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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 2013. 12. 21. 00:02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

3 비품(悲品)

 

- 『優婆塞戒經』1 悲品第三(『大正藏』24, p.1036a-b) -

 

北涼中印度三藏曇無讖譯

摩聖譯解

 

[原文] 善生言: 世尊, 彼六師等, 不說因果, 如來今說, 因有二種, 一者生因, 二者了因. 如佛初說, 發菩提心, 為是生因? 是了因耶?

[譯文] 선생(善生)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육사(六師)들은 인과를 말하지 않습니다. 여래께서는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생인(生因)이요, 두 번째는 요인(了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처음에 말씀하신 보리심을 발한다는 것은 생인(生因)입니까 요인(了因)입니까?”

[解釋] 육사(六師)는 육사외도(六師外道)의 줄임말이다. 육사외도란 붓다와 거의 같은 시대에 갠지스 강 중류 지역에서 세력을 떨친, 베다(Veda) 성전(聖典)의 권위를 부정한 여섯 명의 사상가를 말한다. 이른바 뿌라나 깟사빠(Pūraṇa Kassapa),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āla), 아지따 께사깜발린(Ajita Kesakambalin 또는 Kesakambala), 빠꾸다 깟짜야나(Pakudha Kaccāyana), 산자야 벨랏티뿟따(Sañjaya Belaṭṭhiputta), 니간타 나따뿟따 (Nigaṇṭha Nātaputta) 등이다.

 

첫째, 뿌라나 깟사빠(Pūraṇa Kassapa)도덕 부정론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일반 세간에서 인정되고 있던 선악의 행위와 그 행위가 초래하게 될 미래의 과보를 모두 부정했다.

 

둘째,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āla)숙명론자였다. 그는 인간의 의지에 근거한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에 의한 윤회전생을 부정하는 등 일종의 결정론적인 숙명론을 주장했다. 이 파는 사명파(邪命派, Ājīvika)라고 불렸다.

 

셋째, 아지따 께사깜발린(Ajita Kesakambalin)인도에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유물론자이다. 그는 지()()()()의 네 가지 물질적 원소만이 참된 실재라 하여 영혼의 존재를 부정했다. 인간은 지풍의 사대로부터 생겼으며 누구든지 죽으면 신체가 파멸되고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단멸론(斷滅論, ucchedavāda)을 주장했다. 짜르와까(Cārvāka) 혹은 순세외도(順世外道)’로 불린다.

 

넷째, 빠꾸다 깟짜야나(Pakudha Kaccāyana)도 유물론적인 경향을 가진 사상가이다. 그는 지()()()() 네 가지 원소 이외에 고()()영혼(命我) 등 세 가지 원소를 더하여 일곱 가지 요소의 실재를 주장했다.

 

다섯째, 산자야 벨랏티뿟따(Sañjaya Belaṭṭhiputta)대표적인 회의론자이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뱀장어처럼 미끈미끈하여 좀처럼 붙잡을 수 없는 교설’(amarāvikhepa-vāda, 捕鰻論)로 일컬어진다. 붓다의 상수제자였던 사리뿟따(Sāriputta, 舍利弗)와 목갈라나(Moggalāna, 目犍連)도 원래는 산자야의 제자였다.

 

여섯째, 니간타 나따뿟따(Nigaṇṭha Nātaputta)자이나교의 개조 마하위라(Mahāvīra)를 불교도들이 부르는 이름이다. 니간타(Nigaṇṭha, 속박을 벗어난 자)라고 하는 것은 그 이전에 존재하였던 종교적 단체의 명칭이며, 나따뿟따(Nātaputta)는 나따(Nāta)족 출신의 사람이란 뜻이다. 본명은 밧다마나(Vaddhamāṇa, Vardhamāṇa, 增長, 번영하는 자)인데 크게 깨쳤으므로 마하위라(Mahāvīra, 大雄, 위대한 영웅) 혹은 지나(jina, 勝者, 수행을 완성한 자)로 존칭되고 있다. 그의 가르침과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자이나(Jaina)라고 부른다.

 

생인(生因)은 어떠한 현상이 생기게 된 원인 혹은 어떠한 결과를 초래한 원인을 말한다. 요인(了因)은 인식 근거를 말한다.

 

[原文] 善男子! 我為眾生, 或說一因, 或說二因, 或說三因, 或說四因, 或說五因, 或說六七至十二因.

