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茶 이야기

여민류혜숙 2011. 4. 3. 15:13

보이차는 중국 운남성 남서쪽 일대에 자생하는 대엽종 차잎을 발효시켜 만든 차를 말한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차나무인 소엽종과는 달리 20여 센티미터까지 자라는 대엽종 차나무의 잎을 채취하여 덩이차 형식으로 긴압하여 만들기도 하고 잎차형식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보이차의 중국식 발음은 푸얼차(puer cha)이고 영어로는 푸얼티(puer tea)이다. 운남성의 시쐉반나(西雙版納)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졌으며, 원래 이 지역의 소수민족인 따이족(傣族)이 주로 만들어 음용하는 차에서 유래하였다.

 

이 차는 중국서부 신강 티벳의 유목민이 주로 마시는 수유차의 원료로도 유명한데, 육식을 많이 하는 유목민에겐 필수적인 차였다. 이런 이유로 보이차는 운남과 중국 서부의 소수민족들 사이에 차에 대한 교역이 활발해 졌으며, 교역을 위해 지나는 지리적 거점이 보이현(普洱縣)이었다. 자연스레 보이현에는 차시장이 형성되었고 이 지역에서 거래되는 차를 보이차라 부르게 되었다.


원래 보이차는 오랜 역사를 가진 차였으나 주 세력인 한족이 음용하는 차가 아닌 소수민족의 차였던 관계로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주목받지 못하다가 옹정10년(1729)에 임금에게 바치는 공차(貢茶)로 선정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현재 보이차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의 많은 다인들로부터 사랑받는 차가 되었다.

 

 

보이차의 역사 문화

 

보이차가 천하에 이름을 날리기는 고대 동한시대부터 시작하여 당나라와 송나라 때 흥성하기 시작하였으며 명나라 청나라 때에는 아주 흥성한 시대였다. 고“육대차산(六大茶山)”은 삼국시대 전에 이미 차를 심고 있었으며, 삼국시대 후에는 차를 상품으로 간주하여 대내외무역을 진행하였다. 진나라 때에는 점차 발전하기 시작하였으며, 당나라와 송나라시대에는 찻잎 상품기지를 이미 형성하였다. 전적(典籍) 중 시쐉반나(西雙版納)에서 차를 생산한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 보면 그 시작을 당나라부터로 명시하였다. 판춰(樊綽)는 “윈난지(云南志)”(제7권에서 : “차는 은생성계주산(銀生城界諸山)에서 생산한 것이다”라고 언급하였었다. 소위 은생청(銀生城)은 남조(南詔)에서 설립한 “개남(開南) 은생절도(銀生節度)” 구역을 말하는 것으로서 오늘날의 경동、경곡(景谷) 이남지역이다. 당나라의 남조육절도사(南詔六節度使)의 거주지였으며, 오늘날의 시쐉반나 및 스마오(思茅)지역이다. 주산(諸山)은 오늘날의 시쐉반나 내의 위낙(攸樂)、거덩(革登)、이방(倚邦)、망지(莽枝)、만전(蠻磚)、만사(慢撒) 6대 차 출산지이다.”


보이차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명나라부터였다. 명나라 세진지(謝肇淛)는 “진약(滇略)”에서 “토감사용은(士庶所用),모두 보차(普茶)라. 찌면 덩어리가 되나니.(蒸而成團)”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의 보차(普茶)가 바로 보이차이었으며, 그 당시 이미 덩어리로 긴차(緊茶)를 만들 수 있었다. 찻잎은 6대차 출산지에서 출산한 것이었고 보이차로 명하게 된 것은 당시 보이가 차 무역의 집중지역이었고 모든 차가 보이현에서 운송되어 나갔기에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청나라 옹정7년(1729年)보이차는 최상품차로 청나라 궁궐에 보내기 시작하였으며 시쐉반나의 6대 차 출산지는 “주위 팔 백리에 차를 만드는 사람이 수십만 명이었다.”는 말이 돌기도 하였다. 청나라 중엽은 차 생산의 흥성시기였는데 이때 제품은 사천、서장、홍콩、마카오 및 인도、남양 각지까지 수출하기 시작하였으며, 보이차는 이것으로 인하여 그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보이차의 무역수요에 따라 6대 차 출산지에서 시작된 차마고도(茶馬古道)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소위 차마고도는 보이차의 외부 수출노선을 말하는데 아래와 같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一)차마북도(茶马北道)

 

차마북도(茶马北道)는 스모(思茅)에서 쿤밍까지 소퉁(昭通)을 거쳐 사천의 누저우(瀘洲)、설부(叙府)、성도、충칭을 지나 베이징에 도착한다. 이 길은 최초 황가의 납품차를 주요로 운송하였는데 보이차가 베이징에서 이름을 날린 후 6대 차 출산지의 찻잎이 모두 중원시장에 흘러드는 주요 통로가 되었다.


(二)차마서도(茶马西道)

 

차마서도(茶马西道)는 6대차출산지에서 스마오、보이、경곡、경동、남간、니도 등 13개의 지점을 지나 하관(下關)에 도착한 다음 다시 두 갈래로 나누어 하나는 산을 지나 미얀마에 거쳐 인도로 도착하며 또 인도를 지나 구라파주에 최종 도착한다. 이는 동방토지에서 최초로 외계와 유통한 비단의 길이다. 다른 한 갈래는 서북향으로 이어져 대리(大理)、리쟝、중맨(中甸) - 오늘의 샹그릴라(香格里拉)를 지나 나싸(拉薩)를 거쳐 네팔과 인도에 도착한다.


(三)차마남도(茶马南道)

 

이는 세 갈래로 나누는데 동쪽으로 라오스와 베트남으로 나가고 남쪽으로는 미얀마와 태국으로 나가며 서쪽으로는 미얀마와 인도로 나간다. 동쪽은 멍나(勐腊)의 이오차산(易武茶山)에서 시작하여 운송대오들이 라오스의 풍사리(丰沙里)로 운송하며, 다시 하내(河内)도착하여 기차로 부두에 이르러 먼 남양으로 수출한다. 남쪽은 멍하이(勐海)에서 변경구안인 다눠워(打洛)에서 미얀마와 태국에 이르고 서쪽은 멍하이(勐海)에서 다눠어(打洛)를 거쳐 미얀마와 인도、서장에 이른다.


차마고도(茶马古道)는 국내외 경제발전을 촉진하였고 변경경제의 번영과 민족단결을 강화하였으며 운남 변경과 중외경제문화교류에 거대한 작용을 일으켰다. 운송대오의 편리를 위하여 찻잎을 덩어리、벽돌 모양、떡 모양 등 형태로 압축하여 만들었다. 그리고 가공、운수저장과정에서 찻잎의 발효가 진행되어 보이차의 독특한 향기를 형성하게 되었다.


천백년이래, 보이차의 명성이 가라지지 않은 근본 원인은 높은 산의 안개 속에서 생산한 것으로서, 오염이 없고, 성질이 순수하며 맛이 순진하고 오래 우릴 수 있으며 건강에 유익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