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다도이야기

여민류혜숙 2011. 4. 3. 13:23

 

 

 

 

 

 

 

 

 

우리의 다도. 중정(中正)


                                                                                            글:윤병상교수


차(茶)라는 것을 알고 생활화 하면서 찾아오시는 손님께 차를 내는 일이 이제는 제법 이력이 붙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절친하게 지내는 이웃분이 찾아와 차를 대접한 일이 있었습니다. 찻자리에 모시고 서툰 솜씨지만 정성을 다해 차를 우리고 있는데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 엄숙하게 보였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머뭇거리다가 ‘어색해서 그렇습니다.’고 말하며 계면쩍게 웃었습니다. 아마도 그 안에는 차를 든다는 것에 연상해서 다도(茶道)를 떠올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도라는 글자에 도(道)가 들어가니 수행을 하거나 도를 닦는 것처럼 신성(神聖)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긴장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부터 차는 신성한 음료로 다뤄져 왔습니다. 나아가 그것에 걸맞은 정신을 부여하고 그 정신을 추구해왔습니다. 이렇듯 차의 신성함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그 상징성이 갖는 정신을 추구하는 그것이 바로 ‘다도(茶道)’입니다. 마시는 음료인 차에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다도를 철학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이것을 동양 삼국에서는 다도(茶道)라고 정의(定義)하였습니다.

극동을 대표하는 한중일 3국은 고유한 차(茶)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3국은 각각 상이한 차(茶) 역사의 배경을 바탕으로 오랜 동안 상이한 방법의 차(茶) 생활을 통하여 차(茶) 문화를 발전시켜왔습니다. 당연히 상징하고 추구하는 차(茶)의 정신인 다도(茶道)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차(茶)의 제조방법과 음용방법이 다르고, 다례(茶禮)의 표현형식과 차(茶)를 통해 강조하는 의미도 판이하게 다릅니다. 이처럼 각기 다른 차(茶) 문화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려는 방식 역시 다른 것은 당연하다 하겠으며, 나아가 독특하고 창의적인 언어적 표현형식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도 또한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 안에는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역사관과 사상은 물론이고 민족이 가지는 보편적인 정서(情緖)도 빈틈없게 포함되고 충실하게 표현되어야하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언어를 찾는 것이 요체(要諦)이며 이를 위해 차인(茶人)들이 고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식(形式)이란 실질(實質)을 구체적으로 표현(表現)하는 것이지만 실질내용 또한 표현하는 형식에 의해 그 내용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양쪽을 다 충족시키면서 고유한 다도(茶道)에도 마땅히 일치하여야합니다. 이것이 바로 문질빈빈(文質彬彬=내용과 형식이 함께 빛남)의 요체요, 표리일체(表裏一體)의 미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일본에서는 화경청적(和敬淸寂)이라는 표현을 빌려 다도정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센리큐(千利休, 1522-1591)에 의해 정립된 것으로서 화(和)는 화합과 조화이며 경(敬)은 공경과 존경을 표현합니다. 화목을 느끼게 되면 자연히 상대방을 존중하게 되고, 서로 존중해야 화목해집니다.

 

그리고 화목하여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면 자기의 주위도 깨끗이 정리되고 누구나 마음이 맑아집니다(淸寂). 거추장스러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차인(茶人)은 ‘서로 화목하고 존경하며 깨끗하고 고요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이 말의 원류(源流)는 일본다도의 창시자인 이큐선사의 근경청적(謹敬淸寂)이었습니다. 이큐선사 이전에는 ‘다도(茶道)’라는 것이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송나라 때 전해진 음차(飮茶)풍속의 일환인 ‘투차(鬪茶, 차 겨루기)’만이 성행했을 뿐입니다.