[譯文] “선남자여, 나는 중생을 위하여 혹은 한 가지 인()을 말하고, 혹은 두 가지 인을 말하고, 혹은 세 가지 인을 말하고, 혹은 네 가지 인을 말하고, 혹은 다섯 가지 인을 말하고, 혹은 여섯 일곱 가지에서 십이인(十二因)까지 말하느니라.”

 

[原文] 言一因者, 即生因也. 言二因者, 生因了因. 言三因者, 煩惱業器. 言四因者, 所謂四大. 言五因者, 未來五支. 言六因者, 如契經中所說六因. 言七因者, 如法華說. 言八因者, 現在八支. 言九因者, 如大城經說. 言十因者, 如為摩男優婆塞說. 十一因者, 如智印說. 十二因者, 如十二因緣.

[譯文] 하나의 인이라고 하는 것은 생인(生因)이며, 두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생인(生因)과 요인(了因)이며, 세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번뇌(煩惱)()()이며, 네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사대(四大), 다섯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미래의 오지(五支)이며, 여섯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계경(契經) 중에 말한 육인(六因)이며, 일곱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법화(法華)에서 말한 것과 같으며, 여덟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의 팔지(八支)이며, 아홉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대성경(大城經)에서 설한 바와 같으며, 열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마남(摩男) 우바새를 위하여 설한 것과 같으며, 열한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지인(智印)에서의 설명과 같으며, 열두 가지 인이라고 하는 것은 십이인연(十二因緣)과 같으니라.

[解釋] 오지(五支)란 십이연기(十二緣起)를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로 분류했을 때, 미래의 두 가지 과보인 생()과 노사(老死)와 여기서 생기는 번뇌인 애(), (), ()를 말한다. 팔지(八支)란 십이연기를 삼세양중인과로 분류했을 때, 현재의 다섯 가지 과보인 식(), 명색(名色), 육처(六處), (), ()와 현재의 번뇌인 애(), (), ()를 말한다.

 

[原文] 善男子! 一切有漏法, 無量無邊因, 一切無漏法, 無量無邊因. 有智之人, 欲盡知故, 發菩提心, 是故如來名一切智.

[譯文] 선남자여, 모든 유루법(有漏法)의 무량무변한 인과, 모든 무루법(無漏法)의 무량무변한 인을 지혜가 있는 사람은 다 알고자 하기 때문에 보리심을 발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를 일체지(一切智)라고 하느니라.

 

[原文] 善男子! 一切眾生, 發菩提心, 或有生因, 或有了因, 或有生因了因.

[譯文]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보리심을 발하는데 혹은 생인이 있고, 혹은 요인이 있고, 혹은 생인과 요인이 있느니라.

 

[原文] 汝今當知. 夫生因者, 即是大悲. 因是悲故, 便能發心, 是故悲心, 為生因也.

[譯文] 너는 이제 마땅히 알라, 대저 생인이라고 하는 것은 곧 대비(大悲)이니라. 이 가엾어() 함으로 인하여 능히 발심하나니, 이러므로 비심(悲心)은 생인이 되느니라.”

 

[原文] 世尊! 云何而得, 修於悲心?

[譯文] “세존이시여, 어떻게 비심을 닦을 수 있나이까.”

 

[原文] (1) 善男子! 智者深見, 一切眾生, 沈沒生死, 苦惱大海, 為欲拔濟, 是故生悲.

[譯文] “선남자여, 지혜로운 자는 깊이 모든 중생들이 생사 고뇌의 큰 바다에 침몰(沈沒)해 있는 것을 보고, 이를 건지고자 한다. 이 때문에 슬픈 마음[悲心]을 일으키느니라.

[解釋] ‘지혜로운 자[智者]’는 불()보살(菩薩)을 말한다. 슬픈 마음[悲心]이란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말한다.

 

[原文] (2) 又見眾生, 未有十力, 四無所畏, 大悲三念, 我當云何, 令彼具足,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십력(十力), 사무소외(四無所畏), 대비(大悲)의 삼념(三念)을 갖추지 못하였음을 보고, 내가 어떻게 해야 저들로 하여금 그런 능력을 구족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解釋] 십력(十力)이란 부처만이 갖추고 있는 열 가지 지혜의 능력을 말한다. 처비처지력(處非處智力): 이치에 맞는 것과 맞지 않는 것을 분명히 구별하는 능력. 업이숙지력(業異熟智力): 선악의 행위와 그 과보를 아는 능력. 정려해탈등지등지지력(靜慮解脫等持等至智力): 모든 선정(禪定)에 능숙함. 근상하지력(根上下智力): 중생의 능력이나 소질의 우열을 아는 능력. 종종승해지력(種種勝解智力): 중생의 여러 가지 뛰어난 판단을 아는 능력. 종종계지력(種種界智力): 중생의 여러 가지 근성을 아는 능력. 변취행지력(遍趣行智力): 어떠한 수행으로 어떠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 지를 아는 능력. 숙주수념지력(宿住隨念智力): 중생의 전생을 기억하는 능력. 사생지력(死生智力): 중생이 죽어 어디에 태어나는 지를 아는 능력. 누진지력(漏盡智力): 번뇌를 모두 소멸시키는 능력이다.

