에 설탕과 함께 박하잎을 넣어 차와 설탕, 박하 맛이 서로 조화 되어 마신 뒤 입안의 상쾌함을 더해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박하차를 즐겨 마시고 있다.



■다구의 종류


1. 문헌에 나타난 다구


<우리 토기 도자기의 역사>

- 신라시대 : 충담사(忠談師)가 다구함인 앵통(櫻筒)을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찻을 꺼내 사용 하였다.

안압지 복원 공사중에 정언다(貞言茶)라는 명문(銘文)이 있는 토기잔이 나왔고,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은 우통수에서 물을 길어다가 1만의 문수보살에게 차를 공양하였다니까 표주박․물병․물통을 사용했을 것이다. 원효가 거처했던 방에는 병(甁)과 자구(瓷 )가 있었다고 하며, 진감국사는 한명(漢 茗)을 돌솥(石釜)에서 삶았다고 한다.

또 강릉의 경포대와 한송정에서는 네 화랑의 야외용 대형다구인 석지(石池)․석정(石井)․석조(石 ) 가 있었다.

이밖에 왕릉에서 출토된 금완(金 )․은완(銀 ) 따위도 찻잔 으로분류해야 옳지 않을까? (술 잔이거나 차․술 공용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고려시대 송나라 사람 서긍(徐兢)은 고려인들이 금화오잔(金花烏盞)․비색소구(翡色小 )․청자다완 (靑磁茶碗) 등의 잔과 탕호(湯壺)․화로(화爐)․솥, 그리고 잔뚜껑을 사용하더라고 <고려도경(高麗圖 經)>에 기록하였다.

그런데 홍조(紅俎) 위에 다구를 진열한 다음 붉은 색의 비단 상보를 덮었으며, 연회 시에는 뜰에서도 차를 달이고 주인이 권해야 들더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고려인들이 사용한 다구는 차맷돌(茶 )․다병(茶甁)․철병(鐵甁 : 무쇠 주전자?), 차시(茶 匙)․차선(茶 ) 등이 있으며 찻잔은 구( )의 형태가 대부분이나 찻종(茶鍾)도 있었으며 자기 외에 금․ 은․유기도 많이 사용되었다.


- 조선시대 : 금․은․동․도제(陶製)의 다관(茶罐)․다정(茶亭)․다병․은․옥 자기의 찻종, 보시기․차 수건(茶巾)․차옷(茶衣)․쟁반(茶盤)․찻종쟁반(茶鍾盤)․다시․다완, 그리고 솥, 다로(茶爐), 다조(茶 ) 차궤 등이 있었다. 특례겠지만 정희량(鄭希良)은 바가지에 마시기도 하였다.


2. 차문화의 바탕인 찻잔

그릇은 사람만이 만들고 누리는 일거리의 하나다. 사람은 그릇으로 하여 딴 짐승과는 다른 살이를 이루게 되어 먹거리를 언제나 간수케(깨끗하게도) 되고, 더 맛나게(감각적으로) 장만하게 하여 어수선하지 않고 깔끔한 살림살이를 하게 하였다.

더욱이 물로 된 술이나 차는 아무래도 기호품이므로 이것을 더 즐기고, 좋아함을 곱으로 돋보이게 위해서는 이를 담는 그릇에 애쓰지 않을 수 없다.

茶를 담는 그릇, 그것은 茶와 그릇의 어울림으로 그 격 을 한층 더 살릴 수 있다.

한국의 음다속(飮茶俗)에서 茶를 마친 茶그릇들을 살펴볼 때 茶 한가지에만 한정시키면 곤란하다. 왜 냐하면 우리 민족은 차만을 마신 경우보다 음주 전후에 茶를 마신 경우가 더 많으며 비록 차만 대접한 다고 하더라도 차 한가지만이 아니라 반드시 다담상을 갖추었다.

따라서 다구의 범위가 매우 넓어진다.

또 찻그릇의 재질도 토기나 도자기 뿐만 아니라 금․은․옥․유 기 등을 다양하게 사용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마시는 차그릇에는 구와 완(碗) 및 잔(盞, 盃)이 있다.

여기서 잔은 구와 완까지 다 말하 는 큰뜻과, 조금더 작아진 곧 작은구, 작은완과 종(鍾)을 모두 일컫는 작은 말로도 쓰인다. 구는 속이 깊고 운두가 거의 선 U꼴이고, 완은 운두가 벌어진 V꼴이며, 종은 이 둘보다 지름이 더 작고 운두가 곧추 선 원통꼴로, 이들 모두의 높이는 거의 같다(7~8센티 안팎) 요즈음 가루차는 거의 완으로 마시는가본데 완, 구 모두 가루차 그릇이다.

