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자료실/논설

마성 2012. 4. 19. 00:34

출가의 목적과 공덕

 

마성 / 팔리문헌연구소장

 

 

                                             ----------------- 차 례 ----------------

                                               Ⅰ. 출가 제도의 유래와 생활 원칙 

                                                 1. 바라문의 네 가지 생활 단계

                                                 2. 사문들의 출현

                                                 3. 출가자의 생활 원칙[四依法]

 

                                              Ⅱ. 출가의 목적과 공덕

                                                 1. 진정한 출가와 그 동기

                                                 2. 출가의 목적

                                                 3. 출가의 공덕

 

                                              Ⅲ. 바람직한 출가 수행자의 길

                                                 1. 성스러운 구함과 성스럽지 못한 구함

                                                 2. 출가자의 잘못된 생활 방식

                                                 3. 출가자와 재가자의 관계

 

                                              Ⅳ. 맺음말

                                            ----------------------------------------

 

 

 

I. 출가 제도의 유래와 생활 원칙

 

출가(出家)란 국어사전에서는 ‘가정과의 관계를 끊고 집을 떠나 감’1) (leaving home)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출가의 빨리어 원어는 빳밧자(pabbajjā)이고, 불교혼성범어로는 쁘라브라쟈(pravrajyā)이다. 빨리어 빳밧자는 ‘세상을 떠남(leaving the world)’ 혹은 ‘고행의 삶을 받아들임(adopting the ascetic life)’이라는 뜻이다. 이른바 ‘수계(受戒) 절차를 거치고 (황색) 가사를 입고 탁발승의 상태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빨리어 빳밧자는 ‘특히 불교의 승단에 들어가는 수계 혹은 입단 허가’라는 의미와 ‘일반적으로 집 없는 삶 혹은 고행의 생활’이라는 의미 두 가지로 쓰인다.2)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불교사전에서는 출가를 “세속의 집을 떠나 절에서 머리를 깎고 계(戒)를 받은 후 불도(佛道)를 닦음, 또는 그렇게 하는 수행자. 절에 가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됨”3)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러한 사전적 의미보다는 오히려 출가라고 하면 ‘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는 것’(削髮染衣)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출가 사문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출가의 전통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출가 제도는 인도의 전통 혹은 인도문화의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의 유교나 도교의 전통에서 보면 출가는 인륜(人倫)의 도리를 저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유교는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를 실천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불교의 승려들은 오직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집을 버리고 떠난다. 이러한 출가행위를 그들은 국가의 은혜와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는 잘못된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그들은 불교의 출가를 혈육과 가정을 버리는 패륜적인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처럼 인도의 문화와 중국의 문화적 배경이 다르다. 

 

1. 바라문의 네 가지 생활 단계

 

역사적으로 아리야(Ārya)인들이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인도에 침입한 것은 기원전 1,500년 경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인도에는 선주민족(先主民族)이 거주하고 있었다.4) 그들이 바로 ‘인더스 문명(Indus civilization)’을 이룩한 비아리야계로 알려진 드라비다(Dravida)인이었습니다. 이들이 이룩했던 인더스 문명은 인더스강 유역의 모헨조다로(Mohenjodaro)나 하랍빠(Harappā), 기타의 유적 발굴에 의하여 그 실체가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드라비다인보다 먼저 인도에 들어온 종족들도 있었다. 이와 같이 인도에는 여러 이민족(異民族)들이 들어와 자기 나름대로의 고유한 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하지만 인도의 문화는 대체로 바라문 문화가 과거 3천년 동안 그 중심을 이루었다. 이러한 바라문 문화를 형성한 주체는 바로 아리야(Ārya)인들이었다.

 

아리야인들은 네 가지 생활 단계에 따라 생활했다. 네 가지 생활단계란 남자 바라문의 일생을 종교상의 관점에서 네 시기로 나눈 것을 말한다. 바라문의 법전(法典)에서 규정하고 있는 네 가지 생활 단계(āśurama)란 ①범행기(梵行期, brāhmacārin), ②가주기(家住期, gṛhastha), ③임서기(林棲期, vānaprastha) ④유행기(遊行期, saṃnyāsin)의 사주기(四住期)를 말한다.

 

첫째, 범행기는 스승 밑에서 학습하는 청년 시절를 말한다. 범행기는 7-8세 무렵부터 약 12 년간에 걸친 수행 시기로서, 이 시기에는 스승의 집에 머물면서 베다를 중심으로 한 모든 학문과 기술을 수학한다. 바라문의 생활규범을 정한 법전(Dharma śāstra)에 의하면, 최고 36년 혹은 18년 또는 9년이라고 하며, 심지어는 『베다』를 다 배울 때까지라고도 한다.5)

 

둘째, 가주기(家住期)는 가정에서 생활하며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시기를 말한다. 가주기는 20세 전후 범행기(학생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결혼하고 가장으로서 가업에 힘쓰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세 가지 은혜에 보답하는 것 ― 결혼하여 자식을 낳음으로써 조상에게 보답하고, 제사를 이행함으로써 신들에게 보답하고, 스스로 배운 것을 전승함으로써 스승에게 보답하는 것 ― 이 본무(本務, svadharma)였는데, 가산을 지키고 자손을 번성시키며, 제사에 쓰이는 불(火)을 끊이지 않게 하고 신들이나 조상의 영령에 제사지내고, 부모나 스승을 힘써 공양하고 출가 수행자에게 보시하는 것 따위가 요청되었다. 

 

셋째, 임서기(林棲期)는 가정과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숲속에 들어가 은거(隱居)하는 시기를 말한다. 임서기는 큰 아들이 결혼하여 가계를 이루는 50세 무렵이 되면 집을 나와 숲속에 숨어드는 시기이다. 삼림 속에 있으면서 거기서 자생하는 과실, 풀뿌리, 나무껍질 등을 먹으면서 단식이나 고행을 실천하고 선정(禪定)에 들어 범아일여(梵我一如)의 경지에 이르는데 힘쓰는 시기로, 이 시기에 있는 사람을 보통 사문(沙門)이라든가 모니(牟尼, 寂黙의 聖者)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넷째, 유행기(遊行期)는 숲속의 거처까지 버리고 완전히 무소유(無所有)로 걸식·편력의 생활에 들어가는 시기를 말한다. 유행기는 숲속에서 수행을 완성한 후 마을이나 도시에서 탁발(托鉢) 유행(遊行)하는 시기이다. 이 유행기에 있는 사람을 유행자(遊行者)라든가 비구(比丘)라고 하는데, 가주기에 있는 자들로부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보시(布施) 받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이러한 네 가지 생활단계 가운데 『Bṛhadāraṇyaka Upaniṣad』나 『Chāndogya Upaniṣad』 등 고(古) 우빠니샤드에서는 세 번째 임서기까지만 설하고 있다. 네 번째 유행기는 바라문계에는 없는 출가사문이 출현하는 것으로 보아, 바로 그러한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생각된다. 어쩌면 붓다시대에 이러한 출가의 풍습이 일반화되어, 붓다의 출가는 이러한 일반적 풍습에 따라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6)

 

2. 사문들의 출현

 

그러나 우빠니샤드(Upaniṣad) 시대에 있어서 심오한 철학적 사유와 높은 종교적 실천이 행해지는 가운데서도, 바라문의 의례와 제사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사제자들에 의한 의례와 제사는 아직도 전통과 권위가 인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상황의 변동은 이같은 종교 사상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 동안 만능으로 여겨왔던 제사의 한계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를 넘어서는 보다 높은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다양한 사상적 노력을 기울이는 경향이 더욱 현저해졌다. B.C. 600-500년 경에 바라문의 사상에 맞서 새로운 우주·인생관을 제시하면서 자유로운 사상활동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대거 출현하고 있음은 이런 사정을 반증해준다. 이 새로운 사상가들을 사문(沙門, samaṇa, śramaṇa)이라고 부른다. 붓다 역시 이 같은 사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7)

