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다도이야기

여민류혜숙 2011. 4. 3. 13:25

 

 

 

초의선사의 다도관

 

 

초의선사는 그의 동다송 제29송에서 말하기를,다도란 신(神) 체(體) 건(健) 영(靈)을 함께얻는 것이라고 했다. 평해서 말하기를 채다(採茶)는 그 묘(妙)를 다해야 하고, 조다(造茶)는 그 정성(精誠)을 다해야 하고, 물(水)은 그 진(眞)을 얻어야 하고, 포법(泡法)은 중정(中正)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체(體)와 신(神)이 서로 고르고 건(健)과 영(靈)이 서로 함께 하는 것을 일컬어 다도(茶道)에 이르렀다고 한다. (評曰 採盡其妙 造盡其精 水得其眞 泡得其中 體與神相和 健與靈相倂 至此而茶道盡矣) 선사의 다도관을 알고자 한다면 문(門) 행(行) 득(得)의 길을 거쳐야 한다.

 

대저 문이 있어서 들고 행(行)해서 얻는(得) 법이다. 4 문(四門)이 있으니 채(採) 조(造) 수(水) 화(火)가 그것이며, 행에는 4 행(四行)이 있으니 묘(妙) 정(精) 근(根) 중(中)이 그것이며, 득에는 4 득(四得)이 있으니 신(神) 체(體) 건(健) 영(靈)이 그것이다. 4문의 채란 채다(採茶)를 말하며 조란 조다(造茶)를 말하며, 수란 수품(水品)을 말하며 화란 화후(火候)를 말한다. 4행의 묘는 채다의 현묘(玄妙)함을 말하며 정은 조다의 정성(精誠)스러움을 말하며, 근은 수품의 근본(根本)을 말하며, 중은 화후의 중화(中和)를 말한다. 4득은 진다(眞茶)와 진수(眞水)를 얻어야만이 얻을 수 있는데, 차(茶)는 물(水)의 신(神:정신)이요 물은 차의 체(體:몸)이니, 진수(眞水)가 아니면 그 신(神)이 나타나지 않으며 진다(眞茶)가 아니면 그 체(體)를 볼 수가 없다고 하였다.

 

체와 신이 비록 온전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중정(中正)을 잃으면 안된다. 중정을 잃지 않으면 건(健)과 영(靈)을 함께 얻는다. 신(神:정신)과 체(體:몸)는 기(機:기틀)와 용(用:작용)과 같고, 건(健:건전)과 영(靈:신령)은 이(理:이치)와 묘(妙:현묘)와 같다. 그러므로 신(神:정신)이 건(健:건전)하면 기(機:기틀)가 이(理:이치)하고, 신(神)이 영(靈:신령)하면 기(機)가 묘(妙:현묘)하고, 체(體:몸)가 건(健)하면 용(用:작용)이 이(理)하고, 체(體)가 영(靈)하면 용(用)이 묘(妙)하다. 신(神)과 체(體)는 기(機)와 용(用)과 같아서 불이(不二)해야만 건(健)과 영(靈)을 얻는다. 건(健)과 영(靈)이 불이(不二)하면 묘리(妙理)하고, 묘리하면 묘경(妙境)하고, 묘경하면 묘각(妙覺)한다.

▲ 일지암

 

채다(採茶)란 차를 따는 일을 말한다. 차나무에서 차잎을 따는 것은 그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너무 빠르면 맛이 온전하지 못하고 늦으면 싱그러움이 흩어진다. 곡우(穀雨:4월20일)와 입하(立夏:5월5일) 사이가 적기인데 일창일기(一槍一旗) 이기(二旗)의 잎이 푸른빛이 나거나 쭈글쭈글하거나 돌돌 말린 것이 좋다. 차잎을 딸 때 밤새 구름이 끼지 않고 이슬이 흠뻑 내린 후에 딴 것이 좋으며, 비온 후나 구름이 끼었을 때는 따지 않는다. 그리고 계곡이나 암석 사이에서 자란 것이 좋다. 이처럼 채다는 현묘함을 다 해야만 된다.

 

그 현묘(玄妙)함를 다해서 채취한 차잎을 가지고 조다(造茶)를 하는데 솥이 매우 뜨거워졌을 때 급히 차잎을 넣어 덖어야 한다. 차가 익어서도 안되며 태워서도 안된다. 차가 익으면 빛깔이 검고 타면 노랗고 흰 반점이 생긴다. 이렇게 적당한 열기로 대여섯 번 정도 덖으면 차가 잘 건조된다.