  이큐 소우준선사는 주광문답(珠光問答)에서 차의 살림살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일미청정(一味淸淨)하고, 법희선열(法喜禪悅)하니 조주선사(조주종=趙州從=조주종심 778-897)는 이를 체득했지만, 육우(陸羽, 다경의 저자)는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사람이 다실(茶室)에 들어가면 겉으로는 남과 나의 구별을 떨쳐버리고 , 안으로는 부드럽고 온화한 덕을 함양하며, 서로 간에 교제함에 있어서는 삼가고(謹), 공경하고(敬), 사념을 품지 않고(淸), 평온해지며(寂) 결국 온 세상이 평안해진다.” 는 말로 다도를 세웠습니다. 이큐선사의 근, 경, 청, 적은 후일 센리큐에 의해 화(和), 경(敬), 청(淸), 적(寂)으로 바뀌었으며 지금까지 일본다도의 핵심사상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다도계에서는 정행검덕(精行儉德)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 속에는 과연 어떠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무엇을 추구하려 하였을까? 정(精)은 세밀한 선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수련의 결과로 나타나는 정교함이기에 정행(精行)은 일본에서 말하는 화경(和敬)보다 더욱 엄격한 차인의 행실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검덕(儉德)은 소탈하고 검소한 차인(茶人)의 덕(德)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산(茶山 丁若鏞)의 해석에 따라 덕(德)을 ‘行+直+心’으로 해자(解字) 해본다면 검덕은 곧은 마음으로 행하는 차인의 검소한 행실을 뜻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국의 다도정신인 정행검덕(精行儉德)은 육우(陸羽, 733-804)의 《다경(茶經)》에서 논(論)한 후로 시작되었습니다. 차인은 ‘행동을 바르게 하고 생활은 검소하고 순수하며 성품은 덕(德)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경(茶經)》상권 제 1원(第一源)에 보면 차의 기원에 대해 소개하면서 다도(茶道)정신인 정행검덕(精行儉德)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차의 효능을 보면 성질이 매우 차서 이를 음료로 마시기에 알맞은 사람은 행실이 바르고 단정하며 검소하고 겸허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차의 한랭(寒凉)한 기운은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며 조용하여 외부의 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일종의 선천적인 대자연의 기질을 가지고 있고, 이와 같은 차(茶)는 바로 정행검덕(精行儉德)하는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음료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내세우는 다도의 정신은 중정(中正)입니다. ‘중정’은 윤병상교수(연세대학교 명예 교수)에 의해 연구발표 되었으며 많은 차인(茶人)들의 지지에 의해 정(定)해지고 현재까지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그 내력에 대하여 윤병상님은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다도정신을 '중정(中正)'이라고 결정한 내력은 이러하다. 1975년에 한국 차의 정신은 《동다송》에 있는 '중정'이어야 한다고 연구 발표하였으며 대다수의 차인들이 동의하고 '중정'을 한국의 다도정신으로 삼게 되었다. 효동원에서 모이던 차인들의 모임이 모체가 되어 1977년 1월 15일에 다솔사에서 한국차도회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창립되고 회장에 효당 최범술 스님을 옹립하였다. 그때 정식으로 한국의 다도정신은 '중정'이라고 채택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차도회가 발전하여 1979년 1월 20일에 한국 차인회가 결성되고 한국차인회의 회지격이었던 《다원》이란 차에 관한 전문적인 잡지가 창간될 때 한국 차의 정신은 '중정'이란 글을 처음으로 쓰게 되었다. 앞으로 우리 차인들은 한국 차의 정신은 초의선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중정’이란 것을 따라야 할 것이다.”


중정(中正)은 중국이나 일본의 개념보다 더 먼 거리에 있습니다. 초의(艸衣)선사의《동다송(東茶頌)》에 따르면 차의 본령(本領)은 중정(中正)에 있다고 했습니다. 《동다송》에는 중정(中正)을 다음과 같이 두 번에 걸쳐 쓰고 있습니다. 즉 본문에서 ‘체신(體神=몸과 신)’이 ‘수전유공과중정(雖全猶恐過中正=비록 온전해도 中正 지나칠까 두려우니) 하니, 중정불과건영병(中正不過健靈倂=中正을 넘지 않으면 건전한 신령 아우른다)이다.' 라 쓰고, 주석(註釋)에서 ‘다과의작(多寡宜酌=차의 많고 적음을 가늠하여 마땅하게), 불가과중실정(不可過中失正=中正을 넘거나 잃지 않도록 한다)’ 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요지는 물과 차(茶)는 각각 차(茶)의 몸(體)과 신(精神)이기 때문에 중과 정이 넘침을 두려워해야 하며 ‘중정’이 균형을 이룰 때 체와 신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석(註釋)에서는 이를 물과 차(茶)의 양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중(中)이 넘쳐 정(正)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으로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말에 함축되어 있는 뜻은 차인(茶人)들에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최적의 균형 상태를 강조하고 있는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중정(中正)의 어원을 살펴보면 근원은 보다 먼 곳에 있습니다. 중용(中庸 31章)에 보면 ‘제장중정 족이유경야(齊莊中正 足以有敬也’)란 구절이 나옵니다. 이 말은 ‘엄숙하고 올바름은 족히 공경함을 있게 한다.’는 뜻으로 여기서 중(中)이란 기울거나 치우침이 없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내외(內外)가 가지런하고 엄숙하면 족히 존경받을 만하다.’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중(中)은 외형을, 정(正)은 내면 즉 실제 이치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곧 ‘중정’이란 군자의 덕목으로서 내용과 형식의 표리일체(表裏一體)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편 주역에서는 중정이 괘효(卦爻)의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중은 효의 위치를 보여주고 정은 음양의 이치에서 효의 위치가 바른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즉 중(中)은 형상을, 정(正)은 형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선조들의 다도는 우리민족의 정서(情緖)처럼 온화하였습니다. 좋은 차를 마시기 위해 새벽에 산길을 걸어올라 가장 맑은 윗물을 길어다 그 물을 차물로 썼습니다. 차물을 끓일 때도 너무 급하지도 않고 너무 약하지 않은 불로 끓였습니다. 차를 마시기 전에 고개를 숙여 잠시 차 빛깔을 감상하고 입술에 살며시 적셔 향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다도입니다. 물이 맑지 않으면 아름다운 빛깔이 나오지 않으며, 불이 급하거나 모자라면 향기가 잘 어우를 수 없습니다.