 

사문이란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몸을 괴롭게 하는 사람’이라는 정도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말이다. 이들은 바라문의 법전(法典)에서 규정하고 있는 네 가지 생활 단계를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사문들은 이런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편리한 시기에 출가(出家)하여 무리 지어 숲속에 은거하거나 홀로 편력하였다. 또 높은 종교적 경지를 얻고자 욕망을 억제하고 극도의 고행(苦行)을 실천하는 자들도 있었다. 사상과 관습에 있어서 매우 혁신적이었던 이들은 정통 바라문의 입장에서 보면 이단(異端)의 사상가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대체로 바라문 이외의 사상가들은 흔히 사문으로 불리었다.8)

 

바라문의 경우, 출가는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임서기나 유행기 동안을 말하는데, 이는 대(對) 사회적으로 종교인으로서의 업을 포기하는 한편, 사회나 가정을 떠나서 오로지 자기 한 몸의 죽음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문의 경우는 일단 사회나 가정 밖에 존재해 있지만 출가는 바라문의 범행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종교적 수행을 배우는 기간이 된다. 붓다는 제자들의 출가를 허락할 때 반드시 “범행을 닦으라”고 했다. 여기서 범행은 성스러운 종교인이 되는 수행으로서 바라문 범행기의 범행과 동일하며 계(戒)를 지니고 교리를 배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출가생활은 대사회적 전도생활이다. …… 즉 바라문의 임서자나 유행자와 같이 말년에 가서 고독하게, 남모르게 사라져버리는 죽음의 방식은 불교의 출가가 지향하는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9)

 

3. 출가자의 생활 원칙[四依法]

 

인도에는 예로부터 걸식하며 살아가는 여러 부류의 출가자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바라문의 종교적 생애의 제4기 유행기에 속하는 행자(行者)나 불교·육사외도(六師外道) 및 비(非) 바라문 계통의 출가자들이 그것이다. 이들 출가자는 유행자(遊行者, parivarjaka), 둔세자(遁世者, sannyāsin), 고행자(苦行者, gati), 비구(比丘, bhikṣu) 등으로 불리었다. 그러다가 불교의 출가자를 비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불교의 출가자를 의미하는 말로 주로 쓰이게 되었다.10) 이와 같이 인도에서 바라문의 임서자나 유행자는 물론 불교교단의 비구들도 사의법(四依法)에 의존하여 생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사의법은 출가자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생활 양식이었다. 이 사의법은 불교 고유의 제도가 아니다. 원래 이것은 당시 출가자의 일반적인 생활원칙이었다. 따라서 비구 역시 출가자의 생활방법인 사의법을 채택해야만 했다. 『율장』의 「 대품(大品)」은 출가에 관한 장(章)이다. 이에 의하면 승가에 들어와서 비구가 되는 자에게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사의법을 설해주도록 되어 있다.11)

 

첫 번째는 걸식(乞食, piṇḍiya lopabhojana)이다. 탁발에 의해 얻은 음식만을 먹으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분소의(糞掃衣, paṃsukūlacīvara)이다. 이것은 버려진 누더기 조각을 서로 기워 붙여서 만든 옷으로, 비구는 이 분소의만을 입어야 한다. 재가신자로부터 좋은 옷감을 보시 받았을 경우에는 조각조각 낸 후에 다시 기워 입어야 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옷에 대한 집착을 떨쳐 버리고 소박한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세 번째는 수하좌(樹下座, rukkhamūlasenāsana)이다. 비구는 나무 밑이나 무덤가, 동굴과 같은 곳에 거주하여야 하며, 지붕이 있는 집이나 건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네 번째는 진기약(陳棄藥, putimuttabhesajja)이다. 진기약은 소의 오줌을 가리키는데, 비구는 이것을 발효시킨 것만을 약으로 쓸 수 있다.

 

⑴ 출가자는 걸식(乞食)으로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승차식(僧次食)·별청식(別請食)·청식(請食)·행주식(行籌食)·십오일식(十五日食)·월초일식(月初日食) 등의 예외는 인정된다.   

⑵ 출가자는 분소의(糞掃衣)에 의지하여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아마의(亞麻衣)·금의(錦衣)·야잠의(野蠶衣)·갈의(褐衣)·저의(紵衣) 등의 예외는 인정된다.

⑶ 출가자는 수하좌(樹下座)에 의하여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정사(精舍)·평복옥(平覆屋)·전루(殿樓)·누방(樓房)·땅굴 등의 예외는 인정된다.

⑷ 출가자는 진기약(陳棄藥)에 의해서 살아가며,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에 힘써야 한다. 숙소(熟蘇)·생소(生蘇)·유(油)·밀(蜜)·당(糖) 등의 예외는 인정된다.

 

초기 승가에서는 이 사의법이 지켜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원칙에 어긋난 예외 조항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원칙대로 지켜졌던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네 가지는 사문들이 지켜야 할 출가생활의 원칙이었다. 불교 역시 이 사의법을 지키는 승가로서 성립하였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사의법은 사실상 비구의 이상적인 생활 양식에 머물렀으며, 이와 같은 생활을 고수하는 일부의 엄격파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비구들이 재가 신자들의 보시가 있을 경우 받아들여 비교적 편안한 의식주 생활을 영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사의법은 속세에서 생활이 어려운 자들이 불교 승단에 입단하면 신자들의 보시에 의해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여겨 편하게 살 목적으로 출가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출가 생활이 얼마나 엄격하고 고된 것인가를 알려주기 위하여 수구식(受具式)에 이어 설했다고 한다.12)

 

II. 출가의 목적과 그 공덕

 

1. 진정한 출가와 그 동기

 

붓다의 가르침에 의하면 재가(在家)로 있으면서도 부처님을 믿고 그 교법(敎法)에 따라 수행하기만 하면 마침내 해탈의 큰 목적을 달성할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세간은 욕심을 기본으로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이 세간에 있으면서 진실로 무욕(無欲)·무아(無我)의 수행을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장려되었던 것이 곧 출가(出家, pabbajjā), 걸사(乞士, bhikkhu, 比丘)에 의한 무욕(無欲)·무아(無我)의 생활이다. 즉 집을 버리고 재물을 버리고, 은애(恩愛)를 버리고, 오로지 아집(我執)·아욕(我欲)을 떠나는 수도이다.13)

 

무릇 집에 머무르는 생활에는 장애가 있고 진애(塵埃)가 있다. 출가의 생활은 활달 자유롭다(abbhokāsa). 이 집에 머물면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한결같이 전심하여 범행(梵行)을 지니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머리칼을 자르고, 가사(袈裟, 壞色衣)를 입고 거가(居家)에서 무가(無家)로 나아가는 것이 더 좋다. 이렇게 하여 그는 마침내 많고 적은 재산을 버리고, 다소의 친속을 버리고, 삭발을 하고, 가사를 입고 거가(居家)에서 무가(無家)에로 벗어난다.14)

 

이것은 곧 붓다가 세간에서의 철저한 수행이 곤란함을 역설한 후에 항상 창도(唱導)하신 상투어이다. 삭발을 하고, 가사를 입고, 일정한 거주처를 갖지 않는 것이 결코 출가의 모든 것은 아니다. 출가의 본질은 참으로 세간에 대한 집착의 씨앗을 버리고 영원한 해탈을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데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 역시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면 본래 바라문의 제3기 또는 제4기의 제도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바라문교에서는 이 출가를 노령기(老齡期)가 되어서야 비로소 수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던 데 반하여, 붓다는 적어도 인생을 깊이 생각하는 자라면 노소(老少)에 관계없이 출가할 것을 권장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라문의 제도와 크게 다른 점이다.15)

 

