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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 2016. 6. 13.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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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론은 방편설
[연재] 강병균 교수의 '환망공상과 기이한 세상'-104. 한자경의 유아론
2016년 06월 13일 (월) 13:43:39강병균 교수(포항공대) cetana@gmail.com

무아론은 방편설이다
모든 것은 무아이지만 모든 게 무아라는 걸 아는 '마음'은 무아가 아니다 <한자경>


우리 불교계의 뛰어나고 성실한 학자인, 한자경 교수가 기념비적인 책을 썼다. 제목은 <불교의 무아론>이고, 결론은 '무아론은 방편설'이다.

즉, 불교의 핵심교리인 무아론이 산타클로스나 망태할아버지 이야기처럼 방편설이라는 것이다. 2007년에 벌어진 일이다. 기가 막힌 일은, 명문대학 불교학자에 의해서 불교 핵심사상이 통렬하게 부정당했음에도, 장장 9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무도 비판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학술원에 의해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올해 초에 와서야 미디어붓다 인터넷지면을 통해서, 한자경 교수의 유아론적 사상을 비판하는 홍창성·박용태 교수와 방어하는 한 교수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는데, 사실은 한 교수로서는 기습을 당한 느낌일 것이다. 이미 9년 전에 문제의 자기 사상을 (상기의) 자기 책에 다 밝혀놓았는데, 그동안 별말이 없다가 갑자기 자기를 공격을 하는 듯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 말미에 등장하는 한자경의 중심사상은 한마디로 힌두교적 유아론이다. 모든 것은 무아이지만 모든 게 무아라는 걸 아는 '마음'은 무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자경은 '부처님의 무아설은 방편설'이라고 주장한다. 한자경의 이 (모든 게 무아라는 걸 아는) 마음은 우주의 근본이다: 마음을 떠나 물질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꿈속의 자타 세계가 실재하지 않듯이, 외계는 우리 마음에 나타나는 꿈과 같으므로 실재하지 않는다. 이상이 한자경의 주장이다.

이는 '연기론에 기반한 진정한 무아론을 주장하는' 현대 뇌과학에 반하는 주장이다. 과학을 유물론이라고 비난하는 불교인들은 부처님의 무아론을 버렸지만, 무아론을 증명하고 있는 과학이 부처님 사상의 충실한 계승자이다. 왜 불교인들은 성속(聖俗)을 가리지 않고 죽기살기로 과학적 발견을 외면하고 무시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은 무아이지만 모든 게 무아라는 것을 아는 마음은 무아가 아니다’라는 한자경의 주장은, 혜민의 주장이기도 하다. 혜민은 '아무리 실체가 없다 해도 그 생각을 하는 실체는 항상 존재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실체는 마음이다. 즉, 혜민이 말하는 생각을 하는 ‘실체’는 한자경이 말하는 모든 게 무아라는 것을 아는 ‘마음’이다. 한자경과 혜민의 주장은 진제·서암·청담·혜국 등 한국의 큰스님들과 대선사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 나와 세계가 공(空)으로 남겨질 때 남겨지는 빈 바탕은, 추상적인 이차적인 공간이 아니라, 바로 마음이다. 진여이다. 그 빈 허공이 스스로를 자각하기에 그걸 마음이라 한다(266쪽).>

평: '모든 것이 사라진 텅 빈 공간이 사유한다'는 혜민의 발언과 일치한다. 허공이 생각을 한다는 혜국의 발언과도 일치한다.

<그 빈 공간이 우주 전체를 감싸는 하나의 공간이기에 그 마음이 바로 하나의 마음, 보편적 평등의 한마음, 일심이다.>

평: 한자경의 사상이 유아론일지 모른다는 홍창성 교수의 의심이 백번 옳다.

<진여의 존재에 의하면 무아설은 방편설이다. 모든 석가의 가르침은 무명 중생을 위한 방편설이다(264쪽).>

평: 감히 무상·고·무아 삼법인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무아가 방편설이고 진여(眞如)가 실재라면, 즉 진여가 불생불멸·상주불변하는 실체라면 진여는 힌두교의 브라흐만과 뭐가 다른가? 다시 강조하자면, '모든 것은 무아이지만 모든 게 무아라는 걸 아는 놈은 무아가 아니다'라는 한자경의 사상은 '아무리 실체가 없다 해도 그 생각을 하는 실체는 항상 존재합니다‘라는 혜민의 사상과 일치한다.

