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자료실/부파불교

마성 2012. 9. 13.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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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부, 설일체유부, 대승에서의 선정의 비교연구

 

 

월폴라 라훌라 지음

마성 옮김

 

* 이 글은 Walpola Rahula, "A Comparative Study of Dhyānas according to Theravāda, Sarvāstivāda and Mahāyāna," Zen & the Taming of the Bull, (London: Gorden Fraser, 1978), pp.101-109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 논문의 초역을 우연히 인터넷상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번역자를 알 수 없는 이 초역은 비교적 잘된 번역이지만, 이 논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각주가 빠지고 빨리어 문자도 정확히 표기하지 않아서 원래 논문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 같아서 부득이 역자가 다시 영어 원문과 대조하여 각주를 삽입하고 초역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보완하였다. (역자 주)

 

우리는 Suttapiṭaka(經藏)의 빨리(Pāli) Nikāya에서 色界四禪(rūpavacara-jhāna, 네 형상의 영역)’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Abhidhamma-piṭaka(論藏)의 빨리 텍스트의 한편에서는 四禪을, 다른 한편에서는 五禪을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Dhammasaṅgaṇi(法集論)』는 경(sutta)들에 나오는 四禪을 먼저 열거한 다음 이것을 ‘네 가지 방식(catukka-naya)’이라고 하고, 다시 다른 체계에 의해서 五禪을 제시하고 이를 ‘다섯 가지 방식(pañcaka-naya)’이라고 불렀다.1) 『Vibhaṅga(分別論)』 또한 보통 그렇듯 먼저 四禪을 제시한 다음 이를 ‘經에 의한 분별(suttanta-bhājaniya)’이라고 부르고, 다시 五禪을 제시하면서 이를 ‘아비담마에 의한 분별(Abhidhamma-bhājaniya)’이라고 정의하였다.2) 그러나 『Abhidhammatthasaṅgaha(攝阿毘達磨義論)』, 『Abhidhammamāvatāra(入阿毘達磨論)』와 같이 후대에 저작된 아비담마 빨리 문헌들은 단지 五禪만 말할 뿐,3) ‘네 방식과 다섯 방식’ 또는 ‘經 그리고 아비담마에 의한 분별’과 같은 구분을 완전히 무시하였다. 그러나 4세기 說一切有部의 아비달마 문헌인 Vasubandhu(世親)의 『Abhidharma-kośa(阿毘達磨俱舍論)』4)는 물론 같은 세기의 순전히 대승 아비달마 문헌인 Asaṅga(無著)의 『Abhidharma-samuccaya(阿毘達磨集論)』5)에는 단지 네 가지 色界禪(rūpāvacara-dhyāna)만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여덟 가지의 도달(aṭṭha-samāpatti, 八定)’만을 들어보았다. 즉, 色界四禪(rupavacara-jhana, 네 형상의 영역의 靜慮)과 無色界四禪(arupavacara-jhana, 네 형상이 없는 영역의 정려)을 합한 八定을 들을 뿐 결코 色界五禪과 無色界四禪을 포함한 九定을 들어본 적이 없다.

 

Dīgha-nikāya의 『Mahāparinibbāna-sutta(大般涅槃經)』는 붓다가 반열반(parinirvāṇa)에 들기 바로 직전에 色界四禪과 無色界四禪을 이루었으며, 또한 지각과 감각이 소멸된 선정, 즉 想受滅定 또는 滅盡定(saññāvedayitanirodhasamāpatti)6)을 이루었다고 말하고 있다. 만일 거기에 第五禪이 있었다면 붓다는 그때 거기에 이르렀을 것이고 그 사실이 여기에 언급되었을 것이다. 붓다가 色界의 第五禪을 이루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면 거기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빨리 원전의 經에는 나오지 않은 色界五禪의 목록이 아비달마에서 후대에 발전되었음이 명백하다. 그리고 『위방가』에서 ‘경전에 의한 분별’과 ‘아비담마에 의한 분별’이라는 용어는 바로 이를 가리키는 것 같다. 원전의 경들에는 그러한 구분이 없다.