 

불은 연기가 나지 않아야 되며 불의 기운이 고르게 되어야만 한다. 양질의 차잎과 고르고 순수한 불과 만드는 사람의 정성스런 마음이 합쳐져서 진다(眞茶)가 나오는 것이다.

 

수품(水品)은 차를 끓일 물을 말하는데, 산마루에서 나는 석간수가 좋고 우물물이 다음이며 강물은 나쁘다. 물에는 8덕(八德)이 있으니, 가볍고 경(輕) 맑고 청(淸) 시원하고 냉(冷) 부드럽고 연(軟) 아름답고 미(美) 냄새가 나지 않고 부취(不臭) 비위에 맞고 조적(調適) 탈이 나지 않는 것 무환(無患)이 그것이다. 물은 그 근본(根本)을 구하지 않으면 상하거나 오염되기가 쉬워서 고여 있는 우물물이나 강물은 쓰지 않는다. 바로 그 근원지에서 솟아나는 샘물이어야 한다.

 

이 샘물을 구하여 체성이 튼튼한 불로 끓이면 좋은 탕수(湯水)가 된다. 만약 대나무나 썩은 나무가지나 낙엽같은 연료는 불의 체성이 허약하여 탕(湯) 또한 체성이 약해진다. 이런 탕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 연기가 나지 않고 체성이 튼튼한 불을 구하여 가볍게 빨리 끓여야 한다. 이때 문(文)이 지나치면 수성(水性)이 유약하게 되고 수성이 유약하면 차가 뒤지고 쳐지며, 무(武)가 지나치면 화성(火性)이 극렬해져서 차를 위해 물이 억제되며 성근 기가 위로 뜬다. 이것을 문무화후(文武火候)라고 하는데 지나치면 모두 중화(中和)를 얻지 못한다.

 

그 적절함을 다하여 중화를 얻어야 진수(眞水)가 나오는 법이다. 진수와 진다를 얻었을 때 비로소 중용(中庸)의 덕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진다와 진수가 아니면 신과 체를 규명할 길이 없고, 신과 체를 규명하지 못하면 건과 영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진 다와 진수를 얻어서 신과 체를 규명하고 신과 체가 불이(不二)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포법(泡法:차 울궈내는 법)을 하는데 포법은 중정(中正)을 지켜야만 한다.  

그 요체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차가 많아도 안되고 물이 많아도 안된다. 차가 많으면 빛깔이 노랗고 빨가며, 맛은 쓰고 떫으며 향내도 좋지 않다. 반대로 차가 적고 물이 많으면 맛이 온전하지 않고 빛깔도 엷고 향내도 미숙하게 된다. 적당한 양의 차와 물을 넣어야 한다.

 

둘째로 다관에서 차를 우리는 시간이다.

너무 빨리 따라내면 맛이 미숙하고 향내도 약하며 빛깔이 엷고 좋지 않다. 반대로 너무 오래 울구면 빛깔도 탁하고 맛도 쓰고 떫으며 향내도 지나치게 된다. 알맞게 우려야 한다.

 

세째 차를 잔에 골고루 나누어 따를 때, 너무 급히 서둘러 따르는 것을 급주(急主)라 하고, 게으르고 완만하게 따르는 것을 완주(緩注)라고 한다. 완주나 급주를 해서는 안된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따라야 한다.

 

 이와 같이 적당한 양의 차를 넣어 알맞게 울궈서 적당한 시간에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따라서 마시는 것이다. 이것을 중정법(中正法)이라고 한다. 중정법을 잘 지키는 길은 마음 속에 중용(中庸)의 덕을 품되 그 팔이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적의함을 다하면 중정을 얻게 된다. 중정을 얻게 되면 자연히 신과 체를 규명하게 되고 신과 체를 얻으면 건과 영을 얻게 되는데, 신과 체가 불이하고 건과 영이 불이하면 기용(機用)이 불이하고 기용이 불이하면 묘리(妙理)가 불이하고 묘리가 불이하면 이치가 현묘한 경지에 들어 뜻한 바를 얻게 되는 것이다.  생각으로 헤아릴일이 아니로다. 오직 체득하는 데 그 진체(眞諦)가 있으니 진정으로 구해볼 일이다

 

▲ 일지암의 茶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