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자료실/한역아함

마성 2012. 3. 28. 10:58

 

1. 무상경(無常經)

 

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

 

[原文] (一) 如是我聞: 一時, 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 世尊告諸比丘: “當觀色無常, 如是觀者, 則為正觀. 正觀者, 則生厭離; 厭離者, 喜貪盡; 喜貪盡者, 說心解脫. 如是觀受·想·行·識無常, 如是觀者, 則為正觀. 正觀者, 則生厭離; 厭離者, 喜貪盡; 喜貪盡者, 說心解脫. 如是, 比丘! 心解脫者, 若欲自證, 則能自證: 我生已盡, 梵行已立, 所作已作, 自知不受後有. 如觀無常, 苦·空·非我亦復如是.” 時,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雜阿含經』제1권 제1경 「無常經」(T2, p.1a)]

 

[譯文]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色)은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正觀]이니라. 바르게 관찰하면 곧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이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수(受)·상(想)·행(行)·식(識)도 또한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은 바른 관찰이니라. 바르게 관찰하면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고, 싫어하여 떠날 마음이 생기면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며, 기뻐하고 탐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이것을 심해탈이라 하느니라.”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마음이 해탈한 사람은 만일 스스로 증득하고자 하면 곧 스스로 증득할 수 있으니, 이른바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스스로 아느니라. ‘무상하다[無常]’고 관찰한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苦]이요, 공하며[空], 나가 아니다[非我]’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解釋] 이 경의 핵심 내용은 오온(五蘊), 즉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이 무상하다고 관찰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관찰해야 바른 관찰이며, 이렇게 바르게 관찰해야 모든 집착으로부터 떠나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후생의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오온에 대한 집착이 없어져야 비로소 해탈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역 아가마(Āgama, 阿笈摩, 阿含)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빨리어(Pāli, 巴利)로 전승되어 온 니까야(Nikāya, 尼柯耶)와 대조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경에 대응하는 니까야는 Saṃyutta-nikāya(相應部), 제22 Khandha-saṃyutta(蘊相應), 제2 Aniccavagga(無常品), 12. Anicca(無常), 13. Dukkha(苦), 14. Anattā(無我)이다. 그러나 한역 『잡아함경』에서는 이 세 개의 경전이 「무상경」이라는 하나의 경전으로 압축되어 있다. 세 개의 경전 내용이 동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니까야의 세 개의 경전 내용을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色(rūpa)은 무상하다. 受(vedanā)·想(saññā)·行(saṅkhāra)·識(viññāṇa)도 또한 그와 같다. (색은 괴로움[苦]이다. 수·상·행·식도 또한 그와 같다. 색은 자아가 없다[無我]. 수·상·행·식도 또한 그와 같다.) 이와 같이 보아서 색·수·상·행·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난다. 싫어하여 떠나면 해탈한다. 해탈하면 ‘나는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겨나서 ‘다시 태어남은 파괴되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은 다 마치고 다시는 윤회하는 일이 없다’고 그는 분명히 안다.”

 

니까야에서는 여기서 경전이 끝난다. 그러나 한역 『잡아함경』에서는 “‘무상하다[無常]’고 관찰한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苦]이요, 공하며[空], 나가 아니다[非我]’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如觀無常, 苦·空·非我亦復如是. 時,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라는 부분이 추가되어 있다. 즉 니까야의 세 경전을 단 몇 줄로 압축하여 하나의 경전으로 만든 것이다.

 

이 경에서 문제되는 부분은 니까야에 없는 추가된 부분, 즉 “‘무상하다[無常]’고 관찰한 것과 같이, ‘그것들은 괴로움[苦]이요, 공하며[空], 나가 아니다[非我]’라고 관찰하는 것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如觀無常, 苦·空·非我亦復如是.)”라는 대목이다. 니까야에서는 분명히 무상(anicca)·고(dukkha)·무아(anattā)를 바르게 관찰하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아가마에서는 무상(無常)·고(苦)·공(空)·비아(非我)를 관찰하라고 되어 있다. 즉 니까야의 ‘무아(anattā)’라는 단어 대신에 아가마에서는 ‘공(空)·비아(非我)’라는 단어가 삽입되었다.

 

이 때문에 불교의 ‘무아설’을 해석함에 있어서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니까야에 없는 ‘공(空)·비아(非我)’라는 단어는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한역 『잡아함경』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전승해 온 범본(梵本), 즉 산스끄리뜨(Sanskrit, Sk.로 약칭함)로 씌어진 패엽경을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니까야에 ‘공(空, suññatā, Sk. śūnyatā)’이라는 개념이 나타나지만, 이 경전에 나타나는 ‘공(空)·비아(非我)’라는 단어는 설일체유부의 관점이나 대승불교의 영향을 받아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불교의 중요한 교설인 무아설(無我說)을 어떤 이유로 다르게 해석할 필요성을 느끼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삽입한 것은 아닐까?

 

끝으로 이 경에 나오는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我生已盡, 梵行已立, 所作已作, 自知不受後有.)’라는 대목은 아라한(阿羅漢)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정형구(定型句)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정형구는 초기경전 도처에 산재(散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