 

후대의 아비담마 빨리 문헌은 정려의 요소, 구성원, 성분(jhāhaṅga, 禪支)들의 서로 다른 조합 때문에 五禪이 있다고 주장한다.7) 이 문헌들에 의하면 第一禪은 다섯 개의 요소로 구성되었는데 그것들을 단계적으로 하나씩 제거하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정려를 얻게 되며, 반면에 第五禪은 ‘행복(sukha, 樂)’의 자리에 ‘평정(upekkhā, 捨)’를 넣었다. 그 전체적인 구조는 다음과 같다.

 

靜   慮 | 구성요소

------|------------------------------------------------------------

第一禪 | vitakka vicāra pīti sukha ekaggatā

          | 추론(尋) 성찰(伺) 기쁨(喜) 행복(樂) 정신통일(一境性)

第二禪 |……………… vicāra pīti sukha ekaggatā

第三禪 |……………………… pīti sukha ekaggatā

第四禪 |…………………………   sukha ekaggatā

第五禪 |…………………………upekkhā ekaggatā

         |                             평정(捨)

 

그러나 상좌부(Theravāda), 설일체유부(Sarvāstivāda), 대승(Mahāyāna)은 禪定(dhyāna)에 대하여, 빨리 원전의 경에 얼마나 일치하고 있는가? 빨리 원전의 경은 보편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근거 있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기록으로 인정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가장, 그리고 궁극적 권위가 있는 근거로 삼는다.8)

 

빨리 원전에서 第一禪을 기술한 전형적인 공식을 보면 다음과 같다.

“vivica'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ṃ savicāraṃ vivekajaṃ pītisukhaṃ paṭhamajjhānaṃ.”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서, 불건전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서, 첫 정려(황홀경)에 이른다. 이것은 벗어남(해탈)을 낳는 것이며, 추론, 성찰, 기쁨, 행복을 얻는 것이다.)

 

이 형식은 단지 第一禪을 묘사했을 뿐이며, 그것은 요소나 성분을 나열하여 분석하지 않았다. 구성 요소를 분석하고 나열한 것은 아비달마의 문헌이다. 그래서 『위방가』에 의하면 第一禪은 추론(vitakka, 尋), 성찰(vicāra, 伺), 기쁨(pīti, 喜), 행복(sukha, 樂), 心一境性(ekaggatā)의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9)

 

『阿毘達磨集論』에 의하면 “第一禪은 다섯 요소를 가진다. 그 다섯 요소는 추론, 성찰, 기쁨, 행복, 심일경성이다.”10)  『阿毘達磨俱舍論』에 의하면 “第一禪에는 추론, 성찰, 기쁨, 행복, 정신집중이 있다.”11) 『아비담맛타상가하』에 의하면 “第一禪은 추론, 성찰, 기쁨, 행복, 심일경성으로 구성된다.”12)

 

모든 문헌들이 第一禪이 다섯 개의 요소로 구성되었다는 것에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위에서 인용했던 원전의 문장에는 네 가지 요소, 즉 추론, 성찰, 기쁨, 행복은 발견되지만 ‘심일경성(citt'ekaggatā)’이나 ‘정신집중(samādhi, 三昧)’에 대한 언급은 없다. Buddhaghosa는 이러한 사실을 명백히 주지시키는데, 그는 『Visuddhimagga(淸淨道論)』에서 비록 心一境性이 원래의 구절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위방가』에서 언급되기 때문에 이것을 第一禪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13)

 

선정은 心一境性을 가져야 하는 것이니 그래서 자유로이 추가했다는 입장을 취한다 하더라도, 원전의 경 구절에는 第一禪의 요소에 심일경성을 포함시킬 만한 근거가 없다. 어떤 유형의 생각을 하더라도 몇몇 정신활동에다 정신집중이 어느 정도 덧붙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론, 즉 『아비담맛타상가하』에서 心一境性을 모든 사고에 공통적인(sabbacittasādhāraṇa) 정신적 활동(cetasika)의 하나로 놓은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선정에 대해 말 할 때 한 요소로서 心一境性을 언급하는 것이 반드시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접촉(passa, 觸)’ 같은 다른 것도 언급될 수 있다.