이밖에 이들보다 훨씬 더 작은 '깍정이'가 있는데 이는 철관음 같은 반뜸 차그릇이다.




 다구의 종류와 형태는 시대에 따라서, 또 사용자에 따라서 다를 수 있으나 진화되었을 뿐, 크게 달라 지지 않은 다구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차를 마시는 그릇 즉 찻잔이다.


 






(사진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약 3~4천년 전에 만들어진 홍토기 및 연질토기 잔․잔대(사진 2)는 신라시 대에 (사진 3)처럼 제작되다가 고려시대에 (사진4)처럼 이어지고 조선시대에는 (사진 5)처럼 변형되었음 을 알수 있다.


잔대가 높은 것은 의식용이고, 낮은 것은 일상용이다. 또 잔대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형태로 변형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잔․잔대가 의식용이건 일상용이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온 다구(찻잔)였음을 알게된다. 또 잔․잔받침은 동재질(同材質)이어야 제격이다. (1999.전완길)



3. 다도구의 종류와 용도


차를 맛있고 향기롭게 마시려면 각종 차그릇이 필요하다. 이를 통틀어 다도구라 한다. 이러한 다도구는 지극히 예술성이 높고 또한 아취적이라서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나 가능한 한 사치스러운 것은 피하고 소박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1) 다관

탕관에서 끓인 물과 잎차를 함께 넣고 우려내는 주전자를 말한다. 철제, 동제, 은제, 등이 있으나 철제는 녹이 슬기 싶고 은제는 사치스러워서 피하는 것이 좋고 도자기로 된 것이 가장 차의 격조에 알맞다. 다관은 모양과 손잡이가 달린 위치에 따라 명칭이 달라진다. 우리 나라에서는 주로 횡파형의 다관을 많이 쓰고 있다. 좋은 다관의 요건은 빛깔, 몸통, 뚜껑, 주둥이, 거르는 거물, 손잡이가 잘된 것이라야 한다. 손잡이를 잡았을 때 편안한 것과 주둥이가 잘 만들어져서 차를 따를 때 찻물이 잘 멈추어지고 줄줄 흘러내리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다관의 뚜껑이 안정된 것이라야 다관을 기울였을 때 .뚜껑이 벗겨지지가 않으며, 다관 내부의  르는 거물이 가늘고 섬세하게 구명이 고르게 만들어져서 차찌꺼기가 새어 나오지 않아야 좋은 다관이라 할 수 있다.

 







상파형(일본) - 후파형(중국) - 정파형 또는 횡파형(한국) - 보병형(손잡이가 없는것)





2) 찻잔

 찻잔의 모양에는 잔(盞, 杯, 盃) 주발, 구, 술잔형 등이 있다.

잔의 입이 넓고 아래는 좁으며 몸통이 낮은 것을 盞이라 하며, 잔의 입이 넓고 아래는 좁으면서 굽이 높게 받쳐져 있는 것을 杯,盃라 하고, 잔의 입과 아래의 넓이가 비슷하고 몸통이 높으며 수직으로 생긴 ( ), 술잔 형태의 (種)으로 구별해서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찻잔들은 대체로 투박하지만 뜨거운 열이 겉으로 베어 나오지 않는 것이 좋은 찻잔이다. 소형의 찻잔은 최상품의 喫茶用, 중형의 찻잔은 중 등품 이상의 飮茶用, 대형의 찻잔은 하등품의 茶用에 적합하다.

초보자에게는 잘 우려진 차의 빛깔인 연녹색을 감상할 수 있는 산뜻한 백자잔이 알맞다.


3) 물식힘사발

탕관의 끓인 물을 식히는 그릇으로 잎차에는 필요하지만 말차에서는 필요치 않으며 도자기로 만든 것 이 좋다. 탕수를 다관에 부을 때 바깥으로 흐르지 않도록 입부분이 잘 만들어져야 하며 크기는 다관의 크기에 어울리는 알맞은 것이면 된다.


4) 찻잔받침

찻잔받침은 은, 동, 철, 자기, 목제 등이 있으나 사용할 때 소리가 나지 않고 잘 깨어지지 않는 목제나 죽제로 만든 것이 편리하다. 형태는 배모양과 꽃잎모양, 원형, 타원형, 다각형이 있는데 그 크기는 찻잔의 지름에 비해서 찻잔받침의 지름이 좀 넉넉한 것이 안정감이 있어 좋다.