266쪽에서 한자경은 '진여가 무아'라고 하지만, 이 말은 같은 쪽과 267쪽에서 말하는 '무아와 진여는 역설적 관계'라는 말과 모순이고 '무아설은 방편설'이라는 말과도 모순이다. 한자경이 '진여가 무아'라고 할 때의 '무아'는 '현상아가 아니라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벽 위에 쓰인 '낙서 하지마'는 낙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현상이 무아라는 것을 아는 마음'은 '현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즉 연기세계에 속하지 않는 존재이다. 연기하지 않는, 즉 연기를 초월한 절대적인 존재이다. 이런 존재의 작용인 '앎' 역시 절대적인 '앎'일 것이다. 힌두교의 브라흐만(Brahman 梵)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부처님이 언제 '연기를 초월하는 절대적인 존재'를 설하셨다는 말인가?

한자경은 또 주장한다. "꿈속에서의 자타(自他 나와 너)가 허구이듯이, 현상세계라는 꿈속에서의 자타 역시 허구이다. 깨달음을 얻으면 현상세계라는 꿈에서 깨어나 자타가 허구라는 걸 알게 된다." 이와 같은 한자경의 사상은, '현상계가 브라흐만(Brahman 梵)의 꿈이라는 불이일원론적(不二一元論的)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인' 상카라의 철학과 정확히 일치한다. 단지 용어가 다를 뿐이다. 한자경은 ‘진여라는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존재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연기하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를 가르치신 적이 없건만, 한국 불교학자들과 승려들은 연기를 벗어난 절대적인 존재를 가르친다. 그리고 감히 ‘자기가 그 절대적인 존재’라고 주장한다. 진여, 참나, 진아라고도 주장한다. (그래놓고는, 자기주장에 스스로 감동해 몹시 통쾌해 한다.) 과대망상 중의 과대망상이다.

한자경의 '모든 걸 무아라고 아는 마음'은 필시 ‘뇌에 구속되지 않는 마음’이다. 따라서 치매나 코마에 빠진 사람에게도 그런 인식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그냥 선언일 뿐이지 아무 증거가 없다. 합리적인 논증도 없다. 뇌 없이도 생각과 인식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괴이한 주장이다. 그럼 지렁이도 심지어 나무도, 인간과 같은 지적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부경전 경집 자경(慈經)'에는, 부처님이 일체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가질 것을 설하면서 '깊은 잠에 빠져 있지 않은 한, 힘을 다해 이 생각을 지녀라'고 당부하는 대목이 나온다. 만약 일부 승려들이 주장하듯이 참나가 생각을 하는 것이라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도' (절대로 잠을 잘 리 없는) 참나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위 경전의 구절은 명백히 지적하고 있다. 깊은 잠에 들면 생각을 할 수 없다고. 만약, 우리가 깊은 잠에 들 때 같이 잠에 드는 참나라면, 그런 참나는 그림자 같은 존재일 것이다. 우리가 잠들면 같이 잠들고 우리가 깨면 같이 깨고, 우리가 생각하면 같이 생각하고 우리가 생각을 안 하면 같이 안 하고, 우리가 기절하면 같이 기절하고 우리가 (기절에서) 깨어나면 같이 깨어나는, 도플갱어(doppelganger) 같은 존재일 것이다. 복사본 같은 존재일 것이다. 이런 존재는 실제적으로 전혀 필요없는 존재이다.

한국 승려들이 '생각을 하는 건 참나'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건, 스스로 참나를 욕보이는 행위이다. 그 엉뚱한 생각도,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참나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멀리 갈 것도 없이, 흉악범들의 도둑질·강도질·살인질을 하자는 생각도 참나가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엉터리 생각을 하는 이유는 승려들이 평소에 경전과 과학서적을 읽지 않고 (생각은 다 참나에게 미뤄놓고) 깊은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생각에 의하면, 참나는 완벽한 절대적 존재이므로, 감히 누가 참나에게 '생각을 하라 마라' 하고 조정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핵심 사상 중의 핵심 사상인 '무아론'을, 힌두교적인 참나를 선양하기 위해, '방편설'로 격하하고 전락시키는 행위는 돌길라(突吉羅, 惡作惡舌) 중에서도 돌길라이다. 이런 행위가 한국불교계의 중진불교학자에 의해 자행된다는 것은 경악할 일이지만, 동시에 비극이기도 하다. 훼불은 800년 전 인도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 대승불교의 마지막 거점인 동쪽 끝 한반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탈레반에 의한 바미안 석불(石佛) 파괴보다도 더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물질(石佛)이 아니라 정신(眞佛)을 파괴하고 있다. 세속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불교학자와 승려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유아론적인 주장을 뒷받침할 아무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수백 쪽에 이르는 책을 썼지만, 이 책의 '무아가 방편설이라는 주장'은 그냥 한 줄 선언일 뿐이지 어떤 합리적인 논증도 증거도 없다. 책 제목은 '불교의 무아론'이고 결론은 '무아론은 방편설'이다. ‘인간의 정신활동의 배후에 초월적 존재인 참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대 뇌과학과 진화론이 실증적으로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무아론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몽매주의적(蒙昧主義的) 행위이다. 정녕 한국참나불교계는 영적인 갈라파고스제도인가? 외부 생태계로부터 고립되어 괴상한 방향으로 진화하는 곳인가?