 

第一禪에는 추론(vitakka)과 성찰(vicāra)이 있다. 그런데 진정한 심일경성이 추론이나 성찰과 함께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Asaṅga(無着)는 추론과 성찰은 ‘마음이 재잘대는 것(manojalpa)’이라 말했다. 추론은 무엇인가를 탐구할 때 마음이 재잘대는 것(paryeṣaka manojalpa)이며, 성찰은 무엇을 돌이켜보거나 반성할 때 마음이 재잘대는 것(pratyavekṣaka manojalpa)이다.14) 『Vijñaptimātratāsiddhi(瑜伽師地論)』에서 ‘탐구’란 ‘이것은 무엇인가?’하고 조사하는 것이고, ‘돌이켜 봄’ 또는 ‘성찰’이란 이미 알려진 것을 ‘그것은 이것이다’라고 주목하거나 관찰하는 것이라 정의하였다.15) 『위숫디막가』는 추론(vitakka)은 탐구하거나 조사(uhana)하는 것, 그리고 성찰(vicāra)은 따라서 움직이는 것 또는 둘레를 움직이는 것(anusancarana)이라 정의하였다.16)

 

이 모든 정의들에서 추론(vitakka)과 성찰(vicāra)은 둘 다 마음의 움직임이나 활동을 가리킨다. 『위숫디막가』 자체가 추론과 성찰에 의해 야기된 혼란 때문에 第一禪은 파도에 의해 흔들리는 물과 같다고 인정한다.17) 아무리 혼란이 미미할지라도 이러한 상태에서는 진정한 심일경성이 불가능하다.

 

Abhidhamma-piṭaka(論藏)의 문헌들과 『阿毘達磨集論』, 『阿毘達磨俱舍論』, 『아비담맛타상가하』와 같은 후대의 저작들을 제외하고는 心一境性이 第一禪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지만, 빨리 경전(sutta)들의 원래 구절에는 그렇게 나타내는 바가 없다.

 

진정한 심일경성이나 집중은 第二禪에서 나타나며, 이 단계에서는 추론과 성찰이 억제된다. 이것은 公式에서의 말에 보면 명확하다. 즉, ‘정신의 통일(cetaso ekodibhāvaṃ)’ 그리고 ‘집중이 생김(samādhijaṃ)’, 第二禪을 이렇게 묘사한다. 第二禪의 公式에서 ‘집중이 생김(samādhijaṃ)’에 대비해서 第一禪에서는 ‘초연 또는 자유가 생김(vivekajaṃ)’이 있다. 第一禪에 ‘집중이 생김(samādhijaṃ)’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초연 또는 자유가 생김(vivekajaṃ)’이 쓰인 것이 명백하다.

 

여기서 第二禪을 묘사한 公式을 살펴보자.

“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ajjhattaṃ sampasādanaṃ cetaso ekodibhāvaṃ avitakkhaṃ avicāraṃ samādhijaṃ pītisukhaṃ dutiyajjhānaṃ.” (추론과 성찰을 억제(제거)하여 두 번째 정려를 얻는다. 그것은 안으로 고요하다. 마음이 통일된다. 추론과 성찰 없이 집중이 생겨나서, 기쁨과 즐거움을 얻는다.)