붓다에 따르면, 인생의 연한(年限)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노령기가 되어서 출가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는 한 노년(老年)을 기다려 출가한다는 것은 영원한 도(道)에 대한 진지한 태도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교교단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여러 부류의 출가자가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이치에 근거하여 붓다가 장려한 결과에 의한 것이다.16)

 

따라서 출가한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이 요구된다. 원칙적으로는 진실로 영원한 해탈을 동경하는 자가 아니면, 또한 진실로 인생의 무가치를 체험한 자가 아니면, 출가는 도저히 시도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체가 젊고 혈기가 왕성한 시기에 인생을 등진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제자 개개인의 경우에 비추어 보더라도 대부분은 그 동기가 참으로 순수하고 구도심이 참으로 견고했다. 잠시 랏타빨라(Raṭṭhapāla)의 일례를 들어보기로 한다. 랏타빨라는 구려국(俱廬國)의 한 양가집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느 날 붓다의 교화를 접하고부터는 갑자기 인생의 문제를 통감하기 시작하여 해탈의 요구를 외면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울며 만류하는 부모님의 말씀도 듣지 않고, 급기야는 단식(斷食)까지 감행하여 부모의 허락을 받고 마침내 걸사(乞士)의 길에 투신하여 수도(修道)했다. 그 태도와 결의야말로 억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확고한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중아함(中阿含) 권31, 뢰타파라경(賴吒婆羅經, M. 82 Raṭṭhapāla Sutta)과 장로게(長老偈, Theragāthā 776-805)17) 등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장로게에 나오는 출가 후의 술회는 우리로 하여금 옷깃을 여미게 하는 엄숙함이 깃들어 있다. 훗날 불교시인 마명(馬鳴)이 지은 랏타팔라가(歌)는 사람들에게 널리 애창되었는데 이 때문에 출가하는 사람이 급증하였다는 전설도 결코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18)

 

아무튼 불교 교단에 있어서의 참다운 이상적 출가는 실로 이와 같은 동기와 결심을 전제 조건으로 하였던 것이며, 또한 붓다 스스로가 순수한 동기에서 출가했던 것처럼 이러한 전제 조건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19)    

 

붓다의 제자에는 전문적 출가 수행자인 비구·비구니와 재가의 제자인 우바새·우바이가 있다. 이들은 모두 도(道)를 구하여 붓다에게 귀의하고 그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려는 사람들이었지만, 출가 비구가 되어 전문적인 수행생활로 들어가든지 재가인 채로 수행하든지 하는 것은 주위의 사정이나 그 사람의 결의에 의해 결정되었다. 일반적으로 재가에 머물면서 완전한 수행을 실천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철저하게 수행하려고 생각하는 자가 출가하였다. 초기경전 가운데에는 비구·비구니들이 어떻게 하여 출가하게 되었는가를 기술한 곳이 적지 않다.20)

 

베살리 근교 깔란다(Kalanda) 마을에 수딘나깔란다뿟따(Sudinnakalandaputta)라고 하는 장자(長者)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베살리에서 우연히 붓다의 설법을 듣고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세존이 설한 법을 내가 이해한 대로라면 집에 머물러 있는 자가 아주 완전하고 청정한, 빛나는 범행(梵行)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삭발하고 가사의(袈裟衣)를 걸치고 집을 나가 출가하리라.21)

 

이와 같이 생각하고 수딘나깔란다뿟따는 붓다께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붓다는 부모의 허락을 얻는다면 출가를 인정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너는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고 하여 바로 출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출가하기로 굳게 결심하였으므로 ‘나는 여기서 죽든지 그렇지 않으면 출가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하고 7일 동안 식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의 친구의 권고도 있고 해서 양친은 마침내 출가를 인정하여 수딘나깔란다뿟따는 붓다의 교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22)

 

여기서 수딘나깔란다뿟따의 말로서 설해지고 있는 ‘집에 머물러 있는 자가 아주 완전한 실천수행을 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하는 생각은 초기불교에 있어서 출가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드러낸 것이다. 집에 있으면 인간관계나 재물에 대한 탐욕, 이해의 대립 등 많은 장애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청정한 수행을 실천하려는 자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출가하여 오로지 도를 구하는 생활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23)

 

『숫따니빠따(Suttanipāta, 經集)』의 제2 소품(小品)에 나오는 「담미까-숫따(Dhammika-sutta)」에는 출가와 재가의 차이점을 언급한 부분이 나온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왓띠의 제따숲, 고독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베푸는 장자의 동산[기수급고독원]에 계시었다. 그때 담미까라는 재가 신도가 오백 명의 신도들과 같이 스승께 와서 예배한 뒤 시로써 여쭈었다.

지혜가 넓으신 고따마시여, 당신께 묻겠습니다.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은 출가하는 것과 집에서 믿는 것과 어느 쪽이 더 좋을까요.<376게>

당신께서는 신들을 포함한 이 세상의 귀취(歸趣)와 궁극의 목적을 알고 계십니다. 미묘한 일을 보는 데는 당신을 따를 자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당신을 뛰어난 눈뜬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377게>

당신께서는 널리 깨달으시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가엾이 여겨, 지식과 이치를 말씀하십니다. 널리 보는 분이시여, 당신께서는 세상에 덮인 것을 벗겨주시고, 티 없이 큰 세상을 비추십니다. <378게>

출가 수행자들과 재가 신도들은 눈뜬 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여기 모였습니다. 티 없는 사람(눈뜬 사람)이 깨닫고 가르치는 법을 듣기 위해서. 신들이 인드라 신의 말을 듣는 것처럼. <384게>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번뇌를 없애는 이치를 그들에게 말하겠노라. 그대들은 모두 그것을 잘 지켜라. 뜻을 보는 지혜로운 이는 출가한 사람에게서 그 행동을 배우고 행하라. <385게>

다음은 재가자가 해야 할 일을 말하리라. 이와 같이 실행하는 사람은 좋은 가르침을 듣는 사람이다. 순수한 출가 수행자에 대한 규정을, 소유의 번거로움이 있는 사람이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393게>

 

사실 우리들의 생명은 무궁한 지속과 발전을 희망하고 있으나 현실은 이러한 우리의 기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진행되어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깊이 생각해 보면 참으로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욕망의 세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되는 재력과 권력과 명예와 은애(恩愛)를 모두 성취할 수는 없는 것이고, 또 영원히 지속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을 버리고 또 다른 구제의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저 랏타빨라의 술회 속에도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 일생을 전체로서 파악하는 가치판단에 입각한 출가의 근거가 되는 것이며, 말하자면 출가의 철학적 근거인 것이다.24)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지금도 그러한 것처럼, 불제자라고 하여 모두가 반드시 순수한 동기에서 출가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붓다의 승가의 세력이 강대해짐에 따라 이 세력에 의지하려는 자가 많아지고 그 출가에도 상당히 불순한 동기에서 출발한 자가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었다. 어떤 이는 출가하여 불제자가 되면 특정한 직업 없이도 의식(衣食)에 걱정이 없기 때문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왕난(王難)의 공포로부터, 적난(賊難)의 공포로부터, 냉혹한 빚쟁이의 공포로부터 피하기 위하여, 내지는 의식(衣食)의 안전을 위해서 출가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외도(外道)로서 불법(佛法)을 파괴시키기 위해서 출가한 자도 있었다. 따라서 불제자라고 해서 반드시 열심히 수행하는 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 중에는 몹시 좋지 않은 자가 있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붓다는 출가의 종류를 네 가지로 나누었다. 제1은 도행(道行)이 뛰어난 자, 제2는 법(法)은 잘 설하면서 꼭 그대로 실천하지는 못하는 자, 제3은 수도를 명분 삼아 생활하려고 하는 자, 제4는 도행(道行)이 더러운 자이다.28) 물론 이것은 불제자만을 대상으로 한 분류가 아니고, 일반적인 사문 집단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것일 테지만 불제자에게도 적용된 것이다. 이 중에서 진실한 출가는 다만 첫 번째 부류 뿐으로, 네 번째 부류의 출가와 같은 것은 오히려 교단을 더럽힐 정도의 무자격자였던 것은 두 말한 필요가 없을 것이다.29)