5) 차통

은, 주석, 양철 등으로 만든 것에서부터 나무, 대나무로 만든 것도 있다. 공기나 습기가 스며들지 않 도록 밀폐된 용기라야 차가 변질되지 않는다.

모양은 통형, 기둥형, 단지형이 많다.



6) 차숟가락

차를 뜨는 숟가락을 말하며 은, 동, 철, 나무, 대나무 등으로 만들어 썼는데 전차용으로는 대나무 토막 을 절반으로 쪼갠 것, 또는 오동나무 등의 목재류가 많이 사용되고 말차용은 대나무의 끝을 구부려 만들 어 쓰며 윤기가 나며 가볍고 매끄러운 것이 좋고 향을 헤치지 않고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좋은 차 숟 가락이다.


7) 차솥


찻 물을 끓이는 솥으로 무쇠솥, 곱돌솥, 약탕관, 등이 사용되나 곱돌솥이 제일 좋다. 무쇠솥은 녹이나고 냄새가 나기 쉬우나 돌솥은 돌속에 천지의 수기가 엉겨 있다가 탕을 끓일 때 녹아 나와 차와 함께 어울려 맛을 싱그럽게 한다. 그 다음이 약탕관의 순서이다. 차솥 대신에 보온병을 쓸 경우도 있다.


8) 화로

차를 달이는 첫째 요령은 불을 잘 다루는 일이다. 화로의 불이 벌겋게 단 후 차 주전자를 얹고 부채 를 부쳐 물이 끓도록 한다. 이때 문무를 조절하여 중화가 되도록 해야 한다. 화로의 불은 백탄이 으뜸인데 백탄의 독특한 담향이 차의 격조에 어울릴 뿐 아니라 열 조정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9) 찻수건

찻수건은 다관과 찻잔 등 다구를 사용할 때마다 깨끗하게 닦는 차행주이며 물기가 잘 스며들고 잘 마 르는 마포를 쓰는 것이 좋다.


10) 물버림사발

찻잔을 씻거나 예온한 물을 버리거나 차찌꺼기를 버리는 그릇이다. 자기류나 목기류를 쓰는데 그 모양은 원통형, 사방형, 항아리형 등이 있다.


11) 차반

다구를 정돈해 주는 도구용의 다반과 찻잔을 나르기 위한 다반이 있다. 재료는 죽제, 목재류가 많고 모양은 원형, 정사각형, 직사각형, 타원형, 팔각형 등이 있다.


12) 찻상

찻상은 둥글거나 네모진 것이 대부분인데 너무 커도 불편하고 너무 작아도 볼 품이 없다. 찻상의 다리가 통반으로 되어 있고, 찻상 둘레에 외고가 있는 것이 찻상으로 제격이다.


13)표주박 

청수통의 생수를 차솥에 붓거나 차솥에서 끓인 물을 떠서 물식힘사발에 옮겨담는데 사용



14) 물항아리와 찻상보


차 끓일 생수를 담아두는 항아리다. 도기제품을 주로 사용하지만 옹기항아리를 써도 무방하다. 찻물은 차의 몸이라서 물 선택이 매우 중요하며 청수통에 하루정도 재워서 쓰면 더욱 차맛이 좋아진다. 찻상보는 예로부터 빨강색과 남색으로 안팎을 삼아서 만들어 썼다 한다. 굳이 붉은 찻상보로 하는 것은 송나라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붉은 보자기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깔이 너무 요란스럽지 않게 겨울에는 무명, 여름에는 모시나 삼베를 만들어 쓰면 좋고 찻상 과 차반을 덮을 정도의 크기면 적당하다.





15) 찻사발

 

보통 사발정도(입지름 3cm적당)의 큰그릇 모양의 찻사발을 사용한다. 큰 찻사발은 두 사람 이상의 순배용으로 사용하며 작은 찻사발은 각자 잔으로 쓰인다. 청자 혹은 흑 유류의 찻사발이나 회백, 회청색의 분청다완이 말차용 찻사발로서 품위 있으며 적당하다.


16) 차선

대나무 껍질을 아주 가늘게 일으켜서 만든 것으로 찻사발에 가루차와 끓인 물을 붓고 휘저어서 융합 시키는 기구이다. 차선은 대개 80본, 100본, 120본의 세 종류가 있으며 차의 양에 따라 조금씩 다르나 보통 차선(80본)으로 100회 정도 젓는다. 차선의 손잡이 부분을 수절이라 하고 젓는 부분을 수선이라 한다. 차선의 중앙부분(모여진 부분)은 차 덩어리를 부수는 역할을 하고 통발형의 수선은 거품을 일구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