 

이 역시 第二禪을 묘사했을 뿐 구성요소를 열거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방가』는 이렇게 말한다. 經에 의하면 第二禪이 네 가지 요소, 즉 고요함(sampasāda), 기쁨(pīti), 행복(sukha), 心一境性(cittassa ekaggat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阿毘達磨의 방식에 의하면, 그것이 세 가지 요소 즉, 기쁨(pīti), 행복(sukha), 一境性(ekaggatā)으로 구성되거나, 네 가지 요소, 즉 성찰(vicāra), 기쁨(pīti), 행복(sukha), 一境性(ekaggatā)로 구성된다고 한다.18)

 

여기서 어떻게 같은 靜慮(jhāna, 禪)가 세 개 또는 네 개의 요소로 구성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떤 第二禪은 경에서 네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다른 第二禪은 아비달마에서 셋에다가 ⅓짜리 하나를 더해서 네 개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경과 아비달마의 구분은 문자적인 작업이고, 선정은 그러한 고려와는 무관한 정신적인 문제이다. 수행자가 어떤 때는 經에 나온 선정에 이르고, 또 어떤 때는 아비달마에 나온 선정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모든 문자적인 구분과는 관계없이 선정에 이른다. 선정에 대해서 누가 어찌 설명하든 간에, 第二禪은 똑같을 뿐이다. 그 본래의 특질이 왔다 갔다 할 수는 없다.

 

만약 第二禪이 어떤 한 방식으로 네 요소의 집합으로 구성되었거나, 다른 방식으로 다른 네 요소의 집합으로 구성되었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세 요소의 집합으로 구성되었다면 그것이 하나가 아니라 세 개의 다른 선정이라고 인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선정이란 다만, 몇 개의 정신-신체적 성질들이 일어나는 것을 주어진 조합으로 가리키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요소들의 조합과 다르게 선정의 조합이라고 취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선정의 조합이 추가하거나, 빼거나, 치환해서 바뀐다면, 특정한 선정은 그 성격이 변하거나 다른 것이 되고 만다.

 

언어 표현상의 편의를 위하여 우리는 보통 이러저러한 선정이 여러 요소들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러저러한 선정이란 이러저러한 요소들의 조합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위방가』는 그 자체에 요소들의 목록을 나열해서만 선정을 정의하였다. 그래서 예를 들면 第一禪은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그 정려는 추론, 성찰, 기쁨, 행복, 심일경성을 뜻한다.”19) 『위숫디막가』는 이 점을 더욱 명확히 하고 있다. “이들 다섯(성질들)이 일어날 때 그 정려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그 정려의 다섯 구성요소라 불린다. 그리하여 그것들로 구성되는, 정려라 부르는 다른 것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20)

 

『위숫디막가』는 이렇게 결론짓는다. 비록 『위방가』는 第二禪이 經에 있는 것들 중에 하나인 ‘고요함(sampasāda)’이 포함된 네 요소로 구성된다고 말하지만, 아비달마 체계에 따른다면 ‘고요함’을 빼버린 세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론짓는다.21) 그러나 아비달마 문헌과 주석서들보다는 원전의 經의 구절을 권위있게 받아들이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다.

 

第二禪을 기술할 때 (위에 언급한) 원래의 公式에서 몇 개의 요소를 볼 수 있는가?

 

다음과 같은 말들, ‘추론과 성찰의 억제(제거)에 의하여(vitakka-vicārānaṃ vūpasamā)’, 그리고 ‘추론과 성찰이 없이(avitakkhaṃ avicāraṃ)’는 추론과 성찰이 第一禪에는 있었지만 여기서는 없음을 가리킨다. 두 번째 정려에 있는 것은 ‘내면의 고요함(ajjhattaṃ sampasādanaṃ)’, ‘마음의 통일(cetaso ekodibhāvaṃ)’, ‘집중이 생김(samādhijaṃ)’, ‘기쁨과 행복(pītisukhaṃ)’ 등으로 표현된다.

 

이 용어들에서 본다면, 第二禪으로서 세 요소보다 네 요소, 즉 고요함(sampasāda), 기쁨(pīti), 행복(sukha), 心一境性(cittassa ekaggatā)을 인정하게 된다. ‘ajjhattaṃ sampasādanaṃ’은 고요함(sampasāda)을 가리키며, ‘cetaso ekodibhāvaṃ’과 ‘samādhijaṃ’은 心一境性(citt'ekaggatā)을 정의한다. Pīti와 sukha는 분명히 기쁨과 즐거움이다.