 

사무소외(四無所畏)는 사무외(四無畏)라고도 한다. 부처가 가르침을 설할 때,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두려움이 없는 네 가지를 말한다. 정등각무외(正等覺無畏):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이루었으므로 두려움이 없음. 누영진무외(漏永盡無畏): 모든 번뇌를 끊었으므로 두려움이 없음. 설장법무외(說障法無畏): 끊어야 할 번뇌에 대해 설하므로 두려움이 없음. 설출도무외(說出道無畏): 미혹을 떠나는 수행 방법에 대해 설하므로 두려움이 없음을 말한다.

 

삼염(三念)은 삼염주(三念住)라고도 한다. 삼염주란 어떠한 경우에도 동요하지 않고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에 안주하는 부처의 경지를 세 가지로 나눈 것을 말한다. 제일염주(第一念住): 중생의 공경을 받아도 기뻐하지 않고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에 안주함. 제이염주(第二念住): 중생의 공경을 받지 않아도 근심하지 않고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에 안주함. 제삼염주(第三念住): 어떤 중생에게는 공경 받고 어떤 중생에게는 공경 받지 않아도 기뻐하거나 근심하지 않고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에 안주함을 말한다.

 

[原文] (3) 又見眾生, 雖多怨毒, 亦作親想,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비록 원한과 삼독심(三毒心)이 많더라도 역시 친밀한 생각을 내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解釋] 삼독(三毒)이란 열반에 이르는 데 장애가 되는 가장 근본적인 세 가지 번뇌를 말한다.

탐욕(貪欲)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를 말한다. ()()()라고도 함. ,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을 말한다.

 

[原文] (4) 又見眾生, 迷於正路, 無有示導,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바른 길을 모르며, 보이고 인도할 사람이 없음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5) 又見眾生, 臥五欲泥, 而不能出, 猶故放逸,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오욕(五欲)의 수렁에 빠져서 스스로 나오지 못하면서도 오히려 방일(放逸)함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解釋] 오욕(五欲)이란 색()()()()()에 집착하여 일으키는 색욕(色欲)성욕(聲欲)향욕(香欲)미욕(味欲)촉욕(觸欲). 또는 욕망의 대상인 색촉을 말한다.

 

[原文] (6) 又見眾生, 常為財物, 妻子纏縛, 不能捨離,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항상 재물과 처자(妻子)들 때문에 얽매여 있지만 스스로 이를 버리고 여의지 못함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7) 又見眾生, 以色命故, 而生憍慢,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미모와 직업 때문에 교만한 마음을 내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8) 又見眾生, 為惡知識之所誑惑, 故生親想, 如六師等,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악지식(惡知識)에게 미혹되어 친근한 생각을 내는 것이 육사(六師) 등과 같음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내느니라.

[解釋] 악지식(惡知識)이란 선지식(善知識)의 반대말이다. ‘좋지 못한 친구라는 뜻도 있지만, 외도(外道)의 가르침을 말한다.

 

[原文] (9) 又見眾生, 墮生有界, 受諸苦惱, 猶故樂著,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생유(生有)의 계()에 떨어져서 모든 고뇌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이를 즐거워하고 겨 집착하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解釋] 생유(生有)란 사유(四有)의 하나이다. 중생이 죽어 다음의 어떤 생이 결정되는 순간을 말한다. 사유(四有)란 중생이 살다가 죽어 다음의 어떤 생에 이르는 과정을 네 가지로 나눈 것. 중유(中有): 죽어서 다음의 어떤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 생유(生有): 어떤 생이 결정되는 순간. 본유(本有): 어떤 생이 결정된 후부터 죽을 때까지. 사유(死有): 죽는 순간을 말한다.

