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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 2016. 3. 22.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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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91.
2016년 03월 14일 (월) 09:41:51강병균 교수(포항공대) cetana@gmail.com

- 자유의지는 참나(眞我)에게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가아(假我)에게 있는 것일까

모든 사람에게 같은 정도로 자유의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성향과 후천적으로 얻어진 습성에 의해 욕망이 일어난다. 이 욕망을 거부하는 것이 자유의지이다. 즉, 뇌가 (우리가 보기에) 무의식적으로 결정한 것을 우리가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자유의지이다.

뇌과학자 가자니가(Gazzaniga)는 이걸 ‘하지 않을 자유의지(free won't)'라고 표현했다. 생명체의 행동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결정된다. 의식수준이 낮을수록 더욱 그러하다. (개별 생명체가 그간 해온 행동에 따라 뇌는 예상행동을 만들어 제시한다. 그게 효과적이다. 그렇지 않고 매번 무(無)에서 출발하면 엄청난 시간낭비이자 에너지 낭비이다.

이것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 바둑이다. 동일한 상황에서 어떤 기사는 실리적인 수를 택하고 어떤 기사는 세력적인 수를 택한다. 무의식이 그 사람의 평소성향을 고려해, 실리 또는 세력에 기반한, 예상답을 제시한 것이 의식에 감각적으로 떠오를 때, 기사들은 "수가 보인다"고 표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욕망‘을 크게 거부하지 않고 그에 따라 산다. (그리고 그걸 삶의 낙이라고 여긴다.) 예를 들어 평소에 중국집에서 열에 아홉은 짜장면을 시킨 사람은, 중국집에 가면 열에 아홉은 짜장면을 먹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날 것이다. 만약 이 욕망을 거부하고 열에 아홉을 짜장면이 아닌 다른 음식을 시킨다면, 그건 자유의지이다. “free won't”의 발동이다. 인간 이세돌은 인공지능 알파고(Alpha Go)와의 대결에서 평소 스타일대로 두다가 3연패를 당하자, 제4국에서는 평소와 다르게 두는 길을 택해서 승리했다. 위대한 자유의지(free won't)의 발동이었다.

자유의지가 발동하려면 먼저,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욕망의 발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길게 볼수록, 깊게 볼수록, 짙게 볼수록 좋다. 이 지켜보는 행위가 그 행동을 거부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따라서 이 지켜봄의 강도와 기간에 따라 개인의 자유의지 정도가 결정된다. 모든 사람이 같은 정도의 자유의지를 지닌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육체적·정신적 능력은 천차만별이므로, 그중에 자유의지능력만 특별이 같을 이유는 없다.

사람들은 출생 시에 각자 (심리적·정신적) 지옥에 떨어질 고유의 확률을 가지고 태어난다. (심리적·정신적) 천국에 갈 확률 역시 각자 다르게 가지고 태어난다. (통속적 윤회론이건 비(非)통속적 윤회론이건 이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다를 뿐이다. 한쪽은 전생의 업을 들고, 다른 쪽은 진화와 유전자(생체유전자·문화유전자)를 든다.

아인슈타인은 처음에는 '신은 우주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God does not play dice with the universe)'며 확률론적인 ‘비인과적 양자역학’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인정했다. 개인차원의 인과율에 집착하는 것이 통속적 윤회론인데, 우주가 개인의 사적인 은원(恩怨)을 풀어줄 의무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대망상이다.

이는 인간에게 잡아먹히는 오랑우탄, 고릴라, 원숭이, 고래, 참치, 돼지, 오리, 소, 양, 닭의 입장에서 보면 명확하다. 우주가 이 동물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우주가 당신 개인의 억울함 역시 풀어줄 리 만무하다. '다음생에 두고보자'는 것은 사실상 설명회피이다. 인과를, 개인적인 관점이 아니라, 집단적인 관점에서 봐야 한다. 그러면 때로는 무작위로 일어나는 듯한 세상사와 인과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많은 경우에, (개체적인) 세포차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집단적인) 몸차원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옳고그름이란 본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말라식의 탄생과 더불어 생겨난 인위적인 것이며, 나란 너가 있어야 존재가능하므로 (즉, 나란 연기현상緣起現象이므로) 말라식은 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발달하고, 말라식의 발달에 따라 옳고그름에 대한 사상이 더불어 발달한 것이다.) 이 확률을 변화시키는 것이 자유의지이다.

무얼 가지고 태어날지는 미리 결정할 수 없지만, 이미 가지고 태어난 것을 바꾸는 것이 자유의지이다. 이에는 제법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와 육안에 보이지 않는 이면을 보는 통찰지(洞察智)를 기르는 불교적인 수행이 최고이다.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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