 

『아비달마집론』은 經의 원문에 충실히 따르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第二禪은 네 요소로 구성된다. 즉, 내면의 고요함(adhyātmasamprasāda), 기쁨(prīti), 행복(sukha), 心一境性(cittaikagrata)이다.22) 『아비달마구사론』 또한 第二禪으로서 위의 네 요소를 언급하고 있다.23)

 

그러면 第三禪으로 넘어가서 빨리 원전의 經 구절을 보자.

 

"Pītya ca virāgā upekk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 ca kāyena paṭisaṃvedeti, 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jjhānaṃ." (기쁨에도 초연하여, 평정에 (머무르고), 깨어있고 알아차리면서, 몸소 행복함을 누린다. 그리고 第三禪을 얻는다. 거룩한 이는 이를 ‘평정, 깨어있음, 행복에 머무는 것’이라 부른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第一禪, 第二禪의 정의보다 명확하지 않다.

 

이에 대해 『위방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전에 의하면 第三禪에는 다섯 요소가 있는데, 평정(upekkhā), 깨어있음(sati, 念), 알아차림(sampajañña, 正知), 행복(sukha), 心一境性(cittassekaggatā)이다. 아비달마에 의하면 두 요소, 즉 행복과 心一境性이 있다.24) 『위숫디막가』는 먼저, 아비담마의 방식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결정해 버린다.25)

 

『아비달마집론』은 역시 원전에 충실히 따르면서, 第三禪이 다섯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말한다. 즉, 평정(upekṣā), 깨어있음(smṛti), 알아차림(samprajanya), 행복(sukha), 심일경성(cittaikāgratā)이다.26)

 

『아비달마구사론』 또한 第三禪이 다섯 요소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평정(upekṣā), 깨어있음(smṛti), 지혜(prajñā), 행복(sukha), 안정(sthiti)이다.27) 여기서는 알아차림(samprajanya) 대신에 지혜(prajñā, 般若), 심일경성(cittaikāgratā) 대신에 안정(sthiti)을 대치시킨 것만 다르다. 『위방가』는 sampajaññā (Skt. samprajanya)라는 용어는 곧 paññā (Skt. prajñā)이고,28) samādhi(三昧)라는 용어는 곧 마음의 안정(cittassa ṭhiti)이라고 설명한다.29) 또한 정신통일(cetaso ekodibhāvaṃ)은 마음의 안정(cittassa ṭhiti)이라고 설명한다.30) 그래서 알아차림(samprajanya)을 지혜(prajñā)로, 심일경성(cittaikāgratā)을 안정(sthiti)으로 대체시킨 것은 아주 타당하다.31) (여기서, 『Abhidharmakośakārikā(阿毘達磨俱舍論頌)』이 운문으로 쓰여 있듯이, 이 짧은 상당어는 운율을 맞추기 위해 필수적임을 알아두어야 한다.)

 

원전의 經의 公式에 의하면 第三禪에 몇 개의 요소가 있을까? ‘기쁨으로부터도 초연함(pītiyā ca virāgā)’이라는 말은 第二禪에 있었던 기쁨이 여기서는 소멸되었음을 보여준다. 그 다음에 나오는 용어들은 第三禪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가리킨다. ‘평정에 머무름(upekkhako ca vihārati)’이라는 말에 의하여 평정(upekkhākā)이 한 구성요소임이 분명해 진다. ‘깨어있고 알아차리는(sato ca sampajāno)’이라는 말이 깨어있음(sati), 알아차림(sampaiañña)을 제공한다. ‘그리고 몸소 행복을 누린다(sukhañ ca kāyena paṭisaṃvedeti)’에서 행복(sukha) 또한 구성요소의 하나로 포함시켜야 한다. 그리고 다시 세 요소, 평정(upekkhā), 깨어있음(sati), 행복(sukha)이 다음 구절에서 반복되고 있다. 즉, ‘거룩한 이는 이를 평정, 깨어있음, 행복에 머무는 것이라 부른다(yaṃ taṃ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결국 원전의 구절에는 네 요소, 즉 평정(upekkhā), 깨어있음(sati), 알아차림(sampajañña), 행복(sukha)이 第三禪에 있는 것이다.32)이 구절에는 심일경성을 가리키는 특정한 단어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第二禪에서 언급되었기 때문에, 일경성(ekaggatā)은 第三禪의 요소로 합당하게 취해질 수 있다.