 

[原文] (10) 又見眾生, 造身口意, 不善惡業, 多受苦果, 猶故樂著,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몸과 입과 뜻으로 불선(不善)한 악업을 지어서 많은 괴로움의 과보[苦果]를 받으면서도 오히려 이를 즐거워하고 집착하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11) 又見眾生, 渴求五欲, 如渴飲鹹水,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오욕을 갈구(渴求)함이 목마를 때 짠물을 마시는 것과 같음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解釋] 함수(鹹水)는 짠물, 바닷물을 말한다.

 

[原文] (12) 又見眾生, 雖欲求樂, 不造樂因, 雖不樂苦, 喜造苦因, 欲受天樂, 不具足戒,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비록 즐거움을 구하고자 하나 즐거움을 가져오는 원인은 짓지 않고, 비록 괴로움을 좋아하지 않으나 괴로움의 원인을 즐겨 짓고, 천상의 즐거움을 받고자 하나 계행을 구족하지 않음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13) 又見眾生, 於無我我所, 生我我所想,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아()와 아소(我所)가 없는데, 아와 아소라는 생각을 내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14) 又見眾生, 無定有性, 流轉五有,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정해져 있는 성품이 없어서 오유(五有)에 유전(流轉)함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解釋] 여기서 말하는 오유(五有)는 육도(六道) 가운데 천도(天道)를 제외한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도(人道)를 의미하는 것 같다. 육도(六道)의 도()는 상태 혹은 세계를 뜻한다.

 

[原文] (15) 又見眾生, 畏生老死, 而更造作, 生老死業,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생사를 두려워하면서도 다시 생사를 가져오는 업()을 짓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16) 又見眾生, 受身心苦, 而更造業,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다시 업을 짓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17) 又見眾生, 愛別離苦, 而不斷愛,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을 당했으면서도 사랑[愛着]을 끊지 않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解釋] 애착(愛着)이란 무상(無常)의 불가피함을 모르고 괴로운 인간 세계에 집착하는 일을 의미한다. 애착심(愛着心)이란 단념을 못하고 애착하는 마음을 말한다.

 

[原文] (18) 又見眾生, 處無明闇, 不知熾然, 智慧燈明,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무명(無明)의 어둠속에 있으면서도 활활 타오르는 지혜의 등불을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19) 又見眾生, 為煩惱火之所燒然, 而不能求, 三昧定水,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번뇌의 불에 타면서도 능히 삼매(三昧)의 정수(定水)를 구하지 않음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20) 又見眾生, 為五欲樂, 造無量惡,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오욕락(五欲樂)을 위하여 한량없는 악업(惡業)을 짓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21) 又見眾生, 知五欲苦, 求之不息, 譬如飢者, 食於毒飯,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오욕락(五欲樂)의 괴로움을 알면서도 쉬지 않고 이를 구하는 것이 마치 굶주린 자가 독이 들어있는 밥을 먹는 것과 같음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22) 又見眾生, 處在惡世, 遭值虐王, 多受苦惱, 猶故放逸,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험악한 세상[惡世]에 살면서 포악(暴惡)한 왕을 만나 많은 괴로움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방일함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23) 又見眾生, 流轉八苦, 不知斷除, 如是苦因,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팔고(八苦)에 유전(流轉)하면서 이러한 괴로움의 원인을 끊어 없앨 줄을 알지 못함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解釋] 팔고(八苦)란 중생이 겪는 여덟 가지 괴로움을 말한다. 생고(生苦): 이 세상에 태어나는 괴로움. 노고(老苦): 늙어 가는 괴로움. 병고(病苦): 병으로 겪는 괴로움. 사고(死苦): 죽어야 하는 괴로움.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거나 살아야 하는 괴로움. 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 오성음고(五盛陰苦): ()()()()()의 오음(五陰)에탐욕과 집착이 번성하므로 괴로움이다.

 

[原文] (24) 又見眾生, 飢渴寒熱, 不得自在,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등에 자재함을 얻지 못함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25) 又見眾生, 毀犯禁戒, 當受地獄, 餓鬼畜生,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금계(禁戒)를 범하여 마땅히 지옥과 아귀와 축생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26) 又見眾生, 色力壽命, 安隱辯才, 不得自在,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색력(色力), 수명(壽命), 안온(安穩) 및 변재(辯才)에 자재함을 얻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解釋] 여기서 말하는 색력(色力)은 색욕(色欲), 곧 남녀 간의 성욕 혹은 색정(色情)을 의미하는 것 같다.