 

그렇다면 붓다는 무엇 때문에 이들 불순한 동기에서 출가한 자를 전연 배척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붓다는 절세(絶世)의 대교주(大敎主)로서 출가 후에 그들을 순수한 동기로 전환시킬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불제자 중에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후에 훌륭한 아라한이 되었던 자가 적지 않다는 것은 현재 장로게와 장로니게에 나오는 고백을 보아도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붓다는 사성(四姓)에 관계없이, 남녀에 관계없이 이들을 도기(道器)로서 인정함과 동시에, 적어도 그 출발점에 있어서는 순수한 동기를 강조하면서도 또한 불순한 동기일지라도 잠시 허락하여 마침내는 일체를 인도하여 진실한 도(道)에 들게 하는, 이른바 교계시도(敎誡示道)의 묘술(妙術)을 지니셨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붓다가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이신 까닭이다.

 

붓다의 열 가지 이름 가운데 조어장부(調御丈夫, purisadammasārathi)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아무리 거친 사람일지라도 붓다는 모두 교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비록 불순한 의도로 출가한 사람일지라도 붓다는 그들을 바른 길로 교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승가의 입장에서 보면, 불순한 동기에서 불교에 귀의한 사람은 붓다를 배신하고 승가를 혼탁하게 하는 까닭에 가장 큰 경계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랏타빨라경을 비롯하여 「사계제삼족성자경(娑鷄帝三族姓子經)」 같은 설법도 요컨대 불순한 동기를 배격하고 참된 동기로 전환시키기 위한 붓다의 권계(勸誡)를 기록한 것에 다름 아니다.30)      

 

붓다는 깨달음을 성취한 뒤 자신의 출가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실로 나 역시 깨달음을 얻지 못했던 보살 시절에는 스스로 태어나는 존재이면서 태어남을 갈구했고, 늙는 존재이면서 늙음을 갈구했고 병든 존재이면서 병든 존재를 갈구했고, 죽는 존재이면서 죽음을 갈구했고, 번뇌로운 존재이면서 번뇌로운 것을 갈구했고, 더러운 존재이면서 더러운 것을 갈구했느니라. 비구들이여! 그때 내게 이와 같은 생각이 일어났었다.

 

“어떻게 해서 나는 스스로 태어나는 존재이면서 태어나는 것을 갈구하고, 늙는 존재이면서 늙는 것을 갈구하고, 죽는 존재이면서 죽는 것을 갈구하고, 번뇌로운 존재이면서 번뇌로운 것을 갈구하고, 스스로 더러운 존재이면서 더러운 것을 갈구하는 것일까?

 

나는 스스로 태어나는 존재이면서 태어나는 허물을 알아, 태어나지 않고 더없이 완전한 안락을 구하리라. 스스로 늙는 존재이면서 늙음의 허물을 알아, 늙지 않고 더없이 완전한 안락을 구하리라. 스스로 병든 존재이면서 병듦의 허물을 알아, 병들지 않고 더없이 단정한 안락을 구하리라. 스스로 죽는 존재이면서 죽음의 허물을 알아, 죽지 않고 더없이 완전한 안락을 구하리라. 스스로 번뇌로운 존재이면서 번뇌로움의 허물을 알아, 번뇌롭지 않고 더없이 완전한 안락을 구하리라. 스스로 더러운 존재이면서 더러움의 허물을 알아, 더럽지 않고 더없이 완전한 안락을 구하리라”라고.

 

비구들이여! 이렇게 생각했던 나는 그때는 아직 꽃다운 청년으로서 머리는 검었고, 행복이 가득 넘치는 청춘이었다. 그런 청년 시절에 부모는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 만류했지만 나는 끝내 머리와 턱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고 집을 나와 출가하였다.

 

이 경전의 내용에 의하면, 붓다는 늙음·병듦·죽음·번뇌와 더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가하였다는 것이다. 후대의 불전문학(佛傳文學)에서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의 형태로 정형화되었다.

 

2. 출가의 목적

 

한편 「예불대참회문(禮佛大懺悔文)」에 출가의 목적과 관련된 대목이 나온다. 「예불대참회문」은 누구의 작품이며, 언제 현재의 형태로 편찬된 것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제가 이제 발심하는 것은 제 스스로 인간과 천상의 복을 구함이 아니요, 또한 성문이나 연각 및 보살의 지위를 구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오직 최상승을 의지하여 보리심을 발하기 위함입니다. 원컨대 법계의 모든 중생이 함께 아뇩다라삼먁보리심를 얻어지이다.”31)

 

위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보면, 발심하는 목적이 인간세계와 천상세계의 복을 구함이 아니며, 또한 성문·연각·보살의 삼승(三乘)을 구함이 아님을 천명하고 있다. 진짜 발심의 목적은 삼승이 아닌 최상승(最上乘), 즉 일승(一乘)에 의지하여 깨달음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궁극의 목표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란 무엇인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는 범어 Anuttara-samyak-saṃbodhi를 음역한 것이며, 빨리어는 anuttara- sammā-sambodhi이다. 이것을 아뇩삼보리(阿耨三菩提), 아뇩보리(阿耨菩提)로 생략하여 부르기도 하는데, 무상정변지(無上正遍知), 무답정변지(無答正遍知),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혹은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고 번역한다.32) 이것을 우리말로 옮기면, ‘위없는 바른 깨달음’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예불대참회문」에 따르면 출가의 목적은 결국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출가를 발심(發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발심이란 글자 그대로 마음을 일으킨다는 말이다. 어떤 목적을 이루겠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미래를 위해 영어를 반드시 공부해야겠다’ 혹은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일으키는 것도 발심이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러한 조그마한 소망이 아니라, 궁극의 진리를 깨닫겠다는 마음, 즉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는 것을 발심이라고 한다. 그래서 발심을 다른 말로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도 부른다. 이 발심은 신심(信心)과 발원(發願)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은 넓고 큰 원을 세워 그 원의 힘[願力]에 의해 태어나지만, 중생들은 자기가 지은 업의 힘[業力]에 의해 태어난다. 원의 유무(有無)와 대소(大小)에 따라 그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원(願)이 없으면 천불(千佛)이 출현하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다시 말해서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겠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비록 붓다가 이 세상에 출현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일으킨다면 언젠가는 그 목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발심은 목적의 설정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목표가 똑바로 설정되어야만 그 목표를 향해 바르게 정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발심이 잘못되거나 불완전 할 때에는 수행 자체도 제약을 받아서 올바른 자리에 나아갈 수가 없다.

 

또한 어떤 불순한 의도에서 나온 마음은 자신을 망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가져다준다. 인터넷의 불건전한 사이트 개설,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다단계 판매 등은 처음부터 불순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남은 망해도 나만 잘되면 된다는 극도의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다. 발심과 정반대 되는 악심(惡心)의 발로인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어지면 전체가 빗나가기 때문에 처음으로 일으키는 마음이 매우 중요하다.

 

3. 출가의 공덕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의 중요한 실천 덕목으로서 초발심이 강조되었다. 특히 『화엄경』의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에서는 처음 발심하는 공덕이 얼마나 수승한가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이 경전에 의하면 “초발심의 공덕은 설하기 어렵고, 알기 어렵고, 분별하기 어렵고, 믿고 이해하기 어렵고, 증득하기 어렵고, 행하기 어렵고, 통달하기 어렵고, 생각하기 어렵고, 헤아리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렵다”라고 했다. 이러한 열 가지 이유 때문에 초발심의 공덕에 대하여 말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화엄경』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는 선재동자가 51번째 선지식인 미륵보살을 찾아갔을 때, 미륵보살은 선재동자의 온갖 공덕을 칭찬하여 무량 중생에게 보리심을 발하게 하고, 선재동자에게 말하였다.