 

그래서 빨리 원전에는 第三禪이 다섯 요소로 구성되었다. 즉, 평정(upekkhā), 깨어있음(sati), 알아차림(sampajañña), 행복(sukha), 一境性(ekaggatā)인데, 이것은 『아비달마집론』과 『아비달마구사론』에서 언급한 바와 완전히 일치한다.

 

그러면 경에서 第四禪을 묘사한 내용을 보자.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ṃ atthaṅgamā adukkhaṃ 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 catutthajjhānaṃ." (행복과 괴로움을 여의어서, 기쁨과 슬픔은 이미 사라져서, 第四禪을 얻게 된다. 이것은 행복하지도 괴롭지도 않으며, 평정과 깨어있음의 순수이다.)

 

이것도 第四禪을 묘사했을 뿐이고 그 요소들을 열거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방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전에 의하면 이것은 세 요소, 즉 평정(upekkhā), 깨어있음(sati), 심일경성(cittekaggatā)으로 구성되었으며,33) 아비담마에 의하면 두 요소, 즉 평정(upekkhā), 깨어있음(sati)으로 구성되었다. 󰡔위방가󰡕는 다섯 가지 정려를 고려하는 데, 第四禪이 행복(sukha)과 일경성(ekaggatā)으로 구성되어 있고, 第五禪은 평정(upekkhā)과 일경성(ekaggatā)으로 구성되어 있다.34) 『위숫디막가』는 第四禪이 평정(upekkhā)과 일경성(ekaggatā)의 두 요소를 가진다고 결정했다.35)

 

『아비달마집론』과 『아비달마구사론』은 둘 다 第四禪이 네 요소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즉, ‘평정의 순수(upekṣāpāriśuddhi)’, ‘깨어있음의 순수(smṛtipāriśuddhi)’, ‘고통도 행복도 느끼지 않음(aduḥkha-asukhavedanā)’, ‘심일경성(cittaikāgratā)’으로 구성된다.36)

 

당연히 원전의 經의 구절에서 第四禪의 요소를 몇 개나 볼 수 있을까 하고 묻게 된다.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 somanassadomanassānam atthaṅgamā." (행복과 괴로움을 여의어서 … 기쁨과 슬픔은 이미 사라져서)라는 대목을 미루어 보아도 第四禪에는 행복, 고통, 기쁨, 슬픔의 느낌이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어떤 아비담마 문헌에서 주장하는 것 같은, 第四禪에 행복(sukha)이 있다는 말은 있을 수 없다.) ‘행복하지도 괴롭지도 않으며, 평정하고 깨어있음의 순수이다.’ (adukkhaṃ asukhaṃ upekkhāsatipārisuddhiṃ)라는 말에서 구성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위방가』는 第四禪에 ‘행복하지도 괴롭지도 않으며’를 요소로써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상가(무착)와 와수반두(세친)는 둘 다 이를 그 요소로 취했다.

 

다음에 ‘upekkhāsatipārisuddhiṃ’은 분석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이것이 ‘평정의 순수와 깨어있음의 순수’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평정하여 일어나는 깨어있음의 순수’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위숫디막가』37)는 『위방가』38)에서 설명한 것처럼 후자를 받아들였다. 즉, “깨어있음은 평정에 의해서 열리고, 깨끗해지고, 정화된다. 그러므로 ‘평정에 의한 깨어 있음의 순수(upekkhāsatiparisuddhi)’라 부른다.” 이것은 그 표현이 평정하여 일어나는 깨어있음의 순수를 의미하지, 평정의 순수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런데도 『위방가』는 위에서 보았듯이 평정(upekkhā)을 第四禪의 요소에 포함시킨다.