 

[原文] (27) 又見眾生, 諸根不具,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모든 육근(六根)을 갖추지 못한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解釋] 육근(六根)이란 대상을 감각하거나 의식하는 여섯 가지 기관 혹은 기능을 말한다. 안근(眼根): 모양이나 빛깔을 보는 시각 기관인 눈. 이근(耳根): 소리를 듣는 청각 기관인 귀. 비근(鼻根): 향기를 맡는 후각 기관인 코. 설근(舌根): 맛을 느끼는 미각 기관인 혀. 신근(身根): 추위나 아픔 등을 느끼는 후각 기관인 몸. 의근(意根): 의식 기능 혹은 인식 기능을 말한다.

 

[原文] (28) 又見眾生, 生於邊地, 不修善法,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변두리 지방에 태어나서 선법(善法)을 닦지 않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29) 又見眾生, 處飢饉世, 身體羸瘦, 互相劫奪,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기근(饑饉)이 만연한 세상에 태어나서 몸이 쇠약함에도 서로 위협하고 빼앗는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解釋] 기근(饑饉)흉년으로 곡식이 부족함. 먹을 양식이 없어 굶주림. 기황(饑荒). 비유적으로, 최소한의 소요에도 따르지 못할 만큼 부족한 현상.

 

[原文] (30) 又見眾生, 處刀兵劫, 更相殘害, 惡心增盛, 當受無量, 苦報之果,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전쟁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다시 서로 잔혹하게 해치며 악한 마음이 더욱 치성하여 마땅히 한량없는 괴로움의 과보를 받을 것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31) 又見眾生, 值佛出世, 聞說甘露淨法, 不能受持,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심을 만나서 감로(甘露)의 정법(淨法)을 설하신 것을 듣고도 능히 이것을 받아 가지지 못함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解釋] 감로(甘露, Sk. amṛta, Pāli amata)불사(不死)의 효험이 있다는, ()들이 마시는 물. 도리천(忉利天)에 있다는 감미로운 물. 부처의 가르침을 비유함. 열반(涅槃)을 비유함. 불사(不死). 정각하고 감미로운 물을 말한다.

 

[原文] (32) 又見眾生, 信邪惡友, 終不追從, 善知識教,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사악(邪惡)한 벗을 믿고 마침내 선지식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음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33) 又見眾生, 多有財寶, 不能捨施,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많은 재보(財寶)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능히 희사(喜捨)하거나 보시(布施)하지 않음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34) 又見眾生, 耕田種作, 商賈販賣, 一切皆苦,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장사하여 팔고사고 하는 것들이 모두 괴로운 것임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35) 又見眾生, 父母兄弟, 妻子奴婢, 眷屬宗室, 不相愛念, 是故生悲.

[譯文] 또한 중생들이 부모, 형제, 처자, 노비 권속 및 친척들을 서로 사랑하고 아끼지 않음을 보고,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36) 善男子! 有智之人, 應觀非想非非想處, 所有定樂, 如地獄苦, 一切眾生, 等共有之, 是故生悲.

[譯文] 선남자여, 지혜가 있는 사람은 마땅히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서의 정()의 즐거움도 지옥의 괴로움과 같은 것이어서 모든 중생들이 함께 지녔음을 관하여, 이 때문에 슬픈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原文] 善男子! 未得道時, 作如是觀, 是名為悲, 若得道已, 即名大悲.

[譯文] 선남자여, 아직 도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이러한 관()을 하는데 이것을 비()라고 하고, 만약 도를 얻으면 곧 대비(大悲)라고 하느니라.

 

[原文] 何以故? 未得道時, 雖作是觀, 觀皆有邊, 眾生亦爾, 既得道已, 觀及眾生, 皆悉無邊, 是故得名, 為大悲也.

[譯文] 왜 그런가? 도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비록 이러한 관을 하여도 그 관이 모두 끝이 있고 중생계도 또한 끝이 있으나, 이미 도를 얻고 나면 관도 중생도 모두 끝이 없나니 이러므로 대비(大悲)라고 하느니라.

 

[原文] 未得道時, 悲心動轉, 是故名悲, 既得道已, 無有動轉, 故名大悲.

[譯文] 도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가엾어 하는 마음이 흔들리므로 비()라고 하고, 도를 이미 얻고 나면 흔들림이 없으므로 대비(大悲)라고 하느니라.

 

[原文] 未得道時, 未能救濟, 諸眾生故, 故名為悲, 既得道已, 能大救濟, 故名大悲.