 

“착하다, 선남자여, 그대는 모든 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일체 중생을 구호하기 위해, 모든 부처님 법을 부지런히 구하기 위해 위없는 보리심을 발한 것이다. 그대는 좋은 이익을 얻었고, 사람의 몸을 얻었고, 수명이 길고, 여래의 출현을 만났고, 문수사리 큰 선지식을 보았으니, 그대의 몸은 좋은 그릇이라 온갖 선근으로 윤택해졌다. 그대는 선한 법으로 유지되었으므로 이해와 욕구가 다 청정하였으며, 여러 부처님께서 함께 보호하고 염려한 바가 되었으며, 선지식들이 함께 거두어 주게 되었다.

 

왜냐하면, 보리심은 씨앗과 같아 모든 불법을 내게 하며, 보리심은 좋은 밭과 같아 중생들의 깨끗한 법을 자라게 하며, 보리심은 대지와 같아 모든 세간을 지탱하며, 보리심은 맑은 물과 같아 모든 번뇌의 때를 씻어 주며, 보리심은 태풍과 같아 세간에 두루 걸림이 없다.

 

선남자여, 보리심은 이와 같이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요약해 말하면, 보리심은 모든 불법의 공덕과 같다. 왜냐하면, 보리심은 보살의 행을 낳게 하니 과거․현재․미래의 여래가 모두 보리심에서 출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없는 보리심을 내는 이는 이미 한량없는 공덕을 낸 것이며, 일체지의 길을 널리 거두어 가짐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보리심을 처음으로 일으키는 것은 마치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또한 보리심은 온갖 두려움을 제거해 주기도 한다. 화엄경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옛날 큰 보리심을 일으키지 않았을 때는 여러 가지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발심한 뒤로는 그것들이 다 멀리 떨어져 나갔다. 그리하여 이제는 놀라지도 두려워도 안하고, 겁먹지도 무서워도 안하여, 온갖 마귀의 무리와 외도(外道)들이 깨뜨릴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열반경(涅槃經)에서는 “음식․의복․와구․의약 등 네 가지 물건으로 삼천대천세계의 중생을 공양한다 할지라도, 발심하여 깨달음의 지위[佛果]를 향해 나아감만 못하다”라고 했다. 중생에게 공양을 베풀어 얻는 공덕은 언젠가 다함이 있는 유루복(有漏福)이지만, 발심하여 깨달음을 이루는 것은 다함이 없는 무루복(無漏福)이기 때문이다.

 

초기경전인 「사만냐팔라 숫따(Samaññaphala Sutta, 沙門果經)33)에는 출가의 과보 혹은 공덕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경은 제목 그대로 “출가 생활의 결과”이다. 붓다께서 아자따삿투(Ajātasatthu) 왕에게 세상을 버리고 출가하여 불교 승단에 합류하는 이익을 설명한 것이다.

 

고교한 달빛이 비치는 밤에 마가다(Magadha)의 왕이자 베데히(Vedehi) 부인의 아들인 아자따삿투(Ajātasattu)는 여러 수행원 및 대신들과 함께 그의 궁전에서 가장 높은 누각에 앉아 있었다. 왕은 의사 지바까 꼬마라밧짜(Jīvaka Komārabhacca)의 조언에 따라 붓다를 친견하고 법문을 듣기로 하였다. 왕은 붓다를 친견하고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붓다시여,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여 그 결과로써 생계를 유지하고 복이 되는 일들을 하는 것을 눈앞에서 봅니다. 붓다시여, 당신의 제자들도 출가생활을 통해서 지금 이 자리에서 눈앞에 보이는 결과를 볼 수 있습니까?”

 

붓다께서 물으셨다. “왕이여, 그대는 다른 종교․지도자들에게도 그러한 질문을 해보았던가?”   

 

왕은 말하였다. “예 붓다시여, 저는 뿌라나 깟싸빠, 막칼리 고살라 및 다른 이들에게도 그러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떤 누구도 저에게 만족스러운 답변을 주지 못했습니다.”

 

붓다께서는 한 가지 질문을 하면서 설명을 시작하셨다. “왕이여, 당신의 한 시종이 출가하여 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합시다. 당신은 옛날처럼 다시금 그에게 되돌아와서 나를 시중하라고 지시하겠습니까?”

 

왕은 말하였다. “아닙니다. 붓다시여, 저는 오히려 그를 존경할 것이며 그의 안정과 편의를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해 줄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지적하셨다. “이것이 나의 제자가 된 첫 번째 결과이다. 그러나 그것은 외면적인 결과일 뿐이다. 나의 제자는 성스러운 생활을 통해 성스러운 결과를 현재에 얻는다.” 

 

붓다는 제자들의 성스러운 수행을 통한 현실의 결과를 자세히 설명했다. 이른바 출가 후의 수행경로를 설했다. 즉 계율의 완성, 감관의 보호, 정념(正念)과 정지(正知)의 갖춤, 다섯 덮개[五蓋]를 버림, 네 가지 선정[四禪], 갈라 봄[vi-passana]에 의한 앎[觀智], 뜻으로 이루는 신통스런 앎[意成智], 그외의 여러 가지 신통스런 앎[神通智], 하늘 귀에 대한 앎[天耳智], 타인의 마음을 파악하는 앎[他心智], 하늘 눈에 대한 앎[天眼智], 중생들의 죽고 태어남에 대한 앎[宿命智], 괴로움과 역류함의 진실을 알아 해탈하는 앎[漏盡智] 등이 그것이다. 왕은 붓다의 신자가 되기로 한 뒤 예를 올리고 떠나갔다. 이 외에도 붓다께서는 여러 곳에서 출가의 즐거움(pabbajjā-sukha, 出家樂)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III. 바람직한 출가 수행자의 길

 

1. 성스러운 구함과 성스럽지 못한 구함

 

출가자가 추구해야 할 것과 추구하지 말아야 할 것을 언급한 경전이 바로 「성구경(聖求經, Āriyapariyesana-sutta)」이다.34) 이 경과 대응하는 한역은 『중아함경』 제204 「羅摩經」35)이다. 이 경은 또한 주석서에서는 Pāsarāsi-sutta로 알려져 있다. 흔히 “성스러움의 탐구에 관한 경전” (Discourse on the Ariyan Quest)으로 영역(英譯)되었다. 성스러움의 탐구. 붓다의 출가, 수행 및 깨달음의 성취에 관한 것이다. 이 경은 진리와 해탈을 추구하는 것이 성스러운 구함이고, 세속의 향락을 추구하는 것이 성스럽지 못한 구함이다.