 

아상가와 와수반두는 둘 다 그 표현이 ‘평정의 순수(upekṣāpāriśuddhi)’와 ‘깨어있음의 순수(smṛtipāriśuddhi)’를 정의한다고 확신하였다. 그래서 그 둘을 第四禪의 요소로 하였다.

 

대승 아비달마와 설일체유부 아비달마에 나오는 禪定(dhyāna)에 대한 교설이 상좌부 아비담마, 특히 후대의 상좌부 아비담마 문헌들보다 빨리 원전 經(sutta)에 더 부합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끝】

 

Notes:

1) Dhs. (PTS), pp. 31-36.

2) Vbh. PTS), pp. 256-271.

3) Abhidhammatthasaṅgaha, ed. Siri Devamitta (1929), p. 3; Abhidhammamāvatāra (PTS), p. 4.

4) Abhidharmakośa, Ch. VIII, vv. 7-9.

5) Abhidharmasamuccaya of Asaṅga, ed. Pradhan (1950), p. 68, or Le Compendium de la Super-Doctrine (Philosophie) (Abhidharmasamuccaya) d'Asaṅga, traduit et annoté par W. Rahula, Paris 1971, p. 111.

6) D (PTS), p. 156.

7) Jhānaṅgayogabhedato pañcavidhaṃ (Abhidhammāvatāra p. 4). jhānaṅgabhedena pañcadhā- vibhāgaṃ (Abhidhammatthavibhāvinī-ṭīkā, Vidyodaya Ṭīkā Ⅰ, p. 50).

8) The stereotype formulas of the four jhānas are found in the suttas throughout the Pāli Nikāyas: D Ⅰ, pp. 73-75, 182-183; Ⅱ, p.186; Ⅲ, pp. 78, 131, 222; M Ⅰ, pp. 159, 181, 435-436; A Ⅰ, pp. 53, 168, 182; S Ⅱ, pp. 210-211; Ⅳ, p.263 ff.; Ⅴ, p.213 ff.

9) Vbh., p. 257.

10) Abhisamuc., p. 68: Prathamaṃ dhyānaṃ pañcāṅgam. Pañcāṅgāni: vitarko vicāraḥ prītiḥ sukhaṃ cittaikāgratā ca.

11) Kośa, Ⅷ, 7: pañc'ādye tarkacārau ca prītisukha-samādhayaḥ. Here the term samādhi is used in place of cittaikāgratā. Both terms (samādhi and cittaikāgratā) denote the same thing. The Cullavedallasutta of M (p. 301) says: Yā kho āvuso Visākha cittassa ekaggatā, ayaṃ samādhi. 'Friend Visākha, that which is one-pointedness of mind, this is concentration'.

12) Abhisangaha, p. 3; vitakka-vicāta-pīti-sukh'ekaggatāsahitaṃ.

13) Tattha cittekaggatā, kiñcāpi savitakkaṃ savicāranti imasmiṃ pāṭhe na niddiṭṭha, tathā' pi. Vibhaṅge: jhānanti vitakko vicāro pīti sukhaṃ cittekaggatā'ti vuttattā, aṅgam eva (Vsm., p. 147). 'Although the one-pointedness of mind is not indicated in the passage beginning with savitakkaṃ savicāraṃ, yet it is indeed a factor because it is said in the Vibhaṅga that the jhāna means reasoning, reflection, joy, happiness and one-pointedness of mind'.

14) Abhisamuc., p.10.

15) paryeṣakaḥ kim etad iti nirūpanākārapravṛttiḥ … pratyavekṣako manojalpa eva, idaṃ tad iti pūrvādhigatanirūpanāti. (Vijñapti, p. 32).

16) Vsm., p. 142.

17) Ibid., p. 157: paṭhamajjhānaṃ vitakkavicārakkhobhena vīcitaraṅgasamākulam iva jalaṃ.