[譯文] 도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모든 중생을 능히 구제하지 못하므로 비()라고 하고, 이미 도를 얻고 나면 능히 크게 구제하기 때문에 대비(大悲)라고 하느니라.

 

[原文] 未得道時, 不共慧行, 是故名悲, 既得道已, 與慧共行, 故名大悲.

[譯文] 도를 얻지 못하였을 때는 지혜가 함께 행해지지 못하므로 비()라고 하고, 도를 얻고 나면 지혜가 함께 행하므로 대비(大悲)라고 하느니라.

 

[原文] 善男子! 智者修悲, 雖未能斷, 眾生苦惱, 已有無量, 大利益事.

[譯文] 선남자여, 지혜로운 자는 가엾어 함을 닦나니 비록 능히 중생의 고뇌를 끊지 못하여도 이미 한량없이 큰 이익이 있느니라.

 

[原文] 善男子! 六波羅蜜, 皆以悲心, 而作生因.

[譯文] 선남자여, 육바라밀은 모두 가엾어 하는 마음으로 짓는 생인(生因)이니라.

 

[原文] 善男子! 菩薩有二種, 一者出家, 二者在家. 出家修悲, 是不為難, 在家修悲, 是乃為難. 何以故? 在家之人, 多有惡因緣故.

[譯文] 선남자여, 보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출가보살이요, 두 번째는 재가보살이니라. 출가하여 가엾어 하는 것을 닦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재가자로서 가엾어 함을 닦는 것은 어려우니라. 왜 그런가? 재가자는 악한 인연이 많기 때문이니라.

 

[原文] 善男子! 在家之人, 若不修悲, 則不能得, 優婆塞戒, 若修悲已, 即便獲得.

[譯文] 선남자여, 재가자로서 만약 가엾어 함을 닦지 않으면 우바새계(優婆塞戒)를 얻을 수 없으나, 만약 가엾어 함을 닦으면 이미 곧 얻은 것이 되느니라.

 

[原文] 善男子! 出家之人, 唯能具足, 五波羅蜜, 不能具足, 檀波羅蜜. 在家之人, 則能具足. 何以故? 一切時中, 一切施故.

[譯文] 선남자여, 출가한 사람은 오직 오바라밀을 구족할 수 있으나 단()바라밀은 구족할 수 없다. 그런데 재가자는 능히 구족할 수 있다. 왜 그런가, 언제든지 무엇이나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니라.

 

[原文] 是故在家, 應先修悲, 若修悲已, 當知是人, 能具戒忍進定智慧.

[譯文] 그러므로 재가자는 마땅히 먼저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닦을 것이니, 만약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닦으면 이 사람은 능히 계율과 인욕과 정진과 선정과 지혜를 갖출 것이다.

 

[原文] 若修悲心, 難施能施, 難忍能忍, 難作能作, 以是義故, 一切善法, 悲為根本.

[譯文] 만약 가엾어 하는 마음을 닦으면 베풀기 어려운 것을 능히 베풀고, 참기 어려운 것을 능히 참으며, 하기 어려운 것을 능히 하리니, 그러므로 온갖 선한 법은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근본이 되느니라.

 

[原文] 善男子! 若人能修, 如是悲心, 當知是人, 能壞惡業, 如須彌山, 不久當得, 阿耨多羅三藐三菩提. 是人所作, 少許善業, 所獲果報, 如須彌山.

[譯文] 선남자여, 만약 사람이 능히 이러한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닦으면 이 사람은 능히 수미산과 같은 악업을 부수고, 오래지 않아서 마땅히 아뇩다라샴먁삼보리를 얻으리라. 이 사람이 지은 것이 적은 선업일지라도 과보로 얻는 것은 수미산과 같으리라.

[解釋] 이 『우바새계경(優婆塞戒經)』1 3 비품(悲品)의 내용은 발보리심(發菩提心)은 비심(悲心)을 생인(生因)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심(悲心)은 일체중생이 생사계(生死界)에 침몰하여 괴로워하는 상태를 봄으로써 생긴다고 설한다. 이러한 설법 속에는 인생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고뇌의 모든 양상을 구체적으로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이 고뇌로 인하여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자, 즉 비심(悲心)을 닦지 않는 자는 우바새계(優婆塞戒)를 얻을 수 없다고 한다.

* 원문(原文)의 괄호( ) 번호는 역자가 편의상 붙인 것이다.

** 이 글은 20131219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부산불교교육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