 

붓다는 자신이 갈구하던 예전의 경험과, 어떻게 진리의 수레바퀴[法輪]을 굴리게 되었으며, 다수를 해탈로 이끌었는지에 대해 말했다. 사왓티(Sāvatthi, 舍衛城)에서 붓다에 의해 설해진 이 경전(Pāsarāsi-sutta)은 또한 Ariyapariyesana-sutta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붓다가 숫도다나(Suddhodana)왕의 아들로서 인간 세상에 태어난 이후부터 초전법륜(初轉法輪)에 관한 위대한 법문을 설할 때까지 자신의 생애를 자세히 말했으며, 자신의 출가와 처음 여러 고행주의자들의 잘못된 실천, 그리고 최종적으로 고귀한 여덟 가지 길을 발견한 자세한 사항들을 설하고 있다. 특히 성스러운 구함과 성스럽지 못한 구함의 두 가지 다른 형태를 강조하고 있다. 감각적 쾌락, 즉 늙음, 병듦, 죽음의 주제를 추구하는 것은 극도로 지혜롭지 못한 것이라고 붓다는 설명했다. 가장 성스러운 구함은 늙음, 병듦,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비구들이여! 이것들이 두 가지 구함, 즉 ‘성스러운 구함’과 ‘성스럽지 못한 구함’이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성스럽지 못한 구함이란 무엇인가? 이 점에 관해 비구들이여! 사람이 자아로 인해 태어나기 쉬우면서 또한 태어나기 쉬운 것을 구하고, 자아로 인해 늙기 쉬우면서 또한 늙기 쉬운 것을 구하고, 자아로 인해 병들기 쉬우면서 또한 병들기 쉬운 것을 구하고, 자아로 인해 죽기 쉬우면서 또한 죽기 쉬운 것을 구하고, 번뇌에 들기 쉬우면서 또한 번뇌에 들기 쉬운 것을 구하고, 자아로 인해 더러워지기 쉬우면서 더러운 것을 구하고 있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태어나기 쉬운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자식과 아내가 태어나기 쉽고, 남녀 노비가 태어나기 쉽고, 염소와 양이 태어나기 쉽고, 닭과 돼지가 태어나기 쉽고, 코끼리, 소, 암수의 말이 태어나기 쉽고, 금과 은이 태어나기 쉽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애착의 대상들이 태어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로 인해, 사로잡히고 도취되고 탐닉에 빠져 태어나기 쉬운 이(사람) 또한 태어나기 쉬운 것을 구하고 있다. …… 비구들이여! 이것이 ‘성스럽지 못한 구함’이니라.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늙는 존재인가? 이른바 자식과 아내가 늙는 존재이고, 노비가 늙는 존재이고, 산양과 양이 늙는 존재이고, 닭과 돼지가 늙는 존재이고, 코끼리와 소․말․암말이 늙는 존재이고, 금과 은이 늙는 존재이니라.

 

비구들이여! 늙는 존재는 실로 이것을 의지처로 하는 존재이고, 이것에 얽매이고 도취되고 집착하여, 스스로 늙는 존재이면서 늙는 것을 구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병든 존재인가? 이른바 자식과 아내가 병든 존재이고, 노비가 병든 존재이고, 산양과 양이 병든 존재이고, 닭과 돼지가 병든 존재이고, 코끼리와 소․말․암말이 병든 존재이니라.

 

비구들이여! 병든 존재는 실로 이것을 의지처로 하는 존재이고, 이것에 얽매이고 도취되고 집착하여, 스스로 병든 존재이면서 병든 것을 구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죽는 존재인가? 이른바 자식과 아내가 죽는 존재이고, 노비가 죽는 존재이고, 산양과 양이 죽는 존재이고, 닭과 돼지가 죽는 존재이다.

 

비구들이여! 죽는 존재는 실로 이것을 의지처로 삼는 존재이고, 이것에 얽매이고 도취되고 집착하여, 스스로 죽는 존재이면서 죽는 것을 구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번뇌로운 존재인가? 이른바 자식과 아내가 번뇌로운 존재이고, 노비가 번뇌로운 존재이고, 산양과 양이 번뇌로운 존재이고, 닭과 돼지가 번뇌로운 존재이고, 코끼리와 소․말․암말이 번뇌로운 존재이다.

 

비구들이여! 번뇌로운 존재는 실로 이것을 의지처로 삼는 존재이고, 이것에 얽매이고 도취되고 집착하여, 스스로 번뇌로운 존재이면서 번뇌로움을 구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더러운 존재인가? 이른바 자식과 아내가 더러운 존재이고, 노비가 더러운 존재이고, 산양과 양이 더러운 존재이고, 닭과 돼지가 더러운 존재이고, 코끼리와 소․말이 더러운 존재이고, 금과 은이 더러운 존재이니라.

 

비구들이여! 더러운 존재는 실로 이것을 의지처로 삼는 존재이고, 이것에 얽매이고 도취되고 집착하여, 스스로 더러운 존재이면서 더러운 것을 구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러한 것들이 ‘성스럽지 못한 구함’이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추구’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이 점에 관해 사람이 자아로 인해 태어나기 쉬운 존재이면서 태어남의 허물을 알아 태어나지 않고, 더없이 완전한 안락(열반)을 구하고, 자아로 인해 늙기 쉬우면서 늙음의 허물을 알아 늙지 않고, 더없이 완전한 안락을 구하고, 자아로 인해 병들기 쉬우면서 병듦의 허물을 알아 병들지 않고, 더없이 완전한 안락을 구하고, 자아로 인해 번뇌에 들기 쉬우면서 번뇌에 듦의 허물을 알아, 번뇌에 들지 않고 더없이 완전한 안락을 구하고, 자아로 인해 더러워지기 쉬우면서 더러움의 허물을 알아 더럽혀지지 않는, 더없이 완전한 안락을 추구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성스러운 추구’이니라.

 

2. 출가자의 잘못된 생활 방식

 

불교가 흥기하기 이전의 고대 인도의 신앙 형태는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나 자연계의 배후에 존재한다고 하는 초자연적인 지배력을 그 기도의 대상으로 하였다. 그러한 대상을 찬송하여 찬가를 남긴 것이 바로 『베다』이다. 신들에게 공물을 바치고 찬송하는 종교적 제의(祭儀)를 통해 갖가지 종류의 현실적인 이익을 얻으려 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건강, 장수, 풍년, 강우, 자손 번식, 가축의 증식, 아내를 얻는 일, 전승과 전리품을 얻는 것 등을 사제나 의례를 통해 빌었던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불교가 흥기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계속되었다. 그래서 현세 이익을 위해 여러 가지 종류의 주문, 주술, 의례 그리고 기도가 기복 행위의 방법으로 사용되어졌음을 잘 보여주는 경전이 있는데, 「브라흐마잘라 숫따(Brahmajāla-sutta, 梵網經)」40)이다.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신들에게 복을 내려 달라고 각종의 공양물을 올리고 기도하며 제사를 지내는 것 2) 손을 합장하여 일월성신(日月星辰)에게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 3) 귀신을 부르거나 쫓으며 행하는 여러 가지 기도(種種厭禱)와 무수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법 4) 정력이 강해지기를 빌거나 무력해지기를 비는 주술을 쓰는 것 5) 자손 창성을 비는 행위 6) 병을 점치는 것이나 병이 나도록 또는 낫도록 주문을 외우는 것 7) 손을 짚거나 짚지 않고 점보는 것 8) 해몽과 점성술, 손금 그리고 다른 부분의 신체를 보고(面相․手相․身相․頭相․足相 등) 수명과 재화와 손실을 점치는 것 9) 천시(天時)를 점쳐서 비가 많고 적을 것을 예견하는 것 10) 풍년이나 흉년을 점치는 것 11) 태평이나 환난을 점치는 것 12) (혼사 등의) 길일을 점치는 것 13) 혼상에 있어 길일을 잡아주는 것 14) 수명을 점치는 것 15) 집을 짓고 정원을 잡는 데 풍수지리를 보아주는 것 16)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 17)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되도록 주문을 쓰는 것 18) 거울이나 동녀(童女), 그리고 신으로부터 길흉의 때를 묻는 행위 19) 사람들에게 행․불행을 주려고 주문을 외는 것 20) 물과 기타의 다른 방법에 의해 죄를 면할 수 있다는 정화의례를 행하는 것 21) 물과 불에 주문을 거는 것 22) 귀신을 부리는 주문을 쓰는 것 23) 독사를 호리는 기술과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 주술 24) 화살로부터 해를 당하지 않는 주문을 쓰는 것 25) 관직에 있는 사람의 지위를 예견해 주는 것 26) 동물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주술 27) 입에서 불을 내는 이변을 보이는 것 28) 안약이나 눈의 연고를 사용하여(환상을 일으켜)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 29) 고행으로 남의 존경심을 사서 이양(利養)을 구하는 것 30) 국운(國運)을 점치거나 예언하는 것 등이다.