18) Vbh., pp. 258, 263, 264. This analysis of the second jhāna as being composed of three and four factors according to the Abhidhamma provides in fact two separate jhānas. Hence the list of five jhanas in the Abhidhamma texts which is not found in the original suttas. How the four jhānas become five is explained in Vsm., p. 169: yaṃ catukkanaye dutiyaṃ, taṃ dvidhā bhiditvā pañcakanaye dutiyañ c'eva tatiyañ ca hoti. Yañ ca tattha tatiyacatutthāni, tān'idha catutthapañcamāni honti. Paṭhamaṃ paṭhamaṃ evā ti. 'What is second in the Method of four, by splitting it into two, becomes second and third in the Method of Five. The third and fourth there (in the Method of Four) become fourth and fifth here (in the Method of Five). The first is the same first (in both methods)'.

19) Vbh., p. 257: Jhānan ti vitakko vicāro pīti sulhaṃ cittassa ekaggatā.

20) Vsm., p. 146: Uppannesu hi etesu pañcasu jhānaṃ uppannaṃ nāma hoti. Ten'assa etāni pañca samannāgataṅgānīti vuccanti. Tasmā na etehi samannāgataṃ aññad eva jhānaṃ nāma atthīti gahetabbaṃ.

21) Bur it is curious that the later Abhidhamma texts like the Abhidhammatthasaṅgaha always maintain that second jhāna is composed of four factors: vicāra, pīti, sukha, ekaggatā. However, this is contrary to the original sutta passage which definitely says that vitakka and also vicāra are eliminated in it. Further, S Ⅳ, p. 217 clearly says that in the second jhāna, vitakka and vicāra cannot be a factor of the second jhāna.

22) Abhisamuc., p. 68: dvitīyaṃ dhyānaṃ caturaṅgam. Catvāryaṅgāni: adhyātmasamprasādaḥ prītiḥ sukhaṃ cittakāgratā ca.

23) Kośa, Ⅷ, 7: prītyādayaḥ prasādaś ca dvitīye' ṅgacatuṣṭayam. 'In the second (dhyāna) there are four factors: joy etc. (i.e. joy, happiness, one-pointedness of mind) and serenity'.

24) Vbh., pp. 260, 264.

25) Vsm., p. 164.

26) Abhisamuc., p. 68: Tṛtīyaṃ dhyānaṃ pañcāāgam. Pañcāṅgāni: upekṣā smṛtiḥ samprajanyaṃ sukkaṃ cittakāgratā ca.

27) Kośa, Ⅷ, 8: tṛtīye pañca tūpekṣā smṛtiḥ prajñā sukhaṃ sthitiḥ.

28) Vbh., p. 259: Tattha katamaṃ sampajaññaṃ? Yā paññā pajānanā …

29) Ibid., p. 217: Tattha katamā samādhi? Yā cittassa ṭhiti sanṭhiti

30) Ibid., p. 258: Cetaso ekodibhāvanti yā cittassa ṭhiti.

31) Very often ekāgratā is used for cittaikāgratā; similarly sthiti is used for cittasthiti.

32) Here one may question whether both sukha 'happiness' and upekhā 'equanimity' can exist together. The Abhidharmakośa (traduction de La Vallée Poussin, Ⅷ, p. 148) explains that upekṣā here is the saṃskāropekṣā (equanimity in formation) and not vedanopekṣā (equanimity in feeling). But the Vsm., p. 162 says it is the jhānupekkhā (equanimity in Jhāna).

33) Vbh., p. 261.

34) Ibid., p. 264.

35) Vsm., p. 168.

36) Abhisamuc., p. 68: Caturthaṃ dhyānaṃ caturaṅgam. Catvāryaṅgāni: upekṣāpāriśuddhisḥ aduḥkasukhā vedanā cittaikāgratā ca. And kośa (traduction de La vallée Poussin), Ⅷ, p. 148.

37) Vsm., p. 167: upekkhāya janitasatiyā pārisuddhiṃ.

38) Vbh., p. 261: ayaṃ sati imāya upekkhāya vivaṭā hoti parisuddhā pariyodātā, tena vuccati upekkhāsatipārisuddhin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