한자경 교수는 유식학(唯識學) 전공이다. 그런데 유식학에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해석함에 있어서 두 가지 사조가 있다. 하나는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영상은, 평시이건 꿈속이건 명상 중이건, 다 우리 마음의 조작이란 설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에 떠오르는 영상뿐만이 아니라) 외계의 사물과 우주까지 모두가 우리 마음의 소작이란 설이다. 후자의 전통에 따르면 원성실성(圓成實性)이란 짚이다. 뱀인 줄 알았는데(遍計所執性), 알고보니 줄이더라(依他起性). 그런데 줄은 짚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짚이 이 모든 현상의 근본이다'(원성실성)라는 것이다. 여기서 짚에 해당하는 것이 '식(識 의식 마음)'이다. 우주 만물의 근원이 식이라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이 입장, 즉 후자일 것이다. 그런데 후자를 따르더라도 후자의 심(心 識)을 실체적인 심으로 보면 안 된다. 우주와 연기하지 않는 초월적인 심으로 보면 안 된다. 설사 우주의 바탕인 심(心 識)이 있더라도, 그 심이 역동적으로 우주(有情無情)와 상호관계를 하면 그것은 더 이상 연기를 초월한, 상주불변의 절대적인 심(心)이 아니다. 진화하는 심(心)이다. 이것이 바로 진공묘유(眞空妙有)이다. 연기와 마음과 진화 이 셋은 같은 것이다(緣起心及進化是三無差別).

인터넷에는 참나론자들이 활개를 친다. 심지어 ‘유일한 참나가 우주와 영혼과 생명체를 모두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유명인도 있다. 이 사람에 의하면 ‘개별 영혼의 의무는 참나의 뜻을 알아 그 뜻에 합치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참나'를 '하나님'으로 바꾸면 기독교 신학이 된다. 이 사람은 불교용어를 사용하지만 사실은 기독교인이다.

전문불교학자라면 재야인사들보다는 견해가 나아야 할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심오하고 난해해 보이지만, 무수한 전문용어와 ‘남들이 뭐라고 주장하더라는’ 인용을 빼고 나면 남는 것은 한 줄 ‘참나론’이다. 그것도 힌두교적 유아론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판단력이 없는 중생에게 진짜 해를 끼치는 것은, 권위를 입고 나타나는 사견(邪見)이기 때문이다.

한자경 교수의 저서 ‘불교의 무아론’은 불교역사에 등장하는 아(我)에 대한 역사와 논쟁을 집대성한 명저이다. 뛰어난 학자인 한 교수가 불교 핵심교리인 무아론을 방편설이라고 주장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처한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준다. 유아론적인 한국불교풍토에서 보고들은 것이 유아론이라면, 혼자 힘으로 유아론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카리스마를 지닌 장좌불와 선승들이, 그것도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 눈부시게 안광(眼光)을 발하면서,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유아론적인 주장을 하면 거부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래서 한국불교에는 더욱 반야지혜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한국 불교계가 이미 오래전에 무아론을 버렸다는 사실’을 한자경 교수가,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하며, 솔직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렵기만 하다. 
 

  
 

서울대 수학학사ㆍ석사, 미국 아이오와대 수학박사. 포항공대 교수(1987~). 포항공대 전 교수평의회 의장. 전 대학평의원회 의장. 대학시절 룸비니 수년간 참가. 30년간 매일 채식과 참선을 해 옴.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 문하에서 철야정진 수년간 참가. 26년 전 백련암에서 3천배 후 성철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가장 위대한 발견은 무아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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