 

이와 같이 초기경전은 당시 일반대중에 있어 양재초복과 현세이익과 관련한 갖은 종류의 기복 행위가 얼마나 성행하고 있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불교가 이를 비판하면서 태동하였다는 것은 인류사에 있어 불교 흥기의 당위성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붓다는 이러한 모든 행위는 축생법(畜生法, tiracchāna-vijjā) 또는 서도법(庶道法)이라 규정하고 강력하게 금지하고 배격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동물의 지식’ 즉, 수행하는 사람은 결코 행해서는 안 될 비천한 지식이라는 것이다. 불교적 용어를 쓰자면 세간적 가치를 지니는 범속한 형태들이다. 따라서 수행자가 이양(利養)을 구하여 이를 행하거나 또는 부응하게 되면 사된 방법으로 연명(邪命, micchājiva)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간과할 수 없는 기복 행위와 관련된 형태들이 언제부터인가 불교 내부로 그대로 복귀하거나 또는 변형된 모습으로 행해지고 있다.41)

 

3. 출가자와 재가자의 관계

 

출가자와 재가자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 초기경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출가자와 재가자는 서로 의존하여 참된 법과 최상의 안온함에 이른다. 출가자는 재가자로부터 의류와 생필품과 침구 그리고 약품을 받는다. 이에 재가자는 선서(善逝)인 출가자를 의지하여 아라한의 반야지혜와 선정을 믿는다. 현생에서 닦아 좋은 세계에 이르는 길과 기쁨이 있는 욕락의 천상을 성취한다.42)

 

기본적으로 재시(財施)와 법시(法施)로 출가와 재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재가자는 출가자를 믿고 물질적인 보시에 따라 욕락이 있는 천상의 과보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전의 여러 곳에서 항상 재보시와 법보시라는 두 가지 종류의 보시 가운데 법보시가 더 뛰어나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43) 이처럼 출가와 재가는 재보시와 법보시를 통한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재가자가 출가자에게 보시하는데 있어 네 가지 삿된 방법으로 살아가는 출가자에게는 보시해도 복행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첫째는 농토를 일구는 것으로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 둘째는 천문이나 길흉을 말하는 것으로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 셋째는 세속 사람의 심부름으로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이다. 넷째는 점치고 약을 만들어 치료하는 일로서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이다.44) 여기서 첫 번째의 농토를 일구는 것으로 먹을 것을 구하는 사람의 부분에서는 선농일치(禪農一致)를 주장하는 동북아시아 불교전통에 상반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이렇게 설한 맥락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할 것이다.45)

 

어떤 수행자가 세속을 떠나 깊은 산속에 들어가 생활했다. 혼자서 모든 의식주를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그는 곁에서 밥과 빨래를 도와줄 여인을 구했다. 그리고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많은 농기구와 가축도 필요했다. 그래서 가축을 기르고 농장을 확장해 갔다. 그러는 사이 자식들이 줄줄이 생겨났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그가 처음 생각했던 수행자의 모습은 전혀 찾을 길 없고, 한 사람의 평범한 농부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처럼 자칫 잘못하면 수행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농사꾼이나 장사꾼으로 변질되어 살아가다가 허망하게 죽고 만다는 것이다.

 

그 나머지 것들은 현재에도 가끔 불교를 알리는 데 방편적인 측면으로 변호되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긍정적 효과뿐만이 아니라 부정적 효과 또한 비판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문제는 출가자 본연의 생활을 하지 않고 생존의 수단으로 출가하여 청정한 수행 풍토이어야 할 불교를 훼손하는 적주비구(賊住比丘, theyyasaṁvāsaka)가 더 정확한 말이다. 적주비구란 진실한 수행에는 마음이 없고 이득이나 생활의 방편으로 또는 붓다의 가르침을 도둑질하기 위해 불교교단에 출가한 자를 말하는데 이들에게는 보시하지 말도록 권유하는 것은 재가자가 앞장서서 수행하는 청정승가의 풍토를 일구어야한다는 시사로 보아야 할 것이다.46)

 

다른 경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경우 출가자에게 보시를 거부하도록 하고 있다. ① 재가자에게 손해를 끼친 자, ② 재가자를 다치게 한 자, ③ 재가자를 이간시키고 비방한 자, ④ 삼보를 비난하는 자, ⑤ 악행을 행하는 자 등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회복하기 위해서는 출가자가 재가자를 찾아가 참회하고 용서를 받아야 하는 절차가 있는데, 하의갈마(下意羯磨, paṭisāraṁya-kamma)로 율장에서 설명되어 있다.47)

 

마찬가지로 반대로 출가자가 재가자의 공양을 거부해야 되는 몇 가지 경우 또한 설하고 있다. 자신의 부모를 잘 모시지 못하는 사람, 출가자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 출가자를 비방하는 사람, 출가자를 다치게 한 자, 어떤 곳에서 출가자를 내쫓는 사람, 출가자들을 이간하여 싸우게 하는 자, 출가자 앞에서 삼보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사람 그리고 비구니에게 욕을 보인 자 등은 참회를 하지 않는 한 보시 받는 것을 거부해야 할 것으로 나타난다.48) 이러한 자들이 보시하려 하면 보시를 받지 않고 바루를 거꾸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발(覆鉢, patta-nikkujjana)이라 한다. 출가자가 재가자를 경책하는 방법으로 진심으로 출가 승단에 참회하면 재가불자로서의 위치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 율장에서 복발갈마(覆鉢羯磨, patta- nikkujjita-kamma)라 하여 세세한 규정이 설명되어 있다.49)

 

그리고 재가자가 출가자를 모시는 데 있어 다섯 가지 방법으로 섬겨야 한다고 한다.50) ① 몸으로 친근함을 행하고, ② 말로 친근함을 행하고, ③ 뜻으로 친근함을 행하고, ④ 언제나 집에 들릴 수 있도록 하고, ⑤ 그들의 수행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한다. 이에 대해 출가자는 재가자에게 여섯 가지 방법으로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고 한다. ① 나쁜 것으로부터 보호하고, ② 선(善)에 머물도록 권장하고, ③ 친절한 마음으로 자비롭게 대하며, ④ 아직 듣지 못한 법을 설해주고, ⑤ 이미 배운 바를 다시 옳게 정정해 주며 청정하게 하고, ⑥ 즐겁고 행복한 세계에 나는 방법을 일러준다 등이다.51)

 

IV. 맺음말

 

보통 사람들의 일생은 먹이 구하기, 먹기, 놀기, 짝짓기, 잠자기로 요약할 수 있다. 먹이 구하기란 어떤 직업에 종사하여 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재화(財貨)로 먹을 것을 구해 하루 세끼 먹는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먹을 것을 배불리 먹고 난 다음에는 놀기에 전념한다. 오늘날 스포츠나 레저, 취미생활 등 모든 문화활동은 다 놀기에 해당된다. 놀기의 최고 절정은 짝짓기이다. 그리고 나면 잠을 잔다. 이러한 먹이 구하기, 먹기, 놀기, 짝짓기, 잠자기의 반복이 인간들의 삶이다. 이러한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가를 하게 된다. 출가란 한마디로 먹이 구하기와 놀기, 그리고 짝짓기를 포기한다는 뜻이다. 나머지 먹기와 잠자기는 인간의 생존을 위해 완전히 생략할 수가 없다. 수행자는 먹는 것도 맛으로 이 육체를 살찌우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 즉 약의 개념으로 먹고, 수면(잠)도 생존에 꼭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활하는 것이 곧 출가자이다. 출가자가 이러한 정신을 잊어버리면 곧바로 속인이 되어버린다. 조심하고 조심할 일이다.