 

안과 밖이 똑같은 것을 순향(純香)이라 하고, 설지도 않고 너무 익지도 않은 것은 청향(淸香)이라 하며, 불기운이 고르게 든 것을 난향(蘭香)이라 하고, 곡우(穀雨) 전 차의 싱그러움이 충분한 것을 진향(眞香)이라 하여 향(香)에도 격(格)을 매겼습니다. 불을 다룰 때도 체계를 두었습니다. ‘차를 달이는 요령은 불을 가늠하는 것이 먼저 중요하다. 화로에 불이 벌겋게 달아오르면 다관을 얹고 가볍게 부채질 하다가, 물 끓는 소리가 들리면 한층 세게 부치는데 이것을 문무지후(文武之候)라고 한다. 불기운이 너무 약하면(文火) 물이 유연한데, 물이 유연하면 다신(茶神)이 가라앉는다. 반대로 불기운이 너무 세면(武火) 불이 극렬한데, 불이 극렬하면 물이 너무 끓어 노수(老水)가 되고 차가 눌리게 된다.

 

이는 모두 중화(中和=中正)를 잃은 것으로 다인(茶人)이 취할 바가 아니다.’ 이와 같이 물을 긷는 과정에서부터 차를 끓이고 마시며 음미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중정(中正)을 깨우치며 실천하는 차 문화를 만들고 꽃피었습니다. 차를 마시는 과정에서도 정신의 수행과 중용의 의미를 깨닫는 선조들의 지혜가 바로 우리의 다도입니다. 어느 분의 말씀처럼 ‘중정(中正)의 의미를 확대하여 한국 차(茶)의 기본정신을 두 글자로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면, 이는 과도한 의식에 빠지지 않으면서 일상사(日常事)처럼 함부로 차(茶)를 다루지도 않는 자연스러움 속에서 형식과 실질면의 균형을 찾으려했던 선조들의 고유한 차(茶) 정신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입니다.

다도(茶道)는 차를 마시는 방법이나 태도나 몸가짐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도라고 말할 때는 차 마시는 사람이 지녀야할 정신과 다도가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차인은 품격을 지녀야 합니다. 차를 마실 때는 물 흐르듯 상대의 이야기에 수긍하는 예(禮)를 갖춰야 합니다. 이 또한 함께 차를 마시는 일이 정신적인 나눔을 뜻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차를 마시는 일은 정감(情感)을 나누는 일입니다. 사발에 물을 따르고 손길로 온도를 식히며 사람의 체온과 비슷하게 되었을 때, 마주하는 사람의 찻잔에 차를 따라줍니다. 따르는 소리가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같습니다. 차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정(情)을 나누어 마십니다. 차 한 잔에서 흐르는 향기와 빛깔이 천수를 살아도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차를 마시는 일에는 여러 가지의 의미를 둘 수가 있습니다. 재미난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1200년 전 중국 당(唐)나라의 조주선사는 끽다거(喫茶去=차나 한잔 마시고 가시게)라는 화두(話頭)를 세웠습니다. ‘끽다거’라는 화두의 유래는 조주선사의 선문답(禪問答)으로 지금까지 널리 전해져 오는 이야기입니다. 선사는 절을 방문한 한 학승(學僧)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전에도 여기에 온 일이 있는가?"

  "온 일이 없습니다."

  "차나 한 잔 들고 가시게."

  다른 학승에게도 똑같이 물었습니다. 그 학승도 대답하였습니다.

  "예, 한 번 와본 적이 있습니다."

  "차나 한 잔 들고 가시게."

  원주가 조주선사께 여쭈었습니다.

  "노스님께서는 무슨 연유로 전에 온 일이 있다는 이에게도

 

'차를 들고 가라' 하시고 온 일이 없다하는 이에게도 '차를 들고 가라‘ 하십니까?"

  "원주야"

  "예"

  "차나 한 잔 들어라"

이것이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역설하는 ‘끽다거’의 유래입니다. 선(禪)의 맛을 모르면 차(茶)의 맛도 모른다고 합니다. 중도(中道), 중정(中情), 좋지 않은 일에도, 좋은 일에도, 평상심(平常心)을 가진다는 의미만큼은 차인(茶人)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되새겨 볼만한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