 

흔히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즉 ‘처음으로 마음을 발했을 때가 곧 바른 깨달음이다’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발심이 있었기 때문에 궁극의 열반을 증득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면 발심을 한 후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선남자야, 보리심을 일으키고 나서 해야 할 다섯 가지 일이 있다. 첫째는 좋은 벗을 가까이함이요, 둘째는 성내는 마음을 끊음이요, 셋째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름이요, 넷째는 연민의 정을 일으킴이요, 다섯째는 부지런히 정진하는 일이다.”

 

Notes:

1) 국어국문학회 감수, 『국어대사전』(서울: 민중서관, 2001), p.2478.

2) T. W. Rhys Davids and William Stede, Pali-English Dictionary,  (London: Pali Text Society, 1921-25), p.414.

3) 곽철환 편저, 『시공 불교사전』(서울: 시공사, 2003), p.689.

4) 平川彰 著, 李浩根 譯, 『印度佛敎의 歷史』上卷(서울: 민족사, 1989), p.28.

5) 사토우 미츠오(佐藤密雄) 지음, 김호성 옮김, 『초기불교 교단과 계율』(서울: 민족사, 1991), p.19.

6) 후지타 코타츠 외, 권오민 옮김,『초기·부파불교의 역사』(서울: 민족사, 1989), p.117-118.

7)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불교사상의 이해』(서울: 불교시대사, 1997), p.45.

8) 불교교재편찬위원회 편, 위의 책, pp.45-46.

9) 사토우 미츠오, 앞의 책, p.21.

10) 사토우 미츠오, 위의 책, p.66.

11) 사토우 미츠오, 위의 책, p.35.

12) 이자랑, 「초기불교 교단의 종교의식과 생활」, 『불교평론』 통권 제14호(2003, 봄호), p.70.

13) 기무라 다이켄(木村泰賢) 著, 朴京俊 譯, 『原始佛敎 思想論』 (서울: 경서원, 1992), p.293.

14) M. 38 愛盡大經 Mahātaṇhāsaṅkhya Sutta (T1, p.267; 南傳 권9, 중부 1, p.464); 또한 中 권38, 鸚鵡經 (T1, p.667 f); M. 99 須婆經 Subha Sutta (T2, p.196f); 中 권49, 迦絺那經 (T1, p.552) 등도 참조.

15) 기무라 다이켄, 앞의 책, p.294.

16) 기무라 다이켄, 위의 책, p.294.

17) 세상에서 재산이 많은 사람들을 보아하니, 그들은 재산을 모으기만 할 뿐 어리석은 까닭에 베풀 줄을 모른다. 탐욕에 빠진 그들은 재산을 모으며 점점 쾌락을 좇는다.<776> 왕은 무력으로 대지(大地)를 정복하여 해변에 이르는 곳까지 점령했지만, 바다 이쪽만으로는 만족 못하고 바다 저쪽까지도 얻으려 한다.<777> 왕이든 평민이든 그들은 애욕을 버리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며, 아직도 만족을 얻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육신을 버린다. 세상에서 모든 욕망을 성취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778>

18) 기무라 다이켄, 위의 책, p.294-295.

19) 中 권18, 婆鷄帝三族姓子經(T1, p.554bf); M. 68 那羅伽波寧村經 Naḷakapana Sutta(T1, p.462f; 南傳 권10, 中部 2, p.276-7).

20) 후지타 코타츠 外, 위의 책, p.118.

21) Vinaya-pitaka III, p.12.

22) 후지타 코타츠 外, 위의 책, p.118.

23) 후지타 코타츠 外, 위의 책, pp.118-119.

24) 기무라 다이켄, 위의 책, p.296-297.

25) Theragāthā 84.

26) 中 권18. 三族姓子經(T1, p.554c); M. 68 Naḷakapāna Sutta(T1, p.463; 南傳 권10, 中部 2, p.278).

27) T2, p.127 f; 雜阿含經 권14(T2, p.96bc).

28) 長 권3, 遊行經(T1, p.18b). 빨리문에는 이것이 없다. 俱舍 권15(T29, p.79c)에서는 이것을 승도(勝道, mārgajina), 시도(示道) 또는 인도(引道, mārgadeśika), 명도(命道, mārgajīvin), 행도(行道, mārgadūṣin)의 이름으로 인용하고 있다. 욱아본(旭雅本, p.7b)을 보라. 또한 십송율(十誦律)에는 명상비구(名想比丘), 자칭비구(自稱比丘), 걸비구(乞比丘), 파괴비구(破壞比丘) 등 4종을 열거하고 있다.

29) 기무라 다이켄, 위의 책, p.297.

30) 기무라 다이켄, 위의 책, p.297.

31) “我今發心 不爲自求人天福報 聲聞緣覺 乃至權乘諸位菩薩 唯依最上乘 發菩提心 願與法界衆生 一時同得 阿耨多羅三藐三菩提.”[광덕 번역, 『보현행원품』(대구: 삼영출판사, 1976), pp.107-8.]

32) 『望月佛敎大辭典』 1권, p.48上.

33) DNⅠ. pp.47-86; 南傳 6, pp.73-130. 이 경과 대응하는 한역은 長阿含經 27 「沙門果經」(T1, pp.107-109); 「寂志果經」(T1, pp.270-276); 增壹阿含經(이하 ‘增’이라 약칭함) 43. 7 無根信 (T2, pp.762-764) 등이다.

34) MN I, pp.160-175; 南傳 9, pp.290f.

35) T1, pp.775c-778c.

36) Russell Webb, An Analysis of the Pali Canon, (Kandy, Sri Lanka: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1975), p.10.

37) The Majjhima Nikaya, ed. P. V. Bapat, (Bihar Government: Pali Publication Board, 1958), Introduction XIV.

38) U Ko Lay (ed.), Guide to Tipitaka, (Delhi: Satguru Publications, 1990); E-book (www. buddhanet.net), Buddha Dharma Education Association Inc., p.64.

39) 譯註: 이는 비구들이여! 자아로 인해 태어남을 면할 수 없는 자가 마찬가지로 태어남을 면할 수 없는 것에서의 위험을 알고, 태어나지 않음 즉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보장인 열반을 구하고, 자아로 인해 늙음을 면할 수 없는 자가 … 병듦 … 죽음을 … 슬픔을 … 더러움을 면할 수 없는 자가 더러움을 면할 수 없는 것에서의 위험을 알고, 더럽혀지지 않음 즉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보장인 열반을 구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성스러운 구함’이니라.

40) DN I, pp.1-46; 南傳 6, pp.1-72. 이 경과 대응하는 한역은 장아함경 제21경 「범동경(梵動經)」(T1, pp.88b-94a; 支謙譯 「梵網六十二見經」(T1, pp. 264a-270a) 등이다. 이 경은 ‘범천의 그물’ 혹은 당시 다른 스승들에 의해 가르쳐진 세계와 자아(自我)에 관한 62가지 이교도의 견해를 모두 포획하고 있는 완전한 그물이다.

41) 조준호, 「기복불교는 ‘불교’인가」, 『불교평론』 통권 제7호(2001, 여름), pp.24-25.

42) Itivuttaka, pp.111-112.

43) Itivuttaka, pp.101-102.

44) 『잡아함경』 제18권 「淨口經」; S. vol. III, p.189.

45) 조준호, 「초기경전에 나타난 재가자의 위상과 신행생활」, 『불교평론』 통권 제14호 (2003, 봄호), pp.136-137.

46) 조준호, 위의 글, p.137.

47) 조준호, 위의 글, p.137.

48) AN IV, p.227; 『사분율』 제53.

49) 조준호, 위의 글, p.138.

50) DN III, p.191.

51) 조준호, 위의 글,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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